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페모스토프 공작가를 향해 (2)
철수가 필릭스의 목에서 손을 떼자, 필릭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목소리를 내보려 했다.
“아… 아…! 아!”
“오.”
“목소리가 나와!”
필릭스는 답답했던 것이 한 번에 해소된 듯 크게 소리쳤고, 바로 옆에 있던 철수는 그런 필릭스가 시끄러운지 얼굴을 찡그렸다.
“어떻게 한 거야? 마법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 몸이 그런 조잡한 짓을 할 거 같아?”
철수는 무슨 마법을 썼냐는 필릭스의 물음에 불쾌하다는 듯 퉁명스레 말했다.
필릭스는 아직도 신기한지 철수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목을 만지며 감탄을 했고, 나는 바빠 보이는 철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철수야, 많이 바빠?”
“한나와 보물찾기 중이었어. 찾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가 봐야 해.”
철수는 인간인 한나와 공평하게 게임을 하기 위해서 자신도 인간의 모습으로 숨겨진 보물을 찾는 거라 말했다.
한나랑 재미있게 보내는구나. 역시 철수는 내가 아닌 한나와 함께 있게 하는 게 좋은 선택이었다.
나랑 함께 있었으면 이래저래 불편했을 거다.
첫 번째로 세네카는 마법의 제국이라 도시 이곳저곳에 마법과 관련된 것들이 즐비해 있다. 철수는 고귀한 정령으로 마법은 괴상하고 조잡스러운 술법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세네카는 철수에게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닐 거다.
두 번째는 내가 세네카에 오고 나서 욕을 하는 횟수가 늘었다. 하루에 꼭 한 번씩은 라이언 황제를 조져 버리겠다는 잔인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혹시라도 철수가 내 생각을 읽는다면 아주 깜짝 놀라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질 거다.
마지막으로 젠과 함께 있을 때 민망해질 거다. 내가 젠을 생각하거나 함께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 생각이 철수와 공유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테고, 철수는 나와 젠의 개인적인 시간을 위해 자리도 비켜 줘야 한다.
그 밖에도 할 말이 많지만 어쨌든 서로가 붙어 있으면 여러모로 불편하다는 거다.
“이 몸은 앞으로도 한나랑 있을 예정이니 진정해.”
“아.”
너 내 생각 읽고 있었니? 이거 좀 민망하네….
“네가 욕하고 그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그 정도는 괜찮아. 이 몸한테 볼일은 다 끝났어?”
“응, 끝났…지 않았어.”
아직 볼일이 남아 있다는 내 말에, 철수는 무슨 일이냐는 뜻으로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나는 그런 철수의 눈빛에 대답하듯 필릭스를 바라봤다.
필릭스는 철수의 정체가 궁금한 건지, 아까부터 멀뚱히 철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라는 뜻에서 필릭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팔을 툭툭 치며 철수에게 말했다.
“얘랑 같이 마탑에 가 줘.”
“마탑? 이 몸이 거길 왜?”
“뭐어? 안 돼! 절대 안 돼!”
철수는 자기가 그런 곳에 왜 가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고, 필릭스는 그곳에 다시 가는 건 말도 안 된다며 팔까지 휘두르며 거절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천천히 말했다.
“필릭스가 마탑에서 큰 봉변을 당했대.”
“약해서?”
철수는 필릭스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철수의 말에 필릭스는 반박하고 싶어 했지만, 방금 전까지 철수에게 도움을 받았던지라 입만 뻐끔거렸다.
“얘가 이렇게 보여도 그쪽 업계에서 한 가닥 하는 애야. 그런데도 얘를 공격을 했다는 건,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을 필릭스가 봤다고 생각한 거겠지.”
“아무것도 못 봤어. 들어가자마자 여러 명이 한꺼번에 공격해 오는 바람에 죽을 뻔했다니까?”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뜻이겠지.”
나의 냉정한 말에 필릭스는 억울한지 큰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나는 걔네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아내야 하고, 너는 걔네를 피하든가 해결하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하잖아.”
“네가 그걸 알아야 한다고? 왜? 무슨 일 있어?”
필릭스의 물음에 나는 잠시 젠을 바라보며 이걸 말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젠은 내 고민을 알아차렸는지 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젠의 의견에 따라 필릭스와 철수에게 이야기하려 입을 열었다.
“…그 마탑 연구가 드로이프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기억하지? 우리 집 아기 여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황제가 드로이프를 이용해 끔찍한 일을 꾸미고 있다고만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필릭스는 입을 떠억 벌리며 경악했고, 인간성을 저버린 황제에게 분노를 표했다.
의외로 크게 분노할 것 같았던 철수가 생각보다 담담하게 반응했다.
인간은 예로부터 이기적인 생물이었고, 변한 게 없다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놈들이 뭘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거야.”
“이해했어.”
“그리고 너는 다시 있을 습격을 피하기 위해 가야 하는 거고.”
내 말을 들은 필릭스는 이해가 안 되는 건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얘가 이렇게 멍청한 아이가 아닌데, 충격을 많이 받았나보다.
나는 친절하게 필릭스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네가 마탑 안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나왔다며. 게다가 그놈들은 널 죽이려다 실패했으니 다시 오겠지?”
“그…렇겠지. 근데 거기를 왜 다시 가냐고! 나 진짜 죽을 뻔했다니까? 방어막 안 펼쳤으면 지금쯤…!”
“그러니까 지금 가야지. 너 자고 있을 때 습격받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먼저 선수 쳐서 빨리 쓸어 버리는 게 마음 편해.”
나는 필릭스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밤마다 언제 누가 쳐들어올지 걱정하면서 뜬눈으로 지새울래?
그리고 그때, 내 머릿속으로 다급한 철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지금 이 몸한테 살인을 하라는 거야?’
그 목소리에 철수를 돌아보자, 철수는 어이없고 화가 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진정해. 살인이라니, 너한테 시킬 생각도 없고, 바라지도 않아.
‘그럼 쓸어버린다는 건 뭐야?’
말 그대로 마탑을 날려 버린다는 거야. 인간을 죽인다는 게 아니라.
나는 정보를 구하려고 하는 짓인데 걔네가 죽으면 정보는 어디서 구해.
난 지금 아주 사소한 정보 하나라도 소중하단 말이야.
내 생각을 읽은 철수는 굳었던 표정을 풀고 헛웃음을 지었다. ‘네가 그럼 그렇지’ 같은 웃음이었다.
필릭스는 마탑으로 들어가 먼저 쓸어버리자는 내 말이 생각보다 더 충격이었는지, 미간을 찡그리고 생각에 빠져있었다. 나는 그런 필릭스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철수랑 같이 마탑으로 가.”
“진심이야?”
“응, 가서 마탑 전부 불태워 버리고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 하나만 끌고 와줘. 물어볼게 있어.”
마탑을 불태우는 이유는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불에 탔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동안 마법사들이 연구했던 것들이 전부 잿더미가 되어도 좋고, 그들이 연구할 장소가 사라지면 라이언 황제의 계획이 더뎌질 테니 어느 쪽으로든 이득이다.
내가 알고 싶은 정보는 사람한테 얻으면 된다. 마법사는 충성심이 강하지 않아서 보석으로 회유를 하든지, 잘 구슬리면 입이 가벼워질 거다. 그러니 번거롭게 연구 자료 같은 건 챙길 필요가 없을 거다.
그리고 세네카의 자랑인 마탑을 태워 버렸다고 하면 오스먼드가 좋아할 거다. 마탑이라는 직장을 잃은 마법사들의 전력이 한동안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
이걸로도 충분한 선물이 아닐까?
아, 잠깐만. 그럼 필릭스의 직장도 사라지는 거네?
갈 곳이 사라진 필릭스는 차기 마탑주가 아닌, 그냥 에반스터 가문의 미혼인 차남일 뿐이다.
나는 멍한 표정의 필릭스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와서 물어보는 것도 조금 그런데… 마탑 불태워도 돼? 네가 일하는 곳이잖아.”
“그건 상관없어. 어차피 내 것도 아니고, 큰 애정도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필릭스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나는 필릭스의 결단을 기다리며 철수에게 말했다.
“마탑에 들어가면 위층부터 서서히 태워. 그래야 마탑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이 화재를 피해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냥 건물만 태우면 된다는 소리지?”
“맞아. 그리고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을 데려와 줘. 책임자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책임자는 다른 놈일 거야. 내가 데리고 올 테니까 그 처, 철수 경이 내 뒤 좀 봐 줬으면 하는데 괜찮은가?”
필릭스는 결심이 섰는지 철수를 바라보며 자신의 뒤를 봐 달라고 했다. 철수는 필릭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은 거야?”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요새 마법사들 사이에서 편이 갈리는 바람에 시끄럽거든.”
나는 필릭스에게 여러 의미를 포함해 괜찮냐 물었고, 필릭스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다며 사상이 악독한 마법사를 거르기가 좋을 거라고 말했다.
필릭스의 손에서 몇 명 죽어 나가겠구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필릭스를 바라봤고, 필릭스는 가만히 나를 보다가 내 뒤에 있는 젠에게 말했다.
“이프리트 경도 함께 가는 것인가?”
“아니요, 저는 미르 님 곁을 지킬 겁니다.”
“이프리트 경이 함께 있어 준다면 빠르게 끝낼 수 있을 텐데.”
필릭스는 함께 가지 않는다는 젠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젠은 내가 안 보내 줄 거야. 그리고 우리 중에 철수가 제일 강해. 우리 세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못 이길 정도로, 네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야.”
내 말에 깜짝 놀란 필릭스가 다시 철수를 향해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그 덕에 철수는 콧대가 높아져 ‘이 몸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으스댔고,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그의 말을 끊었다.
“조심히 다녀와. 들켜도 상관없지만, 가능하면 몰래 데려와.”
들켜 봤자 황제한테 끌려가는 거밖에 더하겠어? 그리고 이제 나도 안 참아.
필릭스는 크게 한숨을 쉰 뒤 밖으로 나갔고, 그의 뒤를 철수가 천천히 따라갔다.
저러다가 불기둥에 휩싸여 뿅 하고 사라져서 순식간에 해결하고 올 거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다, 내 옆에 서 있는 젠에게 말했다.
“애들이 오면, 정보만 얻고 나서 바로 알란드로 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오늘부터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떠나는 시간이 오늘 새벽이 될지, 내일 아침이 될지 모르겠다.
떠나기 전에 지아한테는 말해 줘야겠지.
“그전에… 로이븐 황태자를 만나고 가야 할 것 같아요.”
“로이븐? 첫째 형님은 왜?”
젠은 로이븐을 언급하며 떠나기 전, 그와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젠에게 무슨 뜻이냐 물었고, 젠은 잠시 뜸을 들이며 말했다.
“저희가 프레오나 저택에 있을 때, 제가 자주 밖으로 나갔던 거 기억하세요?”
“응, 기억해. 항상 마물을 잡아 왔었잖아.”
저택에 있었을 때, 젠은 항상 어딘가로 사라졌었다. 숲으로 사라질 때가 많았는데, 나가기만 하면 마물을 질질 끌고 오길래 마물을 잡기 위해 나간 건가 생각하곤 했다.
“미르 님이 불편하실까 봐 말을 하지 않았지만, 실은 미르 님한테 붙었던 감시를 견제하러 갔었던 거예요.”
응…? 감시?
나는 멍한 표정으로 젠을 바라봤다.
“로이븐 황태자가 미르 님께 감시를 붙였었어요.”
이어지는 젠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