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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52화 (152/227)

152 세네카 제국으로 향하다 (14)

젠이 내 애인인지 확인하며, 힐끔힐끔 그를 보고 있는 지아에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서로 좋아하고, 뽀뽀도 하고… 그러면 그게 애인이지.

“와… 진짜 사귀는 사이셨군요…. 저는 그냥 루머인 줄 알았는데.”

나는 조금 놀란 반응을 보이는 지아를 향해 살포시 웃어 줬다. 그에 지아는 나와 마주 보며 방긋 웃었다.

나는 지아가 일찍 떠날 것 같지 않아, 시종을 시켜 차를 내오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은한 향이 풍기는 꽃차가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누구에게 선물받은 거냐고 물었다. 그에 시종은 마린이 가져온 여린 꽃잎을 우린 차라고 했다.

마린이 가져온 거면 안심이지. 아마도 접때 말렸던 배꽃일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채 차를 두고 가라고 했고, 시종은 나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적당한 온도로 데운 꽃차를 찻잔에 따라 지아의 앞에 두었다. 그리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지아에게 젠을 소개했다.

“여기는 젠 이프리트.”

“안녕하세요…, 신지아입니다.”

젠은 지아의 인사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근데 이분한테 저희 사정 말해도 괜찮아요…?”

지아는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가 이 세계의 사람이라는 걸 말해도 되냐는 뜻이었다.

나는 그런 지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젠은 괜찮아.”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영혼의 색을 볼 수 있는 젠은 단번에 알아차릴 거다.

이게 또 엄청 정확해서 아니라고 우기기가 어렵다. 나도 처음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런 거 아니라고 우길까 했었는데. 혹시라도 그때의 젠이 빡쳐서 칼을 뽑았다면 정체 보존이고 뭐고 말짱 도루묵이니 그냥 다른 세계에서 온 게 맞다고 털어놓았다.

이거 은근 사기 스킬이라니까, 젠이 교황청 사람이었어 봐. 우리 같은 사람은 찍소리도 못하고 끌려가는 거다.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근데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거구요? 고백은 누가 먼저 했… 아, 죄송해요. 저 너무 들떴죠?”

지아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폭풍 질문을 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듯, 꼬리를 내리며 미안하다 사과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가볍게 웃어 줬고, 지아의 질문에 대해 뭐라 답을 해 줘야 할지 생각했다.

어떻게 만난 거냐, 내가 젠의 뒤통수를 쳐서 만나게 됐지.

언제부터 좋아한 거냐, 거의 만나자마자 젠의 얼굴 보고 반했던 것 같아.

고백은 누가 먼저, 내가 했네? 그리고 두 번이가 차였었지?

젠장할.

질문에 응해 주고 싶지 않은 처참한 대답이었다.

“비밀이야….”

나는 고개를 숙이고 비밀이라며 말해 줄 수 없다고 중얼거렸다. 그에 지아는 엉큼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끄러우세요? 괜찮은데! 저 편견 같은 거 없어요. 미인과 미인의 조합은 언제든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 같은데, 마린이 그랬었나?

나는 아무리 지아, 네가 열린 시선을 가지고 있어도, 내가 창피해서 말해 줄 수 없다고 하려 했지만, 옆에 앉은 젠이 그런 내 기색을 알아챘는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지아에게 말했다.

“제가 게이라 좋아하셨다는군요.”

“푸흡…!”

지아는 젠의 말에 놀랐는지, 벌컥벌컥 마시던 차를 코끼리처럼 크게 내뿜었다.

“괜찮으신가요?”

“예…? 아, 예…. 감사합니다.”

젠은 지아에게 티슈를 건네며 괜찮냐 물었고, 지아는 얼떨결에 받아 든 티슈로 입을 닦았다. 그리고 조금 어색해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비밀이라 하신 거군요…. 그래도 게이여서 좋아한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소문으로 들었을 때는 무슨 운명 같은 사랑이다, 대륙을 울리는 사랑 이야기라고 그래서 궁금했는데. 게이라서 좋아한 거라니….”

나는 젠에게 게이는 잘생긴 사람을 뜻한다고 알려 줬었다. 젠도 어렴풋이 그 뜻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있을 거다. 하지만 확실한 뜻은 모르겠지.

그리고 나는 절대 알려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를 향한 지아의 시선이 점점 차게 식었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지아의 눈을 피했다. 그러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젠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은근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듣는 사람마다 당황하는 신기한 단어네요.”

“잘 안 쓰는 단어라 그래! 옛날 단어라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넌 언제 돌아갈 거야? 이렇게 오래 있으면 안 되지 않아?”

나는 지아가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얼른 보내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지아는 내 말이 서운한 듯 입꼬리를 쭉 내리며 말했다.

“제가 갔으면 좋겠어요?”

“당연하지, 너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 젠이랑 놀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

“너무해요.”

“뭘, 너무해. 어차피 나는 프레오나에 돌아가기 전까지 여기 있을 거야. 나중에 또 놀러 와.”

오늘만 날이 아니라는 내 말에, 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내일 또 이야기하러 올 거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아, 내일은 안 돼. 지역 행차인가 뭔가 해야 한다고 하루 종일 마차 타고 싸돌아다닐 것 같아.”

“지역 행차요? 으… 듣기만 해도 허리 아파요.”

지아는 하루 종일 마차를 타고 돌아다닌 적이 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내일 빼고는 괜찮을 거야. 그래도 헛걸음 할 수 있으니까 시종한테 확인하고 와.”

“네, 그럴게요.”

“그래.”

나는 돌아가려는 지아를 배웅해 준 뒤, 방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만남이었지만 큰 수확을 얻은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이 세계에 나를 제외한 다른 한국인이 있다는 게 마음이 편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은 기분이랄까, 지아가 내게 있어 특별히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존재 자체가 안정감을 주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게 느껴졌다.

지아도 나를 그렇게 느끼겠지.

* * *

나는 지금 굉장히 무료하다.

“어차피 마차 안에만 있는 거면, 그냥 나 닮은 인형을 넣어서 뺑뺑이 도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컁!”

“메이븐 형님은 무슨 생각으로 젠을 데려간 건지 이해가 안 가.”

“컁!”

지역 행차에 나가기 몇 시간 전, 파시테 궁에 메이븐이 찾아왔다. 그러고는 ‘자신의 군사들이 젠의 소문을 들었다, 지역 행차에 프레오나 사람인 젠을 데려가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우리의 소문을 듣고 사람이 많이 몰리면 위험 할 수 있다.’ 등등 자잘한 이유를 늘어놓으면서 젠을 데려갔다.

안전하게 돌려보낸다는 말과 함께 걱정하지 말라며, 지역 행차에는 자신의 호위 기사를 데려가라고 했다. 덕분에 나는 메이븐의 호위 기사를 데리고 지역 행차를 돌고 있다.

젠이랑 왔으면 이렇게 지루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사방이 막힌 마차라 다행이야. 다 뚫린 마차였으면 노반도 못 데려갈 뻔했어.”

“컁!”

나는 노반을 꽉 안아 옆으로 누웠다. 원래도 푹신한 의자에 쿠션을 더 깔아 준 덕분인지 완벽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섬세한 마린이 엉덩이가 많이 배길 거라며, 중간중간 누워서 잠도 자라고 깔아 준 거다. 이거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황자님!”

“도브로미르 황자님 만세!”

마차가 가는 길마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제국민들의 외침이 울렸다.

몇십 명이 입을 모아 외쳐서 그런지, 소리가 너무 컸다.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제국민들은 내가 프레오나의 볼모로 끌려갈 때는 어떻게 보내 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보였다. 제국민 모두가 나타나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반기는데, 아이돌은 무슨, 국민 영웅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그 외침이 듣기 싫었다.

자신을 칭송하는 외침은 듣기 좋은 게 분명할 텐데, 나를 향한 제국민들의 칭송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 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 나는 쿠션으로 귀를 막고, 제국민들의 외침을 외면한 채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렇게 나는 가만히 누워 시간이 흐르길 잠자코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어느새 지역 행차의 마지막 지역을 돌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때는 내가 편하게 숙면을 취하고 난 후였다.

내 품에서 빠져나간 노반은 나를 지키려는지 내 머리맡에 앉아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마차 밖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노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 했지만, 무슨 일인지 마차가 갑작스레 급정거를 했다.

몸이 앞으로 쏠려 크게 넘어질 뻔한 것을 노반의 몸통 박치기로 모면할 수 있었다.

“고…, 고마워 노반.”

“캭….”

나는 쓰린 목 뒤를 잡으며 노반의 이마를 부들부들 쓰다듬어 줬다. 그러자 노반은 자신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는지 미안한 듯 이마를 저었다.

나는 조금 헝클어진 머리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소란스러운 밖을 확인하려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그러자 제국민 한 명과 기사들의 실랑이 소리가 들렸다.

“감히 누가 황족의 앞을 막아선단 말인가! 멀쩡하게 돌아가고 싶다면 얼른 그 앞을 비키거라!”

“벌을 받아도 좋으니, 황자님을 한 번만! 딱 한 번만 알현하게 해 주십쇼! 지금이 아니면 영영 뵙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이런 게 사생팬이라는 건가. 연예인들의 삶은 피곤하겠구나.

어떻게 하루도 멀쩡히 흘러가는 날이 없는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메이븐의 호위 기사가 다가와 상황을 설명해 주며 곧 해결할 테니 걱정 말고 마차 안에 안전하게 대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나는 본격적으로 고개를 빼 들어 마차 앞을 확인했다.

마차 앞에는 성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 두 명으로 구성된 가족이 모여서 마차가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기사들이 무력을 쓰려고 했지만, 그들은 긴 꼬챙이 같은 걸로 자신들을 방어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뵙게 해 주십쇼!”

남성은 누구보다 간절하게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여기서 나서면 안 되는 것쯤은 알고 있다. 퍼디스의 음모일지도 모르고, 내가 나서는 바람에 일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애타게 찾는 남성을 향해 마차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메이븐의 호위 기사는 잠시 놀란듯한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내 곁에 딱 붙어 나를 호위했다.

내가 마차에서 내려, 소란스러운 상황의 진원지에 가까이 다가가자, 소란스러웠던 거리는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내게 인사를 하는 기사를 시작으로 제국민들의 우렁찬 인사가 이어졌다.

나는 그들의 인사를 옅은 미소로 받아들인 채, 길을 막고 있는 가족들에게 가까이 갔다. 그러자 남성은 들고 있던 꼬챙이를 떨어트린 채, 머리를 땅에 닿을 정도로 깊게 숙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4황자 전하! 정말…, 정말 진심으로 뵙고 싶었습니다!”

다행이다. 저 무시무시한 꼬챙이에 꽂혀 꼬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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