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자님 먹고 싶어요-223화 (22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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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마부가 세 명이었다. 잠도 마차 안에서 자고, 화장실도 마차 안에 있어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서 까맣게 몰랐다. 마부가 세 명이나 되니 하루도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거다.

그리고 두 번째, 내 상태를 보러 온 마부를 제외한 두 명의 마부가 살피고 있는 저 여우. 굉장히 낯이 익다.

“노반!!!”

“컁!”

한 마부에 의해 목덜미가 들어 올려져 있는 여우는, 내 부름에 컁! 하고 소리치며 나를 돌아봤다.

노반이 맞다.

향로! 너 불량이 아니었구나! 저 귀여운 여우와 함께라면 이 지루한 빙의를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마부에게 달려가 여우를 건네받으려 했지만, 마부는 위험하다며 노반을 멀리 던지고 온다 말했다.

“그럴 필요 없으니 이리 줘.”

마부는 야생 동물은 위험하다며 안된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달라는 내 단호한 말에 마부는 고민하다 노반을 넘겼다. 나는 승리한 기분으로 노반을 껴안아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아, 언제 도착하냐고 묻는 걸 까먹었다.

“저기, 카르넬 아카데미까지는 얼마나 걸려?”

내 물음에 마부는 죄송하다는 듯 멋쩍어하며 말했다.

“일주일 정도만 더 가면 됩니다. 많이 피곤하시지요?”

“조금만 더 버티시면 도착할 겁니다.”

마부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내게 조금만 더 버텨 달라고 말했고,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마부들을 다독였다.

“나보다는 그대들이 더 힘들지… 나는 괜찮으니 쉬엄쉬엄 가도 돼.”

내 말에 마부들은 활짝 웃으며 신경 써 줘서 감사하다 말했고, 나는 내게 얌전히 안겨 있는 노반을 쓰다듬으며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일주일이나 더 가야 한다고? 염병, 겁나 머네.”

나는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 * *

카르넬 아카데미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노반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내가 아는 노반은 확실하다. 노반은 꼬리에서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 희미하지만 작은 하트모양 점이 있다. 부드러운 하얀 털을 잘 파헤치고 보면 볼 수 있다.

동그랗게 떠진 귀여운 눈도 노반, 날카로운 송곳니로 아프지 않게 무는 것도 노반, 똘망똘망하게 눈을 뜬 채 간드러지는 울음소리를 내는 것도 노반이다. 내 말도 잘 알아듣고 반응도 전부 잘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인간으로 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안 하는 건가?

향로의 한계점인지 뭔지… 인간의 모습인 노반과 대화를 하지 못하는 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만난 게 어디야!

“노반, 우리는 곧 카르넬 아카데미로 갈 거야.”

“컁?”

세네카 궁을 떠나기 전, 나를 배려해줬던 중후한 시종이 가는 길에 많이 심심할 거라며 이것저것 챙겨줬다.

군것질거리는 물론, 책, 악기, 퍼즐, 등등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거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마차 안에 안겨 줬다. 예상해 보건대, 이 책들의 무게 때문에 더 늦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야.”

나는 그 시종이 안겨 준 책들 사이에서 카르넬 아카데미에 관련한 책들을 노반에게 보여 줬다. 관광 책자와 비슷하지만, 교과서와 조금 더 가깝다. 교수의 신체정보와 호불호까지 나와 있을 정도로 엄청 자세하다.

나는 카르넬 아카데미의 모습이 나와 있는 페이지를 노반에게 보여 줬다.

“컁컁.”

“엄청 넓은 것 같아. 거의 소왕국 하나 수준이던데? 아카데미 안에 상점가도 있고 마을도 있고 그렇다더라.”

말만 아카데미지, 아예 다른 왕국으로 가는 기분이다.

황제는 나를 아카데미로 보내 버릴 준비를 진작 끝내 놨었는지, 그곳에서 쓸 교과서와 교복, 그밖에 필요한 준비물을 몇 달 전부터 기숙사 방으로 미리 보내 놨다고 했다.

기본적인 것들은 챙겨 줘서 고맙다 해야 할지, 아님 그렇게 준비를 철저하게 해 놓고 가야 하는 날에 통보해 줘서 어이없다고 해야 할지….

기숙사 들어갔는데 거적때기만 있는 거 아니야? 제 딴에는 잘 챙겨 줬다고 하는 거면 어떡해.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노반을 끌어안은 채 카르넬 아카데미의 정문을 넘었다.

“도브로미르 황자님 맞으신지요.”

마차 밖에서 나를 확인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마차 문을 두드리기에 나는 창문을 열어 밖을 보았다.

창문 밖에는 잘 차려입은 셀비스가 서 있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셀비스는 밖으로 나오라는 듯 문 옆으로 비켜섰다.

내가 열린 문으로 나오자, 셀비스는 고개를 숙여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카르넬 아카데미에서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세르비스라 합니다.”

셀비스, 학생회장이었구나.

평소에는 편한 티셔츠와 바지만 입고 농담도 잘하고, 잘 웃는 모습만 보다가 여기서 이런 진중한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는 묘한 기분으로 셀비스를 바라봤고, 셀비스는 내가 안고 있는 노반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기숙사마다 방침이 다르니 반려동물의 여부는 사전에 미리 알려 주셔야 합니다.”

“아, 미안하네. 나도 예상치 못했던 아이라.”

나는 노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쓱하게 말했고, 셀비스는 노반을 잠시 바라보다 가슴팍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무언가를 휘갈겨 쓴 뒤, 그것을 뜯어 비행기로 접어 허공에 날렸다.

셀비스가 날린 비행기는 허공을 잠시 부유하다 사라졌다.

저게 뭐람…?

나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셀비스가 가지고 있는 수첩을 바라봤고, 셀비스는 내 표정을 읽고 수첩에 대해 말해 줬다.

“마법을 이용한 연락 수단입니다. 아크레나 선생님께서 만들어 내신 거죠. 꽤 편리합니다.”

아크레나 선생님? 아크레나? 그 대마법사?

그 대마법사가 선생님으로 있는 아카데미라니, 조금 기대가 된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현실이랑은 좀 다르게 생겼으려나.

“현재 황자님이 쓰실 방은 반려동물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새로운 방을 찾아 달라 연락했으니, 곧 연락이 올 겁니다.”

“신경 써 줘서 고맙네.”

“이제 아카데미 안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 *

셀비스는 말 그대로 안내만 해 줬다.

넓게 펼쳐져 있는 복도를 걸으며 마법을 공부하는 곳, 검술을 공부하고 연마하는 곳, 세상 모든 책이 다 있다는 도서관, 세상 모든 꽃이 있는 온실, 황국 못지않은 요리사들이 근무하는 학생 식당, 그리고 학업에 지친 학생들을 위한 휴식공간 등등을 소개시켜 줬다.

아쉬운 게 있다면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이라 교실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았고,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만 알려 줬다는 거다.

‘이것은 파스타입니다.’라며 보여 주기만 하고 먹지 못하게 한 느낌이랄까.

“그 외의 장소는 내일부터 아카데미에 적응하면서 알아 가시는 게 좋습니다.”

너무 넓어서 다 소개해 주기도 벅찬지, 그 외에는 알아서 하란다.

내가 알고 있는 현실의 셀비스였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여기저기 구경시켜 줬을 텐데… 이 향로, 오류가 조금 있네.

“새로운 방으로 짐을 다 옮겼다고 합니다.”

셀비스는 어느새 허공에 날아온 종이를 받아 확인하며, 노반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으로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받으세요.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고 계시나요?”

셀비스는 내게 얇은 마법 스크롤을 주면서 사용할 줄 아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쓰던 거였으니까 못 쓰면 바보팅이지.

“네, 그럼 먼저 가 있겠습니다.”

그에 셀비스는 다행이라며 본인의 스크롤을 펼친 뒤 반으로 찢었다.

응?….

나는 방금까지 셀비스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멍해졌다.

이거 순간이동 스크롤이었어…?

나는 놀란 마음 반, 신난 마음 반으로 스크롤을 펼쳐 무엇이 쓰여 있는지 확인했다. 혹시라도 현실 세계로 가서 만들면 쓸 수 있는 거 아닐까? 이런 사기템을 현실에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

“컁?”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케이시가 내게 만들어 줬던 마법 스크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구조지만 적혀 있는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렁이처럼 꼬불꼬불 적혀 있는 게 어느 왕국의 언어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현실이 아니고, 실제 있는 물건도 아니라 인식을 못 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사기 아이템이 있었으면 알음알음이라도 진작 알려졌었겠지.

아마 이것도 아크레나가 만들었겠지? 만날 기회가 있으면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대답을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물어라도 봐야지.

나는 품 안에 있는 노반에게 내 옷을 꽉 붙잡으라 말한 뒤, 아까의 셀비스처럼 스크롤을 반으로 찢었다.

순간이동 마법이 발동되자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어느 왕성 못지않은 성 한 채가 눈앞에 있었다.

“여긴 제 3 기숙사입니다.”

미리 도착한 셀비스가 기숙사를 소개시켜 주며 3 기숙사에 대해 설명해 줬다.

평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숙사처럼 그냥 방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곳은 배가 고프면 언제든지 가서 먹을 수 있는 식당과 매일매일 깨끗하게 유지되는 공용 목욕탕도 있다.

참고로 식당에서 일하는 요리사는 아카데미 본관과 비슷하게 황실에서 인정받은 요리사고, 목욕탕에 푸는 입욕제도 하루는 장미, 하루는 라벤더같이 매일매일 바뀐다고 한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큰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의 수가 많아 봤자 대여섯 명이 전부란다.

장점은 사람이 적은 덕분에 비교적 조용하고, 반려동물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거다. 단점이라면 기숙사에서 아카데미까지 적어도 한 시간은 걸어야 한단다.

그래서 학생들이 없나 보다.

“이 방입니다.”

“고맙네.”

나는 셀비스가 안내한 방 안으로 들어가 대충 고개를 돌리며 방 안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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