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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40화 (140/227)

140 세네카 제국으로 향하다 (2)

“일어나셨어요?”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젠의 얼굴이었다.

내가 젠의 방에서 잤었나…? 아닌데, 여긴 내 방인데. 젠이 왜 내 방에….

“…젠?”

나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눈을 깜빡거리며 침대 끝에 앉아 있는 젠을 바라봤고, 그런 젠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직 새벽이에요. 더 주무세요.”

그의 말을 듣고 바라본 창문 밖은 아직 아침 해가 뜨지 않아 푸르스름했다.

나는 몸을 살짝 뒤틀어 나를 보고 있는 젠을 마주 봤다. 젠은 내가 몸을 뒤트는 바람에 흐트러진 이불을 덮어 주며 내 허리 위를 토닥토닥 부드럽게 두드렸다.

하지만 나는 젠의 웃는 모습을 보고 난 후부터 잠이 다 깨어 버렸다.

일어나자마자 심장을 폭행하는 얼굴이 앞에 있는데 잠이 다시 오겠어?

“오랜만이야.”

나는 젠을 향해 돌아누워,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젠은 내 허리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곤, 순애한 시선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오랜만이라는 내 말에 젠은 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른 새벽부터 내 심장에 훅을 날린 젠 덕분에 내 가슴은 두근두근 기분 좋게 뛰었다. 아니, 좀 격하게 뛰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거 진짜 부정맥 아니야?

나는 두근두근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미동 없이 앉아 있는 젠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 자는 거 구경하고 있던 거야?”

“네, 실감이 나지 않아서요.”

지금 느끼는 기분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묻자 젠은 고개를 끄덕이곤 살포시 웃었다. 그러곤 내 뺨에 붙어 있는 잔머리를 조심스레 넘겨 주며 말했다.

“눈을 뜨자마자 미르 님을 뵈러 왔어요. 늦은 밤에 찾아오는 건 실례인 걸 알지만… 다시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 버틸 것 같아서요.”

그는 느릿한 움직임으로 손을 내려, 베개 위에 올려진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러곤 잡은 손을 더욱 단단하게 잡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보고 있는 게 환상인지 아닌지 내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어두워 보이는 그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어.”

“그랬나요?”

“응. 네가 응접실로 들어와서 내 앞에 섰을 때, 이젠 하다하다 네 환상을 보는구나, 한 사람을 너무 그리워하면 이렇게 착각을 하는 거구나, 나 정말 미친 건가? 이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

나는 일주일 전, 토벌에서 돌아온 젠을 봤을 때의 기분을 그에게 말해 줬다. 내가 보는 게 환상인가 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봐서 기쁘고, 얼떨떨하면서도 마냥 좋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이 환상이 아닌 걸 알게 되자, 기쁨과 동시에 정신이 더욱 멍해졌다. 그리고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지금도 그래. 너만 보면 심장이 마구 뛰어.”

나는 그와 맞잡은 손을 끌어내 심장께로 얹었다. 그는 기분 좋게 뛰는 내 심장 박동을 느낀 뒤, 어두웠던 얼굴을 밝혔다.

나는 한껏 풀어진 그의 얼굴을 보고,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치?”

내 뿌듯한 표정을 본 젠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얼굴을 내게 더욱 가까이 들이댔다.

“제 얼굴 때문이 아닌가요? 당신은 제 얼굴에 약하잖아요.”

그에 나도 그와 같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알고 있었구나. 하긴,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어쩔 수 없는걸. 너는 잘 모르겠지만, 네 얼굴은 좀 사기일 정도로 잘생겼어. 잘생겼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돼. 얼굴만 잘생겼으면 몰라 비율도 완벽하잖아. 진짜 몇 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상 같다고. 장담하는데 이 세계에서 네가 제일 완벽하게 태어났을 거야.”

내 주접을 들은 젠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미르 님의 기준이 조금 낮은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은 흔해요.”

“기만이야!”

잘생긴 애들이 더 한다더니, 뭐? ‘저 같은 사람은 많은걸요?’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 잘생긴 사람이라고는 젠이랑 한나 말고는 본 적이 없다! 기만도 이런 기만이 없어.

뾰로통한 내 표정에 젠은 푸훗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이곳에선 미인이 꽤 흔해요.”

그의 말대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미인… 미인….

아, 객관적으로 보면 꽃집 청년 시아도 미인이다. 세르비스도 잘생겼고, 오스먼드도 꽤 생겼고… 세네카의 로이븐이나 메이븐도 잘생긴 편이지. 인정하긴 싫지만 퍼디스도 귀염상으로 잘생겼다.

뭐야, 여긴 잘생긴 애가 왜 이렇게 많아?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은 젠이다. 젠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을 지우고 젠을 바라봤다.

그래, 이거지.

나는 모난 곳 없이 내 마음에 쏙 드는 젠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금안을 홀린 듯 빤히 바라봤다.

황금을 녹여 달을 만들고, 그 빛이 스며든 것 같은 황홀한 눈동자다.

내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는 것처럼, 젠도 나와 눈을 맞췄다. 그의 진득한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제겐 당신이 제일 아름다워요.”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맞아. 내가 제일 예쁘지.”

“외관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젠은 나와 마주쳤던 시선을 피한 채 말을 이었다.

“사실… 무서웠어요. 당신이 내가 아는 당신이 아닐까 봐.”

젠은 잠에서 깬 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고 했다. 홀연히 사라졌던 내가 자신이 아는 4황자가 아닐까 봐 무서웠단다.

나는 힘이 빠진 젠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그럴 일 없어. 내가 말했었지? 난 죽기 전까지 이 몸에서 살아야 한다고. 이 몸이 이제 나야.”

단호한 내 말에 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얕게 웃으며 말했다.

“네, 알고 있어요. 그저 미르 님은 전에도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으니,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그곳으로 돌아가실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걱정이 됐어요.”

“안 가. 내가 너를 두고 어딜 가. 그리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 돌아가기엔 내가 여기서 했던 개고생이 아깝고 억울해서 못 돌아가.”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곁에는 하루 온종일 함께 있고 싶은 젠이 있다. 그와 떨어져 있던 한 달도 힘들었는데 영영 떨어져 있으라니… 생각도 하기 싫다.

그리고 떠오르기만 해도 헤벌레 미소가 지어지는 귀여운 여우 노반과, 이 세계에서 나의 시작을 함께한 가족 같은 마린도 이곳에 있다.

그들을 두고 돌아가고 싶지 않다.

게다가 아공간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보석들과 돈이 되는 값진 물건들이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이곳에 꾸역꾸역 남아 있을 거다.

“절대 안 가. 보내준다 해도 이쪽에서 사양이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가지 않을 거다.

* * *

“오라버니께서 잠드시고 일주일이 지났어요.”

“일주일…?”

“네, 최고 기록이에요.”

한나는 고고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젠에게 말했다. 젠은 자신이 그렇게 오래 잠들어 있었는지 몰랐다며 놀랐다.

그에 노반도 한나의 일침을 거들었다.

“난 네가 어디 크게 다쳐서 못 일어나는 게 아닌가 했어!”

노반은 일주일 동안 젠이 일어나지 않아 많이 걱정했었다. 나야 철수가 멀쩡하다고 알려줘서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철수를 믿지 못했던 노반은 하루에 세 번 젠을 찾아가 기상 알림을 자처했다.

게다가 오늘은 세바스찬에게 받은 기상 나팔을 사용해 젠을 깨우려고 했다. 먼지가 쌓인 나팔을 헝겊으로 열심히 닦았지만, 젠이 눈을 뜨자마자 내 방으로 온 탓에 노반의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기상 나팔이 쓸모가 없어졌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노반.”

툴툴거리는 노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젠은 자신의 스테이크 반 덩이를 잘라 노반에게 넘겼다.

노반은 자신의 접시 위로 올려진 스테이크를 보고 신이 나선 환한 얼굴로 칼질을 했다.

그런 노반을 본 한나가 가까이에 대기하고 있던 주방장에게 음식을 더 준비해 달라 일렀다. 그러곤 거의 다 먹어 가는 나를 향해 물었다.

“황자님, 이후에 계획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계획? 어떤 계획?”

정치 계획? 아니면 내 계획?

나는 접시에 남은 마지막 고기를 입 안으로 넣은 뒤, 어떤 계획을 말하는 거냐며 한나에게 되물었다.

“행선지를 여쭤보는 겁니다. 오라버니도 이제 일어나셨으니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실 생각이신가요?”

“아아….”

나는 앞으로의 행선지에 고민에 빠졌다.

진짜 어떡하지…. 가야 할 곳은 있는데 가고 싶지는 않다.

그에 고민하는 나를 본 한나가 말했다.

“이번 토벌로 오라버니의 신분이 돌아올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황자님, 수도에서 생활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이프리트 백작저가 부담스러우시면 따로 저택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한나는 내가 수도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나의 제안에 의아해져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되물었다.

“수도?”

“아무래도 수도가 즐길 거리도 많고, 저나 레이도 이곳에 있고, 황자님께서 지내시기에도 외진 북쪽보다는 이곳 수도가 편할 테니 혹시 괜찮으시다면 수도로 이주하시는 게 어떤가 합니다.”

한나는 북쪽에서 수도로 이주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그 진지한 눈빛에 조금 넘어갈 뻔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내가 지내기에는 수도보다 북쪽이 더 편하다. 즐길 거리가 많고, 있을 거 다 있는 편한 수도도 좋지만, 내게는 그저 보는 눈이 많은 곳일 뿐이다.

게다가 수도라면 오스먼드가 가까이 사는데 툭하면 불러낼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아직은 할 일이 남았다.

“음… 제안은 고맙지만, 이곳에서의 일이 해결되고 나면 세네카에 가 보려고 해.”

“세네카 제국 말입니까?”

젠을 제외한 이곳의 모두가 놀랐다.

한나는 뜬금없는 세네카 제국 이야기에 놀랐고, 노반은 새로운 곳이라 흥미로워하며 놀랐고, 마린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으니 걱정했다.

젠은 어디로 가든 나와 함께 가는 걸 알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응, 세네카 제국.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만날 사람도 있고.”

“그렇군요….”

“그리고 돌아와도 아마 북쪽에서 살 것 같아. 나는 거기가 편해.”

수도에서 살 생각이 없다는 내 말에 한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나는 내가 수도에 살면 자신과의 교류도 활발해질 테고, 젠이 무슨 짓을 벌이나 감시하기도 편할 테니 내심 우리가 수도로 이주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폐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공식적으로 가는 것일 테니 제 사람을 붙이겠습니다. 무시당하시면 안 되죠.”

한나는 세바스찬을 불러 내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이것저것 챙겨 주려 했지만 내가 마다했다.

“아니야! 마음은 고맙지만 정말 괜찮아. 조용히 가고, 조용히 올 거라 사람이 많으면 어수선해져.”

“알겠습니다. 그럼….”

한나는 이것만큼은 포기하지 못하겠는지 세바스찬에게 금고에 묵혀 놓은 값비싼 물품을 가져오라 일렀다.

나는 말리고 싶었지만 내 옆에 앉은 젠이 괜찮다며 폭주하려는 한나를 내버려 두라는 바람에 내 왼쪽 손목에는 저택 두 채의 값이, 오른쪽 손목에는 마차 다섯 대의 값이, 왼쪽 발목에는 명마 열 필의 값이, 목에는 성 한 채의 값이 달리고서야 끝이 났다.

한마디로 굉장히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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