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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님 먹고 싶어요-227화 (22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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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크레나의 표정을 살폈다. 침울해 있을 줄 알았던 표정이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기에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제가 향로의 사용자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알 수 있었어. 많은 아이들 중 네가 가장 이질적이었으니까.”

자신의 기억과 사용자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세계라, 디안이 향로를 사용했던 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무언가가 보였다고 했다.

그렇겠지. 내 기억이 들어갔으니, 아크레나에겐 이 세계도 처음 보는 세계였을 테고, 처음 보는 사람도 많았을 거다.

셀비스, 노반, 젠,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많았다.

“그랬군요….”

“디안이 무사하다면 그걸로 됐어. 이 향로를 네게 준 이유도 예상이 가고.”

아크레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체념한듯 말했다. 나는 그런 아크레나를 바라보며 서투른 위로를 했다.

“곧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수명이 다한 건지 뭔지 슬슬 정리하는 것 같더라구요.”

옛날에 묵혀 놨던 술을 찾으러 크로스반까지 오는 것도 그렇고, 향로를 내게 준 것도 그렇고. 마치 삶을 정리하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아, 근데 이게 위로가 맞나?

“표정은 굉장히 편해 보였어요.”

나는 서둘러 말을 붙였고, 아크레나는 내 의도를 알아챈 듯 하하 웃더니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구나.”

아크레나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낮게 말했다.

“내 마지막 힘을 줄게.”

그러자 아크레나 주위에 밝은 빛이 생기더니, 그 빛이 모여 내 안으로 쏙 들어왔다.

빛이 내 안으로 들어오자 속 안에서 무언가가 아프게 끓어오르더니 이내 가라앉았고, 막혔던 코라도 뚫린 듯 속이 시원해졌다.

“한결 낫지?”

아크레나는 내게 무언가를 한 게 뿌듯하고 즐거운 듯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나는 그저 속이 뻥 뚫린 시원한 기분밖에 느끼지 못했다.

“내가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거니? 마법사 맞아?”

아크레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는 부끄러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는 무슨, 마나 생성도 못하는 마법사를 마법사라 부를 수… 어라?

“설마.”

“맞아! 그 설마란다.”

드디어 자신의 업적을 알아 주냐는 듯 아크레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향로 밖으로 나가게 되면, 이제 너도 마나를 생성할 수 있을 거야. 그동안 힘들었겠구나.”

아크레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생했다고 말해줬다.

나는 이제부터 죽은 마나를 마시지 않아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준 아크레나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하려 했지만, 돌연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려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겁을 먹은 내 말에 아크레나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곧 세상이 무너질 거란다.”

예?… 무슨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해요….

“뭐라구요…?”

“네 상태를 고쳐 주고 나면, 더 이상 내겐 남은 힘이 없을 테니까.”

지금의 나는 향로 안에 있는 가상의 인물이라 실제로 마나 회로가 뚫린게 아니다. 지금은 그저 도안만 그려 놓은 것이고, 실제로 뚫으려면 현실의 몸을 건드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향로에 쓰고 있는 아크레나의 힘을 빼야 한단다.

그 말인즉슨, 나를 위해 이 세상은 곧 무너진다.

“아, 너는 저절로 깨게 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세상이 무너지면 죽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내가 죽는 것은 걱정이 되지 않는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같이 있던 아이들이 걱정되니?”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죠.”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젠과 노반이다.

확실히 현실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고, 함께 있는 내내 언젠가 헤어져야 하니 의식적으로 정을 너무 많이 주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그치만….

그게 가능하겠냐고… 무려 젠과 노반인데.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에 내 눈치를 보던 아크레나는 우울해하는 나를 향해 조심히 말했다.

“내 힘을 네게 쓰지 않는다면 이 세계는 무너지지 않아도 돼.”

“그럼 더 문제예요. 저는 곧 사라질 테고, 애들은 남겨지겠죠. 제가 그 꼴을 어떻게 봐요.”

현실에서 마나 회로가 뚫리든 뚫리지 않든 괜찮다. 어차피 원래 없었던 거, 그냥 없는 일인 셈 치면 되니까. 나는 남겨진 젠과 노반이 더 걱정이다.

그런 내 말에 아크레나는 문제없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원한다면 가상의 너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단다.”

“가상의 저요?”

“그래, 저 아이들도 현실에 존재하는 아이들의 가상이잖니. 그것처럼 너의 가상도 만들어 주겠다는 뜻이야.”

그럼 저 아이들은 더 이상 외롭지 않겠지.

“하지만 후회하지 않겠니? 가상의 것을 위해 현실의 네가 무엇을 포기한다는 건 아쉽지 않아?”

나는 잘 생각해 보라는 아크레나의 말에 일 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후회하지 않는다.

난 마법을 마음껏 쓰지 않아도 잘 살고 있다. 분명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쓰면 편하고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누누이 말했지만 내 편의보단 젠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

단호한 내 말에 아크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가상의 너를 만들어 줄게.”

그는 내가 이 세계를 떠나면 자동적으로 만들어질 거라면서, 남은 이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모든 걱정거리가 끝이 났다. 나는 이제 이 향로의 세계를 나가기만 하면 된다.

나가는 건 문제없다. 원래였음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겠지만, 아크레나를 만난 이상 일부러 죽지 않아도 그가 내보내 줄 거다.

하지만…

“인사도 못 했는데….”

마지막 인사는 하고 싶었다. 아무리 같은 젠, 같은 노반이라지만 다른 건 다르니까.

침울해진 내 표정에 아크레나는 자신이 더 미안하단 표정과 함께 말했다.

“인사할 시간을 줄 순 있단다.”

마음을 써주는 아크레나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것보다 나가게 해 주세요.”

만나지 않겠다는 내 말에 아크레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가상이라지만, 자신을 두고 현실로 돌아가는 디안의 모습이 생각나나 보다.

나는 그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고, 아크레나는 짧게 웃어넘기곤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만나서 반가웠단다. 작은 마법사 아이야. 앞으로의 길에 행복이 깃들기를.”

아크레나는 내 이마 위로 손을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고, 세상이 까매졌다.

* * *

“미르!”

짝!

“헉!”

왼쪽 볼에 따금한 충격이 들어 눈을 뜨니 침대 위였다.

내 앞에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젠과, 내 몸 위에 앉아 잔뜩 화가 나 있는 노반이있었다.

“미르! 이게 모야!!!”

노반은 엎질러져 있는 향로를 가리키며 나한테 화를 내고 있었고, 젠은 내 위에 올라가 있는 노반을 떼어 내며 내 이마 위에 손을 얹어 열이 있나 확인하거나, 내 목과 팔을 만지며 내 상태를 확인했다.

“미르, 하루 종일 안 일어났단 말이야! 이상한 향도 피워져 있고!!”

“아… 이거.”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미르!!!”

젠에게 목덜미가 붙잡혀 있으면서도 조잘조잘 떠들어 대는 노반을 바라보며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게 내가 아는 노반이지.

“하하… 쿨럭!”

웃으려다 사레가 걸렸다. 그러자 나를 보고 있던 젠은 들고 있던 노반을 침대 위에 던지고, 탁상 위에 올려진 물컵을 들어 내게 먹여 줬다.

나는 젠이 주는 물을 받아먹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건 좋은 꿈을 꾸게 해 주는 향로야. 덕분에 즐거운 꿈을 꿨어.”

나는 눈 안에 걱정이 가득 담긴 노반을 향해 말했다.

“진짜?”

“응, 오늘밤은 노반도 같이 잘까?”

“좋아!”

함께 잠에 들자는 내 말에 노반은 젠을 바라봤고, 젠도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노반은 신이 나선 어깨를 들썩거리며 마린과 셀비스에게 내게 깨어났다는 것을 알리러 나갔다.

“미르 님.”

젠은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나를 걱정하는 것과 동시에, 이 향로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젠을 바라보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에 젠은 내 손을 마주 잡아 줬다.

내 손을 크게 감싸는 그의 손은 따듯하고 자상했다.

내 젠이다.

“긴 꿈을 꿨어. 너도 나왔고, 노반도 나왔고, 셀비스도 나왔어.”

“그랬나요?”

“웅. 생긴 건 똑같은데, 성격은 조금씩 다르더라. 근데 마린을 못 봤어.”

“아쉬웠겠네요.”

응, 엄청….

나는 이상하게 다시 감기는 눈을 깜빡거리며 젠을 바라봤다.

그는 손을 올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아픈 경험은 아니었길 바라요.”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오히려 즐거웠어. 만나보고 싶었던 대마법사도 만났고….”

“궁금한 건 물어보셨나요?”

젠은 감기는 무거운 내 눈꺼풀 위로 손을 올려 눈을 가려 줬다.

나는 그가 주는 따스한 어둠을 느끼며 비몽사몽 말을 이었다.

“아… 그걸 까먹었다. 그리고 너랑 아카데미에서 연애도 해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했어….”

“다행이네요.”

“나는 그게 너무 아쉬워….”

같이 수업 들으면서 꽁냥거리고, 점심시간에 잔디밭이나 옥상 위로 올라가서 밥도 같이 먹고, 기숙사도 바로 옆인데 상대의 방에서 함께 자고 수업 들으러 나가고. 엄청 재밌을 것 같은데…!

나는 아쉬운 마음에 젠을 향해 칭얼거렸고, 젠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아무리 같은 저였어도. 그건 안 돼요.”

“그치만….”

“안 돼요.”

힝….

안 된다는 단호한 젠의 말에, 나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잡고 있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여기서 저랑 즐기면 돼죠. 더 많이 사랑하고.”

“응… 그건 당연한 거잖아….”

하하.

“사랑해요.”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소를 지어 대답했고, 따스한 그의 온기를 느끼며 다시금 잠에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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