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페모스토프 공작가를 향해 (1)
서로의 입술이 살짝 맞닿았을 뿐인데, 얕게 찢어진 입술이 따가웠다.
“아얏….”
반사적으로 나온 내 반응에 내 턱을 잡아 올린 젠이 내 입술을 살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찢어져 있지만, 젠은 상처를 살피면서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었나요?”
내 입술에 난 상처만 보고, 짜증 나는 일이 있었냐고 묻는 젠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품에 안겼다.
“응, 아주….”
젠은 자신에게 안긴 나를 마주 안아 주며 등을 천천히 토닥여 줬다.
다시금 기분이 안 좋아진 나는 젠의 품에 안겨선 그의 가슴팍에 입술을 꾹 박고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 줬다.
그동안 보리언이 페모스토프 영지를 싸돌아다니며 어떤 두루마리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드로이프와 관련된 천인공노할 내용이 쓰여 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계획과 관련된 쓰레기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전부 불태워 버릴 거라고 말했다.
“지쨔 드아 쓰러버리 거아. 주코 시퍼도 모추케 뫈드 커야.”
나는 젠의 옷 위로 입술을 꾹 누른 채 말을 했고, 당연하게도 발음이 다 망가져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진짜 다 쓸어버릴 거야. 죽고 싶어도 못 죽게 만들 거야.
웅얼거림이 심해 못 알아들을 법도 했지만, 젠은 용케 알아듣고 나를 달래 줬다.
“페모스토프에게 가야겠군요.”
“응, 드로이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야지.”
나는 젠의 품에서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며 그에게 치댔다.
그런 내 모습에 작은 웃음을 지은 젠은 내 얼굴을 조심히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나는 그런 젠의 눈을 바라보며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안 해 줄 거야?”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을 담아 뽀뽀를 해 달라 보챘고, 젠은 잠시 내 입술에 난 상처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자신의 입술을 내 이마 위에 맞췄다.
이마 위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물론 이마도 좋긴 하지만….
“내가 원한 곳은 거기가 아닌데….”
이제 우리 짬이 좀 늘었잖아? 이마 가지고는 성에 안 찬다.
젠은 고개를 저으며 이마 뽀뽀 말고, 입술 뽀뽀를 바라는 내게 단호하게 말했다.
“상처 나서 안 돼요. 약 바르고 다 나으면 해 줄게요.”
“이건 상처도 아니야. 내일이면 말끔하게 나아 있을걸?”
나는 눈에 힘을 꽉 주고 젠을 바라봤다.
그에 젠은 말로는 안 된다고는 했지만, 내 귀여우면서도 강경한 눈빛에 사르르 녹아 버린 것 같았다.
“해 줄 거면서.”
야살스럽게 웃는 내 말에, 젠은 못 이기겠다는 듯 푸스스 웃었다.
곧이어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그의 입술이 내게 맞닿았다.
“읏….”
그의 입술이 움직이며 내 얕은 상처에 닿았다.
아프지는 않고, 그냥 살짝 찌릿한 느낌이 들어, 반사적으로 입술이 씰룩씰룩 움직였다.
젠은 내 씰룩거림을 느꼈는지, 입술을 떼고 내게 말했다.
“많이 따가웠나요? 약부터 발라야겠어요.”
“아니, 안 따가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약을 가지러 가는 젠을 붙잡고 다시 그의 입술에 다시 내 입술을 비볐다.
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면서 더욱 깊게 입 맞추려 할 때, 방문이 쿵! 하고 울렸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나는 젠에게서 얼굴을 떼고 고개를 돌렸다.
“뭐지…?”
“위험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은데, 나가 볼까요?”
아니, 나가고 싶지 않다. 방해받기 싫다.
그치만 나가야겠지.
“가 봐야지….”
“제가 나갈게요. 약 바르고 계세요.”
젠은 내 뺨 위를 부드럽게 감싼 뒤, 상처가 나 있는 내 입술 주변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었다.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약을 찾으러 서랍을 뒤졌다.
저번에 만들어 놓은 게 있을 거다.
“아, 찾았다.”
“미르 님.”
약병을 찾고 나자, 나를 부르는 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젠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너, 너 그게 무슨 꼴이야!”
반문 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필릭스가 서 있었다.
나는 다시 서랍을 열고 안에 들어 있는 약품을 긁어모아 품에 안고서 피투성이인 필릭스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필릭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머리를 살피며 상처 부위를 보려 했지만, 피만 잔뜩 묻어 있을 뿐 상처 부위가 보이지 않았다.
“다친 곳이 어디야?”
“….”
“뭐야, 왜 말을 못 해.”
필릭스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니, 얘가 왜 이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말 못 해?”
내 물음에 필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못 한다고? 그 말 많은 필릭스가?
“말하기 싫은 거야?”
내 질문에 필릭스는 그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거야?”
그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입이 딱 붙었어? 안 떨어지는 거야?”
이번 질문에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이어 끄덕였다.
조금 애매하지만 비슷하다는 뜻인 것 같다.
단순하게 입술이 붙은 거라면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 음음음! 같은 목소리는 낼 수 있었을 텐데.
역시 마법인가? 하지만 마법이라면 필릭스 혼자 충분히 풀 수 있었을 텐데?
“마법 때문에 아예 말을 못 하는 거야?”
마법 때문인 게 맞았는지, 필릭스는 머리가 떨어질 정도로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마법에 당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거라니….
“설마 마법 풀어 달라고 나한테 온 거야?”
나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필릭스를 바라봤고, 그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못 푸는 마법을 내가 무슨 수로 풀어. 그리고 나 마나도 없어.”
“….”
내 말을 들은 필릭스는 낭패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봐도 어쩔 수가 없어. 마나를 쓰려면 죽은 마나를 마셔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 길인지 너도 알잖아.
나는 측은한 표정으로 필릭스를 바라봤고, 필릭스는 손으로 펜을 잡은 채 허공에 무언가를 써 갈기는 행동을 보여 줬다.
“종이랑 펜 달라고?”
필릭스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필릭스를 방 안으로 들여 와, 아까 전 편지를 쓰려고 찢었던 책의 맨 뒷장을 펼쳤다.
이 책한테는 미안하지만, 종이가 안 보이는 걸 어떡해.
“자.”
필릭스에게 펜까지 쥐여 주자, 그는 자신이 방금까지 겪었던 일을 줄줄 써 내려갔다.
<마탑에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어쩌다가 숨겨진 방을 발견했어. 신기해서 들어갔더니 여러 마법사들이 이상한 연구를 하고 있었고 그놈들이 나를 죽이려고 해서 ‘아주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다가 겨우 빠져나갔는데 막판에 목소리를 쓰지 못하게 하는 마법에 걸렸어. 묵언 마법을 푸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풀지도 못해.>
한마디로 마녀에게 목소리를 뺏긴 인어공주가 됐다는 거다.
나는 울상을 짓고 있는 필릭스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줬고, 목소리를 되찾을 방법은 씻고 나온 다음에 구상해 보자고 말했다.
내 말에 필릭스는 바로 욕실로 직행했고, 나는 그가 입을 만한 옷을 꺼내 줬다.
“필릭스가 발견한 그곳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나 봐. 황제랑 관련된 걸지도 몰라.”
“그럴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소란이 벌어졌으니 곧 자리를 옮기지 않을까요.”
젠은 필릭스가 들어간 욕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필릭스에게 비밀의 장소를 들킨 것도 모자라 화려하게 뒤집혔으니, 자리를 옮길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들어가려면 지금 가야 해.”
“제가 다녀올 테니 미르 님은 계세요.”
젠은 그리 말하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필릭스가 씻고 나오면 바로 출발할 예정인 것같았다.
그나저나 쟤 목소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마법을 써서 풀려면, 고갈된 마나를 마셔야 하는데, 이게 참 까다롭다.
전에는 마나를 마실 때 필릭스가 고통을 공유하는 마법을 써 줬었다. 하지만 그 마법을 사용해도 아파 죽을 뻔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필릭스가 말도 못 하는 상태고, 묵언으로 할 수 있는 마법을 제외하고는 다른 마법을 쓰지 못하니, 고통을 공유하는 마법 없이 나 혼자 마나를 마시면 기절할 수도 있다.
“어쩌지…. 아는 마법사도 없는데.”
인맥 짱짱한 필릭스가 다른 마법사도 아닌 마법도 못 하는 날 찾아온 걸 보면, 세네카에 있는 마법사 모두를 믿지 못한다는 뜻일 거다.
어쩌지….
“…철수를 불러 볼까?”
생각나는 게 철수밖에 없었다. 악마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조금 못 미덥지만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존재는 철수니까.
“불의 정령왕이요?”
“응, 정령왕인데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부터 마법을 보면 정령들의 짝퉁이라 그랬거든.”
정령왕 타이틀을 폼으로 달고 다니는 게 아닌 이상,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다. 아마도.
나는 속으로 철수를 불렀다.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철수가 응답할 때까지 한참을 부르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붉은 불길이 화르르 타오르며 짜증이 가득한 얼굴의 철수가 나타났다.
“한 번만 불러도 돼!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계속 부르니 정신 사나워서 원….”
“한 번에 바로 올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저번에는 여기저기 잘만 다니더니만.”
“이 몸이 아무리 대단한 정령이라고 해도, 인간의 몸을 한 상태에선 계약자와 떨어져 있으면 거리가 멀수록 찾아가는 게 어려워.”
인간의 모습으로 있으면 답답하다고 싫어하던 철수가 왜 인간의 몸으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나저나 꽤 오랜만에 봤는데 보자마자 화부터 내고 조금 서운하다.
나는 철수를 째려봤고, 내 마음을 읽은 철수는 헛기침을 하고는 여전히 붉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흠…!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이 몸은 바쁘다고.”
“하는 일도 없는 정령이 뭐가 바빠.”
“너보다 백배는 바빠. 한나랑 놀아 주는 것도 그렇고, 요새는 다른 정령왕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부른 바람에 아-주 바빠. 어쩌겠어? 이 몸이 대단한걸.”
나는 콧대가 높아진 철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이 가고 나면 한동안 부르지 말아야겠다.
“오늘 부른 거는… 아, 저기 나오네.”
때마침 욕실에서 나오는 필릭스를 가리키며 철수에게 말했다.
“철수야, 너 마법도 풀 수 있어? 쟤가 말을 못 하는 마법에 걸렸는데 풀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내 말을 들은 철수는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는 필릭스를 바라보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몸이 그런 것도 못 할 줄 알아? 저런 불량품 같은 술식은 일도 아니야.”
철수는 그렇게 말하며 필릭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필릭스는 처음 마주한 철수를 보며 경계를 했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내 말에 경계를 풀고 철수를 마주 봤다.
철수는 그런 필릭스의 심장께에 손을 가져다 댄 체. 잠시 정령의 언어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