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교황청으로 가다 (2)
“교황님은 오른쪽 탑에 계실 겁니다.”
율리우스는 쌍둥이 탑의 오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왼쪽 탑은 다른 사제들이나 방문인들에게도 열려 있지만, 오른쪽 탑은 교황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다.
“보물창고겠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건 숨겨야 할 게 많다는 뜻이다.
얼마나 많이 해 처먹었으면 탑 하나를 통째로 가지고 있냐.
“내 생각인데, 교황은 독이 잔뜩 오른 황소개구리처럼 생겼을 것 같아.”
“황소…개구리요?”
“응.”
내 이야기를 들은 율리우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건 좀…’이라며 말을 흐렸다.
황소개구리가 아니면 야비하고 징그러운 뱀이겠지.
나는 머릿속으로 탐욕스러운 교황의 이미지를 그려 놓고, 탑 안으로 들어갔다.
“의외로 평범한 탑이네요.”
젠의 말대로 이 탑은 특별한 것 하나 없는 그저 그런 탑이었다.
부의 상징인 그림이라든가, 도자기 등등의 값이 나가는 것들이 늘어져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탑에는 신을 섬기는 물건들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
갈림길이 나왔다.
위로 올라가야 할지, 밑으로 내려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율리우스에게 묻자,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저도 잘 모릅니다.”
“….”
“이곳은 사제들에게 허락된 방이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 단 한 번도 발을 들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율리우스의 표정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너 수석 사제인가 뭔가라고 하지 않았어?”
“이곳은 수석 사제조차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곳입니다.”
오로지 교황밖에 들어갈 수 없다며, 율리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된 이상 둘둘로 나눠서 한 팀은 지하, 한 팀은 지상으로 가서 교황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나랑 젠이 올라갈게. 너희 둘은 밑으로 내려가.”
나는 젠과 함께 올라가는 쪽을 택했다.
보통 보물은 지하에 숨겨져 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사람은 지하에서 살지 못한다.
우리의 목적은 보물이 아니라 교황이다.
그러니 보물보다는 교황을 잡는 게 먼저다.
“혹시 교황을 발견하면 기절시켜 줘. 공주처럼 의식이 없는 채로 끌고 가자.”
과격한 내 말을 들은 율리우스는 상상할 수 없는 답변이었다며 입을 떡 벌리고 놀라 했고, 셀비스는 별일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
나는 율리우스보다 믿음직한 셀비스에게 작게 미소를 짓고는 젠의 손을 잡고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걸었다.
계단은 상층부까지 쭉 뚫려 있었는데, 가장 높은 층에 도달하고서야 교황의 방으로 보이는 문이 나왔다.
“안에 사람이 있으니 조심하세요.”
“응.”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조심하라는 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내 대답을 확인한 젠이 문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나타난 방은 그저 평범한 침실이었다.
특이점이 있다면 전혀 교황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핑크빛 머리카락의 미청년이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뿐.
“넌 뭐야.”
미청년은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젊다 젊어, 내가 이 날씨에 저렇게 입으면 입 돌아가는데.
저 생기 넘치는 청년이 교황일 리는 없고, 진짜 교황은 어디 있어?
나는 청년을 향해 정체가 뭐냐고 물었고,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와 젠을 번갈아 보며 살폈다.
말을 못 하는 친구인가?
“교황은 어디 있어?”
나는 미청년의 눈을 바라보며 교황이 어디 있냐고 물었고, 내 질문을 들은 그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방의 오른쪽 모서리를 향했다.
그 시선을 놓치지 않은 젠이 서둘러 방의 오른쪽 모서리를 살폈다. 곧이어 바닥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기 힘든 손잡이를 찾아냈다.
“아무래도 비밀통로가 있는 것 같네요.”
젠이 손잡이를 잡자, 오래된 중첩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너지진 않는지 잠시 안전을 확인한 젠은 잡은 손잡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젠이 그 안을 살필 동안 나는 혼자 떨어져 있는 미청년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조금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교황을 찾는 우리를 말리지 않았다.
교황의 사람이라면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말을 한다든가 말리는 시늉이라도 했을 텐데.
나는 미청년에게 가까이가 그의 눈을 바라봤다. 연한 초록빛의 바다가 들어있는 듯한 그의 눈빛은 아주아주 선량했다.
잠시 잊고 있던 누군가와 닮았다.
“너 교황이랑 한패야?”
내 물음에 미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교황이 어디 있는지 알아?”
그에 미청년의 시선이 확실하게 젠이 살피고 있는 통로를 향했다.
이건 대놓고 알려 주는 거나 다름이 없는데?
이 미청년이 교황과 한패가 아니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젠이 보고 있는 저 안에 교황이 있어야 한다.
나는 비밀통로를 살피고 있는 젠을 바라봤다. 젠은 그 안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나는 경계를 하며 젠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열려 있는 비밀통로의 안을 보았다.
“… 통로라기보단 그냥 숨는 곳이었구나.”
다람쥐가 나무 구멍 안으로 들어가듯,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가는 작은 공간에 교황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박혀 있었다.
“이거 살아는 있는 거지…?”
“네, 숨은 멀쩡하게 쉬고 있어요.”
“근데 왜 아무 반응이 없지?”
나는 쪼그려 앉아 교황의 어깨를 쿡쿡 찔렸다. 하지만 교황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고, 손가락 끝에 힘을 담아 찌르자 그제야 움찔하며 반응을 보였다.
“창피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
하긴, 이미 클 대로 큰 어른이 이런 곳에 박혀 있는 게 창피하지 않으면 수치심이 없는 거지.
“네가 교황이야?”
“그, 그렇다….”
빙고.
교황이냐는 내 물음에, 남자는 자신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당연하게도 그의 목소리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이 담겨 있었다.
혹시….
“거기 낀 거야?”
“…… 그렇다.”
끼었단다.
청소년 하나도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좁은 곳에 어떻게든 숨어 보겠다고 비집고 들어간 꼴이 너무 우스꽝스럽다.
나는 교황의 꼴을 보며 웃음이 나오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교황의 앞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푸하하!!! 이런것도 교황이라고, 진짜 너무 웃기네!”
너무 웃어서 그런가, 눈물이 찔금 흘렀다.
라이언 황제는 정말 보는 눈이 없구나. 처음부터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저게 진짜 교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교황이 아니어도 칭찬은 해 줘야겠다. 오랜만에 배를 잡고 웃을 정도로 웃겨 줬으니까. 교황이 아니라면 개그맨이 아닐까?
“교황, 내가 누군지 알아?”
“4황자 그대가 들어오는 것은 창문 너머로 보았다. 그대를 조심하라는 경고도 받았었지.”
나인 줄은 알고 있었구나.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
“경고도 받았으면서 왜 안 피했어?”
“도,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교황의 말에 침대에 멀뚱히 앉아 있는 핑크 머리 색의 남자를 바라봤다.
쟤 때문인가.
“설마 더러운 짓을 한 건 아니겠지?”
나는 경멸의 표정을 지으며 교황에게 물었고, 교황은 크게 역정을 냈다.
“저 아이는 4황자가 생각하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심적으로 많이 아픈 아이란 말이다!”
나는 교황의 말에 미청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아파?”
그에 미청년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민을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못 하는 거구나.
아니, 그럼 교황이랑 말이 다르잖아. 말을 못 하는 건 육체적으로 아픈 거지 심적으로 아픈 게 아닌데.
아, 혹시 엄청난 충격을 받고 실어증으로 말을 잃은 건가? 그런 거라면 말이 된다.
“언제부터?”
나는 미청년을 바라보며 물었고,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 손가락으로 8살부터라고 표했다.
“사고 같은 충격받을 일이 있었어? 아니면 갑자기 말이 안 나오는 거야?”
내 물음에 미청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목이 찌릿하며 아파 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안 나왔습니다.]
아아. 그럼 단순히 성대 문제일 가능성이 큰데. 이게 신력으로 정화되고 그러는 건가?
“마법사한테는 가 봤어? 치유 마법을 쓰면 나을지도 모르는데.”
내 질문에 미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음 장을 넘겨 무언가를 또 써 내려갔다.
[저는 테네트 왕국의 사람입니다. 마법사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테네트는 프레오나 쪽 왕국이다. 그러니 마법사를 볼 일이 없지.
“내가 네 목을 만져도 될까?”
나는 미청년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고, 미청년은 허락의 뜻으로 턱을 들어 목을 내어줬다.
“<큐어>.”
나는 미청년의 목을 잡고 치유 마법인 큐어를 사용했지만, 그에겐 아무 효과도 없었다.
“음… 루트를 바꿔야 하나…. 너 몇 살이야?”
내 질문에 미청년은 올해 들어 스물둘이 되었다고 필담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미청년의 목 위에 손을 올린 채, 시간을 돌리는 마법을 썼다. 8살 때부터 목소리가 안 나왔다고 했으니까… 적어도 여유 있게 15년 전으로 돌린 뒤, 큐어 마법보다 더 강력한 상위 마법을 사용했다.
5분간 마나를 불어넣고 있자, 미청년의 눈이 커지며 긁는 목소리를 냈다.
“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 봐.”
“그… 제…가….”
“잘한다.”
나는 내 안에 있는 마나가 전부 동날 때까지 불어넣었다.
내 안에 있는 마나가 전부 소진되자, 쇠를 긁는듯한 미청년의 목소리가 슬슬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제… 목소…리가 나옵니다.”
“다행이네.”
나는 미청년을 향해 따듯한 물을 많이 먹으라고 한 다음 목에 좋은 음식들을 알려줬다.
“너는 성대가 약하니까 평소에도 잘 챙겨줘야 돼.”
그리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목캔디 대용으로 만들어놨던 환약을 건네줬다.
우리 노반이 좋아하는 건데….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미청년은 내게 이야기를 하다, 내 뒤에 있는 젠을 바라보곤 화들짝 놀랐다.
왜 그런가 해서 뒤를 돌아봤더니, 젠은 미청년을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대가 없이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내가, 오늘 처음 본 미청년에게 이렇게까지 해 주는 게 거슬리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치료해 주고 싶었다. 그의 선량한 눈에서 날 살려줬던 그 형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나가 몸속에서 전부 빠져나간 기분도 나쁘지 않고.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미청년을 바라봤고, 미청년은 그런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 뒤, 아직 잘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왕세자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훗날 황자님께서 저희 왕국에 들러 주신다면 성심성의껏 대접하겠습니다.”
응? 왕세자?
나는 잠시 멍하니 미청년을 바라봤고, 미청년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니까… 방금의 나는 테네트 왕국의 왕세자에게 아주 큰 빚을 지워 놓은 거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