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교황청으로 가다 (4)
세네카 황성과 가까워지던 중, 젠이 잘 가던 마차를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불화살이 날아왔다.
“무슨…!”
미리 예견하고 있었는지, 놀란 나와는 다르게 젠은 바로 허리춤에 찬 검을 빼내어 오러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 뒤 허공에 딱 한 번 검을 긋는 것으로 무수히 날아오는 화살들을 튕겨 냈다.
저게 뭐야….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불화살이 날아온 것보다, 검으로 만든 바람으로 불화살을 아작 내 버린 게 더 신기하다.
살아 있는 생물을 빠르게 베는 건 봤어도, 소설에서나 볼 법한 기술을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마차를 빗겨 간 화살은 흙바닥으로 떨어졌고, 화살촉에 붙어 있던 불은 꺼졌다.
“마차 안으로 들어가 계세요.”
젠은 상황을 확인하러 밖으로 나온 나를 마차 안으로 들여보냈다. 젠에게 떠밀려 마차 안으로 들어가려던 와중, 이번엔 돌덩이들이 날아왔다.
나는 화살과 돌덩이의 출처를 확인하려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공성기나 궁사는 보이지 않았다.
활이나 투척 무기를 쓰지 않고 불화살과 돌을 던지고 있다면…
빌어먹을 마법사들.
아직도 라이언을 따르는 마법사들이 있는 거야? 마탑에서 그 사달을 겪었는데?
나는 젠이 나를 보고 있지 않은 틈을 타 서둘러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나를 꺼냈다.
필릭스가 없이 마나를 혼자 마셔 본 적은 없지만, 내 몸은 점점 철수와 동화되어 가는 중이라 이걸 마신다 해도 크게 아프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아파도 죽기야 하겠어?
나는 뚜껑을 열어 마나를 단숨에 마셨다.
마나가 몸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목에서 찌릿함이 느껴졌다. 곧이어 목구멍이 쥐어짜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죽을 고통까지는 아니다. 그저 배를 뒤집어 까고 바닥을 구르고 싶은 아픔 정도였다.
“흐윽…!”
나는 젠이 듣지 못하도록 숨죽여 비명을 삼켰다. 그에 깜짝 놀란 율리우스가 괜찮냐고 물었지만, 나는 고통을 참는 데 급급해 그에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내 상태를 확인하고 다급해진 율리우스는 밖으로 나가 젠을 부르려 했다.
미쳤냐, 절대 안 된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율리우스의 옷을 잡아챘고, 젠에게 알리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젠에게 알리지 말라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밖으로 나가려던 율리우스는 움직임을 멈췄다.
“제, 제가 어떻게 해드려야…!”
“괜, 찮으니까… 가만히….”
“그치만…!”
“소란 피우지 마. 밖에, 흐… 다 들릴 거야….”
한 손에는 덜덜 떨고 있는 율리우스의 손목을, 한 손은 고통스러운 내 목을 잡고 몇 분이 지나자, 목에 가해지던 극심한 고통은 점차 견딜 수 있는 고통이 되었다.
별거 아니네.
처음 필릭스와 함께 겪었던 고통이 지금 느끼는 고통보다 힘겨웠다.
그러고 보니 철수와 계약해서 얻은 이점이 꽤 많다.
불의 정령 버프로 불에서 죽지 않지, 불의 정령과 감화되서 전보다 몸이 강해졌지, 그리고 불의 정령왕이랑 아주 친하다. 덕분에 좀비들도 위기 없이 처리가 가능했다.
이 정도면 철수보다 내가 더 이득을 본 거 아닐까?….
철수와 계약할 당시에는 정령계와 중간계의 틈을 빠져나가기 위한 방법이 계약뿐이었다. 그래서 했던 것뿐인데, 그때 그렇게 계약을 맺은 게 지금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황자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너 괜찮은 거 맞아? 얼굴이 막 하얘지고 곧 죽을 것처럼 보였어.”
“내, 내 주머니에 성수가 있을 테니 꺼내 마셔라.”
진이 다 빠진 내 맥을 짚는 율리우스와 묶여 있는 공주, 그리고 교황까지 내 상태를 걱정했다.
저 묶여 있던 두 명은 아까까지 자는 척하고 있었으면서… 내가 아파 보이긴 했나 보다.
“난 괜찮으니까 젠한테는 비밀이야. 말하면 죽는다.”
율리우스는 알아서 입단속을 할 테고, 공주와 교황은 따로 말을 해 둬야 할 것 같았다.
“그, 그래도 아픈 거라면 당장 치료를….”
공주는 아무래도 좋은지 멀뚱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고, 교황은 아직 핏줄이 가시지 않은 내 목을 바라보며 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나는 교황의 말을 무시한 채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너희한테 재갈을 안 채운 걸 고맙게 여겨.”
다른 놈들 같았으면 시끄럽다고 입부터 막았어. 알어?
살벌한 내 눈빛에 마차 안에 있는 애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까지 저놈들이 떠들면 물리적인 행동으로 기절시켜 재우겠다고 협박했고, 저들도 맞고 싶진 않을 테니 특별히 재갈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까지는 본인들이 알아서 자는 척을 하고 있었고, 지금은 마나도 채웠으니 입을 나불대려고 하면 수면 마법을 이용해 바로 재우면 그만이다.
“얌전히 있어. 바깥에서 화살이랑 돌 날아오더라.”
내 말에 겁을 집어먹은 공주와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봐라, 교황. 황제는 널 살려 줄 생각이 없어.
나는 교황에게 비소를 날리고 마차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짜 맞춘 것처럼 우리 쪽을 향해 큰 돌덩이 하나가 날아왔다.
마차만큼 큰 돌덩이를 마법으로 조정해서 그런지 날아오는 속도가 느려 피할 여유는 충분했고, 나는 가만히 폭파 마법을 써야 하나 해체마법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했던 고민이 무색하게, 날카롭고 검은 검이 내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푸욱- 소리가 나며 무언가를 강하게 찔렀다.
그러자 내게 돌진하던 돌덩이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놀란 마음에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하니, 젠의 앞에 검은 로브의 마법사가 쓰러져 있었고, 젠이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검이 사라졌다.
아마도 내 옆으로 던져진 게 젠이 던진 여분의 검이고, 그 검에 돌덩이를 조종하던 마법사가 찔렸나 보다.
“미르 님, 밖은 위험하니 안으로 들어가 있으세요.”
젠은 내 곁으로 다가와 던졌던 여분의 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들어가라고 했다.
들어가는 것보다 밖에서 젠을 보고 있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너만 보내기 불안해서 그래… 나도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고, 젠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방해 안 할게.”
나는 나를 보호하려는 젠의 팔을 잡으며, 함께 있겠다 말했다.
간절한 내 얼굴을 바라본 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자신의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말라는 약속을 내게 받아냈다.
“거의 다 잡았으니, 한두 명만 처리하면 황궁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젠은 숨어 있던 마법사들을 거의 찾아내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에 주위를 돌아보니,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오지게도 많네.
“나머지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보여?”
마법사는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니 감이 정확한 사람만이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젠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색을 볼 수 있으니, 아무리 몸을 숨기고 있는 마법사라도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
“동쪽에 한 명, 남쪽에 한 명 있네요.”
“그럼 내가 남쪽 갈게.”
나는 젠에게 당당하게 말하며 남쪽을 향해 걸으려 했지만, 젠에게 양쪽 어깨가 붙잡혀 가지 못했다.
젠은 나를 바라보며 어림없는 소리라며 혼을 냈다.
“위험해요. 지금은 마법도 못 쓰시잖아요.”
“있어. 라르칸한테는 다 썼다고 했지만, 쪼금은 남겨 뒀지. 내 목숨 같은 마나인데 다 쓸 리가 없잖아.”
자연스러운 내 거짓말에 젠은 나다운 행동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방금 마차 안에서 있던 일을 모르는 게 확실하다.
“그럼 내가 가도 되는….”
그때, 무서운 소리를 내며 검이 허공을 날았다.
마법사 한 명 정도는 나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젠은 내게 맡길 생각이 없는지 다짜고짜 손에 쥔 검을 날려 숨어 있던 마법사를 꿰뚫었다.
저 검은 투척용 검이 아닐 텐데….
“이제 동쪽만 남았네요. 제가 다녀올 테니. 미르 님은 마차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응, 알았어…”
결국 단호한 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젠은 내가 위험할지도 모르는 단 1%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지, 내가 누군가를 상대하러 가는 것을 항상 반대했다.
과보호라니까….
물론 젠이 날 지키려고 엄청난 무리를 하는 건 아니니 괜찮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나는 동쪽에 있는 마법사도 빠르게 해결하고 온 젠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젠, 있잖아….”
“네, 미르 님.”
나는 젠의 눈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넘겼다. 젠은 갑작스레 밝은 빛을 보는 바람에 눈을 찡그렸다.
“만일 날 지키다 네가 다치게 되면.”
“그럴 일 없어요.”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날 지키려다 네가 다치면… 나는 죄책감에 젠을 못 볼지도 몰라.”
거짓말이다. 나는 젠이 손이 없고 발이 없어도 끝까지 붙어 있을 거다.
하지만, 젠이 나 때문에 다치는 건 정말 싫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충격 요법이라도 해 둬야 마음이 편하다.
“정말이야. 나 때문에 젠이 다치면… 생각도 하기 싫어.”
나는 젠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봤다. 태양빛을 받아 더욱 진하게 빛나는 금안은 오늘도 아름다웠다.
아, 진짜 너무 잘생겼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얼굴을 숨기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젠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심각하고 진지하게 잡아 놓았던 분위기가 전부 깨질 것 같았다.
바라만 봐도 광대가 저절로 올라가잖아. 이건 위험하다.
그에 나는 그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떼려 했지만, 젠은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내 손을 감싸 자신의 얼굴에서 떼지 못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하시는 거 알아요.”
밝게 빛났던 그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한 힘에 나는 꼬리를 내렸다.
“… 맞아, 거짓말이야. 내가 널 어떻게 떠나겠어. 그치만…!”
“충분히 조심하고 있어요. 이제는 지금보다 더 조심할게요.”
“….”
“그러니 절 보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젠은 그렇게 말한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젠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조심한다니까… 지금은 그거면 됐다.
나는 불안하다.
황제는 내가 자신을 파멸시키러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를 꺾을 만큼 강한 공격을 하지 않았다.
우리를 습격했던 좀비가 라이언 황제가 생각하는 가장 강한 공격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통하지 않았다.
음침한 황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머리를 조아릴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거다. 그러니 황제는 분명 두 번째 수를 준비하고 있을 거다.
지금처럼 돌덩이나 불화살같이,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 것들을 보내는 게 이상했다. 아마도 우리의 시간을 끈다거나, 좀비의 뒤를 이을 무서운 계획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황제의 계획이 무엇인지 모르니, 세네카 황궁과 가까워질수록 불안함이 커졌다.
나는 다치고 죽어도 된다. 나는 괜찮다. 하지만 젠은 안 돼.
“그동안 많이 지켜져 왔으니까, 이번엔 내가 지켜 줄게.”
나는 눈을 감고 있는 젠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젠이 날 사랑하는 만큼 나도 젠을 사랑한다.
내 모든 수를 써서라도 젠을 지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