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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84화 (184/227)

184 다시 프레오나로 (2)

소란테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 거라던 로이븐은 예정일보다 이틀 뒤에 도착했다.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일정이 더 늦어질까 봐 걱정도 되고 화도 조금 났지만, 소란테에 막 도착한 로이븐의 모습을 보고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단정했던 머리는 어디서 구르고 온 것인지 흐트러져 있었고, 옷은 진흙더미에서 굴렀는지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혼이 다 빠져 있는 듯 지친 표정으로 젠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오는 길에 산적이라도 마주치신 건가요?”

아무리 산적을 마주했다 한들 로이븐이 쉽게 당할 리 없다. 하지만 지금 로이븐의 상태는 산적이든 누구든 크게 휩쓸고 간 것처럼 꼬질꼬질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손님도 함께였다.

지아는 로이븐과 함께 왔는지 드레스처럼 보이는 편한 옷차림으로 그의 옆에 서 있었고, 멍하니 젠을 바라보고 있는 로이븐을 대신해 우리에게 말했다.

“검은 말이 굉장히 활발하더군요. 너무 예민해서 황태자 전하께서 애를 많이 먹으셨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로이븐과 지아가 우리를 위해 파시테 궁에 있던 펄과 가넷을 데려왔다는 거다.

펄은 먹이를 주고 살살 꼬셔서 얌전히 데려왔지만, 가넷은 펄과 달리 엄청난 말썽꾸러기였다고 했다.

가넷은 자신을 이끌려는 기사를 뒷발굽으로 걷어차는가 하면, 고삐를 강하게 쥐어도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를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보통 말이었으면 궁둥이를 찰싹찰싹 때렸겠지만, 젠 이프리트의 말이라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함부로 대했다가는 더 거지 같은 상황이 올까 봐 이도 저도 못 했다고 한다.

그때, 가넷에게 가까이 다가간 로이븐이 고삐를 잡았고, 그때 가넷은 잠시나마 얌전해졌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로이븐이 직접 가넷을 타게 됐다. 그런데 빠르기도 엄청 빨라서 통제가 어려운 가넷은 어디에 삐진 건지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내릴 때도 곱게 내려주지를 않아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래! 가넷, 쟤가 젠 말고는 다른 인간들을 전부 막 대한다니까? 그래도 날 대할 때는 양반이었구나?

“수고하셨습니다. 다루기 어려운 아이라 고생하셨겠군요.”

“내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젠은 로이븐이 잡았던 가넷의 고삐를 건네받았고, 로이븐은 무표정한 젠을 향해 쏘아대듯 말했다.

하지만 젠은 로이븐의 말을 무시하고, 그와 멀찍이 떨어져 가넷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며 가넷을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무심하다 못해 무감각한 젠의 태도에 더욱 심통이 난 로이븐은 나를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젠은 그런 로이븐을 보았음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로이븐은 오면서 꽤 힘들었는지 굉장히 서러워 보였고, 나는 분위기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우리가 묵고 있는 여관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로이븐은 내가 다른 귀족들의 집이 아닌 여관에서 묵었던 게 안쓰러웠는지 잠시 슬픔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로이븐에게 마주 웃어 주며 깨끗하게 정리된 마린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와 젠이 쓰는 방은… 아마 엉망일 거다.

보리언은 로이븐의 일행과 인사만 나눈 뒤 자리를 비켜 줬고, 마린은 자기가 낄 곳이 아닌 것 같다며 노반과 함께 자리를 피했다. 덕분에 드로이프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갈 사람은 전부 나가고 나와 젠, 로이븐, 그리고 지아만이 방 안에 남았다.

나는 인원수대로 차를 내리고, 젠이 로이븐과 지아의 앞으로 놔 줬다.

“이 차는 ‘렐만’이라는 식물을 말려서 만들었습니다. 심신안정에 좋은 차입니다.”

내 말에 로이븐은 내게 고마운 미소를 지은 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렐만 차는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에 둘도 없이 좋은 귀한 차지만, 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이 차를 잘 마시지 않는다.

“큭…!”

왜냐면 엄청 쓰니까.

심신 안정용으로 이걸 마시느니 차라리 잠을 푹 자는 게 나을 정도로 쓰다.

“몸에 좋은 약이 쓰다고 했습니다. 형님, 많이 쓰겠지만 건강을 위해 전부 마셔 주세요.”

물론 마냥 쓰기만 한 차도 아니다.

심신 안정, 기력 회복, 그리고 서지 않는 것을 서게하는 것까지 완벽한 만능의 차라고 했다. 엄청 쓴 만큼 몸에도 엄청 좋은 차다.

물론 난 효과가 없었지만.

“이걸… 마실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냐?”

로이븐은 손에 든 찻잔이 마치 괴물인 양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예, 그럼요. 이프리트 경은 매일 하루 한 잔씩 마셨었습니다.”

북쪽 저택에 있었을 때, 무슨 수를 써도 서지 않는 바람에 울적해진 나는 이것저것 연구를 많이 했었다.

몸에 좋은 음식이란 음식은 다 먹어 보고, 저택과 가까운 마을이란 마을을 다 돌아다니며 관련된 서적도 찾아보고, 민간요법도 다 해 보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 남성은 뚝심 있게 무슨 수를 써도 서지 않았고. 거의 포기하려 할 때쯤 눈에 보인 게 이 ‘렐만’이라는 식물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하며, 남성에 효과가 아주 좋다는 렐만을 거금을 주고 대량으로 구입해, 햇빛에 말려 차로 끓였다.

쓴맛이 난다고 쓰여 있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고 마셨지만, 그날 혀끝에 닿는 렐만의 맛은 내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렐만 차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쓸 줄 몰라 렐만을 대량으로 사 놓았는데,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젠에게 끓여서 한 잔 타 줘 봤다.

젠의 남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나 대신 젠의 기력이라도 좋아지라고 매일 끓여 줬는데 다행히 잘 마셨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그때 젠에게 렐만 차를 줘서는 안 됐었다.

내가 어마어마한 걸 키워 놨어….

“못 드시겠다면 다른 차를 내오겠습니다. 젠도 다른 거 마실래?”

“아뇨, 전 이거면 충분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서도 괜찮으 실테니 앉아 계세요.”

젠은 다른 차를 내올 필요 없다며 일어나려는 나를 잡았다.

그에 나는 로이븐의 표정을 살폈는데, 로이븐은 젠에게 단단히 화가 난 건지 ‘두고 보자…’같은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로이븐의 옆에 있던 지아는 잠시 이곳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러다가 자신의 앞에 놓인 렐만 차를 마셨는데, 로이븐과 달리 표정 변화 없이 잘 마셨다.

“영애, 차 맛은 괜찮으신가요? 마시기 어려우시다면 단맛이 나는 차를 새로 내오겠습니다.”

“음… 조금 쓰긴 하지만 못 마실 정도는 아니에요. 건강에 좋다 그랬죠?”

“맞습니다.”

“그럼 이 정도는 참고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참고 마실 수 있다는 지아의 말에 로이븐은 그럴 리가 없다며 억울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전하, 못 드시겠으면 드시지 마세요.”

지아는 로이븐을 보며 생긋 웃었고, 로이븐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 다시 렐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못 마실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두 번은 마시기 싫은지, 로이븐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놨다.

나는 나약한 로이븐을 바라보며 살짝 웃어 준 다음, 지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카트린 영애까지 올 줄은 몰랐군요.”

“산책도 할 겸 따라 나왔습니다. 황궁 안에만 있기 조금 불편해서요.”

지아는 그동안 황제의 눈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며 이제라도 나와서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혹시 황제 몰래 나오신 겁니까?”

“따로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제가 황궁을 나간 건 알고 계실 것 같아요. 너무 바쁘셔서 신경을 쓰지 못하는 거지요.”

“그렇군요.”

황제는 마탑의 일로 아주 바쁘다고 했다.

그렇겠지, 자기가 연구하던 모든 것들이 깡그리 날아가고 자신의 편인 마법사들도 전부 죽었으니까.

나는 로이븐의 표정을 살폈다. 로이븐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런 로이븐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형님, 하시려던 말씀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로이븐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말문을 열었다.

“…에반스터 경에게 들었다. 네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로이븐은 지금껏 내가 세네카에 와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 나열했다.

황제에게 은연중에 협박당하고, 황후에게 불려가 시험 당하고, 퍼디스의 괴롭힘을 받고, 게다가 드로이프와 관련된 이야기와 마탑의 일까지 전부.

“마탑과 관련된 이야기는 에반스터 경이 내게 해 준 말이다. 내가 들은 이것들이 전부 사실이냐?”

“….”

나는 확인 사살을 하는 로이븐에게 침묵으로 긍정의 뜻을 표했다.

아, 그 앞잡이 자식. 그새 일러바쳤네.

로이븐은 나를 굉장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그런 로이븐을 바라보며, 다음에 필릭스를 만나게 되면 단단히 혼쭐을 내주겠다고 다짐을 했다.

저 브라콤한테 ‘네 아우가 지금 위험한 일에 뛰어들고 있다!’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너에게 큰 짐을 지게 한 것 같아 면이 서지 않는구나. 못난 형이라 미안하다.”

로이븐은 고개를 숙이며 내게 사과했다.

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로이븐이 라이언 황제를 등졌다는 걸 확인받으니, 뭐랄까… 뿌듯하달까… 아니, 좀 기특한 것 같다.

라이언 황제의 뒤를 잇는 로이븐 황태자는, 미친 사이코 황제와 달리 제정신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형님, 저는 황제를 무너트릴 겁니다.”

나는 강한 어조로 로이븐을 향해 말했다. 로이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는 로이븐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향후 내 계획을 말했다.

“저는 로웨나 왕국에 가야 합니다.”

“그래, 그곳이 로웨나 왕국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나도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수소문해 봤지만, 초대를 받는 이 아니라면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더구나.”

“알아보셨습니까?”

그새 그걸 알아봤냐는 내 말에 로이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는 봤지만 수확은 없었다. 물자를 조달하는 사람들의 신원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드래곤의 마법으로까지 막아 놨으니,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더구나.”

로이븐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방법이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내부인을 이용하면 됩니다. 내부인을 데리고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다더군요.”

“그래, 그건 나도 들었다. 하지만 로웨나 왕국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로이븐은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지아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 멀뚱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 만일 아니라 해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어떻게 말이냐?”

나는 궁금한 표정을 짓는 로이븐을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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