137 젠 이프리트의 이야기 (12)
펄의 안장 위에 앉아, 잔뜩 삐져 있는 펄의 갈기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는 그가 말했다.
“앞으로 먹보라는 단어는 금지야.”
“….”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영악한 백마는 주둥이를 푸르르 떨며 신경질을 냈다.
그에 펄을 쓰다듬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려 내게 따끔하게 소리쳤다.
“먹보 금지!”
“…네, 조심할게요.”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껏 이 백마를 먹보라 불렀고, 첫인상이 강렬했던 만큼 펄이라는 이름이 입에 붙지 않을 것이다.
먹보라고 불리기 싫어하는 이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언젠가 또다시 먹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펄, 슬슬 움직이는 게 어때? 여기 뱀 나올 거 같은데….”
그는 협박하듯이 타일렀고, 꼼짝하지 않고 땅 아래에 말발굽을 박아 놓았던 펄은 윤기 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발을 떼기 시작했다.
“옳지, 아이 착해라!”
그는 또각또각 도도한 걸음걸이로 발굽을 내딛는 펄을 칭찬했다.
“다행이네요,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피로가 쌓였을 가넷 대신, 달리고 싶어 하는 먹보… 아니, 펄을 타고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로 가던 도중, 내가 습관적으로 펄을 ‘먹보’라고 부르는 바람에, 우리는 펄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찬 기운이 머무는 숲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때문에 우리는 그곳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고, 겨우 화가 풀린 펄을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중이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황실과 조금 떨어져 있어서, 숲의 시작부터 거의 끝까지 달려야 했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서인지 목적지를 모르고 있는 그로서는 조금 불안했나 보다.
그는 소심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저 숲속 깊은 곳에 나 버려두고 가는 건 아니지?”
“버리다니요. 그럴 일 없어요.”
내 말에 작은 웃음소리를 내뱉은 그가 내 가슴께로 조심스레 머리를 기댔다.
“알아. 농담이었어.”
“그런 농담은 재미없어요. 제가 못된 사람이 된 것 같잖아요.”
“젠이 못된 사람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네가 제일 착해.”
그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내 말을 가볍게 웃어 넘겼다.
그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나는 그가 생각하는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와 만나기 전만 해도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나와 관계가 되지 않은 일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만나고 나서 무던했던 성격이 선명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와 함께한 순간이 나를 변화시킨 거다.
“제가 착한가요?”
나는 그를 향해 되물었다.
그에 내게 기대었던 머리를 떼어 내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객관적으로 보면 나한테만 착하지.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잖아.”
“잘 알고 계시네요.”
“당연하지. 같이 지낸 시간이 있는데 그것도 모르면 바보지.”
그는 고개를 힐끔 돌려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 웃음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나도 그와 마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나무들 사이로 들어온 달빛이 그의 말간 뺨을 비췄다. 그의 뺨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네가 게이라… 정말 다행이야.”
그놈의 게이.
그는 항상 내 얼굴을 보며 내가 ‘게이’라서 다행이라며 마음을 놓는다.
그의 말로는 ‘게이’는 ‘잘생긴 사람’을 부르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미묘한 반응으로 보아 그 뜻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의 세계와 관련된 단어 서적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조금만 더 가면 나와요. 버리려는 거 아니니까 안심하시고요.”
내 말에 그는 꽁해 있는 거냐며 웃었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가 환하게 웃으면 내 의도는 크게 상관없다.
“그냥 농담이었어.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숲속 깊은 곳이 막 그렇게 행복한 장소가 아니거든.”
“그런가요?”
“응, 보통 성격 나쁜 새엄마가 아이를 버려 두는 장소로 나와.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아주 깊은 숲속에 버려 두지. 갑자기 그 동화가 생각나서 말해 본 거야.”
그는 자신이 살던 세계의 동화를 이야기해 줬다.
“옛날 옛날, 우애가 좋은 남매가 살고 있었어요. 남매의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뒤, 금사빠 아빠는 금방 새로운 엄마를 맞이했죠.”
“금사빠요?”
“아, 금방 사랑에 빠진다를 줄인 말이야.”
‘별걸 다 줄이는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넘어갔다.
“그렇군요.”
“남매는 새엄마를 반갑게 맞이해 줬지만, 새엄마는 애들을 싫어했었어요. 새엄마는 어떻게 애들을 떼어 놓을까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그건 바로 소풍을 가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깊은 숲속으로 간 뒤, 버리고 오는 거지.”
“지금 저희처럼요?”
“응, 맞아. 그리고 처음 시도는 실패했어. 어떻게 알았는지 남매가 조약돌을 모아서 돌아가는 길을 표시했거든.”
“다행이네요.”
“그리고 새엄마는 며칠 후 다시 시도를 했지. 이번에는 조약돌도 없어서 아침으로 받은 빵을 뜯어서 길을 표시했는데, 새들이 다 먹어 버리는 바람에 남매는 깊은 숲속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길을 잃었어.”
그는 길을 잃은 남매가 안타깝다는 듯 착잡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었다.
그는 이따금 자야 할 시간에 잠들지 않는 노반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해 줬었다. 말투와 표정, 몸짓으로 듣는 사람이 즐겁게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노반은 미르 님이 해 주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가끔 일부러 잠들지 않았다.
왜 노반이 일부러 잠들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는 것 같다.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남매는 배가 너무 고팠어. 아침으로 먹을 빵도 새들이 먹어 버려서 하루 종일 굶은 상태였거든.”
“그래서요?”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 남매는….”
그는 말꼬리를 늘리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사실 뒷이야기는 궁금하지 않지만, 그가 조금 더 말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거웠다.
“남매는요?”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 우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우리는 어두웠던 숲을 빠져나왔고 그 끝에 있는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졌다.
이곳은 두 개의 달이 떠 있다. 눈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넓고 투명한 호수는 어두운 밤하늘에 환하게 빛나는 달을 비추고 있었다.
환한 달빛이 호수 위로 쏟아져 내렸고, 별들도 반짝이며 자신을 뽐냈다.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는 호수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큼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다 감탄을 내뱉었다.
“진짜 멋지다.”
“답답하던 기분은 나아지셨어요?”
“응, 완전.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아.”
우리는 적당한 곳에 멈췄고, 펄 위에서 내렸다. 그리고 호수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까 해 주셨던 이야기의 다음을 알려주세요.”
“아! 응, 맞다. 어디까지 했지?”
“과자로 만든 집이요.”
그는 큰 소리가 나게 손뼉을 마주치곤, 못 맞췄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아까는 펄 위에서 움직이지 못해 그의 어조만 들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의 표정도 볼 수 있어서 이야기가 더 생동감이 넘쳤다.
“그렇게 마녀는 뜨거운 솥 안으로 떨어져서 죽고, 남매는….”
“남매는?”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을걸…?”
그는 이야기의 결말이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마녀에게 빼앗은 과자 집에서 잘 살거나, 과자 집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했다.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라서 행복하게 끝날 수밖에 없어.”
그는 씨익 웃고는 호수와 도로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그의 곁으로 가, 그가 넘어지지 않게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을 타고 따스한 온기가 흘러들어왔다.
“저희도 행복하게 끝났으면 좋겠네요.”
“맞아, 꼬부랑 할아버지 돼서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
그는 내 손을 꽉 잡은 채, 호수를 향해 몸을 살짝 기울였다. 나는 그의 손을 꽉 잡고, 그가 호수에 빠지지 않게 중심을 잡았다.
“놓으면 안 돼!”
“네, 안 놓을게요.”
그는 나를 믿고 호수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러곤 활짝 웃으며 남은 한 손도 나를 향해 내밀었다.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와 조금 더 오래 있을 수 있을 텐데.
* * *
바람과는 다르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마물 토벌에 나가기 하루 전, 그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기.’
이 약속은 나를 위한 약속이며, 그를 위한 약속이다.
그는 내가 자신이 가진 능력을 과도하게 믿는 경향이 있다며 조심하라고 했다. 그의 말로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망설임 없이 돌진하는 모습에 보는 사람이 더 놀래고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토벌에서만큼이라도 가능하면 나서지 말고 몸을 아끼자고 약속했다.
나와 똑같이 미르 님도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굉장히 아낀다고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성미가 있다. 자신이 큰 위험에 처해도 누군가가 지켜 줄 거라는 안전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무모했다.
그런 그의 행동을 방지하고자 나 또한 약속을 했지만, 보기 좋게 배신을 당했다.
“더는 무리하지 마시고 출발하세요. 이러다 젠 님의 몸이 상할까 봐 걱정됩니다.”
마린은 잠을 자지 못해 퀭한 눈으로 나를 타일렀다.
로테 별궁, 프레오나 황궁, 그리고 상점가에서 광장까지 그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전부 찾아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에 관해선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노반까지,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암울해하고 있다.
내가 가진 유일한 단서인 그와 연결된 마법 목걸이도 거짓말처럼 잔잔했다.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가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된 게 아닐까. 그리고 내게 작별 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던 게 아닐까.
최악의 상황은 차악의 상황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그가 원하고 원했던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간 거였으면 그가 위험에 빠진 게 아니었으면, 그랬으면 다행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