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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75화 (175/227)

175 페모스토프 공작가를 향해 (7)

“네가 찾는 곳은 나도 몰라.”

케이시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런 케이시를 바라보며 진실인지 아닌지 살피려 했지만 그래 봤자 케이시의 속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정말이란다. 결국 난 세네카의 황제에게 깊은 신뢰는 받지 못했다는 거지.”

“꼴좋다.”

“그래, 좋은 꼴은 아니지.”

케이시는 얕게 웃음을 지은 뒤, 내게 종이와 펜을 가져와 달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려 이미 두 번 이상 찢었던 책을 다시 한번 찢어 펜과 함께 케이시에게 전했다.

“내 힘이 담긴 주문이란다. 시동어만 외치면 바로 사용할 수 있으니 너도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한 케이시는 마법 주문을 빽빽하게 쓴 종이 위로 자신의 마력을 가득 넣었다.

케이시의 손이 닿은 종이는 한순간 푸른 달빛을 담은 듯 파란빛을 뿜었다가, 순식간에 평범한 종이로 되돌아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구나.”

케이시는 종이를 내게 건네며 씁쓸하게 말했고, 나는 건네받은 종이를 확인했다.

그녀가 준 종이에는 사용할 때마다 대량의 마나가 들어가는 고위 마법이 적혀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마법이라 사용하기 어려운 건 물론, 마나를 무한히 사용할 수 없는 나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주문이었다.

이런 거 없어도 충분히 강한 필릭스도 탐낼 정도니 그 가치는 말하지 않아도 최상급이다.

“당신, 마나는 괜찮은 거야?”

케이시가 건네준 종이는 일회용으로 사용되는 마법 스크롤과는 다르게, 유용한 마법을 전부 모아 짜깁기한 뒤, 그걸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크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니 이 안에 들어간 마나 양만 해도… 아마 내가 먹을 수 있는 마나의 50배는 족히 넘을 것이다.

마법사는 자신의 허용치 이상의 마나를 쓰면, 한동안 마나가 생성되지 않아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 스크롤 정도면 미래의 마나도 끌어 쓴 것 같은데 한동안은 무슨, 적어도 반년은 마법을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될 거다.

“내 반성이자 사과의 뜻이지.”

“반성은 조용히 혼자 하는 거고, 사과는 내가 아니라….”

케이시를 믿었던 레이트라와 황제의 끔찍한 계획 때문에 끌려간 드로이프에게 해야 한다.

나는 뒷말을 삼키며 케이시를 바라봤다. 그에 케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겠지.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사죄니 받아 주렴.”

처음부터 안 받을 생각은 없었다. 부르는 게 값인 ‘반영구적’ 스크롤이 내 손에 들어온다는데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케이시 경, 미르는 남은 마나가 없으니 저 귀한 건 줘도 못 씁니다. 그러니 저건 내….”

“마나가 없다고?”

케이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왠지 기뻐 보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겁쟁이 4황자는 어느 순간부터 마법을 쓰지 않았다. 케이시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법을 쓰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나를 생성하지 못하는 4황자의 몸을 알고 있기에 더욱 안타깝게 생각해 왔었다.

그런 와중, 내게 마나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놀랐던 것이다.

마법을 쓰지 않던 애가 썼다는 소리니까.

“필릭스의 말 그대로야. 지금 나는 마나가 없어서 마법을 쓰지 못해.”

“그럼 내가….”

“그렇다고 너한테 주진 않을 거야.”

나는 스크롤에 눈독을 들이는 필릭스에게 단호히 말한 뒤 아공간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케이시는 자신이 준 아공간 주머니를 잘 쓰고 있다는 게 뿌듯했는지, 내 손에 들린 주머니를 보고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주머니 안에서 필릭스와 나를 공포스럽게 했던 유리병을 꺼냈다. 그리고 필릭스를 향해 유리병을 내보였고, 예상과 마찬가지로 필릭스는 질겁을 했다.

“지금…? 내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

“당장 내일 출발할 건데 언제 기다려.”

필릭스는 꺼려 하는 눈빛으로 죽은 마나를 바라봤다. 별로 먹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긴, 특이 취향이 아닌 이상 누가 아픈 걸 좋아하겠어.

나는 손에 든 죽은 마나를 내려놓고 필릭스에게 말했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강요하는 거 아니야. 나 혼자 조금조금씩 마시면 돼.”

그런 내 말을 들은 필릭스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영문을 모르는 철수와 케이시는 필릭스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상황을 알고 있는 젠은 평소와 다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반대했다.

“그만두세요.”

“…마법을 써야 하긴 하잖아.”

수면 향에 빠져 있는 드로이프를 발견하면, 케이시가 노반에게 썼던 마법을 시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나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혹시 모르는 상황을 위해 마법을 쓸 수 있는 몸을 만들어 두면 편할 거다. 한번 아프고 오래 편한 게 낫지.

나는 불만스러운 젠에게 왜 마나가 필요한지 설명했다. 하지만 젠은 이해를 하면서도 받아 주지 않았다.

“에반스터 경을 데려가면 되지 않습니까.”

“쟤는 같이 못 갈 거야. 마탑이 터졌으니 수습해야 하는 마법사로 들어가겠지.”

필릭스가 말하길, 케이시를 제외하고 비밀 장소에서 자신의 얼굴을 본 마법사들은 전부 죽었다고 했다. 그러니 황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누가 마탑에 불을 질렀는지 모를 거다. 그리고 양심과 생각이 있다면, 마탑에서 무엇을 연구하고 있었는지도 함구하겠지.

설사 필릭스가 들어갔던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지금은 마법사 한 명 한 명이 부족한데 능력 있는 필릭스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가기 싫어. 지칠 것 같아.”

“그건 내가 할 말이거든? 나도 같이 안 갈 거야!”

필릭스는 잔뜩 삐져서는 자신은 내가 생각하는 거에 배는 바쁜 사람이라 같이 못 가 준다며 말했다. 그러고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내 손에 들린 죽은 마나를 빼앗았다. 그리고 뚜껑의 병을 따선 내 입에 물려 줬다.

“준비됐으면 마셔!”

필릭스는 내게 마시라고 말한 뒤, 고통을 나누는 마법을 쓰려 했다. 그에 화들짝 놀란 젠이 내 입으로 손을 뻗어 죽은 마나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젠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서 전부 마셔 버렸다.

처음 마셨을 때와 같은 찌릿함이 조금씩 느껴졌다. 그리고 점차 목구멍이 타오르려 할 때, 내 목을 쥐어 잡은 필릭스의 마법이 시전됐다.

그때와 똑같이 검은 빛이 내 목을 감싸고 하얀빛이 떨어져 나와 필릭스에게 들어갔다.

“엥…?”

내 고통의 반을 떼어 간 필릭스는 뭔가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 또한 의문이 들어 필릭스를 바라봤다.

“이상하네….”

“너도 안 아프지?”

“응….”

이전에는 필릭스가 고통을 떼어 가도 아픈 건 여전했지만, 지금은 그냥 찌릿찌릿할 뿐이었다.

비유하자면 목구멍에서 팝핑 캔디가 튀는 정도? 엄청 아프지는 않지만, 안 아프지도 않은 딱 그 정도다.

이게 뭔 일이래.

나는 고통을 공유하는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내 목을 잡고 있는 필릭스에게 놓지 말라고 눈치를 준 다음, 젠을 돌아봤다.

“젠, 나 안 아파. 진짜 안 아파.”

젠은 이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프지 않다는 내 말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언짢아하는 젠의 손을 꽉 잡은 채, 철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철수 네가 한 거야?”

내 말을 들은 철수는 죽은 마나를 마시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내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보냈다.

‘이 몸과 처음 계약했을 때 기억나?’

당연하지. 그 다음 날 아파서 죽을 뻔했는걸. 내 인생 가장 후회하는 날로 손꼽힌다.

‘그때도 말했다시피, 그건 네 몸이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어. 이 몸을 받아들이기에 그때의 네 몸은 너무나도 허약했으니까.’

철수는 그때의 허약했던 내 몸을 상상하기도 싫은지 고개를 떨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때의 그 아픔을 겪은 이후로 내 몸은 전보다 튼튼해졌고, 허약했던 몸으로 죽은 마나를 마셨던 그때보다는 고통을 덜 느끼고 있다는 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이 몸의 기운이 들어갔기 때문에 고통을 덜 느끼는 거지.’

그렇구나, 그때 아프길 잘한 것 같다. 앞으로 필릭스가 없어도 혼자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젠 몰래 먹어야 하겠지만….

‘네 몸에 불량한 것이 들어가는 게 마음은 안 들지만… 필요하다니 이 몸이 참아야지.’

앞으로는 거리낌 없이 죽은 마나를 들이켤 수 있다는 내 말을 들은 철수는, 내 몸 안에 들어온 죽은 마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이해하니 괜찮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톡톡 쏘는 느낌이 잦아들고 고통이 사라졌다.

나는 젠을 잡지 않은 손으로 다른 죽은 마나를 뜯어 한 병 더 마셨다.

희한하게 고통에 익숙해진 건지 뭔지, 이제는 아픔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필릭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의문을 표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마시라며 죽은 마나를 꺼내라 했다.

“안 돼. 들어갈 용량이 없어. 두 개가 한계야.”

내 말에 필릭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고, 젠의 날이 선 눈빛을 받았다.

“흠…! 나는 그냥….”

“그냥 조용히 해.”

젠의 눈빛에 반사적으로 몸을 부르르 떤 필릭스는 멋쩍은듯 젠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어느새 가까이 온 케이시에 의해 입이 다물렸다.

케이시는 내가 처음 삼켰던 유리병을 살핀 뒤 내 속을 꿰뚫어 봤다. 그리고 점점 마나가 차는 내 몸이 신기한 듯 ‘호오…’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고통은 전부 사라졌고, 필릭스는 내 목에서 손을 뗐다.

“진짜 신기하네. 그때는 아파서 죽을 것 같았는데.”

“몸이 적응하나 봐. 처음보단 두 번째가 덜 아팠잖아.”

내 말을 들은 필릭스는 그럴듯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필릭스가 더 깊게 생각하게 되면 철수의 정체를 유추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나는 필릭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케이시가 줬던 스크롤을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냈다. 이왕 꺼낸 거 시범적으로 그 안에 적힌 것들 중 가장 기본적인 마법을 써 보려 했지만, 전부 강력한 마법이라 사용하기 꺼려졌다.

나는 마법을 쓰는 걸 포기하고 스크롤을 접어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 넣은 뒤, 케이시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아무튼 잘 쓸게.”

케이시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철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한나한테 가도 돼. 오늘 정말 고마웠어.”

이제 자신한테 볼일이 끝났다는 말에, 철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급한 일이 있으면 다시 부르라고 했다.

안 간다는 소리는 안 하네.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 철수에 조금 서운해졌다. 그리고 멍하니 철수가 떠난 자리를 바라본 필릭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필릭스, 넌 정신 제대로 차리고. 위험한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찾아올 마법사도 이제 없을 테니까.”

그리 말한 필릭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넉넉하고 여유로웠다면 작은 위로라도 해 줬겠지만, 필릭스가 그런 걸 원할 것 같진 않고, 나도 하기는 싫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 이제 가봐.”

“나 이제 가라고?”

“응, 케이시 경이랑 같이 나가.”

이미 얻을 건 다 얻었고, 내일 일찍 떠나야 하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필릭스는 케이시를 바라보며 ‘그냥 보내도 돼?’ 라고 물었지만, 드로이프의 수면을 깨우는 방법을 알았다는 걸로 케이시는 역할을 충분히 한 거다.

나도 이렇게 보내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도움이 됐다는 건 확실하니 약속대로 보내주기로 했다.

드로이프가 있는 장소는 페모스토프를 조져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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