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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66화 (166/227)

166 겨울 축제에 가다 (3)

“확실해? 로웨나 왕국에 있는 거.”

지아는 황제가 계획하고 있는 전쟁 병기가 로웨나 왕국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나는 그 정보가 확실하냐고 물었고, 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이야기했다.

“거의 확실해요. 어제 메이븐이랑 대화하다가 드래곤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게 딱 떠오르지 뭐예요.”

“그거?”

“로지아의 일기장이요. 거기에 드래곤이 한 번 언급됐었는데, 그게 황제와 관련된 부분이었거든요.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질 않는데 ‘드래곤이 지키고 있는 곳에서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일 줄을 몰랐다.’ 같은 이야기가 쓰여 있었어요.”

지아는 메이븐과 이야기를 하다가, 전에 읽었던 로지아 일기장의 한 페이지가 떠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황제와 관련되었던 부분은 당시에 읽기 싫어서 대충 넘긴 게 아쉽다고 말했다.

나야 정보 하나하나가 절실한 사람이라 사소한 것이라도 기억해 준 게 고맙다.

지아가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황제가 고대 생물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테고, 로웨나에 본거지가 있다는 것도 한참 뒤에 알았겠지.

“드래곤이 지키고 있는 곳이라면 로웨나가 확실하네.”

“네, 메이븐이 말하길 로웨나 왕국에 드래곤이 있대요. 여긴 진짜 신기한 것 같아요. 마법도 있고, 드래곤도 살고. 또 어떤 신기한 존재가 살고 있을지 너무 궁금해요.”

나는 순수하게 설레 하는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되게 다양해. 엘프도 있고, 드워프, 정령, 악마, 없는 게 없어.”

“엘프도 있어요? 진짜 영화에서처럼 활도 쏘고 잘생겼어요?”

나도 철수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엘프는 우리의 상상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다. 물론 생긴 건 아름답게 생겼겠지만, 철수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옹졸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지아는 엘프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환상을 깰지 말지 고민하다거 지아에게 말했다.

“나도 소문으로만 들은 거라 잘 모르겠어. 근데 엘프는 자신들의 땅을 벗어나지 않아서 만나기 어렵다더라.”

“그래요…? 아쉽다.”

“엘프는 아니지만 엘프처럼 생긴 내가 있잖아.”

나는 지아를 바라보며 얄상스럽게 웃었다. 그에 지아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놓고 자랑하면 인정해 주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지만, 솔직히 오빠는 좀 사기적으로 생긴 건 맞는 것 같아요. 뭐랄까…, 혼자 빛난다고 해야 하나? 예쁜데 잘생겼어요.”

“알고 있어.”

나는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는 지아를 향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내가 어떻게 생겼든 상관이 없지만, 젠의 옆에서 꿀리지 않게 생긴 것에 대해 감사했다.

아무리 마커스의 모습도 괜찮다는 젠이지만, 내가 안 괜찮다. 미인 옆에는 미인이 있어야 자연스러운 것처럼, 젠의 옆에는 우중충한 털보 아저씨보다는 나 같은 미인이 서 있어야 보기 좋은 법이다.

“젠이 보고 싶어. 둘째 형님은 뭐 하는데, 항상 젠을 데려가는 거야?”

“모르셨어요? 요즘 오빠 애인분 데려가서 칼질하던데요?”

칼질?

메이븐이 젠한테 검을 배우고 있다는 소리인가?

“대련 같은 걸 말하는 거야?”

내 질문에 지아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대답을 했다.

메이븐 이 약삭빠른 녀석, 소드 마스터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젠이었다. 그런 그와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실력에 도움이 된다는 걸 잘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젠이 거절하지 않고 잘 따라가는 걸 보면 마냥 싫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첫째인 로이븐은 나와 젠의 교제를 반대하니 둘째인 메이븐이라도 젠을 지지하게 만들어야지.

두 형제가 우리 사이를 지지하지 않아도 바뀔 건 없지만, 그들이 응원해 준다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 거다.

“근데 사랑하면 닮는다고, 오빠 애인분이랑 오빠랑 좀 비슷한 거 같아요.”

“꽤 오랜 시간 같이 있었으니까. 습관 같은 건 비슷해졌을지도 몰라.”

“그것도 그렇고, 제가 말하는 건 표정이에요.”

“표정?”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지아는 자신의 입꼬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오빠는 평소에 좀 딱딱하다가 그분을 생각한다거나 그분의 이야기가 나오면 표정이 상냥해지는 것 같아요. 눈이 살짝 풀어진다든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거요.”

내가…?

의문이 서린 내 되물음에 지아는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아서 몰랐다. 젠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건 맞지만, 표정은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표정 관리를 못하는 게 아닐까란 걱정이 밀려 왔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오스먼드나 라이언 황제 앞에서 표정 관리를 했던 것도 다 소용이 없었던 게 아닐까…?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을 때, 그 고민을 단번에 사라지게 할 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분도 오빠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전에 메이븐이랑 함께 있을 때 그분과 단둘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시종일관 무표정에 단답만 하던 사람이 오빠 이야기를 하니까 표정이 확 풀리더라구요.”

지아의 말에 나는 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밖에서도 나를 생각하며 미소 짓고 있구나. 그거면 됐다.

표정 관리 못 하면 뭐 어때? 오스먼드한테는 표정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막 나가고 있고, 라이언 황제 앞에서는 표정이 안 보이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되지.

나는 주체 못 하고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 다시 이야기의 주제를 로웨나 왕국으로 돌렸다.

“흠! 그, 자세한 장소는 몰라? 로웨나 왕국에 위치라거나 그런 거.”

“몰라요. 로지아도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 메이븐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들은 걸 적은 거라 자세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아요.”

“그렇구나, 그래도 로웨나 왕국이란 걸 알게 된 걸로 만족해. 일단 목적지는 정해졌으니 그 주변을 파 보면 되겠지.”

황제가 혼자 벌이는 일은 아닐 거다. 전쟁 병기라면 그걸 만드는 사람, 투자하는 사람, 이동하는 사람 등등 조력자의 힘이 필수 불가결로 있어야 한다.

누굴까.

“퍼디스…?”

“셋째는 왜요?”

“걔가 유독 황제랑 친하긴 한데… 그럴 깜냥은 못 되는 것 같고.”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셋째가 황제 편이라는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나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고, 지아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반응을 해 줬다.

아, 그러 고보니 그걸 까먹고 있었네.

“지아야, 너 저번에 연회장에서 왜 퍼디스 편들었어?”

이 말만 들으면 오해할 수 있을 테지만, 절대 그런 거 아니다. ‘너 왜 내가 싫어하는 애 편들어?’ 이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지아가 왜 퍼디스의 편을 들었는지가 궁금했다.

퍼디스는 로이븐과 메이븐과 대립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나를 괴롭혔다는 걸 지아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 왜 그런 못된 퍼디스의 편을 드는지 궁금했다. 이유가 따로 있나?

“셋째…는 조금 불쌍해서요.”

“걔가 왜 불쌍해? 걔보다 내가 더 불쌍해.”

“아,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세네카랑 프레오나 사이에 껴 있는 오빠가 제일 불쌍하긴 한데, 제가 읽었던 로지아의 일기장에는 퍼디스가 좀 불쌍하게 적혀 있었어요.”

지아는 씁쓸한 얼굴로 퍼디스를 동정했다.

“기억하세요? 오빠…가 아니라, 4황자요. 4황자가 죽고 나서 첫째가 흑화하고 둘째가 첫째 죽인 거요.”

“응, 기억해.”

겁쟁이 4황자가 프레오나에서 숨이 끊어진 뒤, 프레오나는 무너졌다. 그리고 폭군이 되어 버린 로이븐은 메이븐의 손으로 명을 다한다.

“4황자의 죽음에 셋째도 힘들어했어요. 첫째는 프레오나를 적으로 뒀다면, 셋째는 아예 세네카를 타깃으로 잡았죠.”

“세네카를?”

“네, 퍼디스는 4황자를 죽게 내버려 둔 세네카가 무능하고 원망스러웠대요.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일기장에 쓰여 있는 것만 보면 4황자를 엄청 아꼈던 것 같아요.”

어이가 없다.

가시가 잔뜩 나 있는 장미꽃을 선물한다든가, 배앓이를 일으키는 차나 간식을 선물한다든가, 유리로 된 사탕을 선물한 것까지. 그 모든 게 애정 표현이었다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셋째도 발악하다가 세네카에 있는 4황자의 무덤 옆에서 죽게 돼요. 많이 사랑했다고 하더라구요.”

아니, 도대체 로지아는 자기 일기장에 뭘 적어 놓았던 거야?

보통 사람이 일기를 쓸 때는 오늘 하루는 어땠다, 기분은 이랬다, 다음에는 이런 걸 할 거다, 같은 본인 위주의 일을 써 놓을 텐데. 로지아의 일기장에는 ‘세네카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다’, ‘누구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같은 남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쯤 되면 그건 일기장이 아니라 ‘카트린 영애의 시선으로 보는, 세네카의 속사정’이다.

“그거 단순한 일기장이 아닌 것 같은데….”

“일기장 맞아요. 제가 프라이버시를 지켜 줘야 해서 말을 안 하는 거지, 로지아에 관한 창피한 일들도 많이 적혀 있어요.”

그런 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

“방금까지는 신빙성이 높았는데, 퍼디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별로 믿음이 안 가네….”

이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지아를 ‘완벽한 성녀’로 만들어 준 기특하고 신기한 일기장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퍼디스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상, 전과 같은 믿음을 주기는 힘들다.

퍼디스가 나를 좋아했고, 나를 위해 세네카를 무너트리려 했고, 자신의 마지막을 내 옆에서 보냈다고?

그걸 누가 믿어.

“진짜예요!”

“진짜라고 해도 안 믿을 거야. 좋아하면 잘해 줘야지. 퍼디스가 지금까지 내게 해 온 짓을 보고 누가 좋아한다고 생각하겠어. 극도로 혐오하는 수준인데.”

나는 혀를 쯧 차며 퍼디스를 욕했다. 그에 지아는 입술을 쭉 내밀며 셋째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 거라며 퍼디스를 두둔했다.

“알았어,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래서 네가 생각하기에 퍼디스는 황제의 계획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 같아?”

“제 생각에는 그래요. 셋째는 못됐지만, 황제급으로 못된 놈은 아닐 거라구요….”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지아는 퍼디스 주연의 소설 한 편을 본 듯, 놀라울 정도로 그에게 이입해 그의 편을 들었다.

“…그래.”

이건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을 거다.

나는 퍼디스를 생각하며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지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게 동조를 바라는 그녀에게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거 다 마시고 돌아가.”

“벌써요?”

“슬슬 젠이 돌아올 시간이잖아. 메이븐도 따라올 거 같은데 같이 가.”

“아… 둘째랑 조금 어색한데….”

지아는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메이븐과 어색하다며 혼잣말을 했다.

고백이라도 받았나? 그러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고.

“안 마주치려면 지금 나가야 해. ”

메이븐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라는 내 말에, 지아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푸욱 쉬고 말했다.

“…안 되겠다. 저 먼저 갈게요. 나중에 또 봬요!”

지아는 서둘러 나가는 와중에도 남은 딸기 에이드를 한 번에 마시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아, 딸기 청 주는 거 까먹었다.

시종 통해서 갖다 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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