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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198화 (198/227)

198 로웨나 왕국으로 향하다 (7)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깊은 곳에 대자로 쓰러져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경계하며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다. 몸은 작달막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이었다.

젠이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남자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물….”

물을 달라는 남자의 말에, 마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 있는 물통을 꺼내 젠에게 건넸다.

마린에게 물통을 건네받은 젠은, 주저할 것 없이 물통의 뚜껑을 열고 남자의 주둥이에 꽂아 넣었다.

“컥…!”

물통에 흐르는 물을 전부 삼키지 못한 남자는 푸확! 물을 내뿜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덕분에 젠의 옆에서 남자의 상태를 살피던 셀비스가 물세례를 직격으로 맞았다.

셀비스는 혼자만 고개를 돌려 물세례를 피한 젠을 얄밉게 바라보다, 다시 드워프의 상태를 살폈다.

“며칠 굶은 것 같습니다. 따로 이상은 없는 것 같구요.”

셀비스의 이야기를 끝으로, 남자는 나머지 물을 마시고 눈을 감았다.

그에 남자를 보고 있던 노반이 놀라 ‘컁’ 하고 짖었고, 나는 노반의 털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

“잠을 자고 있는 거야. 그동안 많이 피곤했나 보다.”

노반을 바라보며 작게 웃어 준 마린은 남자의 위로 두꺼운 모포를 덮어 주었고, 우리는 동굴 안을 살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곳에서 보내야겠지?”

동굴 안이 조금 어두워서 그렇지, 모닥불만 피워 놓으면 공기도 따듯해지고, 찬바람도 막아 주는 아늑한 공간이다.

마물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 이 동굴 안이, 마물들이 득실거리던 바깥보다는 비교적 안전할 것 같다.

“드래곤의 실드는 인간만 막아 주는 거랬지? 그래서인가 마물들이 꽤 많네.”

“곧 드래곤의 영면이 가까워졌으니까. 뭐라도 노리고 오는 마물들이 많지. 이 몸은 별 생각 없지만.”

철수는 지쳐 잠든 남자를 잠시 바라보며 이곳에 대해 말했다.

“이 동굴을 포함한 산 전체가 드래곤의 요새야. 아마 저 위쯤에 있겠지. 그래서 밖에 있던 마물이 들어오지 않는 거고.”

철수는 동굴의 천장을 가리키며 저 위에서 드래곤이 자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마물들이 드래곤의 요새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잠든 드래곤에게 눌려 힘을 쓰지 못하니 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라 말했다.

“안전지대구나.”

“드래곤이 영면에 처하면 이 안전지대도 이제 끝이지만.”

그렇게 중얼거린 철수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저기 쓰러져있는 남자는 드워프가 확실하니 자신은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그럼 이 몸은 다시 한나한테 가 볼게. 왕국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불러.”

“잠깐. 철수, 너 한나 좋아해? 계약자는 난데 왜 한나만 챙겨?”

나는 의미심장하게 철수를 향해 말했고, 철수는 잠시 젠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로테의 아이잖아. 쟤는 정이 안 가지만, 한나는 귀여우니까.”

젠은 자신이 챙겨 줄 것도 별로 없고, 피 냄새도 짙게 난다며 꺼려 하는 반면 한나는 로테와 가장 비슷한 기운을 뿜고 있고 자신이 챙겨 줄 것도 많다며 얼른 가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 로테의 후손을 챙기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철수의 계약자는 나잖아.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우선 아니냐―’ 이 말이지.

내 생각을 읽은 철수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도 이 몸을 필요로 하진 않잖아. 이 몸을 귀찮아하는 거 다 알아.”

계약한 정령과 떨어져서 서운한 느낌이 드는 것뿐이잖아.

뾰로통한 철수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고 동시에 마음이 쓰라렸다.

철수가 곁에 있으면 배려해 줘야 할 게 많으니 귀찮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아예 눈앞에서 치워 버리겠다, 성 가시다 같은 귀찮음은 아니다.

“귀여운 수준의 귀찮음이야. 나쁜 뜻 아니야…. 전에도 말했었잖아….”

“흥.”

“진짜 그런 거 아니야. 장난처럼 귀찮다고 말하는 거지, 네가 있어 줘서 얼마나 감사한데…!”

나는 뒤늦게 부정을 했다. 그런 게 아니라 말하면서도 그간 철수를 너무 무심하게 대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날카로운 바늘에 손이 찔린 듯 눈물이 핑 돌았다. 철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너무 미안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가만히 상황을 보고 있던 젠이 다가와 내 등을 두드려 주며 천천히 달랬다. 그리고 그는 철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장난은 적당히 쳤어야죠.”

“아, 아니…. 이 몸도 울 줄은 몰랐지. 얘가 왜 이래. 너 이렇게 나약한 애 아니잖아. 첫 만남 때랑은 너무 달라진 거 아니야?”

철수는 안절부절못하며 내게 가까이 다가오려 했지만, 젠의 사나운 눈빛에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고 손을 떨었다.

“미르, 네 기분을 제일 잘 아는 건 이 몸이야. 네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이 몸이 모를 리 없잖아…!”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철수의 말에 젠은 기분 나쁘다는 듯 철수를 응시했다.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철수에게 말했다.

“미안해. 이젠 귀찮다고 말 안 할게.”

“이, 이 몸도 미안해. 앞으로 이런 장난 안 칠게. 이 몸은 네가 옛날처럼 그럼 어쩔 건데! 하고 소리칠 줄 알았어.”

철수는 젠의 눈빛을 무시하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어깨 위로 손을 올려 앞으로 이런 장난은 치지 않겠다며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눈물의 사과를, 철수는 안절부절의 사과를 마쳤다.

철수는 내 눈치를 보며 한나를 만나러 떠났고, 남은 나는 젠에게 안긴 채 모닥불의 온기를 쬐며 눈을 감았다.

* * *

“깨어났구만.”

“아….”

눈뜨자마자 보이는 얼굴이 덥수룩한 수염의 드워프라니….

그동안 방을 함께 썼던 귀여운 노반이라든가, 시간에 상관없이 선명하게 잘생긴 젠이 아니었어서 나쁜 의미로 심장에 무리가 온 것 같다.

덕분에 빠르게 정신을 차린 뒤, 나를 덮고 있는 모포를 끌어 내리고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다.

동굴 안은 아직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로 밝았고, 젠은 밖으로 나갔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셀비스는 아침 준비, 마린과 노반은 동굴과 바깥을 오가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구나.

“자, 이건 날 구해 준 보답이다. 까딱하면 이 음침한 동굴에서 요절할 뻔했지, 뭐야.”

자신의 검을 선물로 줄 정도면 최소 장로급이라고 하지 않았나? 요절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나는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드워프가 내미는 작은 단검을 받아 들었다.

보석하나 박혀 있지 않은 하얀색의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유려하게 다듬어진 선이 어딘지 모르게 홀린 듯 바라보게 된다.

“한번 뽑아 봐.”

단검을 뽑아 보라는 드워프는 동굴의 빛을 내고 있는 모닥불을 꺼트렸다. 덕분에 아침을 준비하던 셀비스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냄비를 든 채, 밖으로 나갔다.

나는 셀비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드워프의 말대로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그러자 달빛을 수놓은 듯한 푸른빛이 동굴을 환하게 밝혔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냄비를 들고 가던 셀비스도 깜짝 놀라 뒤돌아볼 정도로 밝고 아름다운 빛이었다.

“드래곤의 날개뼈로 만든 단검이다. 다른 것들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긴 하지만, 인간들이 만드는 웬만한 무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지.”

드래곤?

나는 놀란 마음에 천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저기 있는 드래곤?”

“저 드래곤은 아직 안 죽었어. 곧 죽을 때가 되긴 했지만.”

저 드래곤은 남들이 자신의 죽음을 점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저 드래곤은 곧 죽을 거라느니, 뭐니…. 내가 드래곤이었으면 속이 많이 상했을 거다.

“이건 다른 드래곤이야. 자세한 건 잘 몰라. 받을 때는 뼈만 남아있었으니.”

드워프는 자신이 처음 드래곤의 뼈를 만졌을 때 느꼈던 감정을 줄줄이 설명했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영감이 차오르는 기분, 다시 태어난 기분, 무언가 대단한 걸 만들 것 같은 기분 등등 엄청나게 감동받았다고.

“그랬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드워프의 말에 호응을 해 줬고, 드워프는 신이 나서 자신의 무기가 잔뜩 들어 있는 보따리를 가져와 하나하나 설명을 해 줬다.

‘이건 내가 처음 만들었던 활, 엘프한테 뺏길 뻔했지만 다행히 잘 사수했지.’ 그리고 ‘이건 오우거로 만든 방패야. 아주 가볍지? 이렇게 만들려고 몇 번을 때렸는지 몰라.’라며 자랑을 했고, 그만큼 무기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대단한 것들이었다.

“진짜 대단하다.”

“앞으로는 이것보다 더한 걸작을 만들수있어.”

드워프는 곧 영면에 처할 드래곤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드래곤은 뼈, 가죽, 치아, 심장 등등 버릴 곳이 없다는 드워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그때, 정찰하고 온 듯한 젠이 내게서 드워프에게 삼각 원통으로 보이는 붉은색의 가죽 모자를 내밀었다.

“떨어졌다는 게 이건가요?”

“맞아! 고마워. 덕분에 한숨 놓겠구만.”

드워프는 젠에게서 모자를 건네받고 머리 위에 썼다.

저러니 진짜 난쟁이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이 모자가 없는 드워프는 드워프라 할 수 없지.”

드워프는 모자를 눌러쓴 채 신이나 동굴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남아 있는 젠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덮고 있던 모포를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검집은?”

나는 젠이 드워프에게 새로운 검집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젠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검집은 두 동강이 났던 그 검집을 이어붙여 조금 수리했을 뿐이었다.

저래선 몇 번 치면 다시 쪼개질 텐데.

불안하다는 내 마음을 알아챈 젠이 드워프가 했던 말을 전했다.

“검집과 검은 한 몸이라더군요.”

“아…”

“이 검에 맞는 새로운 검집을 만드는 건 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해서, 아예 새로운 검을 받았어요.”

응…?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거야?

예상치 못했던 결과에 놀라는 내게, 젠은 드워프에게 받은 새로운 검을 보여 줬다.

새하얀 검집 위로 깃털 모양으로 투명한 보석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마치 한 마리의 백조 같은 우아한 검집이었다.

검집에서 뽑아낸 검은 새하얗고 아름다운 검집과 상반되는, 짙은 어둠으로 물든 흉흉한 날이 서 있었다.

“이 언밸런스함은 뭐지?…”

“부조화스럽다는 뜻이죠?”

“응…, 진짜 희한한 검이네.”

겉은 하얗고, 속은 검다. 그렇다면 색이 더 선명하게 보여야 하는 게 맞는데, 이 검은 검집과 검의 색이 다르다는 위화감이 특별히 들지 않았다. 의식을 하지 않고 보면 똑같은 느낌이었다.

젠은 내 시선을 뺏은 검을 잠시 바라보곤 다시 검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왕국까지 가는 길이 뚫려 있더라구요.”

“응, 출발해야지.”

나는 젠의 검에서 시선을 뗐다,

젠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동굴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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