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랄을 해라
탱크는 파이어 골렘을 상대할 방법이 없자 전원이 돌격을 감행할 생각으로 무기를 뽑아들게 했다.
용병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무기를 뽑아들었다.
“어쩔 수 없다. 무기를 들어라.”
“빌어먹을.”
“여기서 죽다니 아쉬운걸.”
“젠장, 저승에서 만나세.”
‘아!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핵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달려든다는 것은 자살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었다.
‘제발! 무슨 수를 내보자.’
이런 최후를 보자고 여기까지 들어온 게 아니었다.
머리를 쥐어짜내며 궁리하던 테릭은 순간적으로 파인더의 스킬이 생각났다.
‘혹시 픽-아웃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픽-아웃 스킬은 뭔가 특별한 물건이나 장치를 구별하고 골라내는 스킬이었다.
또한 골렘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창조물이었고, 특히나 핵은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특별한 마나석이기에 스킬에 반응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테릭은 다급히 픽-아웃을 펼친 상태에서 파이어 골렘의 전신을 유심히 살폈다.
스킬이 펼쳐지자마자 골렘의 표면에 새겨진 마법진이 스킬에 반응했지만 그건 테릭이 찾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오! 저기다.’
마법진의 반응은 무시하고 더욱 강렬한 반응을 찾던 테릭은 마침내 붉은빛을 분출하는 부위를 발견했는데, 바로 오른쪽 다리와 연결된 녀석의 골반 부위였다.
“탱크, 녀석의 오른쪽 골반을 공격하세요.”
“오른쪽 골반?”
“네!”
“알았네.”
테릭과 탱크의 대화를 들은 용병들도 놈의 오른쪽 골반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마법을 영창하던 레이나도 테릭의 말을 듣고 마법을 날렸다.
목표가 정해져서 그런지 용병들의 공격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부웅~
퍼퍼펑~
“죽어라, 덩치 큰 괴물아.”
“어서 보물을 내놔라!”
휘리릭~
채챙~
용병들의 공격이 거세지자 팔과 다리만 휘두르던 파이어 골렘의 입이 비명이라도 지를 생각인지 쩍 벌어졌다.
그 순간 녀석의 입안에서 넘실거리는 시퍼런 불길이 솟구쳤다.
막 검을 휘두르려고 했던 탱크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악을 썼다.
“모두 물러서라! 놈이 마법을 날릴 생각이다.”
“피해라!”
“위험해~”
화르르륵~~~
“커헉!”
“크아아악~~”
파이어 골렘의 마법은 마법사라면 누구나 시전 가능한 파이어 볼이었다.
그러나 덩치가 커서 그런지 녀석의 파이어 볼은 인간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컸고, 그 위력도 엄청났다.
녀석의 파이어 볼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두 명의 용병은 순식간에 숯으로 변했고, 그 옆에 있던 다른 두 용병도 불길에 휩싸였다.
넓은 방 안에는 점차 숯으로 변하는 두 명의 용병에게서 풍겨져 나온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테릭은 불길에 휘말렸던 두 용병마저 숯으로 변하자 이를 악물며 몸을 날렸다.
지금 그가 펼치는 스킬은 얼마 전에 얻었던 A급 스킬 마나드릴이었다.
팟-
쑤욱~
스킬이 펼쳐지며 테릭의 검 끝에서는 눈부신 빛과 마나가 불완전한 형태로 살짝 튀어나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테릭은 마나드릴을 펼친 상태로 놈을 향해 검을 힘껏 찔렀다.
푸푸푸욱~
끼익-
마나드릴이 녀석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파헤치며 들어갔다. 순간이지만 녀석이 멈칫하며 움직임이 딱딱해졌다.
“물러서지 마라. 한번 마법을 펼친 이상 당분간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먼저 죽어간 동료의 복수를 하자.”
“와아아~~”
탱크의 외침을 시작으로 몇몇 용병의 검과 도끼가 녀석의 오른쪽 골반을 연거푸 때렸다.
이어서 레이나의 마법이 다시 한 번 금이 간 골반을 때렸다.
빠지지직~~
와르륵~
우수수~
“크에에엑~~”
계속되는 공격에 녀석의 골반 부위에서 한 뭉치나 되는 거대한 조각이 파편처럼 떨어졌다.
녀석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 듣기 싫은 괴음을 질러대며 몸부림을 쳤다.
“피를 토하며 죽어간 형제들의 복수다!”
꽝~
빠지직-
붕~
어느 틈에 다가갔는지 탱크의 두툼한 워 해머가 골렘의 옆구리를 찍었다.
이어서 부상이 완치되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던 칼리온의 도끼가 날카롭게 파고들며 불통을 튀었다.
녀석은 극심한 고통에 지랄발광을 하며 펄쩍 뛰었다.
그때 녀석의 골반에서 또다시 한 무더기의 덩어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테릭, 지금이네.”
“어서!”
“죽어라!”
어차피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테릭이었다.
테릭은 겁도 없이 점프를 해서 검을 약간 옆으로 뉘며 라이징 샷을 펼쳤다.
퍽!
와르륵~
처음과 달리 녀석의 골반 부위에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조각난 덩어리들이 다시 떨어졌다.
이번의 덩어리가 마지막이었는지 녀석의 오른쪽 골반은 이제 훤히 노출된 상황이었다.
그렇게 드러난 놈의 골반에서는 유리 같은 구슬이 번쩍이고 있었다.
“이제야말로 끝장이다.”
부웅~
바닥에 착지한 테릭의 몸이 풍차처럼 회전하며 검이 빠르게 돌아갔다.
녀석은 위기를 직감한 것인지 한 손을 들어 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테릭의 검이 조금 더 빨랐다.
퍽-
쿵-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딩~동~ 딩~동~”
-끝없는 미로의 마지막 수호자를 물리치고 종착점에 도달하셨습니다.
-끝없는 미로를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행운이 7 부여됩니다.
-보상으로 경험치가 지급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능동형을 선택하셨기에 22개의 스텟 포인트가 자동으로 분배됩니다.
* * *
“오우~”
“테릭이 녀석을 잡았다.”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
파이어 골렘이 쓰러지자 용병들과 레이나가 달려왔다.
테릭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레이나를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때 맞은편 벽이 힘없이 주저앉으며 세 개의 상자가 튀어나왔다. 바로 용병들과 튀랑 자작이 찾던 보물 상자였다.
보물 상자에는 각각 1만 골드의 금화가 들어 있었다.
“테릭, 이걸 가져가게.”
“아!”
“우리는 계약대로 이것 하나를 챙기겠네.”
“전 필요 없는데.”
“테릭, 무슨 소리야? 무기랑 스크롤을 그렇게 소모했는데 1만 골드라도 챙겨야지.”
“난 레벨이 올라간 것만으로도 만족해.”
파이어 골렘을 잡으면서 2레벨이 올랐고, 끝없는 미로를 클리어해서 또 2레벨이 올랐다.
이제 테릭의 레벨은 204레벨이나 되었다.
“레벨은 너만 올랐니?”
“테릭, 자네의 마음은 알겠지만 우린 이걸로 충분하네.”
“그래, 어서 챙겨. 네가 안 가져가면 용병들도 못 가져가.”
“그래, 테릭. 레이나 양의 말대로 하게?”
“전 괜찮은데.”
“어서!”
골드라면 아직도 100만 골드가 넘게 있었다.
그러기에 테릭은 자신의 몫에 해당하는 골드도 용병들에게 양보하고 싶었다.
그러나 레이나의 참견과 용병들도 거부하자 별수 없이 차원아공간에 챙겼다.
“어서들 담아라.”
“서둘러.”
테릭과 레이나와 달리 용병들은 생존자 13명이서 분배해야 했기에 시간이 꽤 걸렸다.
얼마 후 세 개의 보물 상자가 깨끗이 사라지자 이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바닥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복잡한 도형이 생겨났다.
“마법진이다.”
“저걸 타면 밖으로 이동할 거야.”
“다들 올라타라.”
“테릭, 자네도 어서 올라오게.”
테릭과 용병들이 마법진 위로 올라서기 무섭게 눈부신 빛이 허공과 바닥에서 동시에 쏟아졌다.
테릭과 용병들은 본능적으로 밝은 빛의 정체가 미로 밖으로 이동되는 텔레포트의 시작임을 알았다.
“오! 이제 간다.”
“튀랑 자작이 나중에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
“졸라 열 받아하겠지.”
“그 꼬라지를 내가 봐야 하는데.”
“다들 조용해.”
모든 난관과 역경을 넘어섰다는 생각에 용병들은 신이 나서 튀랑 자작을 욕하기 시작했다.
그때 계단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빛에 휩싸이며 미로 밖으로 이동하는 탓에 소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몰랐다.
테릭 일행이 밖으로 이동한 직후 거울로 된 방에서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테릭~ 이노옴~ 용서치 않겠다!”
절규의 주인공은 피사로였다.
그가 두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는 사이 파이어 골렘의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진 맞은편 방에서는 튀랑 자작의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내 돈! 테릭, 이노옴~~”
“자작님, 진정하십시오.”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 어서 피사로를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소.”
어느새 피사로가 돌아와 있었다.
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파이어 골렘의 잔해를 바라봤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파이어 골렘이 다시 리젠 되기를 기다려서 깨부수고 나가야 했다.
한편, 미로 밖으로 이동된 테릭과 용병들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테릭, 고맙네.”
“탱크, 우리가 같이 안 가도 되겠습니까?”
“레이나 양, 250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모하비 요새로 출발했다고 하지 않았소?”
“네, 아마 여러분들이 요새에 당도할 때쯤이면 이미 동료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을 걸요.”
“그렇다면 우리끼리만으로도 충분하네.”
“테릭, 우리는 걱정 말고 어서 어머니에게 내 안부를 전해주게.”
“언젠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게.”
“감사합니다.”
용병들은 급히 모하비 요새로 향했다.
둘만 남은 레이나와 테릭은 한슨을 만나기 위해 곧장 텔레포트스크롤을 찢어 룩센으로 향했다.
잠시 후 룩센 시에 도착한 둘은 종종걸음으로 용병길드 지부를 찾아갔다.
“오! 어서들 오게.”
“연락은 받으셨지요?”
테릭과 레이나를 발견한 한슨은 반가운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영을 해줬다.
용병들을 구해준 것 때문인지 그의 태도는 퀘스트를 받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어제 연락을 받고 250명의 용병을 보냈네. 아마 지금쯤이면 모하비 요새에 당도해 있을 것이네.”
“다행이군요. 그런데 250명이면 충분할까요?”
“그건 걱정 말게. 꽤 실력 있는 상급 용병이 다수 갔네. 그리고 튀랑 자작은 비밀이 보장되는 던전이 아닌 이상 용병들을 공격할 수 없네.”
“하긴 그렇겠군요.”
요새에서 용병을 공격한다면 수많은 눈이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튀랑 자작과 전체 용병이 전쟁을 벌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튀랑 자작은 지방의 군소영지의 영주였다.
그런 그가 망할 생각이 아니라면 감히 전체 용병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을 할 순 없었다.
“고맙네. 자네들 덕분에 우리 동료들이 목숨을 구했네.”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조금 늦었는데 이건 탱크가 전해달라던 펜던트입니다.”
“하하하~ 이게 이제야 도착했군.”
“띠링~”
-사라진 용병단을 수색하자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20골드가 지급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경험치가 지급됩니다.
-용병을 구해준 은인으로, 용병길드에 등록됩니다.
-추후 용병길드 이용 시 특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능동형을 선택하셨기에 5개의 스텟 포인트가 자동으로 분배됩니다.
파이어 골렘을 잡고 레벨이 오를 때 남은 경치가 상당했기에 테릭은 1레벨이 더 오를 수 있었다.
룩센에서의 모든 일을 마무리한 테릭과 레이나는 이제 자이툰으로 가서 할머니를 만나고 레벨에 맞는 아이템을 구입할 생각이었다.
* * *
“테릭, 이제 어쩔 거야?”
“할머니 만나서 퀘스트부터 해결해야지.”
“그럼 갔다 와. 난 2차 전직하러 갈게.”
“2차 전직?”
“응, 200레벨을 넘었으니까 2차 전직을 해야지.”
한슨을 만난 테릭과 레이나는 함께 자이툰으로 돌아왔다.
201레벨이 된 레이나는 2차 전직을 해야 한다며 내일 만날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는 급히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란티아의 전직 시스템은 1차 전직은 50레벨이지만 2차 전직과 3차 전직은 200레벨과 400레벨이었다.
그리고 아직 업데이트가 안 된 4차 전직은 600레벨로 조만간 패치가 될 예정이었다.
혼자 남은 테릭은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그때와 똑같은 장소에서 잡다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오! 총각, 다녀왔는가? 내 아들은 만났어?”
“네, 가서 칼리온 아저씨를 만나고 왔어요.”
테릭은 대답과 동시에 칼리온이 작성한 편지뭉치를 전해줬다.
편지를 받아든 할머니는 이내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다가 끝내는 울고 말았다.
“할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칼리온 씨도 곧 이곳으로 돌아와서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대요.”
“흑흑~ 고맙네.”
“띠링~”
-노모의 한을 풀어주자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3골드가 지급됩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마음을 추스른 할머니는 손에 끼고 있던 은반지를 빼서 테릭에게 전해줬다.
은반지를 받아든 테릭은 재빨리 언-락 스킬을 펼쳐 반지 안에 있던 반쪽의 지도를 꺼내고는 두 개의 반지를 다시 돌려줬다.
사실 테릭에게 필요한 것은 반지 안에 담긴 지도가 목적이었지 낡은 은반지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걸 내게 왜 주는가?”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이라면서요?”
“아니야. 우리 아들의 소식을 전해준 답례이니 그건 자네가 가지게.”
“전 그것보다는 여기 있는 옥가락지가 좋은데요. 차라리 이걸 주세요.”
할머니의 추억이 어린 물건을 차마 가져갈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몇 번이나 옥가락지가 정말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고 나서야 미안해하며 은반지를 받았다.
“할머니, 수고하세요.”
“그래, 나중에라도 이곳에 올 일 있으면 꼭 들르게.”
“네.”
할머니와 헤어진 테릭은 자유 상점을 돌며 마법스크롤과 포션, 그리고 디스카드용 무기를 넉넉히 구입했다.
“이제 뭘 하지? 지도랑 녹슨 철판을 확인해 볼까?”
자이툰에서 볼일을 전부 끝낸 테릭은 접속을 종료하기 전에 반지 안에서 꺼낸 반쪽의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디코드 스킬을 펼쳐야만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리빙스턴의 대륙 던… 도]
대륙 곳곳에는 수많은 …이 있고 심지어 고대의 …도 있다.
지도 제작자였던 나, 리빙스턴은 대륙의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과 …을 발견했다.
당시 지도 제작을 위해 발굴을 할 수 없던 나는 훗날을 대비해서 당시에 발견했던 …과 …의 좌표와 위치를 남기노라.
……
원래는 하나였던 대륙 던… 도를 두 개로 갈랐다.
설명 자체만으로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두 개의 지도를 합친 순간, 새로운 그림이 나타나며 전혀 다른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또 지도 뒷면에 나온 설명 부분에도 새로운 글이 나타났다.
하지만 지도가 나온 쪽만 바라보는 테릭은 지도 뒤쪽의 설명문에 일어난 변화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도에 나타난 변화만 신기하게 여겼다.
‘이번에는 녹슨 철판을 살펴볼까?’
끝없는 미로 안에서는 시간 관계상 녹슨 철판을 유심히 살펴볼 틈이 없었다.
하지만 던전 안에서도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질 정도라면 뭔가 중요한 비밀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테릭은 디코드 스킬을 펼쳐 녹슨 철판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마법회로 보드]
고대시대의 초슈퍼 울트라 병기인 타이탄에 삽입되는 마법회로 보드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많은 점들은 수백 개의 마법진이 집약된 마법회로이며, 보드에는 수백 개의 마법회로가 부착된 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분류 : 종합 전투형
옵션 : 36가지 마법구현 가능(1~9서클)
내구도 : 545/120,000
장착제한 : 2,500,000GOP(자이언트 오거 파워) 이상의 출력이 가능한 SMAX급 타이탄에만 착용 가능.
주의 :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어서 내구도가 저하되어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email protected]@
“오! 세상에.”
타이탄이 어떤 것이던가?
지금의 조잡한 골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최강의 병기로, 아스리온에서도 신화 속에서나 언급되는 그야말로 전설의 병기였다.
사실 다빈치에게 고대 시대의 타이탄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테릭은 직접 타이탄에 삽입되는 마법회로 보드를 발견한 순간,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타이탄의 부품을 얻게 되다니. 그렇다면 마법거울이 발견되었다는 몽겔 사막을 하루라도 빨리 가봐야겠어.”
할머니의 지도도 고대 시대의 유물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딜 가라는 내용이 없었기에 막막했다.
반면, 벨라니의 마법거울은 몽겔 사막 중앙부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나와 있었다.
또 다빈치도 추측이지만 타이탄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며 빨리 가보라고 했었다.
테릭은 앞으로 한동안은 몽겔 사막을 뒤져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처음 듣는 이상한 목소리가 뇌리에 들려왔다.
=>야! 테릭.
=>누구?
=>나 피사로다.
=>피사로? 무슨 일이야?
=>좋게 말할 때 미로에서 가져간 것이랑 툼 레이더를 내놔라.
이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피사로였다.
그는 끝없는 미로 안에서 파이어 골렘이 다시 리젠된 것을 기다렸다가 잡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자작의 부하들을 통해 끝없는 미로에서 나온 자들이 테릭과 용병이란 걸 알고 바로 귓속말을 한 상태였다.
=>내가 얻은 것을 왜 돌려줘야 하지? 그리고 툼 레이더를 내가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두말하지 않겠다. 그란티아를 계속하고 싶으면 녹슨 철판과 툼 레이더를 내놔라.
=>미친놈.
=>뭐! 너 지금 어디야? 당장 불어.
=>지랄을 해라.
녹슨 철판을 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피사로였다.
그는 테릭을 위협했지만 그런 것에 넘어갈 테릭이 아니었다.
울화통이 터진 피사로는 결국 실컷 욕을 해대다가 기필코 죽이고 말겠다는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나 테릭은 녀석이 떠드는 것은 진즉에 무시하고 이미 간달로프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혼자서 떠들던 피사로는 제풀에 지쳐 욕설을 그만뒀다.
* * *
“간달로프.”
“오! 테릭, 어서 오게. 설마 벌써 200레벨에 도달한 것은 아니겠지?”
“어쩌죠, 205레벨인데?”
“헉! 그게 사실인가?”
“네.”
“내가 많은 이방인을 봐왔지만 자네처럼 폭발적인 속도로 레벨을 올리는 이는 본 적이 없네.”
“이번에도 운이 좋았어요. 또 던전을 발견했거든요.”
“운도 계속되면 실력이네.”
간달로프는 마치 자신이 레벨업을 한 것처럼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의자로 사용하는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테릭은 간달로프가 나무상자를 열자 기대어린 시선으로 그를 주시했다.
잠시 후 간달로프는 푸른색과 은빛이 동시에 감도는 투구와 아머, 그리고 장화를 꺼냈다.
“간달로프, 설마?”
“그래, 족장님과 장로님의 선물이네.”
“차마 입기가 아까울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요.”
“아직 멀었네.”
“뭐가 또 있어요?”
“200레벨이 되면 망토를 착용할 수도 있지.”
간달로프가 이번에 꺼낸 것은 아머와 투구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붉은색 망토와 전체적으로 피처럼 붉은색을 띠는 롱소드였다.
특히 망토의 바탕과 롱스드의 검갑에는 금색으로 유니콘이 수놓아져 더욱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전부 유니크급 장비이네.”
“오!”
“성능도 성능이지만 옵션도 훌륭해서 280레벨용 장비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네.”
“정말 이걸 제가 받아도 되나요?”
“당연하지. 자네를 주려고 일부러 유니콘의 모습을 새기지 않았겠는가?”
“아!”
도약을 준비하는 유니콘은 120년째 이어져 내려온 군나르 가문의 상징이었다.
테릭은 이제야 간달로프가 가문의 상징이나, 원하는 문양이 있냐고 물어봤던 이유를 알았다.
“어서 입어보게.”
“족장님과 장로님께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이 은혜는 절대 안 잊겠다고 해주세요.”
“그런 말 말게. 자네는 우리 드워프들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이방인이지 않은가?”
“아! 언제고 다시 가서 예술품을 구매할 테니까 부디 창작활동에 전념해달라고 전해주세요.”
“부디 그렇게 해주게. 사실 족장님과 장로님도 내심 그걸 기대하는 눈치였네.”
“좋지요. 그건 저도 원하는 일입니다.”
왕국의 수도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드워프들의 예술품을 파는 건 일도 아니었다.
테릭은 그걸 염두에 두고 계속 작품 활동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테릭이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자금이 풍부해진 망치부족의 모든 드워프는 오늘도 변함없이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오히려 족장과 장로는 지금 만들고 있는 예술품의 추가 판매를 기대하고 이런 장비들을 일종의 뇌물로 선물한 것이었다.
“안 입고 뭐하는가?”
“네.”
테릭은 지금까지 착용하고 있던 장비를 벗고 드워프 족장과 장로가 만들어준 아이템을 하나하나 확인 후 착용하기 시작했다.
@@[고도로 강화된 2겹 미스릴 코팅 아머]
잘 제련된 강철을 특수한 가공 기술로 2겹을 덧댄 후, 미스릴로 코팅해서 방어력을 극대화했다.
선택받은 장인 종족인 드워프 족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이템으로 가히 명품으로 불릴 만하다.
등급 : 유니크
레벨제한 : 200레벨 이상
내구도 : 800/800
방어력 : 200
옵션1 : 모든 스텟 +10
옵션2 : 데미지 흡수 10%@@
@@[열화의 화염 속에 탄생된 굳건한 투구]
강철과 여러 성분을 녹이고 녹여서 부피는 줄이되 강도를 높인 투구이다.
제작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어려워서 장인의 열정과 혼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작이 불가능하다.
등급 : 유니크
레벨제한 : 200레벨 이상
내구도 : 800/800
방어력 : 150
옵션 : 스킬반사+20%@@
@@[선택받은 자를 위한 질긴 장화]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오거 가죽에 드워프만의 비전으로 미스릴과 강철을 결합시켰다.
가벼우면서 질겨서 실용성과 방어력을 모두 만족시킨, 보기 드문 수작이다.
등급 : 유니크
레벨제한 : 200레벨 이상
내구도 : 750/750
방어력 : 120
옵션1 : 온도 조절 마법 및 통풍마법
옵션2 : 이동속도 5% 증가@@
@@[우정이 꽃 피어낸 기적의 망토]
연철을 실처럼 뽑아 이를 한 땀, 한 땀 이어서 만든 그란티아 유일의 철제 망토이다.
워낙 가볍고 가는 연철을 사용했기에 무게는 천보다 가볍지만 그 방어력은 몇 배나 뛰어나다.
등급 : 유니크
레벨제한 : 200레벨 이상
내구도 : 750/750
방어력 : 100
옵션1 : 마법회피+20%
옵션2 : 공격속도 4% 증가@@
@@[뇌전의 기운이 실린 미스릴 검]
금보다 비싸고 귀하다는 미스릴 원석을 갈아서 만든 100% 순수 미스릴 검이다.
드워프족 최고의 장인이자 전사로 손꼽히는 바라망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불후의 명작이다.
등급 : 유니크
레벨제한 : 200레벨 이상
내구도 : 1,250/1,250
공격력 : 380
옵션 : 마나-샷(마나소모 250, 쿨타임 30초)@@
* * *
“오! 이럴 수가.”
아이템을 확인한 테릭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아이템의 능력치와 옵션에 놀랐다.
이 정도면 280레벨이 아니라 300레벨대 장비와도 맞먹을 정도였다.
장비 착용 전과 후를 비교해 보자면 공격력은 230이 올랐고 방어력은 무려 320이나 올랐다. 아마도 유니크급 장비라 더욱 뛰어난 것 같았다.
“어때, 마음에 들어?”
“그럼요. 이런 장비를 얻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하하하~ 좋아할 줄 알았네.”
이건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었다.
드래곤의 마법무구에 비하면 많이 떨어졌지만 그건 착용 레벨과 아이템의 등급이 다르기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아이템을 아스리온으로 가져간다면 가히 신물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모든 장비를 착용한 테릭은 간달로프와 헤어진 후 로그아웃을 했다.
‘유니크급 아이템을 확인해봐야겠지.’
이전에 트윈헤드 오거를 잡을 때는 스크롤과 포션, 그리고 망원경 같은 보조용 아이템과 공격 스킬을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머와 투구 같은 중요장비를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차원아공간에서 유니크급 장비를 소환해 착용한 테릭은 소파 위에 있던 차원이동기를 챙겼다.
‘어떨지 모르니 차원이동기는 차원아공간에 담아둬야겠어.’
몬스터를 쫓다보면 그때처럼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물론 툼 레이더가 있는 이상 레어를 못 찾아올 일은 없지만 차원이동기 같은 귀중품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또한 차원아공간은 무게와 부피의 제한이 없으니 일도 아니었다.
“이제 나가볼까! 아이템을 확인하려면 몹에게 일부러 맞아봐야 하나?”
테릭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갑옷과 투구를 비롯한 방어구의 방어 성능이었다.
그란티아에서는 방어력이 수치로 표시되면서 몹으로부터 타격을 당했을 경우에도 이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스리온에서는 직접 맞아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
‘오크 정도면 적당하겠지.’
레어 밖으로 나온 테릭은 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한껏 켠 후 쌍안경을 꺼내 주변을 둘러봤다.
찾고 있던 오크는 산 밑에 몇 마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볼까.”
얼마 후 테릭은 두 마리의 오크를 발견했다.
녀석들은 테릭이 다가오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저것들이 왜 저래?’
몬스터가 인간을 발견하면 이게 웬 떡이냐며 냉큼 달려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오크들은 믿기지 않게도 뒷걸음질을 쳤다.
이는 테릭의 레벨이 오르며 특수 스텟인 살기가 95까지 치솟으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쉽게 말해 오크들은 본능적으로 테릭의 살기를 감지하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야~ 이리 와.”
“취~ 취췩(텨!)”
“취익~ 취췩~(잡히면 뒤진다.)”
“안 멈춰!”
도망가는 오크를 쫓아가서 일 검에 베어버린 테릭은 다른 오크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오크들은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같이 도망만 쳤다.
“아!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오크를 상대로 방어구의 성능 확인이 어려워지자 테릭은 어쩔 수 없이 트롤로 종목을 바꿨다.
그러나 트롤을 찾으려면 아무래도 빠하르간지의 레어가 있는 캄차크 산 안쪽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 시각, 클리스만 교관이 이끄는 수색대는 내일 철수를 앞두고 마지막 수색에 한창이었다.
“암벽을 중심으로 그 주변 1킬로를 수색한다.”
“오늘이 마지막 수색인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각 조별로 흩어져라!”
클리스만 교관은 테릭이 살아 있다면 그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끊긴 암벽 근처에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수색조가 그렇게 주변을 헤매는 사이 테릭은 트롤을 찾아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쌍안경을 아예 탐색모드로 바꾸는 게 좋겠어.”
탐색모드란 쌍안경의 모든 기능을 억제하고 오직 몬스터탐지 능력만 극대화하는 기능이다.
탐색모드를 가동한 테릭은 몇 분 후 그렇게 찾아다니던 트롤 두 마리를 발견했다.
“오~예! 찾았다.”
몬스터를 발견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란티아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버릇이었다.
그란티아에서는 몬스터를 잡아야 돈이나 아이템도 생기고 레벨도 올라가기에 모든 사람들이 몬스터만 발견하면 좋다고 악을 쓰며 뛰어갔다.
이는 레이나도 마찬가지여서, 그녀는 특유의 괴음을 지르며 쫄랑쫄랑 뛰어가곤 했었다.
“이노옴~ 멈춰라!”
“크르르릉~”
다행히 트롤들은 오크처럼 도망가지 않았다.
테릭은 트롤 두 마리에게 얻어맞으면 힘들 거라는 생각에 한 마리는 잡을 생각이었다.
‘굳이 공격스킬을 펼칠 필요는 없겠지. 그보다는 검에 붙어 있는 마나-샷이라는 스킬을 확인해 볼까?’
검이나 아이템에 장착되어 있는 스킬은 고정형 스킬이라 숙련도가 필요 없었다.
다만 스킬 명을 외치거나 떠올려야만 스킬이 발동되었기에, 직접 몸으로 펼치는 능동형 스킬의 장점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었다.
“마나 샷~”
미스릴 검을 뽑은 테릭은 레이나가 마법을 펼칠 때 그런 것처럼 스킬 명칭의 마지막 부분을 길게 빼면서 검을 휘둘렀다.
스킬은 발동어가 떨어지자마자 엄청난 광채와 마나의 스파크를 분출하다가 사람의 머리통만한 유선형에 가까운 마나다발을 형성했다.
그렇게 생성된 투명한 푸른색 마나다발은 무서운 속도로 트롤을 향해 날아갔다.
쉬이익~
파파파팟-
퍼퍼펑~
“쿠웨웩-”
“오우!”
마나-샷에 적중당한 트롤이 10여 미터를 붕 날아갔다.
그런데 날아가는 도중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터져나갔다.
마지막 순간 바닥에 떨어진 것은 녀석의 머리통뿐이었다.
“크아아악~”
“오! 바로 그거야.”
바로 눈앞에서 암놈을 잃은 수컷은 광분해서 달려들었지만 테릭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가슴을 쭉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