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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82화 (182/227)

182 페모스토프 공작가를 향해 (14)

“나체의 상태로 라이언 세네카 황제의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겠습니다.”

공작은 내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는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깜짝 놀란 듯 입을 떡 벌리고 어버버거렸다.

“이, 이게…!”

“공작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는 거라니까? 주문 중에 딴소리하게 하지 마. 얼른 따라 해. 시간을 오래 끌면 공작의 영혼이 닳아 죽을 수도 있어.”

나는 없는 말을 지어내며 공작을 재촉했고, 공작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나, 나체의 상태로… 라이언 세네카 황제의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겠습니다…”

공작은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는지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나는 그런 공작의 모습에 웃음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아 내곤 말을 이었다.

“라이언 황제가 가까이에 있지 않아 춤을 추는 게 불가할 시,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100번 사과할 것을 내 영혼에 맹세합니다.”

공작은 ‘이 새끼 미친 거 아니야…?’ 싶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차가운 눈으로 공작을 바라봤고, 공작은 내 손을 꽉 잡으며 내가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라이언 황제가 가까이에 있지 않아… 춤을 추는 게 불가할 시… 무릎을… 꿇은 채 땅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100번… 사과할 것을…. 내 영혼에… 맹세합니다….”

말하는 게 얼마나 싫었으면, 뱉는 단어마다 깊은 분노가 느껴졌다.

하지만 공작이 분노한들 개미 발톱만큼도 무섭지 않다. 멍청한 사람이라 그런가? 내가 당할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상대라 그런지 마음이 편하다.

애초에 내가 따라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

오스먼드처럼 조금이라도 이 마법에 대해 알고 있다면, 맹세의 틀만 그럴듯하게 만들어 최소한 자신에게 오는 피해를 피하고, 최대의 이득을 볼 수 있게만 하면 된다는 걸 알 텐데.

공작은 세네카의 사람인 주제에 프레오나 사람보다 마법에 대해 모른다니 그건 그거대로 또 웃기다.

상대가 멍청한 사람이어도 사기 계약을 하는 건 양심에 찔리지만, 못된 놈은 봐줄 필요가 없다.

“나, 도브로미르 세네카는 이 영혼의 맹세로 아무런 피해가 없음을 내 영혼에 맹세한다.”

나는 공작에게 그 무엇도 주기 싫다.

오스먼드와 맹세를 할 때는 내가 궁지에 몰렸던 상황이라 나도 무언가를 해 주겠다는 보답형 맹세를 했지만, 내가 꿀릴 게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공작만 맹세를 시켜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맹세가 끝나자, 작은 빛이 손목을 휘감으며 심장을 파고들었다.

오스먼드와 했을 때도 느꼈지만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아무튼 강매와도 같은 영혼의 계약을 마친 뒤, 나는 밝게 웃으며 공작에게 말했다.

“자, 혹시라도 이해하지 못했을 공작을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해 줄게.”

공작은 내 말에 기분이 나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공작은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모든 걸 사실로 대답해야 해. 회피할 수도 없어. 그랬다가는 심장이 조여서 죽게 될 거야. 궁금하면 시도해 봐.”

나는 싱긋 가볍게 웃으며 공작을 향해 말했고, 공작은 나를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흥, 한마디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만 말한다면 아무 문제 없다는 뜻 아닌가.”

“그렇지. 잘 이해했네.”

오늘 그 말만 3번을 넘게 했어. 이제 알아들을 때도 됐지.

나는 공작을 향해 수고했다는 뜻으로 미소를 지었고, 공작은 짜증 난다는 얼굴을 하며 속사포로 다다다 이야기했다.

“4황자, 그대가 원하는 대로 사실만을 대답해 주지. 나는 그대에게 겁을 먹지 않았고, 멍청하지도 않아. 폐하께선 내가 도움이 되니 나를 옆에 두시는 거다.”

공작은 자신은 멍청하지 않다며, 어릴 때부터 무슨무슨 법도를 다 깨우쳤고, 어떤어떤 학자한테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어렸을 때는 손에 꼽히는 영재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라이언 황제가 자신을 곁에 두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했는데, 자신은 그 어떤 귀족보다 통찰력이 있고, 라이언 황제에게 그 누구보다 힘이 되는 사람이니 꼭 필요한 존재라고 했다.

공작은 방금까지 나와 나눴던 이야기로 예상 질문을 만들어 대답한 것 같았다.

겁을 먹었다거나, 멍청하다거나, 라이언 황제가 너 같은 멍청이를 곁에 두는 이유 같은 것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그딴 것들이 아니다.

“난 질문을 하지 않았어, 공작. 공작에 대한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뭐…?”

“내가 궁금한 건, 네놈들의 본거지는 어디 있느냐야.”

내 질문을 들은 공작의 얼굴은 새하얘졌다.

그제야 제 자존심에 눈이 멀어 숨겨져 있던 덫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와서 찾으면 뭐 해. 덫을 이미 밟았는데.

“이래도 네가 안 멍청한 것 같아?”

나는 멍하니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공작을 업신여겼다.

“멍청한데 자존심은 높아서 앞을 못 내다보지. 공작은 공작의 생각보다 훨씬 멍청해.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지.”

“….”

“공작의 잘못은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있다는 거야.”

받고만 자란 애들이 그렇더라. 받기만 할 줄 알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니 정상적인 어른으로 자라 못한 애들.

물론 모든 애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더라.

그동안 받기만 한 만큼 멍청하고 무식해. 그리고 항상 문제없이 인생이 잘 풀리니, 자신의 일이 언제나 잘 풀릴 거라 생각한 거지. 참 단순해.

아무 장비 없이 높이 올라갔는데, 떨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다니… 웃기지.

“가리엘 황후랑 참 달라. 같은 가문에서 나고 자랐는데, 한 명은 훌륭한 황자를 둘이나 키워냈고 한 명은….”

가리엘 황후는 라이언 황제의 밑에서 자랄 수밖에 없는 황자 둘을 멀쩡한 놈들로 키워 냈다.

가리엘이 로이븐과 메이븐을 직접 교육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형제자매간의 비교’만큼 멘탈 부수기에 최적화된 것이 없지.

나는 공작을 향해 코웃음 지었다.

공작의 멘탈은 이제 무너질 대로 무너진 것 같았다. 너무 공격만 한 것 같아 적당히 할까 싶었지만, 이제 다시 볼 일도 없는 것 같은데 공작의 멘탈이 얼마큼 무너지는지 상관없을 것 같았다.

“자, 기다려 주는 것도 여기까지야. 대답을 해야지, 공작.”

“그…”

“슬슬 심장이 아프지 않아? 조여 올 텐데.”

공작은 내 말에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대충 침대 주변을 장식한 검을 찾는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검들은 전부 젠이 치웠다.

쓸만한 검집이 있나 해서 살핀 건데, 보석이 잔뜩 박혀 있을 뿐 쓸모가 없어서 내 아공간 주머니로 들어갔다,

왜 들어갔는지는 묻지 마라.

“자, 한 번만 다시 물어볼게. 로웨나 왕국에 있는 네놈들의 본거지가 정확히 어디야.”

나는 무서운 눈으로 공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존심이 높은 만큼 목숨도 소중할 텐데, 꽤 오래 버틴다.

버텨 봐야 금방 말하겠지만.

“그, 그건 어떻게…! 크윽…!”

“공작은 질문할 자격이 없어.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로웨나 왕국 어디지?”

“로, 로웨나 왕국…!”

나는 계속 로웨나 왕국이라는 애매한 대답을 하는 공작의 멱살을 잡으며 물었다.

로웨나 왕국인 거는 이미 알고 있어. 그러니까 정확히 어디! 마을 이름이라든가, 십육방위, 하다못해 동서남북이라도 알려줘야지.

나는 공작의 심장께를 가볍게 찌르며 더 정확하게 말하라 물었고, 공작은 자신의 심장을 잡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로웨나 왕성!”

공작의 말에 나는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이 지키고 있다는, 고결한 로웨나 왕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본거지가 왕성이라는 것이 더 말이 되지 않았다.

공작의 심장이 터져 죽지 않는 걸로 보아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건데….

이건 진짜 말이 안 된다.

나는 유리창 근처에 서서 밖을 경계했던 젠을 바라봤다.

젠도 공작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맹세를 걸지 않았다면 못 믿었겠네.”

어찌 됐건 로웨나 왕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로 판명이 난 이상, 그곳으로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나는 공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로웨나 왕성에는 어떻게 들어가지?”

“…그곳은 초대받은 인간만이 들어갈 수 있어. 보통 인간은 들어갈 수 없지.”

그러니까, 쟤네는 초대받은 사람이라 입장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안 된다는 거다.

망할 놈들 귀찮게 하고 있어.

“다른 방법은?”

“…로웨나 왕국의 사람과 함께라면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불가능한 일이지.”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왜 이 사람이 생각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감이 그 사람을 가리킨다면 가능성은 있다.

“규모는?”

“엄청 많아.”

“정확히.”

나는 전투 군사들의 규모를 정확히 해 달라고 물었고, 공작은 잠시 뜸을 들이다 어정쩡하게 말했다.

“백만… 조금 넘나… 아무튼 모으느라 좀 힘이 들…”

“이런 망할 놈들이! 뭐? 백만? 백만?”

나는 다시 한번 공작의 멱살을 잡으며 탈탈탈 흔들었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그 수는 어디서 구한 거야!

“백 만명은 어떻게 구한 거야?”

“노, 노예들을 모아서… 컥!”

“노예들이 백만 명이나 될 리가 없잖아!”

“남은 건 로웨나 왕국의 국민… 컥…! 아직… 만든 건, 다 만든 건 아니야!”

어느새 나는 공작의 옷깃을 강하게 잡으며 그의 목을 죄듯 멱살을 잡았고, 공작이 기절하기 직전, 멀찍이 구경하던 젠이 다가와 공작의 목을 조였던 내 손을 풀어 줬다.

“케켁…!”

나는 아직도 흥분을 삭이지 못했다. 공작을 바라보며 경고했다.

“기절하면 물대포 쏴 버린다. 그러니까 기절 안 하게 숨 관리 잘해라.”

“무슨 그런 억지를…!”

“시끄러워. 넌 묻는 말에나 대답해. 이 일에 로웨나 왕실 전체가 관계되어 있는 거야?”

내 질문에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싸가지 없게 고개만 끄덕거려. 대답.”

“맞, 맞다.”

“경어.”

“맞…습니다.”

그 이후에도 나는 공작을 향해 다양한 질문을 했고, 공작이 알고 있는 것 전부를 알아냈다.

잡아간 드로이프는 로웨나 왕궁의 지하에 있다든지, 그 지하로 들어가는 방법 등등 다양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황제의 약점은 공작이 아는 게 없어서 알아내지 못했지만, 드로이프와 관련된 일은 자세하게 알고 있어서 도움이 됐다.

사실 모르고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이놈이 실행자인데.

나는 잡고 있던 공작의 멱살을 풀고, 잔뜩 쫄아 있는 공작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공작, 내가 멍청한 공작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해 줄게.”

전보다 조금 순해진 내 기세에 공작은 귀를 기울였다.

“앞으로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냥 입도 뻥긋하지 마.”

“….”

“예언 하나 하는데, 공작의 말이 공작을 죽게 할 거야. 그리고 죽어도 곱게 못 죽을 거야.”

드로이프를 착취하고, 멀쩡한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험한 짓을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로웨나 왕국의 국민들까지….

이건 내가 귀찮다 해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때까지 잘 살아남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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