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페모스토프 공작가를 향해 (9)
나는 일어나지 않는 노반을 꽉 끌어안고 젠이 무사하길 기도했다.
기도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신을 믿지 않을뿐더러,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신, 시바신, 제우스 등등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쩌리가 된 천신 아딘한테 기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악신 마벨은 꺼림칙해서 싫다.
차라리 악마인 그놈을 부르고 말지.
쾅!
마차 아래의 지대가 크게 울렸다. 격렬한 전투의 소리가 점점 커질 때마다 젠이라면 다 쓸어버릴 수 있다고 믿었지만 ‘혹시’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황자님, 안 됩니다.”
자꾸 문 쪽으로 눈이 돌아가는 내게, 마린은 안된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마린의 시선을 피하며, 안고 있던 노반을 그녀에게 건네줬다.
언제든지 튀어 나갈 수 있게.
마린은 그런 내 속셈을 알아차렸는지 어두운 눈빛으로 노반을 받아들었다.
“무거워서 그래….”
“….”
“진짜야. 평소 나한테 안기던 노반보다 무겁잖아.”
나는 가장 그럴듯한 변명을 말했고, 마린은 그런 내 변명이 탐탁지 않다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다시 한번 마린의 시선을 피하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바깥은 아까와 똑같이 소란스러웠고, 상대편에 마법사가 있는지 무언가가 펑펑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마법사는 나도 상대할 수 있는데…!
나는 또 한 번의 큰 소리가 들리면 바로 마차 밖으로 나가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 큰 폭발이 일어나며 마차가 마구 흔들렸다.
나는 바로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딱 내 손을 잡아챈 마린에 의해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마린은 나를 바라보며 원망스러운 얼굴을 보였고, 나는 그런 마린의 시선을 피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린이 폭발로 인해 주의를 빼앗겨 나를 바라보지 않을 때가 기회다.
나는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독수리처럼 얕게 심호흡을 한 뒤,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림이 무색하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까까지는 펑펑 터지다가 왜 지금은 안 터지는 건지, 혹시 상황이 종료된 건가 싶어 잠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바깥 상황을 살피고 싶었지만, 아직 경계 태세인 마린이 나를 저지했다.
“걱정 마.”
“안 됩니다.”
“알았어….”
나는 잔뜩 위축된 척 몸을 수그렸고, 마린은 그런 나를 보며 잠깐 표정을 풀었지만 다시 한번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눈을 감고 바깥의 분위기를 살폈고, 이제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쯤, 피융― 소리가 나며 다시 한번 폭발이 일어났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몸을 일으켜 마차의 문을 향해 몸을 날렸고, 방심하다 뒤늦게 나를 막으려는 마린의 손을 피해 일단은 마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황자님…!”
등 뒤에서 마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마차의 문을 굳게 닫았다.
“나오지 마! 내 몸은 내가 챙겨도, 마린까지는 못 챙겨!”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마린에게서 멀리 떨어지려 발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게 무슨….”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경악했다.
알란드로 가기 위해 거치는 마지막 숲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마차의 주변은 물론 이 일대의 땅이 깊게 파여 있어 걷기는커녕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고, 그 위에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마법사로 추정되는 로브를 입은 시체가 끔찍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은 숲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지만, 그것마저 온전치 못했다. 나무들은 반으로 쪼개지다 못해 남아 있는 몸체가 불에 타고 있었고, 폭발이 일어날 때 날아갔는지, 그곳에도 시체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참혹한 광경을 눈에 담으며 젠의 모습을 찾으려 했지만, 이런 난잡한 곳에서 찾을수 있을 리가 만무했고 나를 부르는 보리언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르 님!”
보리언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몇몇 기사들이 기괴하게 뒤틀린 몸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엑사나마티오>!”
나는 그들을 향해 숨이 막힐 정도로 무서운 공포를 주입해 기절을 시키는 마법을 시전했고, 마법을 정통으로 맞은 그들은 즉시 땅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몸이 뒤틀리면서까지 내게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보았던 좀비와 다를 게 없었다.
“이제 무슨…!”
“얼른 마차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저것들이 쓰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일어납니다!”
보리언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좀비’를 상대하며 내게 소리쳤다.
나는 내가 쓰러트린 ‘좀비’들을 멀리서 바라봤다. 보리언의 말대로 곧 깨어나려는지 뒤틀린 몸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뒤틀리고 상처를 입었으면 일어나지 못할 법도 한데, ‘좀비’들은 꾸역꾸역 일어나 다시 나를 노리려 했다.
“완벽하게 숨을 끊어 낼 방법….”
나는 저 ‘좀비’들을 어떻게 해야 잠잠하게 할 수 있는지 주변을 돌아봤다.
그리고 땅 위에 흩어진 시체들을 바라보니, 머리와 몸이 완벽하게 분리된 시체들뿐이었다.
이거 설마 진짜 좀비를 처치하는 것처럼 대가리를 노려야 한다, 뭐 그런 거야…?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나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의 계약자로서 인간의 생명을 빼앗으면 안 되고, 이것들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인간의 탈을 쓴 생명 비슷한 종 같으니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좀비’들을 피해 보리언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고, 평소 표정 변화가 잘 없던 보리언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나를 보며 경악한 표정을 짓다가 그것들의 대가리를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나는 보리언의 깔끔한 검술에 감탄사를 내뱉었고, 보리언은 그런 나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제게서 떨어지십시오! 이곳은 위험하니 어서 마차 안으로…!”
보리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깔끔하게 날렸던 좀비의 대가리가 꿈틀꿈틀 움직여 잘렸던 몸으로 기어가 딱 붙었다.
내가 뭘 본 거지….?
나는 방금 마주한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할 말을 잃었고, 보리언은 아직 완벽하게 붙지 않은 좀비의 발로 차 머리를 최대한 멀리 보냈다.
그리고 달려들 준비를 하는 ‘좀비’를 피해 내 손을 잡고 마차 쪽으로 달리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저것들의 숨을 끊어놓기 위해서는 이프리트 경의 오러로 잘라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보리언은 젠의 오러만이 저것들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젠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면서 저쪽으로 가셨습니다.”
보리언은 숲의 오른쪽을 가리키며 젠이 마차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유인했다고 했다.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힘에 부쳐 보이는 보리언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잠깐 내 엄호를 부탁해. 나한테 생각이 있어.”
그에 보리언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한번 달려드는 좀비를 향해 마법을 써 잠시 시간을 번 뒤 마음속으로 간절히 철수를 불렀다.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철수야. 철수….’
철수의 이름을 일곱 번째 불렀을 때, 내 바로 앞에 불길이 화악 올라와 철수가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또… 이게 뭐야?”
철수는 왜 또 불렀냐는 듯 내게 잔소리를 하려 했지만, 주변을 확인했는지 깜짝 놀라 하며 경악스러워했다.
나는 그런 철수의 시선을 마주하며, 손가락으로 좀비들을 가리킨 채 마음속으로 물었다.
‘저거 죽여도 돼? 대가리가 뜯어졌는데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나.’
그런 내 말에 철수는 좀비들을 바라봤고, 그것들을 잠시 살피다 무서운 얼굴을 했다.
“이 더러운…!”
철수는 좀비를 향해 활활 타오르는 붉은 불덩이를 던졌고, 좀비는 그 불덩이 속에서 몸부림을 치다 검게 재가 된 뒤에야 움직임을 멈췄다.
“죽여도 되는 거였어?”
“저건 생명도 뭣도 아니야. 음습하고 더러운 것들이 모여 움직이는 덩어리일 뿐이지.”
철수는 크게 분노하며 우리의 주변에 있는 모든 좀비를 정령의 불꽃으로 재가 되게 했다.
철수 덕에 한숨 놓게 된 보리언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고, 나는 철수를 향해 젠을 찾으러 가자고 말했다.
“걔…는 혼자 잘하고 있을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얼른 가자. 저쪽으로 갔대.”
나는 젠을 찾으러 자리를 뜨기 전, 많이 지쳐 보이는 보리언에게 마차에 있는 마린과 노반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리언이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나는 철수와 함께 젠의 흔적을 따라 달렸다.
젠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조약돌처럼, 좀비의 시체들이 젠이 지나간 방향으로 늘어져 있었으니까.
“흉측하고 끔찍해…!”
“나도 알고 있어.”
젠을 찾기 위해 시체를 따라가던 도중, 우리가 뛰어온 길을 되돌아본 철수는 끔찍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인간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어떻게 이런 짓을…”
“인간이니까 그래. 생각하는 게 전부 다 다르니까, 이런 사이코 같은 놈들도 있는 거야.”
나는 철수에게 내가 살던 세계에서 어떤 사이코가 있었는지 알려 줬다.
철수는 그것을 듣고 방금 전보다 더욱 표정이 찌푸렸고, 그 와중에 나는 내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못 달리겠어…!”
“조금만 더 가면 돼. 근처에서 그 아이의 기운이 느껴져.”
철수는 조금만 힘내라고 다독여 줬고,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것도 내 체력에 비해 오래 달린 거다. 철수와의 계약 덕분에 몸이 튼튼해져서 그런가, 평소보다 더 오래 달린 것 같다.
철수의 응원과 함께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달렸다.
점점 시체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질 때쯤,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는지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 무덤 근처에 두 갈래로 쩍 갈라져 있는 젠의 검집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이거…!”
“그 아이 거 같네.”
나는 두 동강 난 젠의 검집을 주워 품에 안은 채, 가쁜 숨을 내쉬며 앞을 향해 달렸다.
곧이어 멀리서 무시무시한 젠의 오러가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야 젠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는데, 젠은 어깨에 기절한 남성을 지고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며 좀비 떼를 베어 나가고 있었다.
“철수…!”
나는 철수를 향해, 젠이 상대하고 있는 좀비를 태워 달라고 말했고, 철수는 멀리서 불꽃을 던져 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좀비를 불태웠다.
뜬금없이 날아온 불꽃이 좀비들을 깡그리 태우는 것을 본 젠은, 고개를 돌려 내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젠은 잠시 불에 타고 있는 좀비를 경계하다가 그들이 모두 재가 되어 사라지자, 어깨에 지고 있던 남성을 바닥으로 내려놓고 내게 달려왔다.
저 사람 떨어지면서 팔 꺾인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