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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47화 (147/227)

147 세네카 제국으로 향하다 (9)

로이븐은 마차가 도착하는 소리만 듣고 나온 것 같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방음이 잘되어 있는 성에서 마차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는 건 귀가 엄청나게 좋다든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나는 아직 마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는데,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것을 보니 내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간절히 기다렸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뭐가 그리 좋은지, 미소 짓는 얼굴에 세상 모든 행복이 담겨 있는 듯했다.

로이븐은 어디 외출을 하려 했던 건지, 이른 아침부터 깔끔한 정복 차림이었다. 정복 덕분이지 그의 부드러운 미모가 더 빛나 보였다.

나는 겁쟁이 4황자가 지금껏 로이븐을 대했을 때처럼,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그래, 나는 큰 무리 없이 잘 지냈다.”

로이븐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마차에서 내려줬고, 자신의 성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자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로이븐을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로이븐은 예전부터 겁쟁이 4황자에게 친절하게 대해 줬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호감을 표하진 않았었는데… 심경에 변화라도 생긴 건가.

그를 따라간 응접실 안에는 보리언을 제외한 내 일행들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린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고, 젠은 무표정하게 있었지만 어딘가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그리고 보리언은 어디로 빠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앉거라.”

응접실 중앙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심플한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꾸며져 있는 거라곤 모서리 끝에 화려한 보석과 금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그 장식이 끝은 평범해 보이는 대리석 테이블이다.

라이언 황제의 취향인 ‘무조건 화려한’이랑은 잘 맞지 않은 가구였지만, 화려함에서 심플함이 보이는 단단한 로이븐과 잘 어울렸다.

나는 상석인 로이븐의 바로 옆이자, 젠의 맞은편에 앉았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젠을 바라보자, 젠은 언짢았던 기색을 숨기고 나를 향해 살포시 웃어 줬다. 그에 나도 젠을 따라 작게 웃었다.

그런 나를 본 로이븐은 내게 말을 걸어 젠을 향해 있던 내 시선을 거두게 했다.

“메이븐에게 들은 대로 잘 지내고 있던 것 같구나. 세네카를 떠나기 전보다 건강해진 것 같아.”

로이븐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에 나는 젠에게 보였던 미소를 지우고 로이븐을 향해 정숙하게 말했다.

“예, 전 잘 지냈습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프레오나 황궁을 나와 다른 곳에서 지냈는데, 이제 그곳은 제집이나 다름없는 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 또한 에반스터 경에게 들었지. 나는 네가 세네카를 떠나 조금 적적하지만, 떠나고서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구나.”

로이븐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겁쟁이 4황자가 세네카에서 잘 지낼 수가 있었겠냐. 쓰레기인 아버지는 자신을 냉담하게 대하지, 배다른 셋째 형은 자신을 죽이려 들지. 아무리 로이븐과 메이븐이 도움의 손길을 준다 해도 유약한 4황자는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그런 애한테 프레오나에 볼모로 가라 해 봐. 애가 제정신을 지킬 수 있겠나.

나는 씁쓸한 생각을 애써 지우고 로이븐을 바라보며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형님께선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나는 네가 걱정할 필요도 없이 잘 지냈다. 내 이야기는 말고 네 이야기 듣고 싶구나. 즐거운 일은 있었니?”

지금의 로이븐은 마치 오랜 시간 찾아오지 않았던 손주가 놀러 와서 신난 할아버지 같았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겁쟁이 4황자가 알고 있던 모습이랑은 조금 괴리감이 있어서 신경 쓰였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유지하며 로이븐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형님께서 관심이 가질 만한 일은 아니지만, 전 아주 평범하게 지냈습니다. 요리나 청소 같은 것도 제 손으로 해 봤고, 꽃을 피우려 밭도 갈아봤지요.”

“그래? 그리고 또.”

“음… 아, 길을 잃은 여우 한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해졌지요. 행동 하나하나가 어찌나 귀여운지, 나중에 시간이 되신다면 형님께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노반의 이야기를 하니까 기분이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젠과 깊은 관계가 되었다는 것도 말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소문을 들었으면 이미 알고 있을 테니 그 이야기는 뺐다.

로이븐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 생활을 필요 이상으로 궁금해하는 로이븐에게 대충 좋은 이야기만 짜깁기해 알려줬지만, 짜깁기로는 로이븐의 성에 차지 않는지 그는 내 하나부터 열까지를 물었다.

나는 그런 로이븐에게 없는 이야기를 쥐어짜며, 타루스나 오스먼드와의 거래 같은 안 좋은 일을 제외하고 프레오나에서 겪었던 모든 사건들을 세세하게 이야기해 줬다.

“이게 전부입니다.”

“그래, 이야기만 들어도 재밌게 지낸 것 같구나.”

나는 부드럽게 웃어 주는 로이븐을 마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때, 로이븐의 시종이 응접실로 들어와선 로이븐에게 곧 나가야 한다고 전했고, 로이븐은 좋은 시간을 방해받아 기분이 별로인지 얼굴을 찡그리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미안하구나. 너와 차 한잔할 시간도 없다니… 나중에 네 궁으로 찾아 갈 테니 그때 또 이야기하자꾸나.”

로이븐은 자신의 시종에게 우리를 데려다주라 말했고, 내게 인사를 한 뒤 서둘러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오늘 대화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로이븐은 나를 동생으로서 아주 많이 좋아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향한 애정이 다른 황족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달랐다.

로이븐의 동생인 메이븐도 나를 아끼는 것 같았지만, 로이븐만큼은 아니다. 동생이 불행했으면 하는 퍼디스나 오랜만에 본 아들에게 왜 멀쩡하냐고 묻는 라이언은 말할 가치도 없다.

한마디로 로이븐은 브라더 콤플렉스? 뭐 그런 거 같다.

우리는 로이븐의 응접실에서 나간 뒤, 마차를 타고 다시 파시테 궁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파시테 궁 안에는 아까 사라졌던 보리언이 있었다.

보리언이 어디에 있었는지 조금 궁금했지만, 물어봤자 알려주지도 않을 것 같고, 알아봐야 머리만 아플 것 같아 포기했다.

곧이어 작은 여우가 우리를 향해 뛰어왔고, 나는 달려오는 여우를 품에 안아 들었다.

“노반, 잘 있었어?”

“컁!”

노반은 방금까지 뭘 먹고 있었는지, 입에 부스러기가 묻어 있었다. 아마도 쿠키를 먹었던 것 같다.

이건 또 누가 줬대.

“쿠키 먹고 있었어?”

“캬양!”

노반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지만, 고개를 젓자 입가에 붙어 있던 부스러기가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그에 내 곁에 서 있던 젠이 피식 웃으며 노반의 입가를 손으로 털어 줬다.

“노반, 거짓말은 나빠요.”

“컁…!”

아마도 노반에게 쿠키를 준 누군가가 ‘내가 쿠키 줬다는 건 비밀이야’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귀여운 여우에게 과자를 챙겨준 걸 거다.

위험한 쿠키는 아닌 것 같으니 문제없다. 게다가 쿠키에 독이 들어 있다 해도 노반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다.

노반은 식물과 친한 드로이프로서 거의 모든 식물을 섭취할 수 있고 이곳의 과학 기술과 자원으로는 아직 식물에서밖에 독을 채취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식물에 친화적인 노반에게 이 세계의 독은 통하지 않는다.

“먹어도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경계는 해야 한다?”

“컁!”

“그래, 앞으로 신경 쓰면 됐지.”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노반에게 웃어 줬다.

우리는 점심이 다 준비됐다는 시종의 말에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입었던 불편한 옷을 벗고,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식당으로 내려갔다.

마린의 안내로 파시테 궁 식당으로 들어가자, 4황자의 기억 때문인지 조금 쓸쓸한 기분이 느껴졌다.

이 식당은 겁쟁이 4황자가 홀로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4황자에겐 바쁜 필릭스를 제외하고는 같이 밥을 먹어 줄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시종이나 시녀와 함께 먹을 수도 없는 법이어서 매번 혼자 쓸쓸하게 식사를 한 기억이 남아 있다.

나였으면 방으로 가져다 달라고 했을 텐데, 4황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식사 예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식당에서 먹었다.

하지만 이제는 같이 먹을 사람이 있다.

다른 시종과 시녀들이 주는 눈치도 있고, 황궁은 소문이 빠르니 마린은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조금 쓸쓸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마린의 강경한 태도에 꼬리를 내렸다.

그래도 젠이랑은 함께 먹을 수 있다. 여우인 노반은 조금 신경 쓰였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 노반은 그냥 여우도 아니고 아주 귀여운 아기 여우니까 사람과 함께 먹는다고 해도 다들 귀여워할 거다.

보리언은 괜찮다며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억지로 잡아다 앉혔다.

삼시 세끼는 못 챙겨도 하루 한 끼는 꼭 먹어야 하지 않겠냐.

4황자가 홀로 있었던 이 테이블에 사람을 채우니 되게 뿌듯했다.

“준비해 줘.”

나는 이제 음식을 내오라고 말했고, 시종은 고개를 숙이며 주방장에게 알리러 갔다.

곧이어 은색 트레이 위에 음식을 가져오는 주방장이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제가 죽기 전 황자님을 다시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정말 행복합니다!”

주방장은 거의 울먹이다시피 말하며 감격스러워했다. 눈물이 떨어질랑 말랑하다 기어이 울어버리는 주방장을 보며 속으로는 한숨을 쉬며 이제는 익숙해진 어색하지만 감동한 것 같은 4황자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주방장을 달랬다.

“나야말로 주방장의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어서 기뻐.”

“큽… 황자님….”

주방장의 마음은 고맙다. 고맙긴 한데…

“황자님은 인품이 좋으셨나 보네요.”

울고있는 주방장을 본 젠이 내게 말했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가 그거다. 사람들한테 잘해 줬으면 뭐 해, 지 자리 하나 챙기지도 못했으면서. 나랑은 생각 구조가 달라서 그런지 그냥 조금 답답하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울고 있으니 달래주기도 지친다. 조금 못된 생각이지만 만나는 시종들마다 울 거면 모두 한곳에 모여 한번 울고 끝냈으면 싶을 정도다.

“예, 저희 황자님의 인품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십니다. 황자님이 세네카를 떠나시던 그 날, 파시테 궁은 눈물바다가 됐었지요.”

그래, 눈물은 흘려 줬지만 프레오나에 같이 간 사람은 마린밖에 없었지.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네… 울음이 더 터지기 전에 식사를 하는 게 좋겠어.”

나는 눈 주위를 훔쳐 눈물을 닦는 척하며 주방장에게 말했다. 그의 곁에 있던 마린이 눈치껏 주방장이 가져온 트레이에서 음식을 빼서 나눠 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주방장이 음식을 놓아 줬다.

음식을 다 놓아 준 뒤, 주방장이 내 옆으로 다가와 앞에 놓인 푸드 커버를 열었다. 그러자 향긋하면서도 무거운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주방장이 힘을 좀 썼는지 차린 음식 안에는 육해공이 다 들어 있었다.

창고 털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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