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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86화 (186/227)

186 다시 프레오나로 (4)

네 녀석은 밥이 목적이었구나.

나는 지아의 귀여운 생각에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관광은 어렵겠지만 그 정도는 제가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와!”

나는 신나 하는 지아를 바라보며 살포시 웃었고, 지아의 입 모양을 보지 못한 로이븐은 영문을 모르는 채로 우리를 번갈아 봤다.

“간단하게 이동 경로를 알려 드리자면, 프레오나로 향하는 국경을 넘으면 바로 북쪽 저택으로 간 다음 볼일이 끝나면 세네카로 돌아와 알란드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럼 황자님께선 이곳으로 다시 오셔야 하는 건가요?”

나는 지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굉장히 비효율적인 이동 경로라며, 프레오나에서 로웨나 왕국으로 가는 법은 없냐고 물었다.

“있기는 하지만 굉장히 위험합니다.”

로웨나 왕국은 엄청나게 큰 섬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이곳의 바다는 해류가 흉포하고, 마물도 너무 많아 가는 길이 굉장히 위험하다.

그나마 안전한 해류를 타는 곳이 세네카의 알란드를 통해 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군요…. 몰랐어요.”

“그럴 만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로웨나 왕국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른다더군요.”

로이븐은 시무룩한 지아를 달래며 ‘라떼는’을 시전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다섯 살도 채 안 됐었을 때였을 겁니다. 로웨나 왕국엔 아주 강력한 드래곤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그곳은 모든 모험가가 꿈꾸는 곳이 되었지만….”

“만…?”

“로웨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지아는 로이븐의 말에 놀라 했고, 나는 젠을 바라보며 물었다.

“젠은 나 만나기 전에 그곳으로 가려고 했었잖아. 못 들어간다는데 어떻게 가려 했어?”

내 물음에 젠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입을 뗐다.

“전 드래곤의 쉴드를 깨 보려했어요.”

“그게 가능 하….”

젠의 말에 로이븐은 그게 가능할 것 같냐고 물으려 했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러곤 진지한 눈으로 젠을 바라봤다.

나는 그런 로이븐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고, 로이븐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왠지 저자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에이… 사람이 어떻게 드래곤의 마법을 깰 수 있겠어요.”

젠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로이븐의 말에, 지아는 어떻게 인간 하나가 드래곤의 마법을 깨부술 수 있냐며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로이븐은 그런 지아에게 고개를 저으며, 그동안의 젠의 전적을 일러 주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전장에서의 이프리트 경은 굉장히 유명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출전했는데도, 검술과 진두지휘에 능하기로 유명했었죠.”

“헉! 전쟁이요?”

“네, 영애가 깨어나지 못했던 때의 일이니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로이븐은 생생하게 놀라는 지아에게 부드럽게 웃어 주며 자신이 겪었던 전쟁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장에서 저자가 나오는 날에는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합니다.”

그랬어?

나는 젠을 바라보며 물었고, 젠은 잘 모르는 이야기라며 고개를 저었다.

“열흘에 한 번꼴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저자가 모습을 보이는 날에는 기사들이 전부 겁을 먹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오오….

나는 젠을 바라보며 이런 사람이었냐며 감탄했고, 젠은 부끄러운 건지 뭔지 내 눈빛을 피했다.

“적이었지만, 그 실력만큼은 존경하게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로이븐은 젠을 바라보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썩을 놈이 내 아우와 함께 있다니….”

분노에 찬 로이븐의 중얼거림을 바로 옆에서 들은 지아는 웃음이 나오는지 손을 들어 입을 가렸고, 나는 로이븐에게서 시선을 돌려 젠의 손을 꽉 잡았다.

로이븐의 못마땅한 시선이 젠을 향해 가 있었고, 젠은 로이븐을 향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혼자 두기엔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

“경쟁자도 많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절 선택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순간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광대를 부여잡았다.

가끔 이렇게 훅을 날리긴 하지만, 남들 앞에서… 특히 로이븐의 앞에서 이럴 줄은 몰랐다.

로이븐은 젠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는지 잠시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젠의 로맨틱한 말을 처음 들어본 지아는 ‘오…’라면서 감탄을 했고, 덕분에 정신을 차린 로이븐은 젠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입만 살아서는….”

젠과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란 걸 처음 인지하게 됐다. 물론 걔네처럼 절박하고 주변에 휘둘리는 상황은 아니지만….

나는 젠에게 눈치를 주려 하는 로이븐의 말을 끊고 이야기했다.

“황제의 움직임은 형님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진지한 내 부탁에 로이븐도 금세 진지해져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 정도는 내게 맡기거라. 부탁할 것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말해도 된단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교황을 살펴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교황?”

내 대답에 놀라는 로이븐을 보며, 로이븐이 황후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자신의 딸을 잃었는데 아들까지 잃을 수는 없으니, 혼자 해 보겠다고 로이븐에겐 숨긴 거겠지.

“이 일에 교황청까지 연결되어 있던 것이냐?”

“…그건 황후께 여쭤보십시오. 황후마마께서 황제와 교황 사이에서 접점을 발견하신 분입니다.”

“어머니가….”

“가능한 은밀하게 부탁드립니다. 그쪽에서도 크게 움직이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내 말에 로이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교황은 로이븐이 맡아 줄 테니 걱정을 덜었다. 황제의 움직임도 아예 막을 수는 없겠지만 견제까지는 가능하겠지.

“그럼 내일 아침이 밝아오는 대로 프레오나로 출발하겠습니다.”

대충 이 일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난 것 같아 자리를 파하려 했지만, 로이븐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가지 말고 더 이야기하자며 우리를 붙잡았다.

그동안 아우가 어떤 생각을 하며 컸는지가 듣고 싶은 것 같았다.

더 받아 주면 오늘 하루를 통째 로이븐과 보내야 할 것 같아 지아를 부르며 로이븐과의 로이븐의 주의를 돌리려 했다.

“카트린 영애도 이제 슬슬 쉬어야 내일 출바….”

“저는 괜찮아요!”

지아는 해맑게 웃으며 자신은 멀쩡하니 이야기를 더 나누라고 했다.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원….

“사실… 저희 집 여우가 어젯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재워 주러 가야 합니다. 혼자 자는 걸 연습하고 있는데 아직 아기라 어려워해서….”

핑계를 댈 때는 아기와 여우가 효과적이다.

지아는 어쩔수 없다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로이븐은 입술을 꾹 다물고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로이븐의 표정을 무시한 뒤 그들에게 말했다.

“먼길 나서느라 피곤하셨을 테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영애도 프레오나로 가는 길이 조금 고될 수있으니 모쪼록 체력을 아껴 주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이븐에게 인사한 뒤, 내 손을 잡고 있는 젠의 손을 당겨 일으켜세웠다.

젠은 로이븐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마지막으로 지아에게 인사한 뒤 밖으로 나왔다.

방을 나오면서 나는 쭈뼛거리며 젠에게 물었다.

“내 할 말만 한 것 같아서 미안하네…. 좀 더 로이븐의 말도 들어줬어야 했나?”

“아니에요. 잘하셨어요.”

“그렇지…?”

“네, 황태자도 많이 피곤해보였으니까요.”

젠은 예민한 가넷을 여기까지 몰고 온 것도 대단한 거라며, 조금이라도 빨리 쉬게 해 주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맞아…. 다크서클 많이 내려왔던데, 힘들었을 거다.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방으로 들어갔고, 나왔을 때와 똑같이 난장판이 되어 있는 방을 보며 작은 웃음을 삼켰다.

이 방을 로이븐이 봤다면 로이븐이 뒷목 잡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 * *

“가는 길에 여관이 없으면 노숙을 할지도 모릅니다.”

“괜찮아요!”

“마물을 만날지도 모르고요.”

“그것도 괜찮아요!”

나는 큰 가방을 메고 있는 지아에게 프레오나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설명해 줬고, 지아는 전부 괜찮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 세네카를 벗어나서 신이 난 건지, 자신을 걱정하는 로이븐을 무시한 채 무조건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해맑은 지아에게 로이븐이 가까이 다가와 다정히 말했다.

“키오와 메샤가 뒤따라갈 테니 너무 걱정은 말고, 필요한 게 있다면 메샤에게….”

“전하, 제 걱정은 어제까지만 하기로 하셨잖아요.”

지아는 로이븐의 말을 끊으며 자신은 괜찮으니, 로이븐 자신을 더욱 살피라는 말을 남겼다.

“그치만….”

“저는 정말 괜찮아요. 여기 4황자님도 계시고 전하께서 붙여 주신 듬직한 사람들도 있잖아요.”

어제부터 로이븐이 계속 걱정했던 건지, 지아는 정말 괜찮다는 말만 5번을 넘게 했다.

로이븐은 안 그렇게 보이지만 은근 걱정이 많단 말이야.

곱게 키운 딸을 수련회에 보내는 극성 부모님 같은 느낌이다.

나는 지아의 뒤에 서 있는 익숙한 소년과 처음 마주하는 여인을 바라봤다.

한 명은 그전까지 내 뒤를 봐주며 지켜주었던 키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메샤라는 새로운 인물이었다.

메샤는 키오와 같은 로이븐의 사람으로, 로이븐이 여자인 지아를 배려해 메샤를 데려온 것 같았다.

그 둘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내게 인사를 했다.

메샤와는 담담히 인사를 나눴고, 키오는 내 뒤에 서 있는 젠을 보고 잠시 놀랐다가 고개를 숙였다.

키오에겐 젠이 큰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

나는 키오를 바라보며 미안함이 가득 담긴 웃음을 지었고, 젠도 마음이 쓰이는지 키오를 향했던 시선을 돌렸다.

“그럼 다녀올게요.”

“부디 몸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지아는 그 말을 한 뒤, 마차 위로 자신의 짐을 실었다.

나는 지아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로이븐을 바라보며 말했다.

“긴장을 했으면 해서 겁을 주긴 했지만, 가는 길이 그리 험하진 않습니다. 너무 큰 걱정은 마십시오.”

“그래, 바쁜 와중에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어차피 가는 길이고 영애께서 즐거우시면 그걸로 됐습니다.”

나는 작게 미소 짓는 로이븐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지아가 타고 있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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