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농담이 나와? (17/90)

7. 농담이 나와?

“치… 침입자다.”

“적의 침… 입을 사… 상부에 보고하라.”

“죽어라! 이놈들.”

몇 마리의 스켈레톤 나이트도 부담스러운데, 더 많은 스켈레톤을 부르게 할 수는 없었다.

테릭은 뒤로 이동하는 스켈레톤 나이트를 향해 스크롤을 연거푸 찢었다.

그 사이 다른 두 마리의 스켈레톤 나이트가 녹슨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레이나, 녀석들의 시선을 끌거나 아니면 움직임을 어떻게든 제지해봐.”

“어떻게?”

“무슨 그리스 마법이라도 펼치거나 벽을 만드는 마법이라도 사용해.”

“아… 알았어.”

전투에 임해서는 아무래도 테릭의 판단이 빨랐다.

그는 레이나에게 명령에 가까운 부탁을 하고는 스크롤에 얻어맞고 쓰러진 스켈레톤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스크롤에 얻어맞고 우수수 부러졌던 뼈를 골렘처럼 다시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놈, 그렇게는 안 된다.”

팟-

롱소드에 마나-소드를 입힌 테릭은 라이징 샷과 마나드릴을 연거푸 펼쳐 해골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막 뼈를 접합시키던 스켈레톤 나이트는 해골이 깨지자 먼지로 변하면서 소멸되었다.

“꺄아아악~”

테릭이 스켈레톤 나이트 한 마리를 잡는 동안, 두 마리를 혼자서 감당하던 레이나는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그녀가 펼친 파이어-월이라는 불의 장벽은 이미 녀석들에 의해 깨진 상태였다.

“테릭, 어떻게든 해봐.”

“기다려.”

“아! 실드도 금방 깨지려고 해.”

레이나의 사정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는 테릭도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녀석들은 몇 개의 스크롤에 얻어맞은 이후에도 마나-소드가 중첩된 두 개의 스킬을 사용해서 해골을 깨야만 겨우 잡을 수 있는 놈들이었다.

부우욱~

꽈꽈꽝~

스크롤 두 장을 꺼내든 테릭이 한 놈을 선택해서 날렸고, 마법에 얻어맞은 녀석은 성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테릭은 스크롤을 한 장이라도 아낄 생각에 녀석의 머리를 향해 스크롤을 재차 찢었다.

이번 스크롤은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스톤 캐넌이라는 마법이 저장된 스크롤이었다.

‘딱 좋아!’

찌이익~

픠슝-

스크롤이 찢어지기 무섭게 웅장한 소리가 나며 거대한 바위가 나타났다.

그렇게 나타난 바위는 바람을 가르며 스켈레톤을 향해 날아갔다.

‘이놈아, 바위에 맞은 이상 네놈의 대갈통도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테릭은 스켈레톤의 머리가 곧 박살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녀석은 믿기지 않게도 납작 엎드려서 스톤 캐넌을 피하고 말았다.

목표한 스켈레톤 나이트를 때리지 못한 스톤 캐넌은 계속 비행해서 반대편 벽과 강하게 충돌했다.

꽝-

쩌어억-

우수수~

가뜩이나 세월의 흐름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벽은 스톤 캐넌과 충돌하자마자 얼음 깨지는 소리를 내며 쩍 벌어졌다.

이어서 작은 돌덩어리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종내에는 모래 쏟아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테릭, 뭐하는 거야?”

“미안.”

“그러다가 다른 놈들까지 소리를 듣고 우르르 몰려오면 어쩌려고 그래?”

“실수였어. 미안해.”

그나마 스켈레톤 나이트 한 마리만 상대해서 그런지 레이나도 여유를 찾았다.

테릭은 급히 검을 고쳐 잡고는 바닥에서 일어서고 있는 스켈레톤을 향해 빅-휠을 펼쳤다.

부웅-

퍽-

‘아! 오늘 내 롱소드 이빨 다 나가겠네.’

녀석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뼈만 불렸는지 그야말로 통뼈였다.

덕분에 녀석들을 때릴 때마다 미스릴 검에서는 둔탁한 소음이 전해졌다.

테릭은 빅-휠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바닥을 구르는 녀석의 해골통을 쫓아서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퍼퍼퍽-

츠팟-

해골이 깨지면서 녀석의 몸이 먼지처럼 흩날리며 사라졌다.

테릭은 남은 스켈레톤 한 마리를 처리하기 위해 다시 스크롤을 꺼냈다.

그때 레이나의 비명 같은 절규가 터져 나왔다.

“테릭! 우리 죽었다.”

“그게 뭔 소리야?”

“저기 좀 봐.”

“뭔데… 헉!”

레이나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린 테릭은 유적의 한쪽 공간을 시커멓게 메우며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녀석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분명 스켈레톤 나이트가 확실했다.

“이게 전부 너 때문이야. 분명 아까 그 소리를 듣고 몰려온 게 틀림없어.”

“젠장!”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기는. 튀어야지.”

얼추 짐작하건데 앞쪽에서 나타난 스켈레톤 나이트의 규모는 수백을 초과할 정도였다.

저런 대규모의 스켈레톤 나이트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그냥 죽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헉! 어느새.”

“아!”

싸우다 말고 뒤로 도망치려고 했던 테릭과 레이나는 몸을 돌리기 무섭게 너무 놀라 동상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뒤쪽에는 몇 배나 많은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아예 유적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앞뒤가 막혔다는 생각에 테릭은 무심코 고개를 올렸다가 금이 쩍 벌어진 천정을 볼 수 있었다.

“아! 혹시 그 방법이라면?”

“클클클~ 네놈들은 독 안에 든 쥐다. 도망갈 생각은 버려라.”

“닥쳐라! 뼈다귀.”

“끌끌끌~ 사지와 머리가 뽑혀야 정신을 차릴 놈이구나.”

“네놈은 확실히 죽여주마.”

“헉!”

다른 스켈레톤 나이트를 발견한 놈은 이제 테릭과 레이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테릭은 녀석의 조롱이 거슬리는지 검을 치켜 올렸고, 둘을 비웃던 스켈레톤 나이트는 놀라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레이나는 테릭이 여기서 죽을 결심을 했다고 여기고 공격마법을 준비하려고 했다.

그때 테릭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나, 텨!”

“엥?”

* * *

“같이 가.”

“레이나, 빨리 와. 운만 좋으면 살 수 있어!”

“우리가 무슨 수로 살아난다고?”

“어서 뛰기나 해.”

테릭은 유적 입구가 아닌 더 깊은 안쪽으로 달렸다.

그 이유가 뒤쪽은 아예 발 딛을 틈도 없을 정도로 스켈레톤 나이트로 가득해서였다.

또 어차피 벨라니의 인정을 받기 전에는 이곳에서 나갈 방법이 없었기에 우선은 포위망이 느슨한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스켈레톤과의 거리를 벌려야 했다.

“헉~ 헉~ 이제 더는 못 뛰겠어.”

“조금만 더 힘내. 여긴 적당한 장소가 아냐.”

“어차피 들어가 봐야 막혀 있잖아.”

“가장 약한 기둥을 찾아야 해.”

“그걸 찾아서 뭐한다고?”

“내게 생각이 있어.”

테릭은 힘들어 하는 레이나를 다독이며 계속해서 안으로 뛰었다.

스켈레톤 나이트들은 어차피 막혀 있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달리는 게 늦는지 모르지만 천천히 뒤쫓고 있었다.

그때 앞쪽에서 수백 개의 시뻘건 불빛이 번뜩였다.

“헉! 저건 또 뭐야?”

“젠장, 자이언트 왕거미야.”

테릭과 레이나의 앞을 가로막은 수백 개의 불빛은 레벨 500을 자랑하는 왕거미들의 붉은 눈이었다.

녀석들은 곰보다 더 큰 몸뚱이에 털이 수북한 8개의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접근하고 있었다.

“테릭, 이젠 어떡하지?”

“별수 없어. 그냥 이걸 무너트리자.”

“기둥을 무너트리자고?”

“응.”

테릭은 바로 앞의 기둥을 유심히 살피며 둘러보다가 발로 차보기도 했다.

그가 발길질을 할 때마다 기둥의 표면을 장식하고 있던 돌 조작 몇 개씩이 떨어졌다.

“지금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니?”

“농담 아냐.”

“말도 안 돼. 이걸 어떻게 무너트려?”

“마법스크롤이랑 네 마법이랑 내 스킬로 때리다 보면 무너지지 않을까?”

“에이, 설마?”

“아냐,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무너지면 우리도 죽을 텐데?”

“어차피 가만있으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잖아? 넌 내 몸으로 덮어서라도 지켜줄게.”

“아!”

꼭 거창하고 화려한 이벤트를 해줘야만 감동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나는 자기 몸으로 방패가 되고 벽이 되어 지켜주겠다는 테릭의 말에 크게 감동했다.

물론 테릭은 여기서 죽게 되면 레이나가 정말 죽는다고 알고 있었기에 그리했을 뿐이었다.

‘자식, 꼴에 남자라고.’

감동에 취한 레이나는 두 손을 맞잡고 몽롱한 시선으로 테릭을 바라봤다.

한편, 스크롤을 몽땅 꺼낸 테릭은 멍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나가 아무래도 이상해 보였다.

“레이나, 뭐해?”

“어! 아… 아무것도 아냐.”

“내가 이쪽 기둥을 부술 테니까 넌 그쪽 기둥을 맡아.”

“으… 응.”

“스크롤은 여기다 놔두니까 필요하면 갖다 써.”

“응.”

테릭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크롤을 찢었다.

그에 스크롤에서 분출된 마법이 요란한 폭음과 함께 돌기둥을 때렸다.

돌기둥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작은 돌조각들을 우수수 떨어트렸다.

그러나 십여 장의 스크롤을 소모했음에도 돌기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테릭, 무슨 조짐이라도 보이니?”

“아니.”

“우리 아무래도 헛짓하는 것 아닐까?”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스크롤을 찢어.”

“아! 미치겠네. 해골들이랑 거미들은 점차 다가오는데.”

테릭과 레이나과 시간을 소모하는 동안에도 스켈레톤과 왕거미들은 꾸역꾸역 다가오고 있었다.

둘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스크롤을 급하게 찢어대기 시작했다.

그때 두 개의 기둥에서 동시에 쩍 소리가 나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와아~ 기둥이 갈라졌어.”

“내 것도 마찬가지야.”

“시간 없어. 어서!”

“빨리 해.”

이제는 레이나가 서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켈레톤과 왕거미들도 둘의 계획을 알아차린 것인지 이전과는 다르게 빠르게 접근을 시도했다.

이제 조금만 더 접근하면 테릭과 레이나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아! 제발.”

“어서!”

쩌어억~

빠찌찌찍~

쿠쿵-

와르르르륵~

우수수~~

몇 장의 마법스크롤에 더 얻어맞은 기둥은 마침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쩍 벌어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둥이 무너짐과 동시에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천정이 와르르 쏟아졌고, 그 틈으로 모래더미들이 폭포수처럼 흘러 내려왔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지만 테릭과 레이나가 무너트린 기둥은 정중앙에 자리한 기둥으로, 유적의 중심축이나 마찬가지였다.

중심축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지하공간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건물 자체가 도미노처럼 붕괴되기 시작했다.

“레이나.”

“테릭~”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유적의 붕괴에 휘말린 테릭은 레이나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처박고는 바닥에 엎드렸다.

워낙 다급했기에 둘은 서로를 마주보는 어색한 자세로 바닥에 누워 있음에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귓가에는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퍽-

“크윽.”

“테릭, 괜찮아?”

“걱정 마.”

부서진 유적의 잔해가 수없이 떨어지면서 테릭의 등판과 다리를 사정없이 가격했다. 그러나 테릭은 레이나를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번개라도 맞은 것인지 허리춤에서 시작된 찌릿찌릿한 감각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순식간에 휩쓸고 지나갔다.

테릭은 마치 낚싯줄에 걸려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처럼 퍼덕이며 온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밑에 깔려 있던 레이나는 고통 때문에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는 테릭의 진동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오자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커헉~”

“테릭!”

“괘… 나… 난 괜찮…….”

“테릭~”

테릭은 미처 말을 끝내지도 못한 채 혼절하고 말았다.

레이나는 파티창을 통해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테릭의 피통을 목격했다.

‘안 돼! 이러다간 테릭이 나 때문에 죽고 말 거야.’

레이나는 인벤을 열어 포션을 꺼냈다. 그러나 의식을 잃은 테릭이 포션을 마실 수는 없었다.

레이나는 궁리 끝에 자신이 포션을 마셔서는 테릭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갖다 댔다.

그리고는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봐 조심스레 입을 포개서는 포션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후훕~”

“꿀꺽~”

아주 미약한 양이지만 포션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희망이 생긴 레이나는 쉬지 않고 테릭의 입안으로 포션을 밀어 넣었다.

“흐흠~”

“테릭, 정신이 드니?”

“하… 하함~”

한 병의 포션을 전부 밀어 넣었을 때쯤 테릭에게서 신음소리 비슷한 게 났다.

레이나는 새 포션을 꺼내 마시고는 테릭의 입술과 포갰다.

살겠다는 본능이 있어서인지 테릭은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레이나의 입안에 있던 포션을 서서히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 피가 차고 있어.”

두 통의 포션을 들이켠 테릭의 생명력 게이지는 삼분지일 정도로 차오른 상태였다.

천정에서는 아직도 모래와 돌덩이들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테릭의 등에 살짝 걸쳐 있는 거대한 돌판에 부딪쳐서 깨졌다. 덕분에 테릭도 더 이상의 생명력 감소는 없었다.

“이제 안심이야.”

레이나는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에 안심하고는 테릭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그동안 같이 다녔지만 이렇게 바짝 붙어서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짜식, 의외로 멋진 구석이 있단 말이야?’

아까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큰소리를 쳤을 때는 솔직히 너무 멋져 보였다.

그때를 생각하고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자 괜히 얼굴이 붉어진 레이나는 다시금 포션을 꺼내서는 들이켰다.

“이건 절대 키스가 아냐! 난 그냥 인공호흡 하듯이 포션을 먹여주는 것뿐이야.”

아무도 없건만 괜히 한마디 내뱉은 레이나는 능숙한 솜씨로 테릭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한편, 의식을 잃은 테릭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입속을 휘젓는 묘한 기분에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헙!’

‘아!’

포션을 먹여주던 레이나는 테릭의 혀가 갑자기 호응을 해오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의 혀가 입안 천장 구석구석을 자극할 때는 찌릿한 쾌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서로의 입술과 혀를 갈구하던 둘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눈을 떴다.

“허험~”

“헙~ 오해는 하지 마. 널 살리려고 그렇게 한 거니까.”

“누가 뭐래?”

둘의 얼굴에는 똑같이 홍조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테릭은 이제 와서 아니라고 부정하는 레이나의 모습이 우스워서 슬쩍 웃음을 터트렸다.

“야! 왜 웃어?”

“웃는 것도 허락받아야 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 은근히 귀엽다.”

“뭐가.”

“가만있어.”

“헙!”

테릭은 이번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키스를 했다.

슬쩍 거부했던 레이나는 테릭의 적극적인 공세에 입을 반쯤 벌려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둘은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를 탐닉하며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다가 떨어졌다.

“하아~”

“야! 테릭, 이제부터 너는 나의 그앤이다.”

“그앤이 뭔데?”

“그란티아 애인.”

“좋아.”

“농담 아니다?”

“넌 그런 것도 농담을 하냐?”

뜻하지 않게 테릭과 레이나는 애인 사이가 되었고, 사이좋게 뻘뻘 기어서 돌판 밖으로 나왔다.

돌판은 무너진 천장의 일부로, 돌판 밖은 그야말로 폐허로 변한 상태로 온통 모래로 뒤덮여 있었다.

아마 유적의 기둥이 붕괴되면서 모래사태가 발생해서 유적을 완전히 뒤엎은 것 같았다.

“테릭, 이제 어떡하지?”

“레이더가 있으니까 계속해서 유적을 살펴봐야지.”

“이 모래더미를 뚫고?”

“그렇다고 여기에 갇혀 있을 수는 없잖아.”

“레벨도 엄청 올랐는데, 이쯤에서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고대급 아이템을 갖고 싶다며?”

“그래도…….”

철저히 붕괴된 유적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인 상태로 도저히 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나마 테릭과 레이나는 무너진 천장이 기둥의 잔해에 걸린 탓에 모래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테릭은 레벨이 많이 올랐다는 레이나의 말을 듣고는 레벨을 확인했다.

“헉!”

“엄청 올랐지? 나도 놀랐다니까.”

놀랍게도 테릭의 레벨은 268레벨이 되어 있었다.

살기 위해 기둥을 무너트렸지만 그 일로 레벨이 올라갈 줄은 생각도 못한 테릭이었다.

* * *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리가 유적을 붕괴하면서 스켈레톤 나이트랑 자이언트 왕거미들이 몰살을 당해서 그러겠지.”

“그런다고 레벨이 올라?”

“당연하지. 우리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붕괴로 녀석들을 죽였는데.”

만일 자연적인 모래사태로 녀석들이 몰살을 당했다면 절대 레벨이 오를 수 없었다.

그러나 플레이어의 인위적인 행동에 의해 몹들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걸 사냥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그란티아의 시스템이었다.

테릭은 한 건 했다는 생각에 흐뭇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때 모래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왕거미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녀석의 거대한 몸통이 들어간 자리에는 마치 억지로 파헤쳐진 것처럼 모래들이 쌓여 있었다.

“레이나, 방금 봤니?”

“응.”

“가보자.”

잠시 후 테릭과 레이나는 왕거미가 사라진 자리에 당도했다.

그곳은 무너진 유적의 잔해와 모래가 뒤엉켜 있으면서 약간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안으로는 많은 거미들이 들어갔는지, 주변의 모래에는 거미들의 발자국이 무수히 찍혀 있었다.

아무래도 거미들은 곤충 특유의 감각과 능력으로 구멍을 파고 들어간 것 같았다.

“우리도 따라서 들어가 볼까?”

“거미들이 이 안에 우글거릴 것 같은데?”

“여기 말고는 꽉 막혀 있어서 갈 데도 없잖아.”

“그래도…….”

“애인이 가자면 못 이긴 척 따라가는 거야.”

“어마~”

테릭은 망설이는 레이나의 손을 억지로 이끌고 구멍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예상대로 구멍 안은 모래와 유적이 얽히고설키면서 사람이 기어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거미들은 이 공간을 억지로 파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테릭, 이러다가 무너지는 것 아닐까?”

“기둥이나 천정의 잔해들이 바닥에 닿아 있어서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난 무서운데.”

“나만 믿어.”

의지할 사람이 생기면 여자들이 약한 척하는 것은 아스리온이나 그란티아나 똑같은 것 같았다.

구멍을 따라서 앞으로 기어가던 테릭은 조금 전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왕거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녀석은 비좁은 틈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다리를 놀리고 있었다.

‘저걸 잡아볼까?’

레벨도 많이 오른 상태이고, 이렇게 막힌 곳이라면 녀석이 제대로 반격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릭은 빠른 속도로 다가가서는 스킬을 사정없이 펼쳤다.

“쿠웨웩~”

“어쭈! 이게 안 죽어?”

“명색이 500레벨의 몹인데 쉽게 안 죽을 거야.”

“그래도 어딘가 약점이 있을 거야.”

테릭에게 공격을 받은 거미는 애처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서 거대한 몸뚱이를 돌릴 수가 없기에 계속해서 공격을 당해야 했다.

온갖 스킬과 디스카드를 계속해서 퍼붓던 테릭은 거미의 몸통 끝부분에 난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마치 항문처럼 보이는 그것은 공격을 받을 때마다 벌렁거리며 크기가 늘어났다 줄었다 했다.

‘저길 찔러볼까?’

구멍을 찌른다면 거미의 내부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놈의 두툼한 껍질 때문에 별 타격을 주지 못하지만 연약한 속살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마나드릴을 펼치지 않아도 될까?’

찌르기 전문 스킬이 마나드릴이었지만, 방금 펼쳤기에 아직 쿨타임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테릭은 거미가 반격하지 못한다는 점을 믿고 마나-소드만 펼쳐진 상태에서 구멍을 향해 검을 힘껏 찔렀다.

푹-

“뭐야?”

한 뼘 정도 들어간 롱소드는 뭔가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거미는 예민한 부위에 검이 박히자 8개의 다리를 비비꼬며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이놈 봐라.”

파파팍-

“크으으윽~~”

테릭은 두 팔에 힘을 줘서 롱소드를 계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롱소드는 살짝 들어간다 싶더니 다시 막혔고, 거미는 더욱 심하게 다리를 꼬며 몸을 흔들어댔다.

“어쭈~ 그래,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

파파팟-

오기가 발동한 테릭은 롱소드를 단단히 쥐고 사정없이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찌르다가 막히면 살짝 뒤로 빼서 다시 찔렀다.

짧은 시간에 롱소드가 수없이 오고갔고, 거미는 심하게 부르르 떨다가는 진녹색 진액을 토해내며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죽어갈 때 토해내던 거미의 비명이 어딘지 모르게 야릇하게 들렸다.

“짜식, 까불고 있어.”

왕거미를 잡은 테릭은 의기양양해서 앞으로 다시 나아갔다. 하지만 얼마 못가 또 다른 왕거미들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왕거미들이 앞으로 따닥따닥 붙어 있는지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왕거미의 약점을 알게 된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죽어!”

파파파팟-

“크흐… 흑흑~”

또 한 마리의 거미가 묘한 신음을 토해내다가 사라졌고, 테릭과 레이나는 레벨업을 했다.

신이 난 테릭은 다음 거미의 구멍을 향해 거침없이 롱소드를 찔러 넣었다.

이번에도 어느 정도 들어간 롱소드는 뭔가에 막혔다.

그러나 이미 익숙해진 테릭은 롱소드를 사정없이 찔러대면서 시험 삼아 마나를 분출시켰다.

펑~

“어! 한방이네.”

마나가 분출되자 희한하게도 왕거미는 폭발을 했다.

한 마리의 거미를 똑같은 방법으로 더 죽인 테릭은 쿨타임이 끝난 마나드릴을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까처럼 한방에 죽지 않았다.

“어! 마나가 분출되어야 효과가 있나?”

이상하게 생각한 테릭은 마나드릴에 얻어맞아 큰 구멍이 뚫린 거미를 향해 다시 롱소드를 박았다.

그리고 이전처럼 검을 사정없이 흔들면서 마나를 분출했다.

퍼펑~

“역시 한방이군.”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마나-소드가 펼쳐진 검을 흔들면서 마나를 분출시킬 때 더 큰 타격을 주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테릭은 계속 똑같은 방법으로 거미를 사냥했다.

* * *

“테릭, 괜찮아?”

“응.”

“잠깐 쉬고 있어. 이번에는 내가 할게.”

“그럴까.”

좁은 모래구멍 안에서 수십 마리의 왕거미를 죽인 테릭은 282레벨까지 올랐다. 하지만 계속해서 찌르기만 하다 보니 손목이 욱신거렸다.

테릭의 뒤에서 경험치만 얻어가던 레이나는 미안해서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레이나의 마법은 구멍을 정확히 때리기는 했지만 그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10여 발의 마법을 난사하고 나서야 거미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비켜. 내가 할게.”

“미안해.”

“괜찮아.”

테릭은 잠깐 쉬는 와중에도 레이더를 꺼내 살펴보는 중이었다.

다행히 거미들이 뚫고 있는 구멍은 붉은색의 점이 깜빡이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시 앞으로 나선 테릭은 거미의 구멍을 향해 사정없이 롱소드를 들이박은 상태에서 마나를 분출했다.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검을 흔들지 않았음에도 마나가 절로 반응해서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때 폭음과 함께 경쾌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딩~동~”

-S급 성장형 공격스킬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명성이 50 부여됩니다.

-창조하신 스킬에 마나-밤이라는 명칭이 부여됩니다.

-창조하신 스킬을 마스터하실 경우, 추후 1회에 한해 스킬북으로 제작, 판매를 하실 수가 있습니다.

-복합 스킬을 창조하셨기에 베이스 스킬인 마나-소드의 숙련도가 특별히 20% 상승합니다.

[마나-밤]

마나를 외부로 분출시켜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무시무시한 스킬이다.

단, 무기에 마나가 입혀진 상태에서 펼쳐야만 한다.

분류 : 액티브(성장형)

종류 : 무기를 이용한 복합형 공격스킬

등급 : S급

특징 : 베이스 스킬(마나-소드)이 선행되어야 한다.

숙련도 : 0%

위력 : 공격력 680~730

사정거리 : 2~3미터

제한 : 마나소모 150

쿨타임 : 10초

기타 : 성장형 스킬이므로 숙련도에 따라 위력이 증가한다.

“오!”

“왜 그래?”

“스킬이 또 생겼어.”

“와우~ 축하해. 넌 아무래도 검술의 천재인가 봐.”

“하하하~ 내가 좀 해. 그런데 복합형 스킬은 뭐야?”

“뭐! 복합형 스킬이야? 그러면 스킬 등급이 S급 이상이란 소리인데?”

“응, 맞아.”

복합형 스킬은 한 개 이상의 스킬이 펼쳐진 상태에서 스킬창조의 조건을 달성했을 때 생겨나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S등급 이상의 고급 스킬은 전부 복합스킬이었다.

그러나 복합형 스킬은 베이스 스킬이 펼쳐져야만 펼칠 수 있다는 제한사항이 붙었다.

하지만 워낙 그 위력이 뛰어나 그 정도의 핸디캡은 일도 아니었다.

한편, 새로 얻은 스킬을 살펴보던 테릭은 행복한 상상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만약에 마나-소드가 오러-소드로 진화한 상태에서 이걸 펼치면 그랜드마스터로 오해를 받겠는데.’

진화형 스킬인 마나-소드는 숙련도가 100%에 달하면 오러-소드로 진화한다.

오러-소드는 소드마스터의 상징인 오러블레이드와 똑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오러 소드를 펼친 상태에서 마나-밤을 발사하면 전설의 그랜드마스터로 오해받기 딱이었다.

게다가 그랜드마스터로 알려진다면 검에 붙어 있는 마나-샷을 펼쳐도 그랜드마스터의 오러-밤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흠~ 그랜드마스터가 되면 공작 작위는 받을 수 있겠지.’

대륙의 역사에 딱 한번 등장했던 궁극의 경지가 그랜드마스터였다.

만약 그랜드마스터로 알려지기만 한다면 타라한 왕국에서 공작 작위는 두말 않고 줄 것 같았다.

아니, 왕국만이 아니라 발렌시아 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해올 것 같았다.

‘스탠리, 기다려라. 내가 공작이 되면 그때는… 킥킥킥~’

지금은 스탠리, 그것이 자기 아버지만 믿고 까불지만 같은 공작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리고 스탠리가 아무리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망나니라고는 하지만 그랜드마스터에게 까불 정도로 간 큰 놈도 아니었다.

‘아! 마나-소드의 숙련도는 어느 정도나 되지?’

이 모든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나-소드가 오러-소드로 진화해야 한다.

만약 오러블레이드를 펼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테릭을 그랜드마스터로 여기지 않을 게 확실했다.

솔직히 달리지도 못하는 놈이 날겠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헉! 94%’

복합형 스킬을 창조한 덕분에 마나-소드의 숙련도가 특별히 오른다고 하더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상태라면 오러-소드를 펼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뭘 그렇게 중얼거려?”

“엉?”

“아까부터 혼자서 뭐하는 거야?”

상상의 늪에서 허우적대느라 레이나를 깜빡 잊고 있었다.

그녀는 약간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테릭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내가 그랬어?”

“그래, 내가 불러도 대답도 않고.”

“아! 미안해. 스킬 숙련도를 확인했어. 복합형 스킬을 창조했다고 베이스 스킬의 숙련도도 올라갔다.”

“어! 정말? 좋겠다.”

“이제 다시 출발해야지. 내가 앞장설게.”

스킬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사냥을 계속해야 했다.

테릭은 마나-소드를 펼친 상태에서 얼마 남지 않은 거미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둘이서 거미들이 판 구멍을 통과해서 나왔을 때 테릭의 레벨은 어느덧 286레벨이 되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