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페모스토프 공작가를 향해 (3)
젠이 말해 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담담한 표정의 젠을 향해 말했다.
“로이븐이 나한테 감시를 붙였다고?”
젠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뒷말을 이었다.
“정확한 건 입을 열지 않아 모르지만,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 감시라기보단 호위라고 하는 편이 맞는 것 같아요.”
당자사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호위는 감시나 다를 게 없다.
내게만 유독 브라콤이 있는 로이븐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상이지만, 라이언 황제의 뒤에 있던 가문이 페모스토프라는 걸 들은 이후에는 달라진다.
로이븐에게 페모스토프는 외삼촌이다.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연결된 피로 보자면 꽤나 가까운 사이다.
“…지금도 있어?”
“아뇨, 세네카에 돌아오고선 주인의 곁으로 돌아갔어요.”
세네카에서까지 날 감시했다면 의심이 더 커졌을 거다.
안 되겠다.
“로이븐을 만나러 가야겠어.”
“지금 바로요?”
“응. 지금 바로.”
오히려 지금이니 더 좋을지도 모른다.
지금쯤이면 철수와 필릭스가 마탑을 불태우고 있을 테고, 나는 로이븐의 시선을 끌어 대처를 느리게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정령의 불꽃을 끌 수 없을 거다.
마탑이 전부 재가 된 뒤, 불꽃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가자.”
나는 로이븐을 만나러 가기 위해 옷을 껴입었다.
혹시라도 철수와 필릭스가 우리보다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 파시테 궁을 나가기 전, 마린에게 노반과 함께 내 방에서 그들을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황자님.”
“응, 아무도 들이지 말고.”
“네, 걱정 마세요.”
걱정 안 한다.
우리 중에 마린이 제일 믿음직한데 누가 누굴 걱정해.
나는 조심히 다녀오라는 마린에게 작게 미소를 지어 주고 밖으로 나섰다.
마차를 탈 시간은 없어, 가넷을 꺼낸 젠의 앞에 올라섰다.
가넷은 빠르게 달려 로이븐의 궁에 도착했고, 나는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응접실에서 로이븐을 기다렸다.
로이븐의 궁은 세네카에 도착했던 그날 온 뒤로 처음이다.
그때와 달라진 게 없는 이곳을 바라보며 로이븐에게 해야 할 말을 생각했다.
‘형님, 어째서 제게 감사를 붙여 놓으신 겁니까.’
이건 너무 약하다.
‘형님 왜 제게 언질도 없이 감시를 붙여 놓으신 겁니까.’
이건 너무 따지는 것 같고.
‘형님 제가 못미더우신겁니까. 어째서 제게 언질도 없이 감시를 붙여 놓으신 겁니까.’
이건 조금 아쉬운데… 아!
“형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제가 못미더우신겁니까? 어째서 제게 언질도 없이 감시를 붙여 놓으신겁니까?”
“….”
아. 생각만 한다는 게….
응접실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로이븐의 얼굴을 보자마자, 혼자 생각하고 있던 말이 입밖으로 나왔다.
로이븐은 항상 볼 때마다 입고 있던 정갈한 복장이 아닌, 평범한 와이셔츠와 바지 차림으로 평소보다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밖으로 나가는 용무가 없었나 보다.
“그….”
들어오자마자 내 투정을 들은 로이븐은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에 당황스러워했다.
곧이어 로이븐은 이 사태를 만들어 낸 원인이 젠인 것을 알아차린 뒤, 내 옆에 담담하게 서 있는 젠을 노려봤다. ‘쪼잔한 새끼 그걸 일러바쳐?’ 같은 눈빛이었다.
“아프리트 경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나는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로이븐을 향해 소리쳤다.
내 외침을 들은 로이븐은 젠을 노려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곤 답지 않게 쩔쩔매며 말했다.
“그, 미르야…, 형님은 그저 네가 안전하게 있었으면 해서….”
“그렇담 제게 조금의 언질이라도 해 주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네가 괜히 신경 쓸까 봐 말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다.
겁쟁이 4황자라면 못난 자신을 따라와서 고생하고, 항상 자신을 지켜 줘서 고맙다 어쩐다 하면서 그 호위를 많이 챙겨 줬겠지. 신경도 많이 써 줬을 테고.
하지만 나는 4황자와 반대로, 따라다니는 호위가 그저 귀찮고 성가셨을 거다. 굳이 그 호위를 신경을 써 준다면 밥은 먹고 다니는지 정도? 딱 그 정도만 신경 썼을 거다. 그러다가 다시 잊어버리겠지.
“네가 그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면 무의식적이라도 그쪽을 향해 시선이 갈 테니, 혹, 너를 위협하는 누군가에게는 들킬 것 같아서 말하지 않은 점도 있단다.”
“제게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프리트 경한테 들키지 않았습니까? 혹시라도 이프리트 경이 제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나는 이마를 짚으며 로이븐이 더욱 미안해하길 바랐다.
그에 로이븐은 내게 사과를 하면서도 정말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 미안하구나, 내 생각이 짧았어.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누군가에게 들킬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은신으로는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능력 있는 아이인데….”
로이븐은 젠을 노려보며 이어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의 기척을 눈치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란다.”
로이븐은 ‘그 아이’의 은신을 젠이 눈치챘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젠이 해괴한 술수를 부렸다는 듯 이야기했다.
추합니다, 형님.
“아무튼 들켰지 않습니까! 제가 이프리트 경께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프레오나에 있을 때, 황제와의 독대가 꽤 자주 있었는데 혹시라도 그쪽에서 눈치챘더라면….”
상상만 해도 아찔해진다.
오스먼드한테 들키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잡아떼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 아이가 오스먼드를 대하는 내 행동을 가까이서 지켜봤다면… 으. 생각하지 말자.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로이븐은 깜짝 놀라며 서둘러 내게 다가와 어린아이를 대하듯 부드럽게 달랬다.
“정말 위험할 때만 모습을 보이라 했으니 괜찮았을 거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엄청 멀리서 지켜보라 했었어.”
“이프리트 경에게 들켰지 않습니까….”
“이프리트 경이 그 아이를 발견한 건 이프리트 경이 대단한 실력자라 그런 거야. 이프리트 경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거라니까.”
웃기는 소리지만 로이븐의 말대로다.
젠은 보통 사람들을 훨씬 뛰어넘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살아 있는 것들의 영혼의 색도 보이니, 그 아이가 아무리 멀리서 지켜봤더라도 젠에게는 다 보였을 거다.
로이븐은 진심으로 내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호위를 가장한 감시를 붙인 것 같다.
지아가 이야기해 줬던 미래의 이야기에서도 겁쟁이 4황자가 그렇게 되고 난 후, 로이븐이 가장 크게 화를 냈다고 했으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행동인데 다른 사람에게 들켰으면 어쩔 뻔했냐는 책망은 이쯤으로 끝내는게 좋을 것 같다.
로이븐도 계속 들으면 짜증 나겠지.
그래도 마지막으로 확인 한 번만 하자.
나는 고개를 들어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로이븐에게 말했다.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형님이 미숙한 저를 위해 사람을 붙여 주신 것을요. 못 미더운 아우라 항상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못 미덥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내가 가장 아끼는 아우인 것을!”
“네,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제게 마음을 써 주신 거겠지요….”
내 말에 로이븐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달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로이븐의 시선을 피하며, 내 옆에 서 있는 젠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말했다.
“프레오나에서의 한심한 제 꼴을 형님께서 다 들으셨다니,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합니다.”
젠은 자신에게 안긴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로이븐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그에 로이븐은 허겁지겁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말을 이었다. 로이븐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 파랗게 질려 창백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너의 생사를 들었을 뿐 다른건 듣지 못했으니 말이야.”
“정말입니까…?”
“그래, 나는 그냥 네가 잘 지내고 있나만 알면 충분했는걸. 그리고 그 아이도 이프리트 경의 경계를 받느라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하고. 네가 걱정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
생사만 전했다니 그건 그거대로 다행이다.
나는 젠의 품에서 살며시 고개를 들어 로이븐을 바라봤다.
로이븐은 겁을 먹은 강아지를 달래듯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런 로이븐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다물다가 입을 열었다.
“믿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제 곁을 지켜 준 그 아이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저를 지켜보느라 힘이 들었을 텐데 감사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로이븐은 잠시 난처한 기색을 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븐은 그 아이를 부르러 밖으로 나갔고, 응접실에는 나와 젠만이 남게 되었다.
나는 젠에게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쁜 마음으로 한 건 아닌 것 같지? 멀리서 봤다 했으니, 젠의 말대로 감시가 목적은 아닌 것 같아.”
내 물음에 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감시가 목적이었다면 황태자의 말대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응, 그건 다행이야. 로이븐은 악의가 없지만, 그 아이는 어떨는지 모르겠네….”
만약 그 아이가 페모스토프의 명을 받은 이중첩자라면, 나는 그렇다고 쳐도 노반의 모습을 봤을 거다.
마지막 드로이프를 탐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때 응접실 문이 열리고, 로이븐과 함께 많이 쳐 줘 봐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들어왔다.
‘그 아이’가 진짜 아이였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로이븐에게 말했다.
“어린아이가 아닙니까?”
“그래, 하지만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강한 아이란다.”
나는 아이를 한번 보고, 젠을 바라봤다.
그에 젠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나를 감시하던 사람이 저 아이가 맞다며 확인을 해 줬다.
아이는 로이븐의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젠의 목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을 쳤다.
나는 그런 아이의 행동에 깜짝 놀라며 젠을 바라봤고, 젠은 내 시선을 피했다.
“형님, 죄송하지만 제가 이 아이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단둘이 말이냐? 문제는 없다만….”
로이븐의 허락에 나는 젠을 바라보며 말했다.
“젠도 잠시 나가 있어 줘. 이야기가 끝나면 부를게.”
내 말에 젠은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불러 주세요.”
“응, 걱정 마.”
내 요청대로 로이븐과 젠은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이곳에는 아이와 나, 단둘만 남았다.
나는 가만히 아이에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아.”
그에 아이는 내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내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살피며 기분을 읽어 보려 했다. 아이는 가만히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듯 무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향해 강하게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넌 누구의 명을 따르고있지?”
그에 붉은 빛이 도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