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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74화 (174/227)

174 페모스토프 공작가를 향해 (6)

“그거….”

케이시는 노반이 어떤 존재인지 한눈에 알아본듯 놀라 했다.

나는 눈시울을 붉힌 채 케이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가족이야.”

내 말을 들은 케이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손을 올려 벌어진 제 입을 가렸다.

나는 케이시가 있는 쪽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젠이 안고 있는 노반을 살폈다.

나와 젠은 노반의 통통한 배를 톡톡 두들기며 작은 아기 여우를 깨웠다. 하지만 노반은 눈을 뜨기는커녕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노반의 앙증맞은 두 발을 잡고 파도를 타며 흔들거나, 이름을 크게 불러 깨워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노반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짚이는 부분은 있나요?”

“….”

짚이는 부분이 없냐는 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시녀가 노반한테 쿠키를 먹였어.”

노반은 내가 보리언과 대화를 끝마치기 전까지만 해도 깨어 있었고, 로이븐의 궁에 갔던 순간에는 마린과 함께 있어서 누가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 문제가 될 만한 건 솔피가 노반에게 줬던 쿠키 말고는 없다.

“시녀요?”

“응.”

나는 의문을 표하는 젠에게 솔피와 관련해서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서 젠은 표정을 굳힌 뒤,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노반답군요.”

그때, 솔피를 찾으러 갔던 마린이 돌아왔다. 마린에게 솔피를 찾았냐고 물으려 했지만, 마린의 표정이 어두운 걸로 보아 묻지 않아도 상황이 그려졌다.

“없었구나.”

처음부터 ‘솔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던 거다.

내 말에 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나는 눈을 감고 피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려 했지만, 감긴 노반의 눈꺼풀을 보니 가슴속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울컥하고 뒤집혔다. 눈앞이 뿌예지며 과거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잡았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여자를 잡아서 무슨 짓을 했는지 물었어야 했어. 멍청하게 그 여자의 손만 확인한 뒤 돌아가는 바람에 노반이 이렇게 된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겁쟁이 4황자인 척, 무른 척 그 여자를 그렇게 보내지만 않았어도…!

“자책하지 마세요. 미르 님 잘못이 아니에요.”

젠은 눈물을 흘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내게 자책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내 턱을 부드러운 손길로 잡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지 못하게 내 턱을 잡았던 손으로 오른쪽 뺨을 약하게 눌렀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깨물고 있던 턱에 힘을 풀었다.

그에 젠은 내 고개를 잡고 자신을 향해 들 어올렸고, 반강제적으로 젠과 시선을 맞추게 된 나는 훌쩍거리며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젠은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노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날 거예요. 잠시 재우는 거라면 몰라도, 드로이프를 영원히 잠들게 하는 약은 없을 테니까요.”

나는 나를 안심시키는 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노반에게 뭘 먹인 거라면 그 효과가 오래가지 않을 거다.

드로이프잖아. 노반은 생명력이 강한 드로이프다. 뭘 먹였는지는 몰라도 약 기운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거다.

나는 나를 다독여 주는 젠 덕분에 잃었던 평정심을 되찾았다. 냉정하게 상황 파악을 하려 할 때 케이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일주일은 지나야 깰 거다. 길면 한 달이 넘을 수도 있고.”

“한 달이나…?”

나는 얼빠진 얼굴로 케이시를 바라보았고, 케이시는 꽤나 담담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래, 하지만 저 청년의 말대로 아무 문제 없을 거니 걱정 말고.”

“당신은… 이 아이가 왜 일어나지 않는지 알고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만들었으니까.”

케이시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내 눈을 한 번 바라보다가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암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마탑 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던 내게 세네카의 황제가 찾아왔단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고 난 뒤, 케이시는 마탑에서 연구만 하며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레이트라를 만났고, 레이트라로 인해 죽은 자식으로 얻은 마음의 상처가 점점 아물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트라의 가문이 역적으로 몰려 몰락했다. 레이트라의 숨도 끊어졌다.

레이트라로 인해 세상 밖으로 나왔던 케이시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마탑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그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케이시에게 라이언 황제가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고는 ‘레이트라의 죽음 뒤에는 프레오나 제국과 그에 연결된 왕국들의 소행이었다. 나는 그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며, 이 대륙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그대도 나와 같은 길을 걸어라.’라고 말했단다.

그때의 케이시는 자식을 또 한 번 잃었다는 슬픔에 옳고 그름의 분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레이트라의 몰락이 라이언 황제의 짓인 걸 알 수 있었겠지만, 케이시는 분노가 눈 앞을 가려 들리는 것만 믿고 황제의 계획에 동참했다.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단다. 내 속에 들어 있는 분노를 누구한테든 풀고 싶었는지도 몰라.”

나는 잠에 빠져 있는 노반을 안은 채,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시를 나무랐다.

“잘못된 것인지 알았다면, 정신 차리자마자 거기서 빠져나왔어야지.”

“나는 네가 생각지도 못할 끔찍한 짓을 저질렀단다. 그곳에서 나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던 거지.”

“그건 변명일 뿐이야.”

나는 케이시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빠져나오기에 이미 늦었다는 건 그저 변명일 뿐이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반성하고 고쳐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난 당신이 어째서 황제의 편을 들었는지 관심 없어. 얼른 본론만 말해.”

“성급하긴…. 그런 면은 레이트라와 판박이구나. 그 아이도 성격이 급했지.”

레이트라의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 뒀던 양심이 푹푹 찔린다.

나는 레이트라의 진짜 자식이 아닌데 레이트라를 닮았다고 하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큰 죄를 짓고 있는 듯한 느낌에 말문이 막힌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한데, 거의 아물어 잊고 있던 상처를 다시 상기하기 위해 스스로 바늘로 찌르는 기분이다.

나는 케이시를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문 채,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케이시는 잠잠해진 나를 보며 살포시 웃고는 말을 이었다.

“프레오나 제국과 전쟁을 하던 당시, 전쟁에 나서지 않았던 마법사들의 반은 프레오나의 외곽으로 갔단다.”

“외곽?”

“그래.”

라이언 황제가 가져온 정보 중, 프레오나의 외곽에는 고대 생물의 터가 존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고대 생물은 드로이프일 테고.

그리고 케이시는 그 드로이프에 대해 연구를 하며, 노반이 잠에 빠진 이유인 ‘그것’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뭘 먹인 건데?”

“먹인 게 아니야. 향을 흘린 거지.”

“향…?”

드로이프는 식물과 가까운 사이라, 식물에 관해서는 뭐든지 수용하기 때문에 약을 사용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고 경로를 바꿨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수면 향이라고 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고대 생물이 향기에 예민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토대로 수면 향을 만들었단다.”

케이시는 수면 향에 넣은 식물들과 마법을 줄줄 읊어 줬는데, 그것에 들어간 성분들은 들을수록 놀라운 나머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인간이었다면 그냥 잠이 아닌, 영원한 잠에 빠져들 정도로 자극적인 것들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독이란 독은 전부 사용하고, 정신을 못 차리거나 잃게 하는 식물도 사용했다. 게다가 그것을 극대화시키는 마법을 사용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수면 향을 만들어 냈다.

“그런 걸 이 아이한테 맡게 했다는 거야…?”

나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처럼 케이시를 노려봤다. 그러자 케이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한 번에 중독시키는 건 위험해. 서서히 수면 향을 노출시켜서 독을 누적시키는 거지.”

케이시의 말을 듣자 이해가 갔다. 그동안 노반이 쿠키를 먹을 때마다 조금씩 향을 맡아 왔던 거고, 하필이면 오늘 그 향이 통한 거다.

“마법은 내가 풀어줄 수 있어. 그치만 몸에 남아 있는 수면 향의 해독까지는 기다려야해.”

“그럼 더 빨리 깰 수 있는 거야?”

“그래, 상태가 좋으면 내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겠지만 보통은 나흘 정도는 잡고 봐야 해.”

노반이 잠에 들어 있던 독초와 정신착란을 유도하는 식물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을 극대화시킨 마법 때문이다.

케이시가 수면 향에 걸린 마법을 풀면, 노반의 몸은 알아서 독초와 다른 식물의 기운을 빼내거나 무효화시킬 거다.

나는 케이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케이시는 철수를 바라봤다.

케이시가 왜 마법을 쓰지 않는가 했더니 철수의 눈치를 보고 있던 거였다.

철수 없었으면 어쩔 뻔했대.

케이시의 시선을 받은 철수는 그녀를 향해 마법을 써도 된다고 허락했고, 케이시는 고개를 끄덕인 채 노반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혹시나 허튼 주문을 외우는 건 아닐까 해서 필릭스를 바라봤지만, 필릭스의 눈에는 이상이 없었던 건지 괜찮다고 말해 줬다.

케이시의 주문이 끝나고 노반의 상태는 크게 바뀐 건 없지만, 숨을 조금 편하게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얘 못 일어나면, 당신도 못 일어나게 만들 거야.”

“살인은 안 돼!”

필릭스의 옆에서 살인은 절대 안 된다는 철수의 외침이 들렸지만, 나는 무시하고 내 할 말을 이었다.

“하루하루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만들어 줄 거야.”

나는 케이시를 향해 눈을 부라렸고, 케이시는 큰 저항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자신이 받아야 하는 벌을 받는다는 듯, 내 말에 수긍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한껏 수그러든 태도로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케이시를 마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상관하지 않으려 했어. 나는 힘도 없고, 라이언 황제를 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낮으니까. 그리고 소란스러워지기도 싫었어.”

“….”

“하지만 이 일에 내 어머니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고, 내 가족인 이 아이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그래서 상관하기로 했어.”

나는 노반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에 케이시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렇구나….”

케이시의 한동안 왕래가 적어 자주 보지 못했던 손자를 보는 듯 ‘다 컸네’ 싶은 눈빛을 지었다.

나는 그런 눈빛을 무시한 채 말했다.

“라이언 황제는 알고 있는 거야. 내가 뭘 하려는지. 그러니 노반에게 수면 향을 맡게 한 거겠지.”

“그래, 세네카의 황제는 네가 데리고 있는 여우가 그 드로이프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 여우에게 수면 향이 바로 들지 않았다는 것에서 눈치를 챘겠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케이시는 팔짱을 낀 채 말했고,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케이시를 향해 말했다.

“그래, 당신의 말대로 이쪽은 패가 다 드러난 상태야.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황제의 계획을 무너뜨려야 해.”

“….”

“그러니 당신이 알고 있는 걸 말해 줘.”

정보를 달라는 내 말에, 나와 노반을 번갈아 본 케이시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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