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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210화 (210/227)

210 교황청으로 가다 (6)

황제는 꺼림칙하다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쳤다. 그리곤 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이야기했다.

“듣던 대로 영리한 아이가 들어갔구나.”

“….”

“하기야, 네가 했었던 짓들은 그 작은 아이가 할 짓이 아니었지.”

황제는 그간 내가 보였던 모습들은 원래의 4황자가 할 만한 행동이 아니라고 말했다.

당연하지. 그 겁쟁이는 아무것도 못 했을 거다.

지금의 도브로미르가 원래의 4황자와 다른 사람이라는 건 조금만 의심해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저 성격이 바뀐 정도로나 생각할 뿐이지, 악마라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영혼 자체가 바뀌었다는 생각은 못 했겠지.

나는 황제의 말에 시치미를 떼고, 당당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나는 당신의 아들이 맞아.”

물론 버림받고 독립을 한 자식으로서 부양의 의무는 갖다 버렸지만.

나는 당당한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봤다. 내가 원래의 4황자와 바뀌었다는 증거도 없으면서.

어떤 악마와 계약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악마를 불러내 내 정체를 까발리는 순간, 라이언 황제의 말년도 편히 끝나지 않을 거다.

감히 한 제국의 황제가 악마와 계약을 해? 게다가 내가 그간 황제가 벌인 악행들까지 까발려 버린다면 라이언은 여기저기서 탈탈 털릴 것이다.

아주 완벽하다.

마침 이곳엔 사제인 율리우스도 있다. 율리우스가 무사히 살아 나간다는 전제하에, 그가 라이언 황제와 악마가 결탁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면 일사천리다.

아직 청사진일 뿐이지만, 곧 그렇게 될 거다.

나는 황제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네 아들이 맞아. 어디를 어떻게 봐도 네 아들의 모습이잖아.

황제는 뻔뻔한 나를 바라보며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이라… 맞는 말이다. 그 몸은 내가 만들어 준 것이니.”

아, 저놈이 대화가 제대로 통하는 인간이 아니란 걸 까먹었다.

나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봤고, 황제는 단호히 말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관심 없다. 내 아들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면 말이지.”

황제는 내가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의 뜻을 따라 주기만 한다면 상관 없다 했다.

참 희한한 새끼다. 혈통을 중요시하지만 그 내용물은 관계가 없다니….

황제에겐 자식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는 부성애를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너는 내 뜻과 반대되는 짓을 했지. 그것이 너의 잘못이다.”

나는 나보다 더 뻔뻔한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당신 때문에 볼모가 됐어. 프레오나에서 죽을 뻔했지. 그게 내가 해야 할 아들로서의 도리였다면, 이 정도면 내 역할은 다 한 거 같은데.”

“넌 프레오나에서 죽었어야 했어. 네가 살아있는 바람에 우리가 계획했던 일들은 모조리 쓰레기가 됐다.”

황제는 그때의 일을 다시 생각하니 화가 나는지, 찡그린 표정 때문에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네가 죽고 난 뒤, 세네카는 프레오나와 다시 한번 전쟁을 치렀어야 했다. 프레오나의 선황제도 곧 죽었을 테고, 예정대로라면 그 멍청이 황태자가 프레오나를 얻었겠지.”

그랬다면 프레오나는 아주 쉽게 내 손에 떨어졌을 거다.

황제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와 비슷했다. 황제는 프레오나의 몰락을 노리고 있었겠지만, 내가 개입해 준 덕분에 타루스보다 똑똑한 오스먼드가 황좌에 앉았지.

덕분에 프레오나가 망하는 결말은 일어나지 않았다.

라이언 황제는 눈물 뚝뚝이었겠지. 잔뜩 준비해 뒀던 좀비들을 보내서 전부 쓸어 버리고 싶었을 텐데 말이야.

“완벽한 계획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야. 다시 말해, 실패한 시점에서 당신의 계획은 쓰레기였다는 말밖에 안 돼.”

나는 황제를 바라보며 쯧하고 혀를 찼다.

나는 꾸준히 황제를 도발했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황제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어떤 악마가 붙어 있는지 알아야 걔를 부르든가 말든가 하는데….

“당신이 계획했던 일도 전부 틀어지고, 교황도 로웨나 왕국도 전부 바스라졌어.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세네카를 대륙의 유일한 제국으로 만드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지금의 황제는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황제를 내리까는 눈빛으로 보았고, 그에 황제는 당연하다는 듯 엄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비를 거역한 아들에게 벌을 줘야겠지.”

황제의 말이 끝나자, 그의 뒤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나며 어딘가 익숙한 기운이 나타났다.

“뒤로 가세요.”

그 기운을 읽은 젠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뒤로 보냈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검을 뽑고 오러를 둘렀다.

나는 젠의 뒤에 숨어 황제의 뒤에 나타난 존재를 살폈다.

“아.”

얼굴을 보인 그 존재는 나를 바라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후회하게 될 것이라 했었지.”

그 존재는 피보다 더 붉은 눈을 나와 맞추며, 듣기만 해도 서늘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 존재는 내 기억에 있는 악마였다. 그 바퀴벌레가 귀엽다던 정신 상태 이상한 땅딸보.

“넌 여전히 얼굴이 구겨져 있구나.”

“이 천박한…!”

악마는 화가 나는지 검은 구체를 만들어 우리에게 던졌지만, 내 앞에 서 있는 젠이 검에 오러를 넣어 튕겨 냈다.

인간이 악마의 기술을 받아칠 수 있었어?….

이제는 젠이 검을 쓸 때마다 놀라는 것 같다. 마차를 부수는 것으로 시작해 이제는 악마의 공격까지…. 어쩌면 젠은 평범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와, 어떻게 한 거야?”

나는 신기한 마음에 젠에게 물었고, 젠은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다지 강한 공격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오면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젠은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젠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악마를 향해 말했다.

“넌 발전이 없구나. 골라도 딱 저 같은 놈을 고르고… 그냥 영혼만 먹고 튀지 그랬어. 저 황제 놈은 도와줄 가치도 없는 놈인데.”

한심하다는 내 말에, 악마는 실실 웃으며 내가 어리석다 말했다.

“나의 목적은 네 영혼이다. 네 영혼을 취하면 나는 그놈의 위에 설 수 있겠지.”

아, 전에도 그런 맥락으로 찾아왔었지. 나한테 대판 깨지고 돌아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치지도 않나 보다.

“전에도 말했지만 계약은 안 해.”

나는 악마를 향해 새침하게 말했다.

악마는 사람을 홀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원하는 것을 이뤄낸다.

그런 사기 계약따위 할까 보냐. 그놈과 했던 두 번의 계약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악마는 가소롭다는 듯 실실 웃으며 음침하게 말했다.

“네 영혼을 얻을 쉬운 방법이 생겼지.”

쉬운 방법이라니? 그런 게 있었어?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얻기 위해선 계약을 해야 한다. 계약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인간의 영혼을 얻는 게 불가능하다.

이건 악마 본인의 입으로 들었던 거니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난 저 난쟁이한테 계약을 해 줄 생각이 없는데?

“날 죽이러 온 거야? 그럼 영혼도 못 먹을 텐데?”

해맑은 내 말에 악마를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기분 나쁜 웃음을 보내며 악마 특유의 쇠 긁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예언을 하는 것처럼.

“죽음은 네가 아닌 네 옆에 있는 아이가 받게 될 것이다.”

소름 끼치는 악마의 말에 속 안에 있던 무언가가 터지는 기분을 느꼈고, 미소를 짓고 있던 내 표정에 금이 갔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젠의 손목을 잡고 뒤로 끌었다. 그리고 악마를 향해 말했다.

“건들기만 해봐.”

내 경고의 말을 들은 악마는 이 넓은 방이 꽉 차고 남을 정도로 웃었다.

“역시 인간은 약하다. 지키려는 게 많을수록 힘에 겨운 것이지.”

악마는 개소리를 지껄이며 자신의 검은 기운을 황제의 안으로 불어넣었고, 점차 모습이 흐려졌다.

곧이어 모든 기운이 사라졌고, 황제의 눈동자가 그 악마의 눈동자처럼 붉어졌다.

“나는 너를 지켜봐 왔다. 큰 위협이 생겨도 그놈을 부르지 않더군. 다시 말해, 네 스스로는 그놈을 부르지 못한다는 뜻이겠지.”

분명 입을 연 것은 황제가 맞았다. 하지만 황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제 황제는 완벽하게 악마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나는 조용히 악마의 말을 들으며, 혹여나 젠이 튀어나가 황제의 목을 베지 않도록 그의 손을 잡았다.

“그 대악마가 너같은 인간 하나에게 당했다는 건 말이 안 돼. 가당치도 않지. 그래서 나는 네 말이 거짓말인 걸 알게 됐다.”

저 악마는 내게 탈탈 털렸다던 악마의 시건을 그저 거짓말로 치부해 버렸다.

나는 말없이 가만히 그를 바라봤고, 황제의 모습을 한 악마는 기쁨에 표효했다.

“즐거워하거라, 네 영혼은 내가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치워 줄 테니.”

그렇게 말한 황제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의 손안에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뿜어져 나와 우리를 덮치려고 했다.

“인간이 들이마시면 끔찍한 고통을 겪게 하는 맹독이다. 너는 살려 주겠지만 다른 놈들은 틀림없이 고통스러워하다 숨이 끊어지겠지.”

나는 배리어를 만들어 안개가 우리에게 넘어오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안개는 내가 만든 배리어를 뚫는 걸로 모자라, 투명한 막을 태웠다.

“인간들의 마법은 통하지 않아. 악마는 약자에게 절대적이지.”

마법이 소용없다는 말에도 나는 물을 소환해 안개를 가라앉혀 보고, 바람을 불어 안개를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악마의 말대로 단 한 개의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독안개는 우리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내게 네 영혼을 넘긴다면 네 옆에 인간들은 살려 주마.”

악마는 내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있다.

그의 자신만만한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고, 황제는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그 미소가 더욱 짜증이 났다.

“김철수, 김철수, 김철수, 김철수.”

저 악마가 무슨 짓을 해 놓았는지, 소리를 내어 철수를 불러도 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저 악마가 철수보다 강한 거겠지.

젠장, 저 찌질했던 악마가 정령왕보다 강한 악마였다니. 이건 좀 반전이다.

난쟁이 바퀴벌레 땅딸보 주제에 사람을 성가시게 만든다.

“잠시지만 저,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 내 뒤에 서 있던 젠이 검을 다시 쥐어 잡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 제가 문을 열면 도망가세요.”

젠은 굳게 닫혀 있는 문에서 틈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오래 버티지는 못할 테니, 자신이 문을 열면 철수를 불러 빠르게 도망가라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젠의 표정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아주 작은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검을 잡지 않은 젠의 손을 꽉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널 두고 어떻게 가.”

“저도 잘 도망칠 수 있어요. 그러니 먼저 가 있으세요.”

젠은 자신이 그냥 죽으려는 것이 아니라며, 나 먼저 도망가라고 했다.

전부 티 나는 거짓말이다.

아, 진짜 부르기 싫었는데.

“젠이 희생할 필요 없어… 우린 둘 다 살 거야.”

나는 품에 있던 단검을 꺼내 새끼손가락에 상처를 냈다.

젠의 놀란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머릿속으로 그를 부를 수 있는 소환진을 생각했다. 그러자 바닥으로 떨어진 피가 저절로 움직여 소환진이 새겨졌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쉰 채, 악마를 부르기 위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읊조렸다.

“인간들 중에서 가장 멋지고 똑똑한 주인의 부름에 응하거라. 우주에서 가장 귀엽고 산뜻하며 공포로 악마들을 지배하는 자 아가레스야.”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어 악마의 소환 주문을 듣게 된 젠은 무언가를 잘못 들었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이래서 부르기 싫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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