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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42화 (142/227)

142 세네카 제국으로 향하다 (4)

내 이럴 줄 알았다.

“긴 여행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네카로 향하는 마차 앞에는 보리언이 서 있었다. 윤기가 도는 갈색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그는 우리에게 잘 부탁드린다며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래, 오스먼드 이 새끼가 곱게 보내 줄 리가 없다는 걸 잊고 있었다. 아니, 조금 안심하고 있었다.

유성이 우리 집 앞마당에 떨어질 확률이지만 오스먼드가 개과천선을 해서 불쌍한 볼모 살리는 셈 치고 내가 휴식을 취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세네카에 보내 주는 줄 알았다.

휴식은 개뿔, 이번 여행은 오스먼드의 어떤 계획을 위한 매개체가 되었다.

“폐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모르겠군.”

“그저 황자님의 곁에서 황자님을 보필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거짓말.

보리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대로 말하라고 해도 말하진 않겠지만… 아, 몰라 알아서 하겠지. 나한테 피해만 오지 않으면 보리언이 뭘 하든 상관없다.

아, 그래도 한 가지는 확인해야 한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네만, 그대의 목적이 세네카의 황족과 연관이 되어있나?”

노파심에 하는 질문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런 목적은 아니었으면 한다. 황족을 건드려서 분탕질을 쳐놓는다거나, 황족의 숨을 끊어놓는다거나. 그런 치사하고 더러운 목적이 아니었으면 했다.

물론 이것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보리언의 목적이 로이븐이나 메이븐이에게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보리언의 목적이 볼모로 떠난 아들에게 편지 한 통도 보내주지 않는 무심한 라이언 황제나, 말할 가치도 없는 퍼디스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내 뒷배가 되어 주는 로이븐이나 메이븐 형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잔뜩 굳은 얼굴로 보리언을 쳐다봤고, 보리언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절대 아닙니다.”

황족 살해와 연관이 되어있냐는 내 질문에 보리언은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 됐다. 로이븐과 메이븐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면, 누구를 죽이던, 뭘 훔쳐 오든, 분탕질을 쳐놓든 내 알 바가 아니다.

아, 에반스터도 있었구나. 아… 뭐 걔는 곧 마탑주가 될 인간인데 알아서 잘 살겠지.

“불순한 목적이 아니니 황자님께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그런게 아니라면 됐어.”

세네카 쪽은 한시름 놓았다지만, 이번에는 여기가 걱정이다.

“노반, 보리언이랑 동행해도 괜찮을까?”

나는 품 안에 안고 있는 여우를 향해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의 기분을 물었다.

우리의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세네카의 4황자는 미쳤거나 어디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거다. 여우에게 사람 말로 질문을 하는 굉장히 괴상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보리언은 그동안 나와 함께 있었던 적이 많아서인지 잠자코 노반의 기색을 살폈다.

“노반, 싫으면 컁이라고 해 줘.”

나야 보리언과 같이 다닌 시간이 있어 보리언이 마냥 불편하지는 않지만, 보리언이 익숙하지 않은 젠이나 마린, 그리고 노반이 걱정됐다.

특히 노반은 낯선 인물을 아주 싫어하는데, 그게 귀족이면 그 감정이 더 극적으로 드러났다. 오죽하면 프레오나 황궁에서 만난 모든 귀족에게 컁컁 세례를 했을 정도니….

만약 노반이 보리언과 동행하는 게 싫다고 한다면, 보리언은 우리와 저 멀리 떨어져서 따라오라고 할 예정이다.

“노반?”

신기하게도 노반은 보리언을 바라보며 잠잠하게 있었다. 그에 보리언은 나를 바라보며 괜찮은 거냐고 물었고, 나는 질문방식을 바꿨다.

“노반, 괜찮으면 컁!”

“컁!”

의외다.

노반은 보리언을 바라보며 ‘컁!’을 외쳤다. 젠과 마린도 노반의 뜻밖의 반응에 놀랐는지, 우리가 타고 갈 마차와 세네카로 가지고 갈 짐을 정비하던 것을 멈추고 우리 쪽을 바라봤다.

“진짜 괜찮아?”

“컁!”

노반은 정말 괜찮은지 내 품을 떠나 열린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정말 괜찮은 거야?

“노반은… 괜찮은 것 같네. 젠이랑 마린은?”

“상관없습니다.”

“저도 괜찮아요.”

마린은 마지막 짐을 마차로 옮겼고, 젠은 가넷과 다른 말을 마차와 연결시켰다. 그러곤 내 근처로 다가와서 단단한 손으로 내 허리를 잡아 마차 안으로 올려 줬다.

덕분에 보리언과의 대화도 끊겼다.

“곧 출발할 테니 편하게 앉아 계세요.”

“같이 안 타?”

함께 마차에 타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젠은 가볍게 웃어 주며 답했다.

“국경을 넘고 나면요. 지금은 밖에서 상황을 살펴야 할 것 같아요.”

“알았어.”

짐 정리를 완벽하게 끝낸 마린이 마차 안으로 들어온 뒤, 젠은 마차의 문을 닫아 줬다. 곧이어 여러 말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출발했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는 마차는 땅이 거칠지 않고 고르게 다듬어져 있어 흔들림 없이 잘 굴러갔다. 더군다나 노반이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있는 바람에 안전벨트도 있는 셈이었다.

나는 마차에만 타면 어김없이 창밖을 보며 사색에 잠긴 척했다. 솔직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거리의 풍경을 보는 것이 답답한 마음을 뚫어 주기에 딱 좋았다.

“황자님, 날이 차갑습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 창문 닫고 들어오세요.”

“응.”

정정한다. 겨울에는 창밖으로 고개를 빼면 안 된다. 시원한 바람은 무슨, 칼날 같은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상처를 내는 것 같다.

오늘의 교훈, 한겨울엔 창문 밖으로 머리 내밀지 말기.

나는 창문을 닫고, 따듯하고 보송보송한 노반을 껴안아 차가워진 얼굴을 데웠다. 자신의 배 위로 갑자기 차가운 게 닿아 깜짝 놀란 노반의 몸이 꿈틀거렸다. 나는 노반의 꿈틀거림을 느끼며 여우의 따듯함을 만끽했다.

“캬아!”

“노반 너무 따듯해!”

“키양!”

나는 노반에게 내 얼굴을 비비며 체온을 강탈했고, 노반은 내 품에서 난리 브루스를 췄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마린이 우리를 보며 푸훗 하고 작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마린은 세네카에 가면 바쁘겠네? 본가도 찾아가야 하고, 볼 사람도 많지?”

“아뇨, 저는 황자님 곁에 있어야죠.”

“아니야. 모처럼 가는 세네카인데 편하게 쉬어야지. 나는 젠이랑 노반이랑 있을게. 그동안 못 쉰 거 몰아서 쉰다 생각해.”

마린은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답했다.

“제가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황자님과 함께한 매일이 휴식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북쪽에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다 같이 일을 해서 자신이 할 일이 거의 없었고, 프레오나 황궁에서는 황궁의 시종들과 시녀들이 일을 해서, 역시 자신이 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마린이 말은 저렇게 해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날 챙겨 온 거를 생각하면, 노동청에 잡혀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휴가를 줘야 한다.

노반이 사고 치지 않나 지켜봐야 하고, 젠이 또 어떻게 노빠꾸를 시전할지 지켜봐야 하고, 내가 아프지는 않나, 사고를 치지 않나, 무언가를 터트리지 않나, 이래저래 신경 쓸 게 가장 많았던 사람이 마린이다.

한마디로 마린은 우리의 고삐다.

“아니야, 그동안 신경 쓸 것도 많았잖아. 그리고 언제 또 갈지 모르는데 간 김에 할 거 해야지.”

내 말에 마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딱 하루만 쉬겠습니다.”

“하루 가지고 뭘 해, 그냥 일주일 푹 쉬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난 황궁에만 있을게.”

푹 쉬지 못 하는 게 나 때문이었는지, 4황자의 궁에 콱 박혀 돌아다니지 않겠다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마음이 놓이긴 할 테지만, 답답하지 않으실까요?”

“노반도 있고 젠이 있는데 뭐 답답해. 어디 갈 데 있으면 필릭스한테 오라고 해도 되고.”

의리 하나는 인정해 줄 만한 필릭스의 이름을 거론하며 마린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마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건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에반스터 경은 바쁘지 않을까 합니다. 최근 새로운 마탑주를 위한 평가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걔 안 바쁠걸…?”

필릭스는 그 분야에서 워낙 뛰어나기도 하고, 라이언 황제의 독단으로 성녀와의 약혼도 무산됐는데 양심이 있다면 마탑주 자리는 주겠지.

내 태평한 생각에 마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세네카 황궁에 나를 던져 두고 휴가를 갈 생각이 싹 사라진 것 같았다.

난 진짜 괜찮은데… 내가 겁쟁이 4황자도 아니고. 전과는 다르게 누가 나를 물면, 나는 그의 양 뺨을 갈길 거다.

당하고는 못 살지.

“노반은 나랑 세네카 탐방하자. 첫째 형님한테 말하면 나가게 해 주실 거야.”

“컁!”

노반은 어느새 내 어깨에 앉아 얼굴을 향해 딱 달라붙었다. 그리고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당겼다. 아까 내가 했던 짓의 복수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너무 강하게 당기는 것도 아니라서 노반이 당길 때마다 머리를 흔들어 주며 반응해 줬다.

그런 나를 보고 있던 마린은 걱정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는 조금 걱정입니다. 아무래도 프레오나에 꽤 오래 계셨으니, 황자님이 프레오나에 넘어간 게 아닌가 경계를 할 것 같습니다.”

마린은 나에 대한 다른 귀족들의 반응이 조금 걱정된다며 아무쪼록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거라 했다.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진 않는다. 나야 귀족들을 만날 일이 잘 없을 테고, 있어도 황궁을 지나가다 스치듯 보는 게 다일 텐데, 뭐.

아, 조금 걱정되는 게 있다면 퍼디스다.

퍼디스 이놈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날 괴롭히려고 하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악랄한 짓을 동원해 그의 인생을 끝장내 줄 생각이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 봐야지.

겁쟁이 4황자야, 먼저 간 네 복수는 내가 해 줄게. 퍼디스가 날 건든다면 말이지.

“난 다른 건 제쳐 두고 퍼디스가 걱정이네. 내 얼굴 보는 거 엄청 싫어할 텐데.”

“3황자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분은 원래 그런 분이니까요. 그래도 제국민들은 황자님의 귀환을 반길 겁니다.”

퍼디스와 여타 귀족들과는 다르게, 제국민들은 내가 잠시라도 세네카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기뻐할 거라고 했다.

그래, 맞다. 4황자는 세네카의 아이돌이었지. 문제가 있다면 활동이 전혀 없는 아이돌이라는 거고, 언제 식을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인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4황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나였다면 볼모가 되어 프레오나로 갔을 때부터 앞잡이가 될지 모르니 손절을 했을 텐데, 제국민들은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고국을 떠난 비운의 황자가 불쌍해 보였는지 ‘우리 4황자님-’ 하면서 나를 그리워했단다.

“불쌍하고 착해서 좋아하는 거지…. 살 조금 더 뺄까? 수척해 보이면 내 지지율이 더 높아질…. 농담이야, 농담.”

이 정도도 겨우 찌워 놨는데, 어떻게 또 살을 빼냐는 듯한 마린의 날이 선 눈초리를 받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요새 뱃살이 조금 나오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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