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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83화 (183/227)

183 다시 프레오나로 (1)

우리가 가야 할 경로에 문제가 생겼다.

원래는 알란드에서 바로 로웨나 왕국으로 들어가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데, 초대받지 않은 인간은 아예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변장을 하거나, 기믹을 이용해야 하나 싶어 내내 고민했다. 로웨나 왕국은 드래곤의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는데, 이 마법을 뚫는 건 대마법사가 와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젠도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공작과 함께 가는 것도 불가능한가?”

“…외지인은 초대장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가 함께 간다고 해도 황자님은 들어갈 수 없다는 거죠.”

로웨나 왕국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는 나는 공작을 바라보며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뜻으로 혀를 찼고, 공작은 잔뜩 쫄아서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로웨나 왕국의 사람과 함께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거야?”

로웨나 출신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건 문제없냐는 내 질문에, 공작은 잠시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자들과 함께 들어간다면 괜찮을 거라 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하지만… 로웨나 왕국의 사람들은 왕국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공작이 말하길, 몇몇을 제외한 모든 국민들을 전부 전쟁을 위한 병기로 만들고, 국민들의 생활을 왕실에서 꽉 잡고 있기에 왕국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럼 왕국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나는 호기심을 가진 채 공작에게 물었고, 공작은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며 이야기했다.

“그런 건 전부 제가….”

공작은 생필품이나 식품 같은 꼭 필요한 것들은 직접 조달했다고 했다. 그리고 또 굳이 조달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사람을 남겨 뒀기에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공작, 내가 그딴 놈들을 왜 걱정하겠어.”

“아.”

“멍청하긴….”

이 세계 권력자들은 무슨 사이코 같은 놈들만 모여 있는 거야? 이런 끔찍하고 해괴한 작전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지?

이제 로웨나 왕국의 사람들도 믿을 수가 없다. 드래곤이 지키고 있는 곳에 사는 고결한 사람들은 개뿔. 고결한 사람이 이딴 짓을 해?

잡히기만 해 봐. 다 죽었어.

“이제 공작이 내게 도움이 될 일은 없을 것 같네.”

웬만한 정보는 다 얻어 냈으니 버릴 차례다.

뭐, 언젠가는 쓸 일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생각하고.

일단 내 추론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다.

“공작, 혹시모르니까 초대장 공수 좀 해봐.”

“그건 폐하와 로웨나 왕국의 책임자만이 가능한 것이라 저는….”

“능력도 없네.”

나는 공작을 향해 혀를 찼고, 공작은 잔뜩 위축돼서는 노력은 해 보겠다고 말했다.

“난 결과를 원해. 할 수 있겠어?”

“….”

“대답.”

“그치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확답을 드릴 수가 없는걸요….”

평소 같으면 거짓말이라도 해서 상황을 넘겼겠지만, 공작은 내가 묻는 말에 거짓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솔직한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그래, 바라지도 않았어. 구해만 온다면 맹세를 풀어 줄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 됐네.”

나는 공작에게 작게 미소를 보이며 젠과 함께 공작의 집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공작을 반협박해서 그림을 받아 냈다. 전부 가져가기에는 나도 양심이란 게 있으니 복도에 걸려 있는 것들 중, 마음에 드는 작품들만 떼어 내 아공간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화려했던 공작의 복도에는 이제 단 두 점의 그림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 내친김에 금고도 털자.”

젠은 신이 난 내 미소를 보며 따라서 작게 웃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마음에 드세요?”

“당연하지. 저놈 재산은 전부 몰수해서 좋은 일에 쓸 거야.”

물론, 이 재물들은 공작과 황제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쓸 생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이 중 3할 정도는 내 배를 불리기 위함이다.

그냥 작은 수고비라고 생각하자고.

우리는 공작의 금고까지 털기 위해, 지하에 위치한 금고를 찾아냈다.

저택이 워낙 넓어서 찾기가 어려웠지만, 도중에 만난 보리언이 금고의 위치를 알려준 덕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지하 금고로 내려가는 길은 횃불이 꺼져 있어 어두컴컴했고, 젠은 내 손을 잡아 주며 횃불에 불을 붙였다.

“계단 조심하세요.”

“컁!”

“노반도 조심하구요.”

마린의 품에 안겨 있던 노반은 모험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는지 지하 금고를 내려가는 내내 신나 했다.

생각해 보면 이제 노반이 평범한 여우가 아닌 그 고대 생물인 ‘드로이프’라는 것을 다 알 텐데 굳이 여우로 둔갑해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노반, 인간 모습으로 있을래? 이젠 들켜도 상관없는데.”

“컁?”

“사람들이 다 알더라구. 노반은 여우치고 너무 특별해서 그런가 봐.”

내 말에 초롱초롱한 눈을 깜빡거린 노반이 마린의 품에서 벗어나 뿅! 하고 인간의 모습이 됐다.

“미르!”

“우리 노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어.”

나는 항상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 있던 빨간 망토를 꺼내 노반에게 둘러 줬다.

저택에서 벗어난 뒤로, 노반은 항상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인간의 모습은 보여 주지 않으려 했다.

노반도 우리와 대화를 나누지 못해 답답했었을 텐데, 괜히 이 어린애를 눈치 보게 만들었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

“이제 원하는 대로 있어도 돼. 프레오나에서도.”

“진짜?”

노반의 어깨가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노반은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내게 물었다.

“응, 노반이 편한 대로 있으면 돼. 누가 뭐라고 하면 젠이 혼내 줄 테니까.”

노반은 젠을 바라보며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고, 젠은 그런 노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젠의 도움은 필요 없어. 나도 충분히 혼내 줄 수 있으니까!”

“정말? 노반도 혼내 줄 수 있어?”

“당연하지! 나도 이제 어엿한 드로이프야!”

노반은 성인식이 완벽하게 끝났다며 전보다 엄청나게 강해졌다고 열심히 피력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어린아이의 허세와 같은 느낌이었고, 우리 중 그 누구도 노반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 주지 않았다.

“그랬구나, 우리 노반 성장했구나.”

“멋져요, 노반.”

“자랑스럽네요.”

앞뒤 재지 않고 그저 ‘오구오구 우리 노반, 우쭈쭈 그랬어요?’를 해주는 우리의 행동에 노반은 잠시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야! 나 전보다 엄청 강해졌어! 볼래?”

노반은 아직 어두운 계단 앞을 도도도 달려 나가 우리와 거리를 벌린 채, 돌로 쌓은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가 서 있는 땅이 잠시 흔들렸다. 잠시 후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

나와 젠, 마린, 그리고 보리언까지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놀라 잠시 멍해졌고, 곧이어 정신을 차린 마린이 노반에게 다가가 단호하게 혼을 냈다.

“노반, 힘 자랑을 하는 건 좋지만, 장소를 가려서 했어야죠. 이곳이 무너져내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어요?”

“아…!”

마린의 말에 노반은 지하를 둘러보며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어이구, 우리 노반 사과도 잘하네!”

“황자님, 잘못한 일에는 잘못했다고 단호하게 말씀해 주셔야죠.”

마린은 노반을 칭찬하는 나에게도 따끔하게 말했고, 나는 그런 마린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안 무너져서 다행이지.”

다행히 허용 범위 안으로 때려서인지 저택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나는 노반이 이 정도 위력을 낼 수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옛날에는 열심히 때려도 나무 겉면에 손자국이 조금 나 있는 정도였지만, 방금은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잠시나마 흔들렸었다.

성인식을 마쳤을 뿐인데, 이런 힘을 낼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그래도 아직 젠을 따라가기엔 먼 것 같지만, 꾸준한 훈련을 받다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젠을 훌쩍 넘어 버릴지도 모른다.

엄청 강한 노반도 괜찮지만, 우리 귀여운 노반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기분이라 조금 서운하다.

“노반… 너무 빨리 자라지 마.”

“안돼! 나는 얼른 자라야 해!”

“아니야. 안 그래도 돼.”

노반은 우리를 지켜줘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자신이 얼른 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뭔가 장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보호자 노릇을 열심히 했다면 저런 소년 가장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젠은 내 표정을 확인하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 손을 잡은 자신의 손에 힘을 주고서는 노반을 향해 말했다.

“그래요. 제가 미르 님이랑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질 수 있도록 노반이 도와주세요.”

“그건… 싫은데….”

노반은 젠의 말을 듣고 싫다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지하 감옥이 울릴 정도로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노반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일찍 커도 좋고, 늦게 커도 좋아.”

나는 노반을 안아 올린 뒤, 보물이 가득 쌓여 있을 지하 감옥으로 내려갔다.

* * *

“돌아갈 날을 미룬다는 편지까지 보냈는데…”

일주일 전쯤, 오스먼드에게 프레오나로 돌아가는 날이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편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과는 다르게, 지금 우리는 프레오나로 가는 마차를 타고 있다.

바로 프레오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오스먼드 얼굴을 어떻게 보냐….”

“안 보면 돼요. 저희는 바로 북쪽으로 들어가요.”

내 옆에 앉아 있는 젠은 내 손을 조심스레 잡으며 황궁에 들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돼…?”

“신경도 안 쓸 텐데 괜찮을 거예요.”

젠은 그래도 괜찮다며 오스먼드를 만나지 말자고 했다.

이거… 질투인가?

“질투하는 거야?”

“너무 티 났나요?”

“쪼금.”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짓는 젠을 마주 보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오스먼드 만날 시간 따윈 없어. 로이븐을 만나는 걸로도 바쁘잖아.”

파시테 궁을 떠나기 전, 내가 남기고 간 편지를 확인한 로이븐이 대화를 하자며 알란드로 편지를 보냈다.

<미르에게

대화를 하자꾸나. 소란테에서 기다릴 테니 천천히 오거라.

- 로이븐>

소란테는 알란드와 세네카 황궁의 거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다.

다행히 프레오나로 가는 국경과 크게 멀지 않아 시간을 많이 낭비하지 않게 돼서 다행이지만, 한시가 급한 나로서는 반가운 제안은 아니었다.

만나서 또 어떤 잔소리를 할지… 벌써부터 귀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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