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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201화 (201/227)

201 로웨나 왕국으로 향하다 (10)

“저 사람을 나한테 주면 알려 줄게!”

공주의 손끝에는 젠이 있었다.

공주 때문에 짜증이 솟구쳤던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난 후,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젠을 마음에 들어 하는 듯한 공주는 젠을 바라보며 꿈에 빠진 소녀의 모습으로 재잘거렸다.

“정말 대단했어! 저 징그러운 것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는 모습에서 심장이 쿵쾅거렸어. 그동안 저것들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강한 사람을 좋아하거든.”

“….”

“아. 그런데, 너 앞에 머리 가린 것 좀 자르면 안 돼? 아까 슬쩍 보니 엄청 잘생겼던데. 힘도 강한 사람이 잘생기기까지 하다니 최고다! 내가 바라던 왕자님에 딱 맞아!”

“….”

“고대 생물이 있는 곳을 알려 달라고 했지? 얼마든지 알려 줄 수 있어. 나도 이제 재미없어졌거든. 대신 저 남자를 줘. 나도 얻는 게 있어야 하잖아.”

공주는 눈치도 없는지,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멍청한 소리를 했다.

더 못 들어주겠다. 나는 차게 식은 눈으로 공주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게 아닌데 말이야. 제 주제를 알아야지.”

“…!”

내 말을 똑똑히 들은 공주는 이런 무례한 말은 처음 들었다는 듯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이며 기가 찬 듯 탄식을 냈다.

나는 공주의 입에서 또 개소리가 나오기 전, 위압적이게 말했다.

“내가 너한테 준 선택지는 곱게 실토하거나, 뒤지게 처맞고 실토하는 거야.”

주제넘게 누굴 넘봐.

나는 싸늘한 눈빛으로 공주를 바라봤고, 공주는 내 눈빛에서 오한을 느꼈는지 몸을 작게 떨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못 할 말 했어?! 난 로웨나 왕국의 공주로서… 히익!”

나는 공주의 쌉소리를 더 이상 들어줄 생각이 없다.

저 여자의 입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내 뒤에 서 있던 셀비스가 공주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날카로운 단검은 공주의 볼을 스치고 바닥에 박혔다.

공주의 뺨에 생긴 얇은 상처엔 피가 흘러내렸고, 공주는 덜덜 떨면서 셀비스를 바라봤다.

“무, 무례하긴…! 너희가 날 이렇게 대하는데 내가 말할 것 같아?!”

“네가 말 안 하면 어쩔 건데.”

“말 안 하고 죽을 거야!”

공주는 셀비스가 던진 단검을 주워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댔다.

그녀의 손은 덜덜 떨렸고, 동공은 세차게 움직였다.

죽을 용기도 없는 게 죽는다고 설쳐 대는 게 웃겼다.

“그럼 죽어.”

공주는 내가 자신을 말리 거라 생각했는지, 예상하지 못한 답을 들은 듯 당황해했다.

“지, 진짜 죽을 거야! 내가 죽으면 그곳으로 가는 방법도 사라지는 거야!”

“방법이 왜 없어. 네 몸이 필요한 거면, 네 시체만 들고 가도 될 거 같은데.”

내 말을 들은 공주는 자신의 시체를 들고 로웨나 왕성을 돌아다니는 우리가 상상됐는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이 무슨 잔인한 소리를…! 그 짐승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내가 안내해야 한다고! 내가 없으면 그곳으로 못 가!”

“네가 없으면 못 찾는 곳이야?”

“당연하지! 로웨나 왕성이 얼마나 넓고 비밀스러운데! 절대 못 찾아!”

공주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숨겨진 문을 통해 들어가야 하나 보다. 당연하게도 그곳은 공주만 알고 있고.

공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런 공주를 바라보며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성을 무너트리는 것보단, 네가 실토하는 편이 나으니까 살려 둔 거야.”

“성을 부순다고?!”

“그래, 하나씩 부수다 보면 나오겠지.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이면 충분해.”

“….”

“걱정 마. 네 시체는 무너진 잔해 밑에 잘 깔아 둘 테니까.”

스산한 내 말에 공주는 손에 든 검을 자신의 목에 바짝 붙인 뒤 말했다.

“마, 마지막 기회야! 잘 생각해!”

조금 강하게 누르고 있는 건지 공주의 목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런 공주의 눈을 빤히 바라봤고, 공주는 얼른 말려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뭐 저런 멍청이가 다 있지. 라이언 황제는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게 분명하다.

페모스토프 공작도 그렇고, 이 공주도 그렇고…. 어쩜 이리 하나같이 바보 같고 띨빵한지.

엄청나게 긴장했던 시간들이 아깝다.

맥 빠지네….

아. 근데… 쟤가 혼자 쌩쇼 하다가 죽게 되면 내가 죽인 게 되는 건가?

‘문제없어. 네가 쟬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쟤 죽을 생각도 없어 보여.’

혹시라도 철수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을 때, 좀비들을 살피고 있던 철수가 내 걱정을 눈치채고 말했다.

문제없으면 됐지.

“너야말로 잘 생각해. 여기서 혼자 뒤지든지, 조금이라도 오래 살 건지.”

그나마 자신을 상대해 주는 내가 자신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다급해진 공주는 내 뒤에 있는 셀비스와 젠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셀비스에게 공주는 자신의 부모님과 여러 사람들을 죽이고 유린한 원수와도 다름없기에 죽어 주면 고마울 따름이고, 젠은 나보다 더 사람 목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소용이 없다고 느낀 공주는 들고 있는 단검을 내려놓은 뒤, 고개를 숙였다.

“진짜 짜증 나…. 너 같은 계집애는 저런 사람이랑 멋지게 살고… 나는 아무도 없는 이런 곳에서 혼자….”

아, 내가 여자인 줄 알았나 보네.

그럼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건가?

“너 내가 누구인지는 알아?”

“…그러게. 너 누구야?”

공주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이걸 진짜 어떡하지….

“나는 세네카의 4황자야.”

“아… 그 만나게 되면 죽이라던… 아니, 뭐?! 당신 남자였어?! 말도 안 돼!!”

공주는 내가 세네카의 황자인 것보다 남자인 게 신기한 건지, 이상한 장난치지 말라면서 소리쳤다.

“남자 맞아.”

나는 턱을 들어 목젖을 보여 주며 말했다.

밖으로 몰래 나가야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의심을 덜 살 만한 여인의 모습을 하고 나갔었다.

그때마다 마린이 말하길, 전부 다 완벽한데 이 목젖이 거슬린다고 이야기했었다.

여성은 목젖이 두드러져 있지 않다면서, 스카프로 가리거나, 레이스가 달린 모자로 얼굴과 목을 가렸었다.

“와….”

공주는 내 얼굴을 보며 넋을 놓았다.

여자라고 생각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으면서, 내가 남자라고 하니 볼도 조금 붉어진 듯했다.

“내 얼굴이 마음에 들어?”

나는 공주를 향해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도 마음에 들어.”

나는 공주를 바라보며 예쁘게 웃었고, 공주는 내 미소에 놀랐는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 없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래, 갖고 싶지는 않았구나….

이해한다. 나는 사용하기보단 관상용이 어울리니까. 그 마음 알지.

나는 아직도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공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내해 줘. 얼른 끝내고 싶거든.”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내 말에, 공주는 반쯤 저항하기를 포기한 듯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한숨을 푸욱 쉬곤 우리에게 따라오라 말했다.

공주는 아까 전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 뒤로 가서, 큰 용이 그려져 있는 로웨나 왕국의 국기를 넘겼다.

그 뒤를 따라가자 밑으로 향하는 지하실이 보였다. 이런 허접한 비밀통로로 못 찾을 거라니 뭐라니 했던 거야?

나는 공주를 바라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공주는 부끄러운 얼굴로 밑에 더 복잡한 길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공주의 뒤를 따라가지 않은 채 잠시 고민을 했다.

“미르 님.”

따라오지 않는 나를 걱정한 젠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그에 내게 가까이 온 젠이 부드럽게 말했다.

“노반 때문인가요?”

젠은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는지 바로 알아맞혔다.

나는 조심스러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린에게 안겨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노반과 눈을 맞췄다.

저 초롱초롱한 눈을 보자니 더욱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이 밑으로 내려가면 노반의 가족과 친구들이 나올 거다. 아마도 처참한 모습이겠지. 그런 모습을 노반에게 보여 주는 건 싫지만, 그렇다고 숨기기에는 노반에게 못 할 짓이라고 생각한다.

“노반도 조금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아요. 본인 입으로 꺼내기 싫은 것뿐이에요.”

젠은 내 손을 꼭 잡아주며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피하면 안 되겠지.”

“저래 보여도 강한 아이니 괜찮을 거예요.”

나는 젠의 말에 용기를 얻어 노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노반을 향해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노반, 지금부터 보게 될 상황은… 노반이 많이 놀랄 수 있어.”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노반에게 말해 줬다.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전했다.

세네카의 황제가 드로이프의 마을을 그렇게 만들고, 이곳에서 끔찍한 실험을 하고 사람들을 저렇게 만들었다고.

노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하자 목이 막혀 왔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 노반은 얌전히 나라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빨리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고개 숙여 노반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노반은 마린의 품에서 뛰어나와 내 품 안으로 쏙 안겼고, 나는 갑자기 안겨 온 노반을 꼭 안아 줬다.

그러자 노반은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아기를 다루듯 천천히 두드려 줬다.

“컁.”

그리고 강인한 목소리로 ‘컁’ 하고 울었다.

자신의 마음이 더 복잡할 텐데, 내가 신경 쓸까 봐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마음이 너무 예뻤다.

젠의 말대로 노반은 내 생각보다 강한 아이였다.

“많이 컸네. 이 몸만 보면 기분 나쁘다고 짖어 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은근슬쩍 노반을 바라보고 있던 철수가 말했다. 그에 노반은 철수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고, 철수는 하하 웃으며 젠의 뒤로 빠졌다.

“저기… 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그때, 비밀통로 앞에서 가만히 우리를 보고 있던 공주가 말했다.

그런 공주에게 셀비스와 마린은 입을 다물라고 눈치를 줬다. 공주는 자신보다 낮은 신분인 자들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난 듯했지만, 이길 수 없다고 체념한 것인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잠시 공주를 바라보다 노반에게 말했다.

“노반 준비됐어?”

“컁.”

노반은 조금 긴장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당당하게 내뱉었다.

나는 그런 노반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 공주를 바라봤다.

“앞장서.”

내 말에 공주는 입술을 구긴 채 비밀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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