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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48화 (148/227)

148 세네카 제국으로 향하다 (10)

상 앞에 놓인 음식은 붉은색과 노란색과 같은 식욕을 자극하는 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외관도 고급지게 꾸며져 있어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고소하고 짭짤한 버터 향이 솔솔 풍겼다.

첫 번째 음식은 마치 작은 만두와 비슷한 모양새였는데, 얇게 썰린 분홍빛 햄 안에 갖가지 야채를 넣고 반달 모양으로 접어 불 위에 살짝 구운 듯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소스를 담은 작은 종지가 있었다. 검붉은 소스는 호두와 캐슈넛 같은 견과류를 잘게 갈아 넣은 것 같았다.

두 번째 음식은 랍스터 요리였다. 붉게 익은 랍스터 껍질 위에 올려놓은 살이 오동통한 자태를 뽐냈다. 그 살 위에 녹색의 소스가 살짝 뿌려져 있었다. 랍스터 주변으로는 호박으로 만든 노란 퓌레가 작게 올려져 있었다.

마지막은 고기 요리였다. 오리로 추정되는 짙은 색의 고기에 향은 약하지만 오독오독 씹힐 듯한 들깨 크기의 씨앗 껍질을 잔뜩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스파라거스와 작은 토마토를 바싹 구운 가니쉬가 있었다.

이 음식이 바로 4황자의 기억에서만 보던 ‘세네카’의 음식이다.

“제 성심을 다해 만든 요리입니다. 편하게 드셔 보십시오.”

나는 드디어 기억 속에만 있던, 호화로운 세네카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두근거렸다.

보고 싶던 아이돌을 만나게 되는 기분이랄까,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이 호화로운 음식을 준비해 준 주방장에게 말했다.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이를 어쩌나….”

떨리는 건 떨리는 거고, 많은 건 많은 거다. 한 사람 앞에 각자 3인분의 양을 내오다니…. 젠과 보리언도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의 향을 보고 당황한 것 같았다. 노반도 엄청난 양의 고기가 나와서 마냥 신이 나는지 바로 음식을 뜯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황자님께 제 음식을 대접해 드린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그만….”

“그대 마음을 잘 알고 있어. 다시 한번 고마워.”

나는 주방장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고, 음식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우선 해(海)부터.

랍스터의 통통한 살을 갈라 입 안으로 들이자, 짭짤한 향이 퍼졌다. 하지만 정체 모를 녹색 소스의 고소한 맛이 짠맛을 잡아 줬다.

통통한 살은 크게 잘라 접시에 데코로 뿌려져 있는 노란 퓌레를 찍어 함께 먹으니 랍스터의 짠맛과 퓌레의 단맛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다가왔다.

바다 향이 엄청나게 풍겼지만, 함께 나온 소스가 그 짠맛을 중화시켰다.

맛있네.

다음은 육(陸).

반달 모양 만두로 빚어진 분홍빛 햄은 안에 무언가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아마 야채를 갈아 넣은 것 같은데….

세르비스가 만든 음식을 제외하고, 육지 고기를 먹었을 때 크게 만족했던 적이 없어 반신반의하며 입 안에 넣었다.

맛은… 있다. 맛은 있는데, 문제라면 조금씩 느껴지는 향신료의 맛이 인도에서나 느낄 법한 향이 나랑 맞지 않았다.

이건 패스.

마지막은 공(空)이다.

훈제 오리 특유의 자줏빛 고기 아래, 진득한 기름이 주륵 흘렀다. 오리 기름은 다른 고기의 기름보다 좋은 기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특별히 기름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날카로운 칼로 고기를 가르자, 텁텁해 보이는 살이 꽉 차 있었다. 다시 한입 크기로 자르고, 그 옆에 있는 오독오독한 식감의 씨앗 껍질을 찍어 입 안에 넣었다.

입 안 가득 오리의 풍미가 느껴지고, 씹을 때다 톡톡 터지는 씨앗 껍질의 식감이 새로웠다.

기본적으로 맛있는 식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요리라 그런지 무리 없게 입에 잘 맞았다. 엄청 맛있어서 눈이 돌 정도는 아니었지만, 맛있었다.

나는 랍스터가 올려진 요리는 전부 먹고, 오리는 반 조각, 그리고 햄으로 만든 요리는 처음을 제외하곤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입이 짧아 그런지 몇 입 먹지 않아 제일 먼저 식사를 끝냈고, 아직 남은 이들이 다 먹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때, 사라졌던 주방장이 나와 커피와 동그랗고 투명한 사탕을 내왔다.

디저트까지 줘서 고맙지만,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배가 불러서 말이야….”

“아, 그렇습니까? 이 사탕은 드셔 보십시오. 퍼디스 황자님께서 황자님을 위해 선물로 주신 겁니다.”

퍼디스가 나를 위해 직접 이 투명한 사탕을 준비했다는 주방장의 말에 더 먹기 싫어졌다.

그랬지, 여긴 세네카 황궁이었어. 그나저나 이런 건 언제 두고 갔대.

나는 사탕을 들고 실수인 척 바닥으로 떨궜다.

“아. 이런….”

겁쟁이 4황자는 퍼디스가 줬어도 꾸역꾸역 다 먹었을 거다. 그리고 배앓이를 했겠지.

“괜찮습니다! 퍼디스 황자님께서 주신 사탕 유리병에 아직 가득 담겨 있으니 더 가져오겠습니다.”

주방장은 눈치를 밥 말아 먹었는지 떨어진 사탕을 줍고는 새로운 사탕을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긴 한숨을 쉬고, 주방장에게 말했다.

“받은 유리병 전부 가져와 줄 수 있나? 방에 가져가서 먹으려고 하는데.

“예? 예, 알겠습니다. 대신 너무 많이 드시면 이가 상할 테니 적당히 드시는 거 잊지 마십시오.”

주방장은 자제력이 없는 어린 아들에게 말하듯 내게 말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주방장은 손바닥만 한 유리병을 가져와 내게 넘겼다.

“형님이 주 신건 이게 다인가?”

“꽃차도 몇 개 보내셨습니다.”

나는 찾아서 버려 달라는 의미로 마린을 바라봤고,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 옆에 앉은 젠이 주방장을 향해 말했다.

“전부 버려 주시겠습니까?”

“예…?”

“전부 버려 주세요. 황자님께선 직접 말린 꽃차가 아니면 드시지 않습니다.”

젠은 주방장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고, 나는 가만히 젠을 바라봤다.

주방장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생각하는 듯 잠시 어버버했고, 젠은 머뭇거리는 주방장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방장은 빠르게 정신 차린 뒤 젠에게 말했다.

“황자님께 온 선물을 버리시라는 겁니까…? 왜 그래야 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외지인한테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주방장은 그래도 반은 정중한 말투로 젠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에 젠은 냉담한 얼굴로 주방장을 향해 말했다.

“제가 그 이유까지 설명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주방장은 입을 떡 벌리며 젠을 바라봤다.

주방장을 향한 젠의 태도가 냉담해 보이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리 냉담한 편이 아니다. 겁쟁이 4황자가 너무 친절했던 거지.

귀족들은 제 사정을 쉽게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황족이다. 평범한 귀족이랑은 다르게 더욱 철저해야 한다.

나는 주방장을 향해 곤란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네, 내가 꽃차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말이야…. 이프리트 경의 말대로 차는 버려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 올 선물은 거절해 줄 수 있나? 이것까지만 감사히 받지.”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사탕 유리병을 내보이며 말했다. 물론 이것도 방으로 들어가면 전부 물에 녹여 버릴 테지만.

“아, 예…. 알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나는 주방장에게 살포시 웃어 줬다. 그리고 일행의 접시가 비워진 것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은 센스 있게 노반을 안아 들었고, 가만히 분위기를 살피던 보리언까지 일어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식당을 벗어났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욕실로 직행했고, 유리병에 담긴 사탕을 세면대에 쏟은 뒤, 그곳에 물을 부어 사탕을 녹였다.

이 사탕이 아무 문제 없는 사탕이었으면 조금 아까웠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게다가 퍼디스가 굳이 내게 보냈다는 것만으로 이미 불길함을 잠재우기는 글렀다.

퍼디스는 내가 겁을 먹었으면 해서 보낸 게 분명한데, 이걸 순순히 먹어 줄 수는 없지.

“녹이는 거예요?”

“응. 뭐가 들어 있을지 모르니까. 먹기 싫기도 하고.”

젠은 자신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노반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질색을 할 노반은 포기한 건지 저항할 힘이 없는 건지, 순순히 젠의 품에 안겨 쓰다듬을 받고 있었다.

“노반이 얌전히 있네?”

“컁.”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산처럼 쌓여 있던 고기를 다 먹었더라구요.”

“배불러서 나른해졌나 보다.”

나는 통통하게 올라온 노반의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소화 시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다.

나는 쏟아부은 사탕이 물에 잠긴 것을 확인한 뒤, 침대로 가서 털썩 누웠다.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된다지만 눈만 감으면 잠이 올 정도로 피곤했다.

오늘 이후로 잡힌 일정이 꽤나 빡빡하다.

내일은 지역 행차를 가야 한다. 내게 해 준 것도 없는 라이언 황제의 여론을 위해, 왜 내가 하루 종일 마차를 타고 지역을 누벼야 하나 의구심이 들고 반항심이 생긴다.

그리고 다음 날, 나를 개미 발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황후와 왜 오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가서 체하지만 않으면 감사할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날은 아스본 왕국의 사절단이 온다. 오는 건 문제없다. 내 알 바도 아니고. 하지만 볼모로 적국에 있던 황자가 돌아왔는데 나를 축하하는 연회는 못 해 줄망정, 일 년에 한 번은 꼭 오는 사절단을 꼭 축하해 주겠다고 연회를 여는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다.

내일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왔다.

그냥 튈까….

똑똑똑-

튈까 말까 생각하고 있던 그때, 그런 가당찮은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듯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또 누구야.

나는 한숨을 크게 쉬며 방문을 바라보았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걸 눈치챈 젠은 안고 있던 노반을 침대 위로 내려놓은 뒤, 밖으로 나갔다.

나간 지 1분도 안 돼서 돌아온 젠은 손에 든 편지 봉투를 보여 주며 말했다.

“편지가 왔어요.”

젠은 내가 누운 침대에 가까이 다가왔고, 나는 젠에게서 건네받은 편지를 빤히 바라봤다.

특이할 것 없는 하얀 편지인데, 수신인만 적혀 있지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보통 발신인의 가문의 문양이라든가, 사인이 찍혀 있는데 이 편지는 수신인인 내 이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봉투만 왔다.

“누가 보낸 건지는 몰라?”

“황궁의 시종이 보냈다고 했어요. 신원이 불분명한 자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느낌이 안 좋은데 그냥 찢어 버릴까.

“읽어야겠지?”

“그래야겠죠. 제가 대신 읽어 드릴까요?”

“아니야. 내가 읽을게.”

나는 편지의 옆구리를 세로로 잘 찢어, 안에 들어 있는 편지를 열었다.

편지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저를 찾아오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고, 제일 중요한 발신인 부분에 ‘로지아 카트린’이라 적혀 있었다.

로지아 카트린은 몇 년을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깨어난 성녀다.

“성녀가 보낸 편지야.”

“성녀요?”

내 이야기를 듣는 젠의 표정은 묘해졌다. 그리고 전에 내게서 들었던 성녀의 예언을 떠올렸는지 표정을 단번에 구겼다. 당장이라도 편지를 찢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글씨 한번 더럽네.

나는 펜을 꺼내 들곤 성녀의 편지 뒷장에 ‘저를 보고 싶다면, 당신이 찾아오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받았던 편지 봉투에 다시 넣어 대충 접어서 밀봉했다.

“이렇게 보내시려고요?”

“응.”

놀라는 젠을 뒤로하고, 나는 밖에 있는 시종에게 이 편지를 성녀에게 다시 전달하라 말했다.

오스먼드에겐 성녀와 친해져 보겠다 했지만, 솔직히 데려갈 생각 없다. 따라올 것 같지도 않고.

게다가 이 성녀는 내가 곧 죽을 거라는 거지 같은 예언을 했는데, 굳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를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 사람이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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