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묻지 마 살인 (6/90)

6. 묻지 마 살인

지속형 스킬인 마나-소드의 창조는 테릭의 사냥 속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사실 아직 1차 전직도 하지 않은 초보가 B급의 스킬을 계속해서 창조하는 것은 지구인이라면 100% 불가능했다.

만약 남들이 알면 버그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달려들 일이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체계적인 기사수련을 해왔고, 몬스터 사냥을 하며 충분한 실전 경험을 갖고 있던 테릭이었다.

게다가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스킬을 펼칠 때 실제로 검술을 펼치는 능동형 방식을 쓰고 있었다.

그야말로 차원이동을 해온 테릭이었기에, 오직 그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튼 좀비들은 마나-소드에 스치기만 해도 큰 타격을 입고 쓰러졌다.

덕분에 테릭은 대략 네 시간 만에 40레벨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러나 동굴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도중에 여러 갈래의 샛길이 나오며 혼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타난 몹은 좀비가 아닌 레벨 110대의 구울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들어가야 하지?’

좀비는 느리기라도 했지만 구울은 짐승처럼 빠르고 민첩했다. 게다가 녀석들은 해변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왔다.

“징그러운 놈들~”

부웅~

퍽-

“꽥~”

“이제 그만 좀 와라~”

포션을 마셔가며 사냥하던 테릭은 빠르게 지쳐가며 헐떡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쉬고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달려드는 구울 때문에 편히 쉴 수도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길이 막혀 다시 나온 게 벌써 세 번째였다.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매던 테릭은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맞아. 그걸 왜 생각 못했지?”

테릭은 급히 툼 레이더를 다시 꺼내서는 마나를 주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레이더의 표면에는 남색 점이 다시 나타났다.

“나온다!”

레이더를 꺼내든 테릭은 이전의 경험을 살려 불빛이 안내하는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몇 번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결국은 불빛이 안내하는 방향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굳게 닫힌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에구구~ 힘들다.”

테릭은 너무 힘든 나머지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고 말았다.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보니 동굴 안에 들어온 지 어언 9시간정도 지난 듯했다.

그야말로 9시간을 쉬지도 않고 사냥했으니 이리 피곤할 만도 했다.

“아! 몰라. 이제는 때려죽인다고 해도 쉬어야 해.”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이곳에는 극성스러운 구울도 나타나지 않은 게 쉬기에는 딱이었다.

아마도 레이나에게 들었던 안전지대는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은 테릭은 잠깐 쉰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잠이 든 테릭이 깬 것은 그로부터 거의 세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함~ 잘 잤다. 이제야 살 것 같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테릭은 몸을 가볍게 풀고는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문은 슬쩍 밀었음에도 알아서 열렸다.

“헉! 저건 또 뭐야?”

문 안에서 테릭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몸통과 분리되고 목이 둥둥 떠다니는 듀라한과 스냅퍼라는 10여 마리의 유령이었다.

저벅저벅.

“헉! 목도 없는 것이 잘도 걸어오네.”

아스리온 대륙에도 듀라한에 대한 전설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설일 뿐 듀라한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테릭은 신기하면서도 어이가 없어 목 없는 몸뚱이와 목을 번갈아 쳐다봤다.

녀석은 어떻게 보는 것인지 테릭을 향해 곧장 다가왔다.

“인간, 돌아가라.”

“뭐라고?”

“마지막 경고다. 살고 싶으면 돌아가라.”

“듣기 싫은데.”

목과 몸통이 분리된 것이 무섭기보다는 우습기만 했다.

때문에 대답을 하는 테릭의 음성에는 장난기 같은 웃음이 진하게 스며 있었다.

“진정 따끔한 맛을 봐야만 정신을 차리겠느냐?”

“그냥 덤비기나 해라.”

“갈-”

듀라한의 호통이 끝나기 무섭게 유령들이 작은 비수를 던지기 시작했다.

한두 개의 비수면 모를까, 사방팔방에서 날아오는 수십 개의 비수를 일일이 막을 수는 없었다.

테릭은 유령들을 상대하는 걸 포기한 채 레이더를 차원아공간에 담고는 곧장 듀라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나-소드가 시전되면서 그의 장검이 푸른색으로 번쩍이기 시작했다.

“받아라. 목 없는 병신아!”

“어린놈이 참으로 오만방자하구나.”

“아가리 닥쳐줄래?”

공격의 시작은 테릭이었다.

그러나 120레벨대의 듀라한은 테릭의 빅-휠을 가볍게 피하고는 역습까지 가했다.

그동안의 일방적인 사냥에 익숙해졌던 테릭은 크게 놀라 다급히 방어스킬인 크로스가드를 펼쳤다.

챙-

휘리릭~

채챙-

테릭과 듀라한의 불꽃 튀는 접전이 계속되는 동안 자이툰 외곽에는 몇몇 사내가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대략 레벨 150대로 보이는 이들 다섯 남자는 테릭이 발견한 저주에 걸린 망자의 동굴에 갈 생각이었다.

“아직 공개 안 되었냐?”

“몇 분 후면 공개될 테니 기다려봐.”

“최초로 던전을 발견한 사람이 벌써 클리어했겠지?”

“그랬겠지.”

“아! 좋겠다.”

“야~ 조용. 지금 공개된다.”

이들 다섯은 새로 발견된 던전이라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번잡한 지금의 사냥터를 벗어나 다른 플레이어들이 아직 모르는 동굴 안에서 마음 편하게 렙-업을 할 생각이었다.

물론 C급 던전이라 몹들의 평균 레벨이 떨어진 게 마음에 걸렸지만 대신 몰이사냥을 해서 이를 양으로 메울 생각이었다.

* * *

-던전 발견 후 12시간이 경과했습니다.

-던전의 위치가 공개되며 다른 플레이어의 입장도 가능합니다.

-던전 공개에 따른 어드밴티지 적용이 끝납니다.

듀라한과 싸우던 테릭은 던전이 공개된다는 메시지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듀라한과 싸우느라 메시지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꿀꺽~”

“이노옴~”

“이크!”

찰나의 틈을 이용해 포션을 마시던 테릭은 듀라한의 공격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듀라한은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바짝 따라붙었다.

부웅~

채채챙-

“이얍~”

뒤로 밀리던 테릭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악을 쓰며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듀라한은 테릭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내고는 검을 숙여 빠르게 찔렀다.

“헉!”

퍽-

미처 자세를 바로잡지 못했던 테릭은 듀라한의 공격으로 복부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하지만 듀라한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녀석은 발길질과 동시에 깊숙이 박힌 검을 뽑아내더니 이번에는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목을 향해 검을 날렸다.

“으아아악~”

부웅~

깊숙이 뚫린 상처로 피를 쏟아내던 테릭은 용케 듀라한의 공격을 알아차리곤 고개를 숙였다.

그때 듀라한의 복부가 테릭의 눈에 확 들어왔다.

‘지금이다!’

생각과 동시에 장검을 들고 있는 테릭의 오른손이 절로 쭉 뻗어나갔다.

테릭은 장검이 듀라한의 배를 꿰뚫는다 싶은 순간 몸을 숙이며 모든 체중을 실었다.

푹-

서걱-

검 끝을 타고 살가죽이 터지는 진동과 뼈가 절단되는 묵직한 감촉이 생생히 전달되었다.

테릭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며 두 손으로 장검을 더욱 깊숙이 찔렀다.

“허헙!”

복부 바로 옆에 둥둥 떠 있던 듀라한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있지만 고통은 두개골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이노옴~ 죽어!”

휙~

퍽!

이를 악물며 듀라한의 복부에 장검을 박아 넣던 테릭은 고통 때문에 일그러진 듀라한의 얼굴이 들어오자 알 수 없는 오기와 투지가 생겼다.

그리곤 뭐라 생각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오른발을 들어 녀석의 대갈통을 힘껏 차버렸다.

정통으로 발길질에 차인 듀라한의 머리는 십여 미터를 붕 날아가다가 벽에 부딪쳐 데굴데굴 떨어졌다.

그 순간 듀라한의 육체가 솜털처럼 가벼워졌고, 장검을 잡고 있던 녀석의 두 팔에서 힘이 빠졌다.

“이야야얍~~~”

쭈르륵~

부우욱-

빠각-

어디서 그런 힘이 갑자기 솟아났는지 모른다.

테릭은 복부를 완전히 관통한 장검을 살짝 뽑아서는 그대로 밑으로 내리그었다.

장검이 밑으로 향할 때마다 나이프로 질긴 스테이크를 써는 촉감이 전해졌다.

“죽어!”

팟-

채앵~

복부부터 사타구니를 완전히 절단한 테릭의 검이 놈의 몸뚱이를 빠져나오다가 바닥을 때리며 묘한 공명음을 냈다.

갈라진 두 다리로 힘들게 서 있던 듀라한의 몸이 이내 썩은 짚단처럼 허물어졌다.

아울러 끈질기게 비수를 던지던 유령들도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능동형을 선택하셨기에 7개의 스텟 포인트가 자동으로 분배됩니다.

-50레벨이 되셨습니다.

-1차 전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저주에 걸린 망자의 동굴의 1차 석실을 뚫었습니다.

“헉~ 허헉~”

격렬한 숨을 토해내던 테릭이 허물어지듯 그 자리에 쓰러져서는 새로 꺼낸 포션을 들이켰다.

“하아~ 여기서 더 가야 할까?”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하면 추가 보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1차 석실을 뚫은 마당에 앞으로 몇 개의 석실이 더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지금의 자기 실력으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드래곤의 무구를 착용하면 이건 일도 아닐 텐데…….”

그러나 드래곤의 무구를 착용하기 위해서는 300레벨이 되어야 했다.

“오냐! 한다, 해내고 만다.”

드래곤의 무구를 생각하자 오기가 불끈 솟아났다.

아울러 여기서는 백 번을 죽어도 진짜로 죽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진짜로 죽는 것도 아닌데 뭐가 두려워!”

스스로를 다독인 테릭은 몇 개의 포션을 꺼내 벌꺽 들이켜고는 다음 석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걸음을 옮기는 동안 동굴 입구에는 다섯 명의 사내가 도착했다.

자이툰에서 저주에 걸린 망자의 동굴 위치가 공개되기만을 기다렸던 사내들이었다.

“남수야, 여기가 확실하냐?”

“좌표의 위치는 확실해.”

“확실하면 뭐해? 입구를 찾을 수가 없는데.”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찾아봐. 명색이 던전인데 입구가 위장되어 있겠지.”

“그나저나 이 던전을 발견한 사람은 왜 클리어를 안 했을까?”

“하다가 죽었는지도 모르지.”

“아! 미치겠네. 다른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우리가 들어가야 할 텐데.”

이들이 처음부터 던전의 클리어를 욕심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저주에 걸린 망자의 동굴은 아직까지 클리어가 된 적이 없는 미해결 던전이었다.

그 말은 이들이 던전을 클리어할 경우 상당한 추가 보상과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기에 던전 입구를 찾는 이들의 움직임은 다급했다.

“아! 찾았다.”

“어디야.”

“여기 가운데 바위가 위장되어 있는 입구야.”

“들어가자.”

“잊지 마. 일단 던전 안에 들어가면 사냥보다는 클리어가 목표야.”

“당연하지. 몹은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뛰는 거야.”

* * *

두 번째 석실로 들어간 테릭은 격전 끝에 새롭게 나타난 듀라한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번에 나타난 듀라한도 머리와 몸통을 떨어트려 놓으니 모든 능력치가 떨어졌고, 테릭은 그 틈을 이용해서 겨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덕분에 레벨이 또다시 올라 51레벨이 되었다. 아마도 듀라한의 약점은 그 부분인 듯했다.

“휴우~ 다행이다.”

포션을 마시며 생명력과 기운을 보충한 테릭은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세 번째 석실로 들어갔다.

“헉! 뭐야?”

세 번째 석실에는 준 보스 몹인, 레벨 150대의 데스나이트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데스나이트의 레벨이 150대라고 해서 그란티아에 존재하는 모든 데스나이트의 레벨이 150대는 아니었다.

던전에 출몰하는 모든 몹은 던전의 등급에 따라 레벨이 신축적으로 조종되었다.

쉽게 말해, A급 던전에 나오는 데스나이트의 레벨은 믿기지 않게도 350레벨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필드에 출몰하는 데스나이트의 레벨은 250대였다.

“인간, 여기까지 오다니 운이 좋았구나.”

“운이 아니라 실력이지.”

“흥, 그 운이 여기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몬스터 주제에 말이 많구나.”

“닥쳐라! 내 비록 뜻밖의 일로 죽음을 거스르는 존재가 되었지만 한때는 명예를 아는 기사였다.”

“어디 시골 영지의 이름 없는 기사였겠지?”

“헉! 그걸 어떻게?”

“왜 놀랐냐? 오늘은 내가 명가의 검술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마.”

“닥쳐라! 나도 신분만 좋았으면 이름 있는 가문의 기사가 될 수 있었다.”

“끝까지 실력이 부족했다는 말은 안하는구나.”

“이놈~ 날 능멸하다니 용서 못한다.”

광분한 데스나이트는 처음부터 모든 실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테릭은 너무도 강력한 데스나이트의 공격에 정면으로 승부하기보다는 방어에 치중했다.

다행히 크로스가드는 쿨타임이 없는 스킬이기에 용케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이 정도였나?’

데스나이트와 검을 나누는 동안 테릭은 자신의 검술이 이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수많은 사냥을 하면서 검술의 경지가 자연스럽게 한 단계 올라선 것 같았다.

특히 듀라한과 생사를 초월한 두 번의 대결에서 배우고 느낀 게 많았다.

스스로의 실력에 감탄한 테릭은 스킬을 사용할 만한 기회를 노리며 차분히 방어에 치중했다.

이는 무턱대고 스킬을 남발하던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점이었다.

“애송아, 겁이 나서 차마 덤비지 못하겠느냐?”

“웃기는 소리 그만해라.”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는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헛소리 말고 이거나 받아라!”

그동안 기회만 엿보던 테릭의 스킬이 처음으로 발휘되었다. 그러나 레벨 150대의 데스나이트는 테릭에 비해 너무도 강했다.

그는 검을 곧추세우는 것만으로 빅-휠을 막아내고는 빠르게 역습을 가했다.

궁지에 몰린 테릭은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 시각 던전 안으로 들어온 다섯 명의 사내는 파티장인 남수라는 사내를 중심으로 첫 번째 석실의 듀라한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헙!”

“여기도 있다.”

퍼퍼펑~

“꾸웩!”

테릭이 너무도 어렵게 이긴 듀라한을 그들은 너무나 가볍게 잡고 있었다.

“C급 던전이라 이런 석실이 세 개밖에 없을 거야. 서둘러!”

“가자.”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까지는 포션을 아끼지 말고 먹어.”

“그러고 있어.”

레벨도 높고 다섯 명이나 되는 이들은 두 번째 석실의 듀라한도 가볍게 제압했다.

그렇게 두 개의 석실을 통과한 그들은 테릭이 있는 세 번째 석실로 곧장 뛰어들었다.

“엥! 뭐야?”

“여기 있었네.”

“휴우~ 다행이다.”

“이 새끼, 완전 허접이네.”

“야! 저 새끼부터 죽여.”

갑자기 나타난 다섯 사내는 다짜고짜 테릭을 공격했다. 그야말로 묻지 마 살인이었다.

안 그래도 낯선 이들의 출현에 당황하고 있던 테릭은 데스나이트의 공격과 절묘하게 어울린 다섯 사내의 공격에 금방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아! 이것들이 말로만 들었던 P.K범이구나.’

“야! 봐주지 마.”

“받아라, 썬더볼트!”

퍼퍼펑-

전신 곳곳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진 테릭은 다섯 사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레이나에게 말로만 들었던 P.K를 자신이 직접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그였다.

“야! 빨랑 죽여.”

“확실하게 끝장내.”

“이 새끼가 어딜 째려봐.”

“억울해? 억울하면 강해져, 새끼야.”

“이런 허접새끼가 노려보기는.”

“병신 같은 놈, 그러게 누가 공개하래?”

“그게 무슨?”

“그냥 죽어, 새끼야!”

퍼퍼퍽-

꽈꽝-

“띠띠딩~ 띠띠딩~”

-사망하셨습니다.

-레벨이 다운됩니다.

-사망에 따른 페널티로 5개의 스텟 포인트가 소멸됩니다.

-사망에 따른 페널티로 12시간 동안 그란티아 월드에 접속하실 수 없습니다.

윙~

“으아아아악~~”

동굴 안 소파로 튕겨 나온 테릭은 분노의 악을 질러댔다. 그러나 악을 쓴다고 해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시 그란티아 월드에 접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씩씩대며 울분을 삭이는 것뿐이었다.

“강해지겠어! 강해지고야 말겠어!”

* * *

테릭이 두 주먹을 움켜쥐며 분노하고 있을 때 망치부족의 창고 앞에는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서성이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림자가 달빛에 일렁이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그림자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드워프들도 그 어떤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사이 그림자는 드워프 마을을 은밀하게 빠져나와 인근 숲속으로 향했다.

숲속에는 두 사내가 초조한 기색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림자는 그 사내들 앞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됐냐?”

“찾지 못했어요.”

“찾지 못하다니?”

“드워프들의 창고는 텅 비어 있던데요.”

“뭐!”

사내들 앞에 당도한 그림자는 점점 진해지더니 종내에는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림자 대신 온몸을 검은색 천으로 칭칭 감은 한 사내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의 가슴에는 그란티아 최고의 어쌔신 길드라는 블랙문의 상징마크인 시커먼 초승달이 새겨져 있었다.

“창고 안에는 먼지뿐이었어요.”

“아우리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신기하군. 분명 내가 저메인에게 들은 바로는 툼 레이더가 이곳 드워프들의 창고에 있다고 했는데.”

“드워프들의 창고는 텅 비어 있다는데?”

“아! 피사로 형님, 창고의 흔적으로 봐서는 어제나 오늘 사이에 창고를 치운 것으로 보였습니다.”

피사로라는 자의 추궁에 아우리오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드워프의 창고를 들어갔던 사내가 새로운 정황을 얘기했다.

“어제오늘 사이에?”

“네, 발자국이 선명한 것으로 봐선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발자국 크기로 봐서는 드워프가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뭐라! 인간이었다고?”

“네.”

“큰일 났군. 툼 레이더가 어떤 물건인데…….”

“피사로, 진정해라. 내가 저메인에게 얘기해서 정보길드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다.”

피사로와 아우리오는 친구로 보였고, 그림자 사내는 그들의 후배로 보였다.

또 이 자리에 없는 저메인도 피사로와 아우리오의 친구 같았다.

한편, 피사로와 아우리오는 테릭이 가져간 툼 레이더를 얻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 같았고, 피사로라는 사내는 툼 레이더의 정확한 용도와 기능을 아는 것으로 보였다.

“아우리오, 절대 실수해서는 안 돼.”

“걱정 마. 그보다 모하비 산의 일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계속 발굴 중이야. 곧 타이탄의 부품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넌?”

“닉스 왕국과 타이토닉 왕국의 상단은 전부 장악했고, 이제 곧 카라반 상단(낙타 상단)을 장악할 거야.”

“그렇다면 다음은 크메르 제국의 상단을 장악하는 일만 남은 건가?”

“그렇지.”

“저메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툼 레이더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고 전해줘.”

“걱정 마. 오늘밤이면 아직 흡수되지 않은 두 개의 정보길드를 집어삼킬 수 있다고 했으니까, 앞으로는 더욱 정확하고 광범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다행이군.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정보길드는 완벽하게 통일시켜야 해.”

그야말로 피사로와 아우리오의 대화 내용은 광대했다.

그들은 전설의 고대병기라는 타이탄을 언급했고, 두 왕국의 상단을 장악했다는 믿기지 않은 얘기에다가 정보길드를 통일한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의 광대한 얘기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앤디랑 클레오는?”

“앤디는 성기사단을 더욱 불리는데 정신이 없지. 아! 클레오가 잘하면 고대 마탑의 단서를 얻을 수도 있겠다고 하던데.”

“정말?”

“응, 소속 마법사 중 한 명이 운 좋게 고대 마탑과 관련된 책자를 얻었다고 하더라고.”

“잘되었군. 고대의 마탑이면 타이탄의 부품도 나올 수 있을 거야.”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이기에 하나같이 대단한 자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일까?

지금 이야기하는 아우리오는 거대 상단의 상단주로 598레벨의 랭킹 3위였고, 초반에 언급되었던 정보길드의 수장인 저메인은 595레벨로 랭킹 7위였다.

또 방금 얘기가 나온 앤디는 그란티아 제일의 길드라는 성기사단의 길마로 랭킹 2위였다. 게다가 마법사로 짐작되는 클레오는 599레벨의 랭킹 1위이자 그란티아를 대표하는 위저드&위치라는 거대 마법사 길드의 마스터였다.

특히, 클레오는 빼어난 미모로 그란티아 내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끝으로, 검은 복장을 한 사내도 랭킹 10위의 엄청난 강자로 블랙문이라는 어쌔신 길드의 길마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피사로는 랭킹을 공개하지 않았을 뿐, 606레벨로 그란티아의 지존이었다.

이들이 각각 이끌고 있는 단체나 길드는 다르지만 더블 트라이앵글이라는 비밀단체의 구성원이었다.

총 6명으로 구성된 더블 트라이앵글은 어찌 보면 암중에서 그란티아를 조종하는 가장 강력한 자들의 비밀조직이었다.

“아우리오,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자.”

“그래, 다들 맡은 일 잘하고.”

“당연하죠. 그란티아가 제 밥줄인데요.”

“무슨 일 있으면 서로 연락하고.”

“걱정 마세요. 아! 툼 레이더를 가져간 놈, 확인되면 연락주세요. 그런 놈들 처리하고 물건 회수하는 건 우리가 전문이잖아요.”

“그래, 알았다.”

“피사로, 나 먼저 갈게. 한창 공들이고 있는 작업이 있어서.”

“형, 저희들도 의뢰가 있어서 먼저 갑니다.”

어쌔신으로 보이는 두 사내와 아우리오가 먼저 사라졌다.

혼자 남은 피사로는 무슨 생각인지 골몰하다가 모하비 산으로 이동했다.

* * *

다음날 그란티아 월드에 접속한 테릭은 자신이 있는 곳이 포렌 시라는 걸 알고는 자이툰으로 향했다.

먼저 간달로프를 만나 말없이 사라진 것에 대해 해명해줘야 했다.

“여기는 변함없이 북적이는구나.”

개인상점이 밀집한 자유 광장을 찾은 테릭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간달로프를 찾을 수 있었다.

“간달로프.”

“오! 테릭, 어제는 어떻게 된 거야?”

“미안해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요.”

“그랬구나. 난 무슨 섭섭한 게 있어서 그냥 가버린 줄 알았다.”

“아니에요.”

“그래, 이제 알았으니 다행이다.”

어제 말없이 사라진 것을 사과한 테릭은 어떻게 하면 빨리 강해질 수 있는지 물었다.

뜬금없는 테릭의 질문에 간달로프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가르쳐 줬다.

간달로프의 설명을 들은 테릭은 자유 상점과 도시 내의 상점을 돌며 능력치를 올려주는 액세서리와 여러 가지 물건을 닥치는 대로 구입했다.

특히 그가 대량으로 구입한 것은 레벨에 상관없이 공격마법을 펼칠 수 있는 마법스크롤이었다.

하지만 스킬북은 D급이 최고였기에 구입하지 않았다.

“이제는 레벨에 맞는 몬스터를 잡으라고 했지.”

현재 테릭의 레벨은 사망페널티로 1레벨이 떨어져서 50레벨이었다.

50레벨의 플레이어들이 주로 사냥하는 몹은 센티피드나 또는 비슷한 벌레 종류인 그레이트 웜이었다.

하지만 센티피드를 이미 상대해본 테릭은 70레벨의 오거를 목표로 했다.

“오거는 리스본에 있다고 했지.”

텔레포트게이트를 통해 리스본 시로 이동한 테릭은 간달로프가 가르쳐 준 대로 북문을 거쳐 하비나 대초원으로 향했다.

오거의 집단 서식지인 그곳은 62~67레벨대의 플레이어들이 파티사냥을 주로 하는 지역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냥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했지.”

이건 레이나가 가르쳐 준 내용이었다.

테릭은 파티사냥을 하는 사람들을 피해 하비나 대초원의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어! 여기는 오거가 많은데 왜 사람이 없지?”

그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선공 몹인 오거는 테릭을 발견하고 한꺼번에 4~5마리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이크!”

퍼퍼펑!

“쿠웩~”

오거는 마나-소드를 펼친 상태에서 빅-휠과 라이징 샷, 그리고 마법스크롤 한방에 죽었다.

테릭은 한 마리의 오거를 죽이면 평타와 마법스크롤로 사냥을 하다가 스킬의 쿨타임이 끝나면 다시 같은 패턴으로 사냥을 했다.

덕분에 렙업 속도가 무지 빨라 거의 한 시간에 1레벨씩 올라갔다.

“후아~ 마나스크롤이 거의 떨어진 것 같은데.”

60레벨이 된 테릭은 슬슬 사냥터를 바꿀 때가 된 것을 알았다.

이제는 스킬 두 방이면 오거들이 죽어나갔다.

“네가 마지막이다.”

퍼퍼퍽-

“꽥~”

마지막 오거를 잡은 테릭은 귀환 스크롤을 찢어 곧장 자이툰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자유 광장으로 가서 60레벨대용 방어구와 무기, 액세서리부터 구입했다.

장비를 교체한 테릭은 이번에는 마법 상점에 가서 이전보다 몇 배나 많은 스크롤을 몽땅 사들였다.

그렇게 마법스크롤과 포션까지 구입한 테릭은 90~95레벨대의 바바리안을 사냥하기 위해 리스본으로 갔다.

바바리안은 오거와 달리 리스본 시 남문 근처 드로이안 늪지대에 있었다.

“우와~ 여기는 사람이 엄청나구나.”

오거가 나오는 하비나 대초원도 많은 플레이어가 있었지만 이곳은 몇 배나 많은 플레이어로 북적거렸다.

이곳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몰린 이유는 비교적 바바리안이 아이템을 잘 주기 때문이었다.

“저쪽으로 가볼까?”

늪지대 곳곳을 누비다가 용케 자리를 확보한 테릭은 잠을 자기 위해 접속 종료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곳에서 몇날 며칠을 계속 사냥만 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인벤이 넘치거나 또는 포션이 부족해서라도 중간에 사냥을 중단했겠지만 테릭은 차원아공간을 갖고 있었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덕분에 그의 레벨은 며칠 후 84레벨에 도달했고, 차원아공간에는 잡템과 벌어들인 돈이 쏠쏠했다.

‘장비를 교체하고 사냥터를 바꿔야겠어.’

다시 자이툰으로 돌아온 테릭은 차원아공간에 있던 잡템을 모두 처분한 후 80레벨용 장비와 포션, 스크롤을 보충했다.

‘다시 가야지.’

하루라도 빨리 300레벨을 만들어야 했다.

80레벨을 넘기기 위해 어제 낮부터 계속 사냥을 했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가 막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허공에서 처음 듣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경고! 그란티아에 접속하신 지 36시간이 되었습니다.

-1분 이내에 접속 종료를 하지 않으시면 강제 접속 종료가 실행됩니다.

-접속 종료를 하실 때는 안전한 곳에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뭔 소리야? 이 세상은 뭔 태클이 이렇게 많아?”

그동안은 접속을 종료해서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잠을 잤던 테릭이었기에, 이렇게 계속 36시간을 사냥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테릭은 경고를 무시한 채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1분이 지나자마자 그의 몸은 빛에 휘감겼고, 잠시 후 그의 모습은 그란티아 어디에도 없었다.

“뭐야! 누구마음대로 날 내쫓는 거야? 설마 이계의 인간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강제로 접속 종료된 테릭은 레어 안의 소파 위에서 악을 써댔다.

그러나 여기서 악을 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기에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허나 이번에도 사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기실까지가 한계였다.

“왜 못 들어가지? 이번에는 죽은 것도 아니잖아?”

-테릭님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내 안전은 내가 책임져.”

-죄송합니다. 그란티아에서 연속 플레이 가능한 최대의 시간은 36시간입니다.

“젠장, 그럼 언제 들어갈 수 있어?”

-8시간이 경과되어야 가능합니다.

“아! 정말 웃기고 있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든 거야?”

-죄송합니다. 플레이 타임이 36시간을 경과했기에 더 이상은 대기실 접속도 불가능합니다. 모험과 꿈이 가득한 그란티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시기를…….

“아!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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