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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81화 (181/227)

181 페모스토프 공작가를 향해 (13)

어떻게 깨워야 잘 깨웠다고 소문이 나면서 공작의 기분이 더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잠시 공작의 감은 눈을 바라보다 손으로 구체를 그리며 주문을 외웠다.

“<아쿠아 토르멘툼>.”

나는 사람 얼굴만 한 물방울을 만들어 내 공작의 얼굴을 향해 대포처럼 슝 하고 쐈다.

이제 마나도 넘쳐나고, 부족하면 마음대로 먹을 수도 있으니 이 정도는 써도 되겠지.

물대포를 맞은 공작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물대포가 생각보다 강하게 나가서 아프긴 했나 보다.

“으아악!”

“한 번에 깨다니 운이 좋네, 공작. 열댓 번은 써 줄 의향이 있었는데.”

“이게… 이게 무슨…!”

공작은 물을 뒤집어쓴 약한 짐승처럼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 냈다.

덕분에 공작의 가까이에 있던 젠의 옷깃에 물이 튀었다.

공작은 화가 났는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노려봤다. 본격적인 정보를 알아내기 전에 공작의 기세를 조금 꺾어야 할 것 같았다.

제발 케이시같이 입을 꾹 다무는 강단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공작, 왜 일어났으면서 눈을 뜨지 않았지? 사병들에게 도움을 청해 빠져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 혹시 겁을 먹은 건가?”

“무슨 그런…! 나는 방금 일어난 것이다!”

공작은 내가 던진 물대포로 인해 깼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구는 걸 보면 아직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그럴 리가, 여기 있는 이프리트 경이 공작의 숨소리가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공작을 향해 비웃음을 보냈다.

공작의 귀는 새빨개졌고, 방금 전보다 더욱 악에 받쳐 크게 소리쳤다.

“아니라고 말했지 않나!”

그나저나 너 원래 좀 고상한 이미지 아니었어? 성격이 휙휙 바뀌어서 적응이 안 되네.

“숨소리가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저자가 잘못 알아본 것이지!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나는 방금 깨어난 거다!”

“아닐 텐데.”

“어리석구나, 4황자여! 네가 나를 이렇게 대하면 황제 폐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이다!”

공작은 자신은 절대 쫄지 않았으며, 내가 굉장히 무례하게 굴고 있다며 황제를 들먹이면서 협박을 했다.

안 미안한데, 정말 안 무섭다.

나는 공작이 왜 이런 하찮은 것에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자존심은 뭉개질 대로 뭉개지지 않았나?

이런 게 욕심쟁이 귀족들의 종특인가?

“황제?”

“그래! 너는 폐하와 피로만 이어져 있을 뿐, 폐하께 아무 쓸모도 없지 않나. 지금껏 그 피로 목숨을 연명했으나 이제는 소용이 없을 것이다.”

공작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들며 나와 젠에게 하찮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나는 쓸모가 많으니, 폐하께선 나를 선택하실 게 분명하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널 선택할 것 같아.

하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황제가 나를 고르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나쁠 것 같다.

분명 공작도 공작 나름의 목적이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황제한테 굉장한 충성심을 가진 것 같던데. 그런 공작을 내버려 두고 자신과 적대하는 4황자를 선택한다면 소름이 끼칠 것이다.

얼마나 혈육에 미쳐 있는 거야? 심지어 ‘남자’ 혈육 한정이다. 여자 혈육은 다 버렸던 인성 쓰레기가 앞으로 뭔 짓을 더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황제는 존재 자체가 소름 끼치는 인간이다.

“내가 황제를 무서워할 것 같아? 왜?”

내가 황제에게 숙이고 들어간 이유는, 내 몸이 세네카에 있었기에 가능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평안하게 지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내 사람들과 우리 노반의 행복과 안위가 걸려 있다면 그딴 평안 없어도 된다.

나는 차가운 눈으로 공작을 바라봤고, 공작은 가소롭다는 듯 입을 나불거렸다.

“그야 당연히 황제 폐하가 가지고 계시는 권력 때문이지. 4황자,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폐하의 군대가 너를 덮친다면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쓰러질 게 분명한 것을!”

“공작이 말하는 군대가 아까 그 해괴한 군대를 말하는 것인가?”

내 말에 공작은 고개를 더 높이 쳐드는 것으로 답했다.

나는 그런 공작에게 코웃음을 친 뒤 말했다.

“공작, 공작은 눈이 없나?”

“눈이 없다니, 지금도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지 않나.”

공작은 내가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당당하게 대꾸했다.

“공작, 공작은 지금 마탑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는 있나?”

“그래, 들었지. 꺼지지 않는 불에 무고한 마법사들이 운명을 달리했다더군. 하지만 결국 제압됐다지.”

“그거 누가 했을 것 같아?”

나는 입꼬리만 살짝 올린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공작을 바라봤다. 그에 공작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설마 그 불을 4황자 그대가 만들었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건가? 허,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어이가 없군. 그 불은 마탑의 마법사들이 제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가 난 사고였다.”

그렇게 포장을 했구나.

그래, 잘했네. 누군지 알지 못하는 적에게 당했다는 것보다는, 자기네 마법사들이 연구를 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편이 덜 창피하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공작도 순수하네.”

나는 푸하하 웃으며, 기세가 등등한 공작을 도발했다.

네가 아직 덜 맞았지.

“그래, 공작이 편한 대로 생각해. 무얼 생각하든 정답은 아니겠지만.”

“그런 하찮은 도발은 통하지 않아, 4황자. 아직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공작은 이상한 곳에서 기운을 얻었는지, 내게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얜 진짜 뭘 믿고 저러는 거지?

애초에 이렇게 띨빵하고 무식한 놈이 라이언 황제 옆에 서 있다는 게 웃기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렇게 단순 무식한데 어떻게 그 자리에서 멀쩡히 서 있는 거지?

비선 실세가 따로 있는 건가?

“그대는… 내가 알고 있는 공작이 아닌 것 같군.”

“무슨 뜻이지?”

“너무 멍청해. 공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무식해.”

“….”

공작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침묵에는 많은 분노의 감정이 들어 있었는데, 참고 있는 것인지 입술 안쪽을 꾹 씹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다 입 안 다 뜯어지겠다.

“그대는 그 위치에 있을 그릇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메이븐 형님이 더 잘 어울리겠는데, 그만 넘겨주지그래? 제국을 위해서.”

“허,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주제에.”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봐도 당신은 많이 부족해. 어째서 황제가 그대를 곁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군. 아, 그대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재물이 많은가 보군? 그러니 황제가 그대를 곁에 두고 재물을 받아먹는 거겠지.”

“내 전투 군사들이 실패하지만 않았어도 폐하께서 모욕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공작은 치욕스러운 듯 ‘크윽… ‘ 소리를 내며 원통해했다.

정말 멍청하구나…, 말도 못 알아듣고. 황제가 이놈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대충 이해가 간다.

그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단순하게 명령만 내렸을 거다. 저 단순 무식한 놈도 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이야.

“나는 황제가 아니라 그대를 모욕한 거야. 그대처럼 멍청한 자가 페모스토프의 가문과 재산이 없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아마 그대가 꼬라박은 불쌍하고 안타까운 전투 군사들 중 하나가 됐을지도 모르지.”

“….”

“황제도 참 대단해. 그대 같은 바보를 곁에 둘 생각을 하다니….”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는 공작의 이마에 핏대가 불거졌다. 나는 한숨을 쉬고, 혀를 차고, 고개를 젓고, 할 수 있는 모든 재수 없는 행동을 동원해 공작의 화를 돋우었다.

“지금 그대가 하는 게 무엇이지? 그저 우리에게 잡혀 무력하게 묶여 있는 게 전부 아닌가? 내가 그대였다면 나와 내 일행을 그 본거지로 유인해 전부 몰살을 시켰을 거야.”

“내가 그런 저열한 도발에 넘어갈 것 같나? 본거지가 어디인지 말해 줄 리가 없잖아.”

공작은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며 코웃음을 쳤다.

나는 그런 공작을 무시한 채, 뒷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더 많은 군사를 데려왔겠지. 고작 100명 정도로 우리를 잡겠다는 공작의 ‘멍청함’이 패배의 원인이었어.”

“….”

“물론 소용은 없겠지만, 고작 100명을 데려오는 것보단 가능성이 더 컸겠지”

나는 공작이 데려온 100명의 전투 군사들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 설명해 줬다. 젠의 오러에 썰린 군사들만 80명은 될 거고, 나머지는 내 마법으로 해치웠다고.

철수의 존재는 비밀이니, 그건 내 마법이라 둘러대며 철수의 존재를 숨겼다.

“정말 이상하군. 정말 멍청해. 내가 알고 있는 페모스토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실 그대는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모르고 있던 건가? 내가 큰 기대를 했던 것일까?”

“너…!”

다행히 비선 실세가 있는 건 아니구나.

공작은 내 끝없는 도발에 단단히 화가 났는지, 묶여 있는 것도 잊은 채 내게 달려들려 했다.

저렇게 빡쳐하는 걸 보면 평소 멍청한 게 콤플렉스일 가능성이 크다. 아픈 부분을 건드리면 화가 나는 법이지.

비선 실세가 아니라 재물과 빽으로 올라온 자리겠구나. 이제야 이해가 가네. 그러니 재산을 불리고 싶었던 거겠지.

“재산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황제가 봐 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릴!”

“아,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말로 해 버렸네.”

공작에게 다가가 악마처럼 작게 속삭였다.

“아닌 것 같아?”

“당연히 아니지!”

“공작 그대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 않았어? 아니라면 심각한데.”

나는 절대 아니라는 공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대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할 수 있겠네?”

“할 수 있다니 무엇을 말하는 거지?”

“증명하는 거지. 그대가 그저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을.”

공작은 불안함을 느꼈는지, 눈을 부릅떴음에도 동공을 덜덜 떨었다. 그러고는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물었다.

“영혼의 맹세?”

“멍청한 그대에게 쓰기는 아깝지만, 그대의 결백을 위해 내 특별히 마법을 쓰도록 하지.”

우리 진실 게임을 해보자. 지금부터 거짓말하면 너는 죽는 거야, 알았지?

나는 공작을 향해 무시무시한 미소를 날렸고, 공작은 눈과 입술을 덜덜 떨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4황자, 네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이건 공작 그대가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아무런 피해가 없어. 그대만 떳떳하다면 괜찮겠지. 왜, 자신이 없나?”

나는 ‘그럼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공작을 바라봤다.

공작은 잠시 ‘으윽…!’ 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정말 총체적 난국이네….

멍청하고 단순 무식한데, 휩쓸리기도 잘한다.

용케 사기도 안 당하고 잘 살아 있네, 주변 사람들이 잘 잡아 주는 타입인가?

“좋아, 증명해 보자고.”

나는 공작에게 손을 내밀어 영혼의 주문을 외쳤다.

“<후멘토 비다>.”

공작은 내가 내민 손을 잡고, 멀뚱멀뚱 바라봤다.

마법을 잘 모르는구나. 그래, 마법사도 아닌데 그럴 수 있지.

“따라 해. 중간에 끊기면 공작의 목숨도 끊기니 멈추지 말고 따라 하는 게 좋을 거야.”

공작은 눈을 크게 뜨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곧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공작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공작이 잘 따라 할 수 있게 천천히 말했다.

“나 카이브 페모스토프는 도브로미르 세네카 4황자의 질문에 무조건 진실만을 대답할 것이며.”

“…나 카이브 페모스토프는 도브로미르 세네카 4황자의 질문에 무조건 진실만을 대답할 것이며.”

“4황자의 대답을 회피하거나 거짓을 고하는 즉시.”

“… 4황자의 대답을 회피하거나 거짓을 고하는 즉시.”

공작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의 목숨 걱정에 내 말을 잠잠히 따라 했다.

나는 그런 공작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나체의 상태로 라이언 세네카 황제의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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