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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45화 (145/227)

145 세네카 제국으로 향하다 (7)

열렬한 사랑 고백을 받았던 다음 날, 나는 그와 마주하는 게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보자마자 부드럽게 웃어 준 젠 덕분에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초능력자 뺨치는 눈치로 우리의 사이를 알아챈 마린은 나를 보며 시종일관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마린의 표정으로 분위기를 알아챈 노반은 뾰로통해졌으며, 보리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보리언이 나와 젠의 사이에 대해 무슨 말을 했었어도 이상했을 거다.

국경까지 가는 길은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국경을 넘을 때, 개미한테 살을 물린 정도의 조금 성가신 일이 발생했었다.

세네카의 국경을 담당하는 기사 하나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4황자님, 세네카로 돌아오신걸… 큽… 환…영합니다.”

“아, 내가 떠날 때도 그대가 국경 문을 열어 줬었지. 그대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네.”

처음 세네카에서 프레오나로 넘어갈 때, 그때도 나를 보며 울먹이던 기사였기에 인상에 남아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사에겐 기억하고 있다는 내 말이 기폭제였는지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황자님의… 수, 수척해진 모습을 보니, 제 가슴이 너무, 너무 아픕니다. 흐윽…!”

“나는 괜찮으니 울지 말게.”

“화, 황자… 크흡… 황자님…!”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 잘 먹고 재미있게 지냈었어. 봐, 살도 많이 붙었잖아.”

나는 재킷으로 가리고 있던 팔을 걷어 살이 오른 팔목을 보여 줬다. 하지만 기사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내 팔목을 보고도 더욱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기사를 향해 천천히 이야기했다. 정말 괜찮고, 즐겁게 지냈었다고. 하지만 기사는 내가 억지로 행복한 척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끅끅거렸다.

울음을 그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기사를 보며, 나는 몰래 마린에게 어찌해야 하나 물었고, 마린은 고개를 저으며 때려서 울음을 그치게 하지 않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여담으로 보리언은 울고 있는 기사를 두들겨 패서라도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결국 조금 멀리서 대기를 하고 있던 다른 기사가 다가와 국경 문을 열어 주었고, 우리는 신원 확인만 되면 지날 수 있는 국경에서 30분을 넘게 소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소한 우여곡절 끝에 나와 젠은 전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 프레오나 국경을 넘었다.

“황자님, 떨리진 않으세요?”

마린은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는 내게 떨리진 않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설렘, 겁쟁이 4황자와 너무 달라진 모습에 의심을 사지 않을까 하는 불안. 그리고 이제는 연인이 된 젠을 혈육들이 얌전히 인정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마린은 모르는 성녀의 일도 있다. 내게 사형선고를 내린 성녀를 어떻게 조져야 하나 머리가 아프긴 하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

고국으로 돌아가는 설렘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한 곳을 가는 느낌이 더 크다. 내 집은 프레오나 북쪽에 있는 그 저택이다.

4황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은 말을 최대한 아끼면 해결될 거다.

4황자는 원래 말이 없는 아이였으니 달라질 것도 없고, 사람은 시각으로 보이는 것을 가장 신뢰하기 때문에 앞으로 구르고 봐도 뒤로 구르고 봐도 영락없는 4황자인 나를 의심할 일은 없을 거다.

산호초 같은 희귀한 머리 색에 투명하고 영롱한 보랏빛 눈동자. 혹시라도 그렇게 태어났다고 해도, 나처럼 아름답게 태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사람이 바뀌었다는 의심은 하지도 않을 테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젠은… 지들이 인정 안 하면 어쩔 건데?

그들은 가장 쓸모없다는 이유로 적국의 볼모로 던져 놓았다. 뿐만 아니다. 내가 타루스한테 그 개 같은 짓거리를 당했다는 것도 분명히 들었을 텐데, 그냥 거기서 죽어 버렸으면 했었는지 세네카에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랬으면서 지들이 뭔데 내 연애에 이래라 저래라야.

소개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괜찮아. 아니꼬우면 철수 불러서 다 쓸어 버릴 거야.”

나한테 뭐같이 굴면, 세네카 황궁은 365일 내내 불에 타고 있을 거다.

이 세기를 대표하는 방화범이 돼야지.

“컁!”

“어이구, 노반이 해 줄 수 있어?”

“컁!”

노반은 철수의 이름만 나오면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항상 철수는 필요 없다며 철수의 역할을 자신이 해 주겠다고 말했다.

갓 성년이 된 드로이프랑 정령왕은 상대가 되지 않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 귀여운 것을 어찌할까, 증말.

“우리 노반이 불 질러 줄 거예요? 오구 이뻐라.”

“컁!”

잘 놀고 있는 나와 노반을 바라보는 마린의 시선이 조금 따가웠다. ‘지금 애한테 뭘 시키고 있냐.’가 담겨 있는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그에 나도 정신을 차리고 수습했다.

“노반, 마음은 고맙지만 정말 불을 내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리고 여긴 마법사들도 많아서, 보통 불이면 바로 진압될 거야.”

정령이 만들어 내는 순수한 불이 아닌 이상, 마법사들이 즐비한 세네카에선 웬만한 화재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거다.

“컁.”

“옳지. 범죄는 나쁜 거야. 누군가를 엿 먹이고 싶으면 공식적으로 당당하….”

점점 강해지는 마린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컁?”

“아니야…. 가능한 평화롭고 편하게 살자.”

나는 노반의 털을 쓰다듬으며 마린의 시선을 피했다.

그때, 조금 멀리서 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건가 싶어 노반을 꽉 껴안았다.

“이게 뭐야? 지진이야?”

“…누군가가 오는 소리 같습니다.”

내 맞 편에 앉아 있는 마린도 밖을 경계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나도 마린을 따라 고개를 내밀자, 저 멀리서 수십 명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저게 뭐야…?”

나는 깜짝 놀라 마린을 바라봤지만, 마린도 놀랐는지 입을 작게 벌리고 기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복장은… 황제 폐하의 기사 같습니다.”

황제 폐하? 라이언 황제? 쓰레기 아빠?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워졌다.

우리는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마차를 멈췄고, 우리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기사들을 경계했다.

수십 명의 기사들이 우리의 마차 앞에 멈춰 섰고, 그들은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 내가 있는 마차를 향해 예를 갖췄다.

그들은 마린의 말대로 황제의 명령을 받아야만 달 수 있는 세네카의 깃발을 달고 있었다.

“세네카의 4황자님을 뵙습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기사의 말이 끝나고, 그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기사들의 수는 대략 100명쯤 되어 보였고, 다들 목소리가 커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우리를 습격하는 것도 아니고, 예도 잘 갖추는 걸로 보아, 나쁜 의도로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기사들을 마주하려 마차의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표정으로 기사 단장을 향해 말했다.

“고, 고맙네…. 이게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나? 조금 혼란스러워서 말이야….”

내 얼굴을 확인 한 기사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채 정중하게 말했다.

“황자님을 무사히 모시고 오라는 황제 폐하께서 명이 있었습니다.”

설마 했는데 정말 황제의 명령이었다.

무슨 꿍꿍이지? 제국민들의 여론을 잡으려는 건가? ‘나는 우리 아들을 이렇게 잘 챙겨요’하고 보여 주기식 친절 같은 꿍꿍이일지도 모른다.

“아버지… 아니, 폐하께서?”

“예, 폐하께서 직접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이건 백 퍼센트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라이언 황제가 내게 친절을 베풀 리가 없으니까.

나는 기사를 향해 알겠다고 말한 뒤, 다시 마차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황제의 명령이니 알아서 잘 가겠지….

나야 퍼디스의 습격을 신경 쓰지 않게 돼서 다행이다. 사실 퍼디스의 머리가 그의 목에 잘 붙어 있고,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다면 날 습격하진 않겠지.

마차는 다시 출발했고, 직진으로 가던 길을 돌아 풀밖에 없던 평야에서 벗어난 뒤 숲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세네카를 떠났을 때의 갔던 길이 아니네?”

내 질문에 마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네, 아마 폐하가 사용하시는 길을 통해 황궁으로 가는 것 같아요.”

“빨리는 가겠네.”

황제들은 참 치사하다. 오스먼드도 그렇고, 라이언 황제도 그렇고 다 제 전용 길이 있다.

물론 황제니까 바쁜 건 알겠고, 습격의 위험이 있으니 신경 써야 하는 건 이해하지만, 나도 황족이고 신분이 높은데, 이렇게 명령 하나로 이용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처음부터 이용하게 해 줬으면 좀 좋아?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우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 황궁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시간이 늦어 해가 저무는 바람에, 수도에서 하루 지내고 아침에 황궁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가 날이 늦어도 밖에서 잘 것 없이 바로 들어오라는 황제의 명령을 미리 받아 놨다고 해서, 우리는 황궁으로 바로 들어갔다.

젠장. 빨리 가기 싫었는데.

성문을 지나 황궁 안으로 들어가서야 세네카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단정하게 아름다운 프레오나와는 달리, 세네카는 화려하게 아름다웠다.

건축물은 말할 것도 없고, 성 외부에 장식되어 있는 희귀한 꽃이라던가, 보석으로 치장된 소품들 등 사소한 구조물 하나하나가 모여 황궁 전체를 화려하게 보이게 했다.

예쁘기도 했지만, 세네카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그런가 돈깨나 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기사들은 꽤 요란스럽게 4황자가 지냈었던 ‘파시테 궁’ 앞까지 나를 안전하게 모셨다.

4황자의 선한 성격상, 감사 인사는 꼭 해야 했기에 밝게 웃으며 수고했다고 이르자, 감격한 기사들은 이 밤에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기사들이 돌아가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파시테 궁 안에서 노년의 남자가 나왔다.

“황자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대는… 누구지?”

처음 보는 남자였다.

내 질문에 그는 자신이 라이언 황제의 시종이라 소개했다.

그 시종은 세네카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고 지금은 늦었으니 아침이 밝아오면 황제를 알현하러 가라고 일러 줬다.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편히 쉬라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나는 오늘 한시도 쉬지 않고 마차를 타고 열심히 달려온 탓에 허리도 아프고 굉장히 피곤한 상태다. 게다가 내일 황제를 보러 가려면 일찍 일어나 황제궁까지 가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건 문제 없어도, 황제에게 기가 빨릴 걸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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