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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212화 (212/227)

212 교황청으로 가다 (8)

“론웨.”

“히이익!!”

아가레스의 섬뜩한 부름에, 안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 론웨가 두려움에 떨며 요동쳤다.

“답지않게 깜찍한 짓을 했더군요.”

아가레스는 방금까지 나와 이야기하며 보여 줬던 유했던 모습을 지우고, 그와 정반대인 엄격하고 딱딱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더한 공포에 빠진 론웨의 모습은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형체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다.

아가레스가 그렇게 무서운가?

“제 먹이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분명 경고했을 텐데요.”

아가레스는 론웨의 목을 서서히 조이려는지, 벌벌 떨고 있는 그를 향해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가레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발밑에는 피 웅덩이가 생겼다. 그리고 희미하게 고통에 찬 절규가 들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를…!”

론웨는 안개의 모습을 풀고 허름한 난쟁이의 모습으로 돌아와 아가레스의 발밑까지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그의 다리 아래로 머리를 조아려 선처를 부탁했다.

“저는 말을 듣지 않는 멍청이들을 싫어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어리석은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공작님의 먹이에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론웨는 아무 반응 없는 아가레스를 향해 손이 발이 되도록 끊임없이 빌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뭐? 먹이?

“내가 먹이야?”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가레스에게 물었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먹이지. 아주 먹음직스러운.”

아가레스의 말에 나는 질린다는 듯 역한 표정을 지었고, 내 옆에 있던 젠의 표정도 확 굳어졌다.

젠은 나를 자신의 뒤로 당겨 조금이라도 악마들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그렇게 경계할 것 없어, 인간. 어차피 못 먹게 되어 있으니까.”

나는 저 교활한 악마를 한 손으로 다룰 수 있는 조건을 걸었다.

나는 악마의 바람대로 도브로미르가 되어 준다. 그리고 악마는 내 은인을 살려 준다.

그리고 나는 악마에게 내 이름과 그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주는 대신, 악마는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도와야 한다.

횟수는 딱 두 번. 이름과 기억의 대가다.

이 계약이 남아 있는 한, 악마는 내게 다른 계약을 걸 수 없다.

나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아가레스를 보았고, 그런 아가레스는 나와 눈을 마주하며 나긋하게 말했다.

“그대가 우리의 계약을 끝내 준다면, 그대를 먹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보겠다만….”

“다만…?”

“그대 성격에 죽으면 죽었지, 날 부르진 않겠지.”

아가레스는 비소를 지으며 내 영혼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아가레스가 생각하는 나는, 죽을 위기에 처한대도 악마에게 영혼을 뺏기기 싫어 그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이곳에 오지 않았던, 젠을 만나지 않았던 옛날의 나였다면, 아가레스의 말대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가레스는 모른다. 지금의 나는 내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한, 위험에 빠진다면 주저 없이 아가레스를 부를 것이다.

“잘 알고 있구나.”

나는 내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아가레스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에 아가레스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작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가레스의 발밑에는 사죄를 하고 있는 론웨의 형상이 점점 녹아 가고 있었다.

“많이 힘겨워 보이는데, 마계로 돌아가도 좋아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한눈에 봐도 힘이 없는 론웨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아가레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론웨의 절절함에도 아가레스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무시했다.

나는 아가레스에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물었고, 아가레스는 간단히 설명해 줬다.

“악마는 계약자 없이 중간계에 현신하지 못해. 계약자가 있다 해도 이곳에선 본래의 힘의 절반도 못 쓰지.”

악마가 중간계에 오기 위해선 많은 제약이 있다고 했다.

첫째, 계약자가 있어야 한다.

둘째, 현신은 많은 힘이 들기 때문에 계약자의 몸을 빌려야 한다.

셋째, 계약자의 몸을 빌리지 않고 현신을 할 경우, 자신의 힘의 절반도 쓰지 못한다.

“이게… 절반도 안 썼다는 거야?”

나는 론웨와 아가레스가 망쳐 놓은 방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론웨의 안개가 닿았던 곳은 검게 물들어 부식되었고, 아가레스가 밟은 땅은 작은 부스러기들이 진동하며 전부 갈라져 있었다.

이곳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정도로, 이 방의 상태는 엉망 그 자체였다.

내 표정의 의미를 알아차린 아가레스는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듯 부드럽게 말했다.

“만일 내가 계약자인 그대의 몸을 빌린다면 이런 제국쯤이야 날려 버리는 건 문제도 아니지. 하지만….”

아가레스는 내 몸을 빌리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절반 이상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말끝을 늘이다 쓰러져 있는 황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힘을 견디지 못한 그대는 저기 쓰러져 있는 인간보다 더한 꼴이 되겠지.”

황제의 몸에 들어갔던 론웨는 황제의 몸에 맞지 않게 큰 무리를 했다. 덕분에 황제는 피를 토하다 쓰러졌고, 거의 죽어 있는 상태가 된 거다.

“저거 살아는 있어?”

나는 냉소적인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아가레스에게 물었다.

저놈이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데. 죽어도 제가 지은 죄값은 다 치르고 죽어야 한다.

라이언 황제는 자신의 자식을 버리고, 드로이프의 마을을 파괴했다. 그리고 그들을 착취해 금지된 약을 만들었고, 노예와 평민들을 모아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거기에 레이트라의 일까지.

절대 죽음 따위로 쉽게 빠져나가게 둬선 안 된다.

나는 라이언 황제에게 이를 갈았고, 아가레스는 무심하게 말했다.

“론웨는 강한 악마가 아니야.”

한마디로 강한 악마가 들어갔던 게 아니니,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곤 자신같이 강한 악마가 들어갔더라면 뼈도 남아 있지 않았을 거라며, 자신이 내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걸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라 했다.

“저 인간은 적당히 안정을 취하면 깨어날 거야. 어디 하나 망가졌을 테지만, 어쨌거나 살아만 있으면 된 거지.”

아가레스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황제의 몸이 불구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말을 담담하게 했다.

사실 나도 황제의 몸 상태는 걱정하지 않는다.

황제의 팔다리가 마비가 되든, 눈과 귀가 망가지든, 제정신인 상태에서 죗값만 받으면 된다.

아무튼.

“저 악마는 네가 데려갈 거야?”

“어떻게 해 줄까.”

나는 인간인 우리가 처리할 수 없는 론웨를 아가레스에게 떠넘기려 했고, 아가레스는 내 의견을 물었다.

그에 론웨는 나와 눈을 마주쳤고, 아가레스의 다리에서 떨어져 나와 내 앞까지 다가왔지만, 내 옆을 지키고 있던 젠의 검에 막혔다.

하지만 론웨는 젠의 검을 동앗줄을 잡듯이 잡고 내와 눈을 맞춰 내게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했다.

“자, 잘못했다! 내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 제발…!”

아가레스가 얼마나 무서운 놈이기에 얘 얼굴이 이렇게 파랗게 질려서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거냐.

나는 론웨를 한 번 바라보고, 아가레스를 바라봤다.

아가레스는 전적으로 내 의견에 맡긴다는 듯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죽이라 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렇다고 멀쩡하게 풀어 주는 것도 찜찜하다.

그렇다면….

“대신 내 주변에 다른 악마들 못 오게 해. 절대.”

“음?”

내 말을 들은 아가레스는 ‘겨우 그거?’라고 말하며 나답지 않다며 희한해했다. 나는 그런 아가레스의 시선을 피한 채 론웨에게 말했다.

“꿈도 안 돼, 동물을 매개체로도 안 돼. 절대 내 주변에 나타나지 마. 너는 물론 모든 악마들한테 하는 말이야.”

이제서야 내 뜻을 알아챈 아가레스는 소리 내어 웃었고, 론웨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 표정을 구겼다.

“너 지금…!”

“그래,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나한테 찾아오려는 악마들 견제하라고.”

아가레스보다는 못하다지만, 론웨도 아무렴 악마인데 한낮 인간의 뒤를 보라는 소리다.

그것도 내가 죽을 때까지.

“너…!”

론웨는 사죄를 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화가 났는지 미간을 좁히며 소리를 지르려 했고, 나는 아가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하려나 보다. 그냥 네 맘대로 해.”

“그대의 뜻대로.”

아가레스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론웨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강한 힘을 쥐어 목과 분리했다.

“으악!”

나는 뜻하지 않았던 광경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에 아가레스는 론웨의 머리를 내게 들이밀었다.

“원하나?”

당장이라도 갖다 버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론웨의 상체에서 떨어진 대가리가 갑자기 움직이더니 눈을 번쩍 뜨고 말도 하기 시작했다.

“하, 하겠다! 평생 네 뒤를 지켜 주마! 그러니 제발!”

론웨는 머리만 달랑달랑 떨어진 채,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사정했다.

그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동그란 대가리는 좌우로 흔들렸다. 벼락 같은 목소리와 절규를 하는 표정이 압권이었다.

나는 그 징그러운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할 것 같아 젠의 뒤에 숨어 손사래를 쳤다.

“징그러우니까 머리 좀 붙여!”

“인간이란….”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 장면인데.

아가레스는 시시하다는 표정을 하며, 떼어 냈던 론웨의 머리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그러자 론웨의 머리기 꿈틀꿈틀거리며 분리되었던 상체를 향해 굴렀고, 상체와 가까워지자 자석처럼 딱 달라붙었다.

그로테스크의 끝을 본 기분이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의 탑 텐에 든다.

론웨는 바닥에서 겨우 일어났고, 나는 그를 향해 사기 계약을 읊었다.

도브로미르 세네카가 아가레스에게서 론웨의 목숨을 살려 주는 대가로, 론웨는 도브로미르가 건강하게 늙어서 죽을 때까지 다른 악마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줘야 한다.

부당하다 생각하는지 론웨의 이마엔 핏줄이 서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아가레스의 앞이라 그런지 내색하지 않고 계약을 성사시켰다.

글쎄다. 론웨는 부당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절대 부당한게 아니다.

나는 아가레스를 부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 중, 마지막 기회를 사용해 론웨를 없애려고 했다.

그러니 론웨는 내가 자신을 살게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거다.

“으… 끝났으면 얼른 사라져.”

나느 두 악마를 향해 얼른 마계로 사라지라 했다.

론웨는 빠르게 사라진 반면, 아가레스는 사라지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작은 민들레를 보는 듯한 아련한 눈빛을 보내며 나긋하게 말했다.

“알고 있나? 그대는 내가 만난 그 어느 인간보다 영리하고 대단한 인간이야.”

나는 우리 사이에 맞지 않는 오글거리는 말에 잠시 미간을 찌푸려 짜증을 낼까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선하게 말했다.

“답지않게 왜 분위기를 잡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조금 아쉬운 것 같군.”

하하. 작게 웃은 아가레스는 젠의 뒤에 있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아가레스는 자신의 손에 잡힌 내 손을 바라보다, 내 손등 위로 빠르게 입맞춤을 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털었고, 그런 내 손을 잡은 젠은 아가레스에게 입맞춤을 받은 부분을 부드럽게 닦아 줬다.

그냥 이 부분만 도려내도 괜찮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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