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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85화 (185/227)

185 다시 프레오나로 (3)

“비밀입니다.”

비밀이라는 내 말에 로이븐은 잠시 넋을 놓았다가 바로 정신을 차리곤 물었다.

“비밀이라니…?”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내 말에 의문을 표한 로이븐은 이어질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별로 말해 주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걱정하는 로이븐의 마음이 눈에 보여서 입을 열었다.

“별로 부탁하고 싶지 않은 친구지만… 제가 궁지에 몰린다면 한 번은 도와준다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로웨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철수가 도와주면 좋겠지만, 철수가 말하길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무리 자신이 드래곤의 마법을 단번에 해제할 수 있는 정령왕이라지만, 이 세계에서는 상호 존중을 해 줘야 한다고 했다.

드래곤의 의지인 그 마법을 자신이 풀어 버리면, 결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도와줄 수 없다고 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니 모든 방법이 실패하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악마.

철수가 말하길, 악마는 상호 존중 같은 건 하지 않는, 그저 자신들의 욕망과 욕심을 채우는 존재들이라 상대가 드래곤이든 누구든 내키는 대로 행동해 상관이 없을 거라고 했다.

나도 그놈을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정 안 되면 그놈한테 부탁해야지 어쩌겠어.

“…마탑에 불을 질렀다던 그 사람이니?”

로이븐은 나를 도와줄 친구가 철수냐고 물었고, 나는 괜한 걱정과 오해를 사기 싫어 그렇다고 대답했다.

“네, 비슷합니다.”

“그렇구나. 에반스터 경이 괜찮은 사람이라 했으니, 나도 믿어 보마.”

믿어 본다는 말과는 다르게, 로이븐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우리 아우가 이상한 놈한테 속아서 휘둘리는 건 아닐까, 정말 괜찮은 사람인가 걱정하는 것 같았다.

“형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 주변엔 저를 지켜 줄 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거겠지. 하지만 어쩔 수가 없구나, 내게 있어 너는 그저 작고 순수한 아이였는데….”

로이븐은 과거를 회상하며 내가 얼마나 귀여운 아이였는지 말해 줬다.

말간 얼굴로 해맑게 웃는 도브로미르, 호의를 보내는 타인에게 작은 꽃송이로 보답을 하는 도브로미르,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음을 참는 도브로미르 등등, 로이븐은 자신의 귀여운 아우인 도브로미르가 어떨 때 귀여웠는지 나열했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크다니….”

로이븐은 나를 바라보며 씁쓸하면서 장하다는 얼굴을 지었다.

도브로미르의 아버지는 라이언이 아니라 로이븐일지도 모른다.

아버지한테 받아야 하는 사랑과 관심을 전부 로이븐에게 받았으니까.

로이븐에게 도브로미르는 바쁜 와중에도 엎어 키운 아이다. 그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표정을 본 로이븐은 내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를 해 주면 되겠구나. 나는 너의 어머니인 레이트라 님께 큰 은혜를 받았었다.”

“제… 어머니한테 말입니까?”

은연중에 알고는 있었지만, 본인 입으로 들으니 꽤나 신기했다.

어떤 인연이 있기에 레이트라와 로이븐이?

“내 어머니인 가리엘 황후가 나를 낳기 전, 내 위로 누님 한 분이 계셨어. 너무 일찍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로이븐의 말에 지아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로이븐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나는 처음 들은 이야기인듯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척을 했고, 로이븐은 그런 내 반응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자신의 누님이 3살도 채 안 되는 나이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태어났다. 가리엘 황후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악몽이었다고 했다.

“그때 일 이후로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하셨어. 내 얼굴을 보는 것조차 괴로워하셨으니 내게 신경을 써 주실 정신은 더더욱 없으셨어.”

딸을 잃은 가리엘은 슬픔과 분노가 눈앞을 가려 로이븐을 챙기지 못했고, 그때의 로이븐을 마음 다해 챙겨 준 사람이 레이트라라고 했다.

레이트라는 로이븐에게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교육하며 다양한 걸 알려 주고, 아들 못지않게 사랑을 줬다고 했다.

로이븐은 가리엘보다 레이트라를 더 믿고 의지했으며, 레이트라는 자신의 어머니와 다름없는 분이라고 말했다.

“그랬…었군요.”

“그래, 그리고 너를 부탁하셨지.”

레이트라가 죽기 며칠 전, 레이트라는 로이븐을 찾아와 못난 자신을 대신해 4황자인 도브로미르를 잘 챙겨 달라는 부탁을 하고 떠났다고 했다.

처음 4황자를 볼 땐 레이트라가 많이 생각나 슬프기만 했었지만, 점점 자라는 4황자를 보며 레이트라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느끼면서 그녀의 심정에 공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안했다고 한다. 자신이 많이 부족해서 소극적인 성격으로 자랄 수밖에 없던 4황자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죄스러운 얼굴을 하고있는 로이븐에게 고개를 저으며 따듯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형님이 제 곁에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세네카에서 단 한순간도 버티지도 못했을 겁니다.”

“….”

“형님께는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니다. 나는 그런 말을 받을 자격이 없어.”

로이븐은 괜찮다는 내 말에도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받은 만큼 내게 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런 로이븐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만약 레이트라가 살아 있다면, 이런 로이븐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잘 자랐다고, 멋지게 자라 주어서 고맙다고 하지 않을까?

물론 4황자는 소극적이고 겁쟁이가 되었지만… 그건 로이븐의 탓이 아닌 라이언 황제와 퍼디스의 탓이 크다.

로이븐이 4황자를 주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4황자 스스로가 퍼디스에게 아무 반격도 하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당하는 사람은 잘못이 없지만, 나는 적어도 4황자가 발버둥은 쳤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퍼디스는 지금처럼 몸집이 큰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객기와 옹졸함에 가득 찬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때 퍼디스를 쥐 잡듯 잡아 놨으면 4황자의 성격이 그렇게까지 찌질해지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진심입니다. 형님이 계셔서 버텼어요.”

나는 로이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4황자에게 로이븐마저 없었다면, 4황자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살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구나.”

로이븐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지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나는 로이븐에게서 시선을 돌려 지아를 바라봤다. 지아는 로이븐을 바라보며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나 마나다. ‘어라? 의외로 인간적인 면이 있잖아? 다시 봤네’ 하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젠의 손을 잡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아 울음을 참는 척을 했다.

로이븐이 울려고 하니까 나도 울어 줘야 상황이 맞겠지.

나는 젠의 어깨에 기대어 얼굴을 비볐고, 젠은 내 어깨를 감싸며 토닥토닥 가볍게 두드려 줬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눈물을 훔치는 척 눈 주위를 쓸었다. 그리고 로이븐을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그에 로이븐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고, 나는 지아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어두운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카트린 영애.”

“아니에요. 의외로 황태자 전하의 사람다운 면모를 보게 돼서 좋았던 시간이었어요.”

지아는 생긋 웃으며 로이븐을 바라봤고, 로이븐은 지아를 바라보며 떨떠름하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지아의 남자는 누가 될 것인가가 궁금했다.

메이븐일지, 로이븐일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아무튼 간에 그들이 재미있는 관계인 건 확실하다.

형제 간의 분란만 안 일어나면 좋으련만….

“그럼, 대화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아직, 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어요, 전하.”

자리를 뜨려는 로이븐의 소매를 잡은 지아가 이야기했다.

로이븐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지아는 나와 젠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두 분은 지금 프레오나로 가시는 거죠?”

로웨나 왕국으로 들어가기 전, 국경을 넘어 프레오나로 가는 것이냐고 묻는 지아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프레오나에 만날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데려가 주세요.”

나는 갑작스러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끄며 지아를 바라봤고, 젠은 꼼지락거리는 내 손을 바라보고 있다가 지아를 쳐다봤다.

“예…?”

“저도 데려가 주세요.”

지아는 우리를 바라보며 확실하게 이야기를 했고,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로이븐을 바라봤다.

로이븐은 지아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지아에게 물었다.

“영애,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그럼요. 저는 지금 4황자 전하를 따라서 프레오나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로이븐의 얼굴에는 배신감이 살짝 비쳤다. 프레오나로 떠나겠다고 확답을 내뱉은 지아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 같다.

지아는 생긋 웃으며 로이븐에게 말했다.

“영영 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저 프레오나 어떤 곳인지 한번 가 보고 싶었던 것뿐이죠.”

“그럼 나중에….”

“아뇨. 나중에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그래요. ”

지아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로이븐을 향해 말했다. 그에 로이븐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지아를 바라보다 말했다.

“…꼭 지금 가야 하는 겁니까?”

“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니까요.”

지아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회유하려는 로이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성녀라는 자리가 자리인지라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 것 같아요. 황태자 전하와 함께한다면 더 그렇겠죠… 제 마음 이해하시죠?”

지아는 모두의 이목을 끄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싫다며, 지위가 높으신 양반들과 공식적으로 하는 방문은 하고 싶지 않다고 못을 박았다.

나는 젠과 함께 지아와 로이븐의 대화를 잠잠히 들었다. 로이븐은 지아가 못 미덥고 위험할 수도 있다며 나중에 자신이나 메이브과 함께 가라며 말렸지만, 지아는 절대 양보해 주지 못하겠다며 지금 당장 나와 함께 프레오나로 가겠다고 했다.

나는 로이븐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보다 못한 젠이 끼어들었다.

“카트린 영애, 방금 전에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지금의 저희는 한가한 상황이 아닙니다. 영애의 관광까지 시켜 줄 여유는 없습니다.”

젠의 무심한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로이븐이 화를 내려 했지만, 이어지는 지아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괜찮아요. 저도 관광을 목적으로 가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지아는 나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밥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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