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1. 그놈은 왜 또 온 거야? (41/90)

5권

1. 그놈은 왜 또 온 거야?

휘우우우~~~

짐승의 울부짖음과 비슷한 바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곳.

이곳은 수만 길 낭떠러지로 이뤄진 마다카스 절벽의 정상이었다.

잘못해서 실수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뼈도 추리지 못할 이곳에는 아까부터 머리색과 눈동자가 각각 다른 3남 2녀가 오연히 버티고 선 채, 뭔가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드디어 최상급 타이탄라이더가 탄생했어.”

“그러나 SMAX급 타이탄은 잘 봉인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내 생각도 베르키너스와 마찬가지야. 그리고 고작 SMAX급 타이탄 한 대로 뭘 할 수 있겠어?”

블루드래곤 테실리우스의 말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던 사내는 붉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를 하고 있는 레드드래곤 베르키너스였다.

또한 베르키너스의 말에 공감한다고 했던 은발 여자는 실버드래곤 아르실리안이었다.

“아르실리안, 그래도 명색이 SMAX급 타이탄이라면 갖고 놀기에는 재미있지 않을까?”

“맞아! 그러지 말고 우리가 타이탄라이더를 찾아서 SMAX급 타이탄을 넘겨주는 건 어떨까?”

“카트리나, 장난이라도 치자는 거야?”

“뭔가 자극을 기대하는 것은 다들 마찬가지 아닌가?”

“뭐, 그렇게 된다면 한동안 재미는 있을 것 같군.”

빅-윙을 착용한 3기의 SMAX급 타이탄은 능히 드래곤과도 일전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대인이 남겨놓은 SMAX급 타이탄은 고작 1기가 전부였다.

때문에 이들 다섯 드래곤은 최상급 타이탄라이더가 탄생한 것에 대해 거의 무신경한 반응이었다.

심지어 SMAX급 타이탄을 봉인하고 있는 골드드래곤 카트리나는 재미를 위해서 타이탄을 넘겨주자는 말까지 했다.

그때 침묵만을 유지하던 블랙드래곤 파돌프스키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너, 또 여성 플레이어를 건드리기라도 한 거냐?”

“파돌프스키, 제발 이방인 흉내는 그만해라.”

“이번에는 그런 문제가 아냐.”

“그럼 뭔데?”

“빠하르간지가 남기고 간 아이템을 누군가가 찾아갔다.”

“뭐!”

“헉! 그게 사실이야?”

“설마?”

“아니겠지? 분명 무슨 착오일거야, 그렇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이들에게도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몇 년 전에 그란티아를 찾아왔던 빠하르간지였다.

그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이들 다섯 드래곤을 수족처럼 부렸다.

당시 이들이 빠하르간지에게 바쳤던 아이템들은 말이 좋아 신뢰의 선물이었지, 실제로는 복종의 맹세였다.

때문에 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스스로 자신들의 신체 일부를 뽑거나 뜯어서 아이템을 제작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아! 젠장.”

“그놈은 왜 또 온 거야?”

“오! 노~ 그가 다시 돌아왔다면 난 바로 수면에 들어가겠어.”

“파돌프스키, 정말 제대로 확인했어?”

“혹시 무슨 사고가 나서 엉뚱한 플레이어가 찾아간 것 아냐?”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창고는 반드시 이름과 비밀번호를 알아야만 열 수가 있어.”

“다들 진정해.”

이들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레드드래곤 베르키너스였다.

그는 아이템을 찾아간 시기를 비롯해서 이것저것을 캐묻기 시작했다.

“언제 찾아갔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지 못하지만 꽤나 시간이 흘렀다는 말은 들었다.”

“꽤나 흘렀다고?”

“그래. 최소한 몇 달은 됐을 거라고 하더군.”

“몇 달이나 흘렀다고?”

“그럼, 왜 우릴 찾아오지 않았지?”

“맞아! 왔어도 진즉에 와야 하는 것 아닌가?”

빠하르간지는 떠나기 전 조만간 돌아오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정 여의치 않으면 일족의 다른 이라도 반드시 보내겠다고 했었다.

때문에 이들은 빠하르간지가 남기고 간 아이템을 찾은 이가 있다면, 그는 당연히 빠하르간지이거나 혹은 그가 말했던 이계의 일족이라고 여겼다.

“혹시 안 온 게 아닐까?”

“그건 아냐. 분명 아이템이 사라진 이상 누군가가 이곳을 다시 방문한 것은 틀림없어.”

“베르키너스, 혹시 창고지기들을 통해 찾아간 이가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은 없을까?”

“카트리나, 그건 우리라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아! 세뇌마법을 걸어서 그들의 기억을 뽑아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소용없어! 주신의 강제에 의해 그들의 기억은 애당초 사흘밖에 저장되지 않아.”

“젠장, 그럼 어쩌자고?”

“이것 너무 불안해지는데.”

“도대체 이번에는 무슨 꼬투리를 잡으려고 아직까지 안 나타나는 거야?”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이곳 인간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많은 것을 주문하고 간 빠하르간지였다.

심지어 그는 SMAX급 타이탄이 드래곤의 존엄에 손상을 끼칠 수 있다며 철저한 봉인을 지시한 존재였다.

더불어 지시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협박했던 그였다.

그때 베르키너스가 제법 그럴듯한 가설을 제시했다.

“혹시 빠하르간지가 아니라 다른 존재가 온 것 아닐까?”

“이계의 다른 일족을 말하는 거야?”

“그렇지!”

“오! 그럴 수도 있겠는데.”

“맞아! 만일 그가 왔으면 우리가 지금처럼 무사할 리가 없어.”

“당연하지.”

아무래도 빠하르간지가 아닐 것 같다는 의견에는 다들 공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빠하르간지라면 진즉에 자신들을 찾아와서는 부탁한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며 경을 쳤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계의 다른 일족은 왜 우리를 안 찾는 거지?”

“빠하르간지가 우리에게 지시한 일을 잘했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허걱!”

“아냐, 그랬으면 진즉에 찾아왔을걸.”

“맞아. 그건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그럼 왜 안 오지?”

“글쎄, 명색이 이계에 온 만큼 유희를 하고 있을까?”

“그가 유희를 한다고?”

“오! 그럴 수도 있겠는데.”

그 뒤로도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그 누구도 이계의 일족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결국 이들은 이렇게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이계의 일족을 찾기로 합의했다.

“다들 대륙을 흩어져서 뒤져보자고.”

“좋아! 우리 다섯이 동시에 뒤진다면 반드시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까짓것, 아무리 이방인으로 폴리모프를 했다고 해도 아이템만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다들 아이템은 기억하고 있겠지?”

“생 이빨을 뽑아서 억지로 만든 아이템인데 그걸 모를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인간 세상으로 나가서 이계의 일족을 찾기로 결정한 이들은 구체적으로 대륙을 세분해서 구역을 정했다.

아울러 수시로 연락을 해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 * *

“반군을 막아라!”

“한 놈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라!”

“반역자, 경비단장을 체포하라!”

국왕과 기사의 독촉에 병사들이 기계적으로 달려왔다.

경비단장의 독촉에 성문으로 달려가던 테릭은 못내 불안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경비단장은 병사들이 몰려오는 와중에도 어서 성문을 열라고 손짓했다.

‘그래, 성문부터 부수자.’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쫓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었다.

테릭은 급히 레이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레이나, 어디쯤이야?

=>지금 왕궁으로 향하고 있어.

=>앞으로 얼마나 걸려?

=>글쎄, 가봐야 알 것 같은데.

=>최대한 빨리 와. 내가 성문을 부술 테니까.

=>성문을 부순다고. 어떻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떻게든 빨리 와.

=>알았어.

레이나와 귓속말을 끝낸 테릭은 곧장 괴력을 펼쳤다.

한편, 성문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테릭의 접근을 알아차리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성문 계폐기를 부수면 되겠지.’

성의 바깥에서는 철이 덧씌워진 외부 격문과 내부의 나무문을 직접 두드려서 깨야만 했다.

그러나 이곳은 성의 내부인 이상, 개폐기를 부수면 최소한 해자와 성을 연결하는 외부 격문만큼은 열 수 있었다.

“놈이 계폐기를 노린다!”

“화살을 날려라!”

“막아라!”

“어림없다.”

시저스 기동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간단히 회피한 테릭은 성문 주변에 모여 있던 수백의 병사들을 향해 사이오닉 스톰을 날렸다.

괴력에 의해 3배나 강력해진 사이오닉 스톰의 번개 다발은 성문 일대를 완벽하게 뒤덮었다.

츠파파파팟~~

파치칙~~

=화염의 정화에 포함된 화염효과가 발생하면서 각각의 뇌전에 추가 데미지가 400씩 부여됩니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안 그래도 괴력상태에 돌입한 상황에서 화염효과에 크리티컬까지 터지면서 사이오닉 스톰의 위력은 가히 핵폭발에 버금갔다.

폭발에 휘말린 수백의 병사는 그야말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순식간에 시커먼 재로 변했다.

하지만 수백의 병사를 집어삼킨 폭발의 파괴력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성벽 전체를 들썩거렸다.

“오! 세상에.”

“아흐…….”

“이… 이럴 수가!”

엄청난 대폭발의 파괴력은 해방군은 물론이고 병사들에게까지 크나큰 충격을 줬다.

그 충격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주변의 모든 이는 동작을 멈춘 채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먼지구름만 바라봤다.

경비단장은 그 틈을 노려 달려드는 병사들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냈다.

“병사들이여, 언제까지 폭군의 주구 노릇을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무기를 돌려라! 방금 보지 않았는가? 하늘의 뜻을 거역한 자에게는 준엄한 피의 불벼락이 내릴 것이다.”

“아!”

“헙!”

“뭣들 하는가? 어서 무기를 돌려라! 그대들이 공격해야 할 적은 우리의 부모형제를 착취하고 수탈하는 폭군이다.”

경비단장의 거듭된 사자후에 병사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악을 쓰며 해방군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해방군이 다가온다는 말에 병사들은 더욱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계폐기를 빨리 부숴야 해.’

굉장히 미묘한 순간이었다.

테릭은 이 순간 성문이 열리면 해방군이 대세를 장악하게 된다고 판단하곤 다시 화염의 정화를 휘둘렀다.

퍼퍼펑~~

꽈꽝-

차르르륵~~~

“계폐기가 부서졌다.”

“외부 격문이 내려간다.”

마나-밤 한방에 계폐기가 산산조각 나며 외부격문을 고정하던 쇠사슬이 맹렬한 속도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테릭은 여세를 몰아 굵은 통나무로 만들어진 내부 문을 향해 또다시 사이오닉 스톰을 날렸다.

츠파파파팟~~

쿠쿠쿵~

빠지찍~~

강력한 뇌전이 나무문 곳곳에 머리통만한 구멍을 냈고, 이어서 불어 닥친 태풍이 넝마로 변한 성문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성문이 뻥 뚫리자 놀란 국왕이 기사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저자를 죽여라.”

“병사들은 외부 격문을 끌어올려라.”

“안 된다. 폭군의 명을 따를 필요는 없다!”

국왕의 명령에 20명의 호위 기사들이 테릭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사들은 경비단장의 호통에 주춤거렸다.

“이놈들, 반역자의 말에 따르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어서 움직이지 않고 뭐하느냐!”

“너희들도 사람이라면 더 이상 백성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하지 마라.”

“네 이놈들, 호된 꼴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병사를 가운데에 두고 국왕과 경비단장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을 때, 눈부신 섬광과 함께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테릭은 마지막 다섯 번째 사이오닉 스톰을 날려 20명의 기사들을 한꺼번에 처리했다.

덕분에 이번에도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믿었던 기사들이 허무하게 비명횡사하자 국왕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경비단장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사자후를 토해냈다.

“병사들이여, 정의로운 심판을 똑똑히 봤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해방군과 힘을 합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자!”

“난 해방군에 가담하겠어. 죄 없는 백성들을 잡아들이는 것도 이제는 신물이 나.”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딸 얼굴보기 부끄러워서 진즉부터 때려치우고 싶었어.”

“그래, 나도 가담하겠어.”

“뭐…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들을 자… 잡아들여라. 큰 상을 내리겠다.”

병사들이 곳곳에서 대열을 이탈하기 시작하자 국왕은 겁에 질린 음성으로 그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그때 성 바깥에서 우렁찬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 * *

“폭군을 몰아내자!”

“새로운 랭카스터를 건설하자!”

“와아아아~~”

약 3천의 해방군이 열린 성문으로 쏟아져 들어왔지만 해방군을 향해 공격하는 병사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해방군을 공격하려 했던 병사들은 다른 동료 병사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테릭은 해방군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재빨리 경비단장 옆으로 다가갔다.

“띠링~ 띠링~”

-랭카스터 산악왕국을 해방시키자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공적치 70이 지급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경험치가 지급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능동형을 선택하셨기에 10개의 스텟 포인트가 자동으로 분배됩니다.

또다시 레벨이 올라가며 테릭의 레벨은 460이 되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자 국왕은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뒤를 따르는 이는 3명의 기사와 몇몇 대신들, 그리고 수십 명의 병사가 전부였다.

“폭군이 도망간다.”

“잡아라!”

비대한 몸을 이끌고 허겁지겁 도망가던 국왕은 얼마 가지 못해 잡히고 말았다.

그때 레이나와 하울이 다가왔다.

하울은 경비단장의 손을 굳게 맞잡고 흔들다가 감격의 포옹을 했다.

병사들과 해방군은 왕궁이 떠나갈듯 함성을 질러댔다.

“와아~ 랭카스터 만세!”

“랭카스터 해방 만세~”

“새로운 랭카스터를 건설하자.”

테릭과 레이나는 목청껏 만세를 부르는 병사들과 해방군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러다가 레이나가 활짝 웃는 얼굴로 테릭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서방, 고생했어.”

“그보다는 해방군의 진입 시점이 참으로 절묘했어.”

“아냐, 서방이 성문을 여는 타이밍이 기가 막혔지.”

“헤~ 그런데 로빈이랑 피터팬은 어디 갔어?”

“나를 엄호하다가 다 죽었어.”

“아! 그랬구나.”

“재수가 없었던 거지.”

“레벨은 떨어졌겠네?”

“어쩔 수 없지.”

테릭은 이쯤에서 예전부터 궁금하게 여겼던, 이방인으로 불리는 플레이어들의 차원이동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울과 경비단장이 다가오는 바람에 물어볼 수 없었다.

“고맙네, 두 사람.”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봉기는 실패했을 것이네.”

“축하합니다, 두 분.”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우리 왕국을 외부와 격리시켰던 마법결계도 깨트렸다고 들었네.”

하울은 레이나에게서 그 얘기를 미리 들었는지 먼저 아는 척을 해왔다.

하지만 경비단장은 금시초문인 사실이었기에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뭐! 마법결계도 깼는가?”

“네.”

“오! 그대야말로 우리 왕국의 영웅일세.”

수년간 마법결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립생활을 해야 했던 랭카스터 사람들이었다.

경비단장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테릭에 의해 마법결계가 깨졌음을 알렸다.

“와아~ 마법결계가 깨졌다.”

“랭카스터에 진정한 해방이 찾아왔다.”

“랭카스터 만세~”

왕궁으로 언제 들어왔는지 수많은 백성들이 해방의 기쁨을 병사들이나 해방군과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 중에는 이전에 길을 안내해줬던 톰이라는 소년과 제이미도 있었다.

“어! 톰이다.”

“옆에 제이미 아줌마도 있는데.”

“테릭, 나 저기 갔다 올게.”

“응.”

레이나가 톰에게 간 직후, 하울과 경비단장은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테릭은 괜찮다고 대답하려다가 문득 빵과 물을 이들로부터 구입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좋아 5천 명이지, 그만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빵과 물을 구하려면 수많은 상점을 다니며 모아야 했다.

특히 마법결계가 사라지고 텔레포트가 자유롭게 되려면 아직도 이틀이나 남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죄송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가?”

“뭐든지 말을 해보게.”

“이틀 동안만 이곳에서 5천 명분의 빵과 물을 매 끼니마다 구입하고 싶습니다.”

“5천 명분을 매 끼니마다?”

“네, 어려울까요?”

“혹시 또 다른 전쟁이라도 치르는 것인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여기는 아니고 다른 곳입니다.”

“알겠네. 어떻게든 해보지.”

“감사합니다.”

해방의 은인에게 그 정도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울은 몇몇 해방군을 불러서 뭐라고 지시했다.

그의 지시를 받은 해방군은 동료 몇 명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왕궁 앞 광장에 빵과 물을 지금부터 쌓아놓겠네.”

“비용은 어떻게 지불하면 되겠습니까?”

“우리 왕국의 은인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지.”

“하지만 한두 푼도 아닌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왕국의 백성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각자 조금씩만 가져오라고 했으니, 부담 가질 필요 없네.”

테릭은 미안해서 어떻게든 비용을 지불하려고 했지만 하울과 경비단장은 그럴 수 없다며 끝까지 거부했다.

* * *

“레이나, 선물이야.”

“어! 이건 그 여자의 로브 아냐?”

“맞아. 네가 죽은 후에 내가 챙겼어.”

“까악~ 이것 엄청 비쌀 텐데, 정말 내가 가져도 돼?”

“다른 선물도 있는데.”

“뭐?”

“짠~”

“헉! 이건 그때의 마법서네.”

“빙고!”

식량과 식수 문제를 해결한 테릭은 레이나를 찾아서는 클레오가 착용하던 로브와 벨트 옆에 있던 고대의 마법서를 선물로 넘겼다.

레이나는 미안해서 사양하다가 테릭이 떠넘기자 마지못해 받았다.

“내가 다 가지면 너는 어떡해?”

“난 벨트도 얻었고 다른 아이템도 많이 얻었어.”

“그래?”

“그러고 보니 아직 확인도 하지 않은 아이템이 두 개나 있었지.”

테릭은 생각난 김에 막내가 죽으면서 흘린 장갑과 석실에 재접속했을 때 운 좋게 주운 각반을 꺼냈다.

테릭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각반은 테실리우스에게 죽은 피사로가 가장 아끼는 아이템이었다.

“테릭, 그 아이템은 어디서 난 거야?”

“그때 석실에서 녀석들이 죽으면서 흘리고 간 아이템이야.”

“아! 그 사람들도 다 죽었어?”

“응, 벨트를 만지면 다 죽게 되어 있거든.”

“그런데 넌 어떻게 찰 수 있는 거야?”

“난 자격이 되니까.”

“자격이라니?”

“내가 그 대단하다는 최상급 타이탄라이더거든.”

“최상급 타이탄라이더? 그런 것도 있어?”

타이탄에 대해 이전에 설명한 적이 있던 테릭은 이번에는 타이탄라이더에 대해서 설명했고, 얼마 전 최상급 타이탄라이더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렸다.

또한 피사로에게서 빅-윙이라는 타이탄의 중요 부품을 얻은 사실까지 얘기했다.

“와우~ 정말 대단한데. 이제는 타이탄만 얻으면 되는 거야?”

“그런 셈이지.”

설명을 끝낸 테릭은 아이템 확인에 들어갔다.

@@[불가능을 몰랐던 위대한 모험자의 각반]

대륙과 대양을 마음껏 누볐던 모험자의 개척 정신에 감탄한 탐험의 신 타나토스가 모험왕 헤불리만에게 선물한 각반이다.

무수한 던전과 유적을 클리어 했던 전설적인 트레저 헌터 오페르토가 착용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등급 : 레전드

레벨제한 : 500레벨

기타 : 모험가 계열은 400레벨부터 착용 가능하다.

-탐험가, 파인더, 트레저 헌터, 지도제작자, 방랑자, 도감제작자, 프리워커 등등.

내구도 : 무한

방어력 : 1,000

옵션1 : 미 발견 지역 최초 발견 후 사냥 시, 최초 1주일간 경험치 세 배(중복 가능).

옵션2 : 에어 워킹(1일 2회 최대 12분)[email protected]@

“이건 나도 착용할 수 있겠는데.”

“아이템 등급이 뭔데?”

“당연히 레전드지.”

“오! 축하해.”

운이 좋았는지 테릭 같은 모험가 계열의 직업을 가진 이는 400레벨부터 착용할 수 있었다.

각반을 착용한 테릭은 캐릭터 창을 켜서 각반에 딸려 있는 옵션인 에어 워킹이라는 스킬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에어 워킹]

바람을 이용해서 허공을 자유롭게 걷고 달릴 수 있는 스킬이다.

아이템에 부가된 고정형 스킬이기에 숙련도는 필요치 않다.

분류 : 액티브(고정형)

마나소모 : 1분당 100

지속시간 : 1회 최대 12분

제한 : 1일 2회

비록 12분간이라는 제한시간이 붙어 있지만 허공을 자유자재로 걷고 달릴 수 있다면 써먹을 데가 엄청 많을 듯했다.

막말로 오러-소드를 분출한 상태에서 이 스킬을 병행해서 펼친다면 그 누구라도 뻑 갈 것 같았다.

신이 난 테릭이 이번에는 막내를 잡고 얻은 장갑 확인에 들어갔다.

@@[전쟁 영웅의 건틀릿]

고대시대, 몬스터의 대대적인 대륙 침공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몬스터와 맞서 싸운 전쟁이 대륙해방 전쟁이다.

대륙해방 전쟁 당시 수많은 영웅들이 활약했는데,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남긴 이가 폴스포인이다.

그는 항상 이 건틀릿을 착용했다고 한다.

평범한 장갑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공격과 방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대단한 걸작이다.

등급 : 레전드

레벨제한 : 500레벨

기타 : 영웅 또는 해방자의 칭호를 갖고 있을 경우, 400레벨부터 착용 가능하다.

내구도 : 무한

방어력 : 700

공격력 : 700

옵션1 : 인비저빌리티(1일 2회 최대 1시간/공격 시 자동해제).

옵션2 : 스크루 토네이도(S급/지속시간 30분/쿨 타임 2분).

기타 : 조건 충족형 퀘스트 생성 기능[email protected]@

“어! 이것도 착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법결계를 해제하면서 해방자의 칭호를 얻었던 테릭은 확인 차 건틀릿을 착용했다.

“오! 된다.”

건틀릿을 착용한 순간 공격력과 방어력이 올라가는 게 예상대로 착용 가능한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레이나는 건틀릿도 착용이 된다는 테릭의 말에 자신의 일처럼 좋아했다.

“장갑은 무슨 급 아이템이야?”

“이것도 레전드급이야.”

“그건 옵션이 뭐야?”

“모습을 감추는 인비저빌리티하고 공격력을 증가시켜 주는 스크루 토네이도라는 스킬이야. 그리고 무슨 퀘스트를 생성한다는 옵션도 있어.”

“그게 뭔데?”

“글쎄, 너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스크루 토네이도는 오러-소드처럼 일정 시간 동안 공격력을 강화시켜 주는 지속형 스킬이었다.

그런데 스킬 등급이 S급이었기에 A급인 오러소드보다 훨씬 월등한 공격 효과를 냈다.

“아무튼 새로 얻은 스킬을 시전해 봐.”

“그럴까.”

다른 건 몰라도 에어 워킹과 스크루 토네이도는 테릭도 펼쳐보고 싶었다.

못 이기는 척 화염의 정화를 뽑은 테릭은 먼저 오러-소드를 시전한 후 에어 워킹을 펼치며 허공을 걸었다.

“우와~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

“에어 워킹이라는 스킬로 12분간 허공을 걷거나 달릴 수가 있어.”

“아! 너무 멋지다.”

“그렇지?”

“응.”

에어 워킹을 펼치며 허공을 달리던 테릭이 이번에는 스크루 토네이도를 펼쳤다.

두 개의 스킬이 중첩되면서 1미터 넘게 치솟은 오러-소드에 큰 변화가 왔다.

“하아~ 너무 아름다워!”

“오! 죽이는데.”

“세상에…….”

레이나는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걷는 테릭의 모습을 지켜봤다.

현재 테릭의 오러-소드는 길이가 거의 2미터 넘게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마치 회오리가 부는 것처럼 소용돌이를 치며 꿈틀대고 있었다.

* * *

“아차! 이제 가봐야겠다.”

“무슨 일 있어?”

“점심 전에 엄마 심부름 가야 해.”

“그럼, 언제 들어올 거야?”

“아마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

“왜?”

“오늘 저녁에는 친구들이랑 오빠들을 만나기로 했어.”

“친구라면 로빈이랑 피터팬을 말해?”

“응, 나 때문에 죽었는데 밥이라도 사야지.”

테릭의 시연을 보던 레이나는 급한 약속이 있다며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레이나를 엄호하다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는 테릭은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내일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레이나와 작별 인사를 한 테릭은 하울을 만나 오늘밤에 빵과 물을 가져가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접속을 종료했다.

잠시 후 미도 성에 모습을 드러낸 테릭은 아리아와 몽겔니오스 후작을 비롯한 원정대의 지휘관을 소집했다.

지휘관들은 과거 사단장이었다가 제럴드 백작에게 항명한 이후 연대장으로 좌천된 제나스 남작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모여들었다.

“테릭, 식량과 물은 구한 거야?”

“오늘밤이면 가져올 수 있을 거야.”

“아! 다행이야.”

“이젠 여기서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우리도 움직여야지.”

아리아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사이 제나스 남작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몰려왔다.

지휘관들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병사들에게 기마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덕분에 원정대 병사들은 누구나 말을 타고 달릴 수 있을 정도의 기마술을 익힌 상태였다.

“대장, 가신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식량이랑 식수는 어디 있습니까?”

“오늘 저녁부터 공급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진격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일도 아닙니다.”

“어차피 갖고 다니는 보급품도 별로 없는데요.”

“그나마도 말에 실으면 됩니다.”

원정대 진격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고가 겹치면서 진행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별도의 보급부대가 없는 원정대는 모든 것을 점령지나 테릭을 통해 자급자족하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모든 병사가 기병이 된 지금은 마치 유목민족의 전사들처럼 어디든, 언제라도 훌쩍 떠날 수 있었다.

“좋습니다. 병사들의 준비가 끝나면 바로 진격하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원정대가 진격 준비로 부산해지고 있을 무렵, 남수 일행은 서울 시내의 모처에서 만나고 있었다.

“만득아, 꼭 해야 할 말이 뭐야?”

“남수야, 놀라지 마라.”

“하도 놀래서 이제는 놀랄 가슴도 없다.”

“너, 레이나의 남자친구가 누구인 줄 알아?”

“외국에 산다는 놈?”

“그래.”

오늘 저녁에는 로빈과 피터팬을 비롯해서 레이나와 만나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러나 만득은 그들을 만나기 전에 자기들끼리 해야 할 얘기가 있다며 남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을 전부 모이게 했었다.

“내가 그놈을 어떻게 알아?”

“그놈이 바로 테릭이야.”

“뭐! 테릭이라고?”

“에이, 설마?”

“만득아, 그게 확실해?”

만득의 폭탄선언에 남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만득은 자신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과정을 낱낱이 얘기했다. 아울러 피사로 일당을 몰래 만난 사실도 털어놨다.

“야! 그 자식들을 네가 왜 만나?”

“너, 그렇게 배신 때려도 되는 거야?”

“다들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봐.”

“진정이고 나발이고 피사로라면 자다가도 이가 갈린다.”

워낙 많이 당했기에 피사로 일당을 미워하는 것은 다들 마찬가지였다.

만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피사로가 오해하고 있었던 상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 화부터 냈던 친구들은 만득의 얘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우리랑 그놈이 친구인 줄 알았다고?”

“그래, 생각해봐? 그 상황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오해를 하지.”

“그렇다고 해도 놈들이 우리를 죽인 것이 몇 번인데, 그냥 모른 척 넘어가?”

“맞아. 나도 그렇게는 못해.”

“그래서 그자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솔직히 우리 실력으로 그자들을 상대할 수 있어?”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남수는 짜증이 나는지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발을 들어 신경질적으로 비볐다.

“에이~ 씨부럴, 더러워서.”

“X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그란티아를 시작하는 건데.”

“그냥 더 쪽팔리기 전에 때려치우자.”

“맞아! 게임이 이것뿐이냐?”

“야! 우리가 왜 그만둬? 이제는 피사로도 우리에 대한 오해를 풀었는데.”

만득은 자신들을 테릭의 친구라고 여겼던 피사로의 오해가 풀렸음을 알렸다.

또한 남수에게는 레이나를 그냥 포기할 셈이냐고 부추겼다.

계속되는 만득의 설득에 남수와 다른 친구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누구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여기서 포기해?”

“그래서 어쩌자고?”

“테릭, 그놈에게 복수를 해야지.”

“말 들어보니까 놈이 우리보다 더 강한 것 같던데, 어떻게 복수해?”

“이번에는 우리가 피사로를 이용해야지.”

“그게 가능해?”

“말했잖아? 이제는 우리를 믿고 있다고.”

만득은 지난밤, 밤새껏 고민했던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아울러 남수에게는 레이나를 차지하는 것이 테릭에게 복수하는 길임을 역설했다.

“일단 우리가 그들을 만나보자.”

“좋아! 이 모든 것이 테릭, 그놈 때문에 생긴 일인데 복수는 해야지.”

“그들이 우리를 지원해 준다면 우리도 빠른 레벨업을 할 수 있을 거야.”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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