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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88화 (188/227)

188 다시 프레오나로 (6)

“키스…?”

“아! 했다는 건 아니에요! 그때 오빠가 오는 바람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지아를 바라봤다.

키스…? 메이븐이…?

아, 뭔가 파헤쳐서는 안 되는 형제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찜찜하다.

“….”

“아직 안 했어요!”

“그럼 나중에는 한다는 소리네요?”

“아니…!”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뒤로하고, 마린은 지아를 메이븐과 엮으며 놀리기 시작했다.

그에 지아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아니…, 그…,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키스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그래…, 그건 맞지….”

나는 지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지아는 어색하게 굳어서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 그러는 오빠…는 해 봤겠고. 마린은! 마린은 해 봤어요?”

지아의 물음에 마린은 눈이 동그래져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저는 아직 안 해 봤어요. 지아 님이 해 보시고 알려주세요.”

“마린 지금 저 놀리는 거죠!”

마린은 장난을 치는 사람처럼 하하 웃었고, 지아는 마린을 바라보며 볼에 바람을 넣어 삐진 티를 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고, 모닥불 안에 던져 놓았던 고구마 몇 개와 딱 하나 남은 감자를 꺼냈다.

마린은 감자보다 고구마를 좋아해서 고구마를 줬다. 지아에게는 그녀가 뭘 좋아할지 몰라 감자와 고구마를 건네주며 고르라고 말했고, 지아는 둘 중에 고구마를 골랐다.

다행이다. 난 감자가 먹고 싶었으니까.

“와, 고구마 진짜 오랜만이에요.”

지아는 김이 솔솔 나는 고구마를 호호 불며 껍질을 깠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어 맛을 음미하곤 감격한 듯 말했다.

“너무 맛있어요…!”

나는 그런 지아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황궁에서는 이렇게 못 먹으니까. 나도 초반에는 이런 게 먹고 싶어지더라.”

보통 고구마는 수프에 단맛을 내기 위해서 쓰거나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한다.

이렇게 구황작물을 통째로 먹는 건 귀족의 삶과는 잘 맞지 않아, 귀족의 신분인 이상 고구마나 감자를 통으로 먹을 일이 없다.

정말 불쌍하다. 이게 또 캠핑할 때는 엄청난 별미인데.

나는 아직 김이 폴폴 나는 감자 위에 소금을 살살 뿌려, 입이 데지 않게 조심히 한 입 베어 먹었다.

구운 감자였지만, 희한하게 삶은 감자처럼 포슬포슬하게 부서졌다.

아, 물에 담그고 불렸던 감자라 그런가?

엄청 퍽퍽할 것 같았던 예상과는 달리 보드러운 식감이었다.

“고구마는 김치랑 먹어야 하는데….”

지아는 제 손에 든 고구마를 빠르게 해치우며 김치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렸다.

“난 우유랑 먹는 게 더 좋던데.”

“오빠는 깔끔하게 먹는 쪽이군요? 저는 맛있게 먹자는 주의라 김치가 좋아요. 고구마랑 김치랑 안 드셔 보셨어요?”

지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구마랑 김치가 잘 어울린다는 소리는 들었었지만, 딱히 시도해 보지는 않았다.

감자나 고구마를 삶는 날에는 전부 샐러드로 해먹었으니, 통고구마와 김치랑 먹을 일이 생기지 않았었다.

“나중에 꼭 김치랑 먹어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그래.”

지아는 프레오나 저택에서 먹을 김치를 상상하며 실실 웃었다.

“저 진짜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요…. 김치 없으면 못 살겠어요. 솔직히 이 몸은 로지아의 몸이니까 입맛도 로지아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입맛은 제 입맛인 걸까요?”

“그건 나도 궁금하다. 뇌는 내 뇌라 그런가? 미각도 뇌가 기억하는 거니까….”

“우리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말자구요.”

지아는 어려운 이야기는 하기 싫다며 눈을 돌렸다.

나는 그런 지아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고, 때마침 정찰을 나갔던 젠이 노반과 함께 작은 마물 한두 마리를 어깨에 짊어진 채로 도착했다.

“젠, 노반!”

내 부름을 들은 젠은 들고 있던 마물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내게 가까이 다가왔고, 노반은 자신이 힘겹게 끌고 온 마물을 모닥불 가까이에 던져 놓고 마린의 옆으로 가서 철퍼덕 앉았다.

“노반은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아니요. 다친 건 아니고, 여기까지 저걸 들고 오느라 힘들고 무거워서 그래요. 노반이 잡은 거거든요.”

“노반이…?”

노반이 마물을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놀란 눈으로 노반을 바라봤고, 노반은 뿌듯한지 나와 마린을 번갈아 가며 바라본 뒤 소리쳤다.

“내가 잡았어! 젠의 목숨을 내가 구한 거야!”

뭔 일인가 싶더니, 젠을 따라간 노반이 젠의 뒤에서 기습하려 했던 마물을 잡았다는 거다.

저 작은 마물이 젠을 기습한다고 해도, 젠이 그대로 당할 일도 없었겠지만, 노반이 기뻐하니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게 두는 것 같았다.

“노반 멋지네. 노반이 젠을 구해 준 거야?”

“응! 이제 나도 강해! 저런 마물쯤은 쉬워!”

노반은 자신이 끌고 온 너구리 비슷하게 생긴 마물을 가리키며 자신만만해했다.

마린은 그런 노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잘했다고 말했고, 나 또한 노반에게 멋있다며 칭찬했다.

젠은 뿌듯해하는 노반을 바라보며 티 나지 않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별일 없으셨나요?”

“응, 우리는 이거 먹고 있었어. 젠은? 별일 없었어?”

“네, 별일은 없었지만… 마물 몇 마리가 근처에 있는 것 같아요.”

젠에 말에 남은 고구마를 입에 쑤셔 넣던 지아가 깜짝 놀라면서 입 안에 있던 음식물을 뱉어 냈다.

“마물이요…? 그럼 자다가 습격받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헐….”

지아는 혼란스러운 듯 나와 젠을 바라봤고, 나는 그런 지아를 바라보며 괜찮을 거라고 다독였다.

“괜찮아. 이렇게 작은 마물은 나도 처리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마물과 수적으로 밀리면 위험까진 아니더라도 고생할 게 뻔했다.

기껏 잡은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거라는 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오우거의 피만 뿌려도 다가오진 않을 거예요.”

그 말에 마린은 아공간 주머니에 담긴 오우거 피를 꺼내 젠에게 건넸고, 젠은 오우거의 피를 우리의 거처 주변에 아낌없이 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지아는 신기해하며 말했다.

“오우거 피도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응, 노숙할 때는 꽤 유용한 물품이야.”

강한 마물의 피는 약한 마물을 쫓아낼 수 있다. 마치 호랑이의 변처럼.

그런 면에서 오우거처럼 좋은 마물은 또 없다. 코볼트나 웨어울프 같은 애들은 조금 아쉽고, 오크는 떼를 지어 다녀서 지능이 있는 마물에게는 잘 통하지 않아 사용하기 번거롭다. 하지만 오우거는 혼자 다니는 성향에, 힘도 강하니 웬만한 마물을 쫓아내기에 딱이다.

곧이어 정찰을 끝낸 키오와 메샤가 돌아왔다. 그들은 주변에 작은 마물이 있긴 하지만, 젠과 마찬가지로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했다.

“다행이네.”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저택까지 바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메샤의 말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음… 크로스반 영주성으로 먼저 가자.”

“영주성 말입니까?”

“응,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키오랑 메샤는 거기 있어 줬으면 좋겠어.”

지아에게 한국 음식을 먹이는 건 좋지만, 키오와 메샤가 걸렸다.

그들은 우리가 이세계에서 온 전생자인 걸 모르고 있을 텐데, 우리가 김치, 된장, 간장 등등 처음 보는 음식을 먹는 걸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했다.

필릭스한테는 우리가 만든 김치를 ‘고대 음식’이라고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그건 필릭스가 의심이 많은 성격도 아니고, 그런 조잡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놈이라 가능했던 변명이다.

하지만 키오와 메샤 같은 눈치가 빠르고 의심이 익숙한 사람한테는 고대 음식이라는 허술한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 줄 수 있을까?”

나는 키오와 메샤에게 크로스반 영주성에서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들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카트린 아가씨를 지켜야 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가씨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곤란한 표정을 지은 메샤는 지아와 떨어질 수 없다고 말했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애는 우리가 지킬 수 있어. 크게 위험한 일도 없을 거고. 딱 며칠인데 안 될까? 우리 저택에 남는 방이 없어서 그래.”

나는 얕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고, 내 옆에 앉아 있는 지아도 간절한 표정으로 메샤와 키오에게 말했다.

“나는 괜찮을 거예요. 전하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택 밖으로 나갈 일도 없으니 위험하지도 않을 거구요.”

우리 중에서 제일 센 젠도 함께 있으니 문제없을 거라고 지아가 덧붙이자 키오와 메샤는 고민했다. 지아의 말에 얹어 괜찮을 거라고 한 젠의 말을 마지막으로 키오와 메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젠이 말하면 다 듣는구나.

내가 백날 말해 봤자 진짜 힘이 있는 젠의 말 한마디면 끝이 난다.

“며칠 걸리지 않을 거예요. 편히 쉰다는 느낌으로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저들은 밤이나 새벽에 찾아와선 저택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찰할 것이다.

그 정도는 괜찮다. 나는 그냥 우리가 쓸 식탁이나 말버릇이 들통나지 않았으면 해서 영주성으로 보내는 거니까.

“영주성에 쌍둥이들이 있을 거야. 되게 귀엽고 똑똑하니까, 심심하면 걔네랑 잘 놀아 줘.”

“쌍둥이요?”

“네, 되게 영리하고 귀여운 친구들이에요. 영애에게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나는 로이와 클로에를 생각하며 지아에게 말했고, 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노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노반만큼 귀엽진 않을 것 같아요.”

그건 당연하지. 세상 어느 귀여운 존재를 데려와도 우리 노반을 이길 수는 없을 거다.

나는 잘 배운 지아를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고, 지아도 나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귀여움의 중심이 된 노반은 당연하다는 듯 지아의 손길을 받았고, 충분히 즐기다가 입을 열었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로이랑 클로이도 착하고 귀여워. 지아도 좋아할 거야.”

노반은 영주성에서 있었을 때가 떠오르는지, 해맑은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런 노반을 바라보며 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젠의 귓가에 아무도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이번에는 세르비스한테 못되게 굴면 안 된다…?”

내 말에 젠은 내 눈을 잠시 바라보다 내키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허튼짓만 하지 않는다면요.”

“세르비스는 장난이 많은 것뿐이야. 그냥 좀 능글맞은 거지 악의는 없었잖아.”

“지금 제 앞에서 그자의 편을 드는 건가요?”

나는 싸늘해진 젠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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