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반 땅, O.K? (73/90)

3. 반 땅, O.K?

“아르실리안, 카트리나에게 연락은 했느냐?”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연락이 안 된다고?”

“그렇습니다.”

카이젤스키는 아르실리안으로 하여금 카트리나를 부르게 했다.

그가 카트리나를 부른 이유는 테릭의 일을 깔끔하게 처리한 이상, 본격적으로 그란티아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먼저 드래곤들이 장악하고 있는 길드 또는 동맹이나 혈맹이라고 불리는 인간들의 조직부터 돌아다녀볼 생각이었다.

“분명 얼마 전에 내게 통신이 왔었는데…….”

“아무래도 카트리나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저와 친구 등록도 취소했습니다.”

“그게 뭐지?”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기능입니다.”

“그게 사실이냐?”

“네, 그리고 저만이 아니라 일족의 모든 이와도 친구 등록을 취소했습니다. 현재로서는 그녀가 연락을 받지 않거나 잠적하면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 알았다.”

‘역시 놈을 죽인 일 때문에 의도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린 것이 틀림없어.’

카트리나가 테릭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카이젤스키는 카트리나와 연락이 안 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했다.

아마도 그녀는 테릭을 죽인 일로 자신에게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겨우 이런 일로 내게 반감을 드러내는 계집이라면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어.’

이곳 주신의 거처만 알아내면 그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카이젤스키였다.

그런데 겨우 이런 일로 반감을 드러내는 카트리나라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경우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 아니, 죽기 살기로 저항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제거하는 게 좋겠어.’

자신이 싸우고자 하는 상대는 한 차원을 관장하는 주신이었다.

그리고 그런 주신을 죽이기 위해서는 이곳 드래곤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군이 아니라면 차라리 죽이는 것이 속편했다.

그건 꼭 카트리나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카이젤스키는 그 누구라도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다면 죽일 생각이었다.

그가 카트리나를 제거할 결심을 하는 사이, 아르실리안의 질문이 이어졌다.

“카트리나에게 다시 연락해볼까요?”

“그럴 필요 없다. 오늘은 너하고만 다녀보지.”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카이젤스키가 아르실리안을 앞세우고 나가려는 찰나, 주신의 거처를 찾아 나섰던 3명의 드래곤이 돌아왔다.

“카이젤스키님을 뵙습니다.”

“수고들이 많다. 혹시 알아온 것은 없느냐?”

“죄송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는 없었습니다.”

“아! 참으로 더디구나.”

“하지만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무슨 단서라도 알아왔다는 얘기냐?”

“카이젤스키님 말씀대로 주신의 궁전이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있겠지.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일부 이방인들 중에 주신의 궁전에 대해 아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방인?”

“인간들 중에 원래부터 그란티아에서 살지 않고 외부에서 들어온 인간들을 이방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스스로를 플레이어라고 부릅니다.”

“그런 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방금 한 얘기를 더 자세히 말해봐라.”

카이젤스키는 드래곤이야말로 엄청난 천재이자 지혜의 보고이며 모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위대한 존재라고 여겼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했다.

물론 여기가 아스리온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상 게임인 그란티아에서 그는 모르는 것투성이의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도 오만하고 자존심 높은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어쩌면 이방인과 관련된 것이 가장 중요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하찮게 여기고 넘어갔다.

“이방인들 말로는 그곳이 아직 개방되지 않은 폐쇄구역이라고 했습니다.”

“폐쇄구역이라니?”

“말 그대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드래곤인 우리는 다릅니다.”

“당연하지. 미천한 인간과 우리가 같을 수는 없지.”

“저희들이 내일부터는 아직 개방되지 않은 폐쇄구역을 중심으로 돌아볼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라!”

어쩌면 조만간에 주신의 거처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카이젤스키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가 문득 테릭의 일이 생각났다.

“너희들도 테릭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오늘 그놈을 죽였다.”

“아!”

“오!”

“그게 정말입니까?”

“혹시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그깟 놈 하나 죽이는데 왜 다쳐?”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이계의 일족인데.”

“우리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카이젤스키님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정도라니, 감탄했습니다.”

그란티아의 드래곤들은 테릭을 이계의 일족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는 얼마 전에 카이젤스키가 테릭은 빠하르간지의 아들이라고 직접 말해서 더 그랬다.

카이젤스키는 테릭이 사실은 드래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을 밝히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란티아의 드래곤들이 크게 감탄하자 굳이 진실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곳의 드래곤들이 약하다고 해도 인간 하나 죽이는 것은 이들에게도 쉬운 일이었다.

그럴 바에는 테릭이 죽은 이상,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차라리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증거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렇게 압도적인 강함을 증명해야만 이곳 주신을 제거할 때 저들이 적극 협조할 것 같았다.

“허험~ 이제 그놈은 두 번 다시 이곳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아~ 다행이다. 말은 안 했지만 저는 나중에 테릭이 제게 책임을 물을까봐 속으로 걱정했어요.”

“다시는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라.”

“네.”

테릭의 죽음을 누구보다 환영하는 것은 아르실리안이었다.

그는 카이젤스키가 이렇게까지 장담하는 이상, 틀림없는 사실이라 여기곤 안심했다.

한편, 테릭을 이용해서 자신의 실력을 또다시 드러낸 카이젤스키는 새로 합류한 3명의 드래곤과 함께 폐쇄구역으로 향했다.

그가 원래 계획까지 바꿔가면서 직접 나선 이유는 마침내 단서를 찾았다는 생각에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 * *

“아~ 드디어 시간이 다 되었다.”

“그래? 다녀올게. 기다려.”

“그렇게는 안 되지. 같이 가야지.”

“지금 카이젤스키의 레어를 같이 가겠다는 소리야?”

“그래.”

사망 페널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테릭은 시간이 되자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러나 칼라히브는 이번에도 테릭의 안전을 염려해서 반대를 했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아는 놈이 따라오겠다는 거야?”

“누가 지금 가겠데?”

“그럼?”

“네가 먼저 가서 안전하면 나를 불러.”

“그럴 필요 있어? 내가 그걸 갖고 바로 오면 되지.”

“바로 갖고 오면 안 되지. 어차피 또 가야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칼라히브는 테릭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다.

테릭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칼라히브를 향해 대답 대신 씩 웃어줬다.

“그 웃음의 의미가 뭐야?”

“어쨌든 난 그에게 죽었는데 복수해야지.”

“그래서 가는 거잖아?”

“그렇게만 끝내면 너무 재미없잖아?”

“그럼 어떻게 하자고?”

“헤헤~ 명색이 고룡인데 모아둔 재물이 많지 않을까? 그리고 마법물품도 꽤 있을 것 같은데.”

“오! 맞다.”

칼라히브도 이제야 테릭의 웃음을 이해했다.

카이젤스키가 아무리 고룡이라고 해도 그란티아에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지금이야말로 카이젤스키가 모아둔 전 재산을 싹쓸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테릭은 칼라히브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발견하자 이내 확인에 들어갔다.

“둘이서 반 땅, O.K?”

“콜~”

합의를 끝낸 칼라히브는 곧장 카이젤스키의 레어 근처로 텔레포트했다.

그리고는 그의 레어 앞에서 큰소리로 카이젤스키를 불렀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고, 심지어 레어를 지키는 가디언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최소한 가디언은 있을지 알았는데.’

카이젤스키는 그 실력만큼이나 자존심도 높고 성격도 괴팍한 드래곤이었다.

때문에 그는 그 어떤 드래곤도 자신의 레어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또 이전에는 아리아가 하녀 겸 가디언의 역할을 했기에 별도의 가디언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아리아가 사라진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카이젤스키님, 안 계십니까? 들어가겠습니다.”

“…….”

“없나?”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자, 칼라히브는 조심스럽게 카이젤스키의 레어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레어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레어가 빈 것을 확인한 칼라히브는 테릭에게 통신을 해서 좌표를 불러줬다.

잠시 후 테릭은 카이젤스키의 레어 안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츠파파팟-

“왔어?”

“카이젤스키는 없지?”

“응.”

“그럴 줄 알았어. 먼저 차원이동기부터 찾자.”

“내가 마나 스캔을 해볼게.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차원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마나가 필요했다.

레어 안을 마나 스캔하던 칼라히브는 거실 소파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마나석 결정체를 발견했다.

막대한 마나가 흘러나오고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진 것이 차원이동기가 확실했다.

“저거다.”

“모양이 내가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르네?”

“아! 최상급 마나석을 특별한 방법으로 농축했구나. 과연 고룡은 고룡이다.”

칼라히브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카이젤스키의 차원이동기를 살피다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테릭은 그 옆에 있다가 차원이동기를 넘겨받자마자 차원아공간에 담았다.

“나 갔다 올게.”

“지금 가려고?”

“응, 일단 그란티아에 이걸 갖다 둬야 안심을 하지.”

“그래, 다녀와.”

테릭은 카이젤스키의 차원이동기를 그란티아의 공용 창고에 담아둘 생각이었다.

그가 알기로 공용 창고는 이름과 암호를 알기 전에는 절대 열지 못했다.

즉, 그 어떤 공격이나 마법으로도 절대 창고를 파괴할 수 없었다.

물론 고룡급 드래곤인 카이젤스키라면 창고를 부수고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나온다고 해도 그란티아인 이상 상관없었기에 일단은 공용 창고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만일 카이젤스키가 창고를 부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윙윙윙~

빛에 휘감긴 테릭은 그란티아에 당도했다.

그가 그란티아에 당도한 직후 카트리나는 친구 테릭이 접속했다는 메시지를 들었다.

‘설마?’

죽었다는 테릭이 접속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카트리나는 놀란 가슴을 억지로 달래며 친구 창을 열었다.

“헉!”

친구 창에 밝게 불이 들어온 테릭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카트리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하악~ 카트리나, 진정해.”

카트리나는 너무 기뻐도 숨이 가쁘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가쁜 숨을 연신 몰아쉬던 그녀는 한참 후 테릭에게 귓속말을 했다.

=>테릭님, 테릭님.

“엥?”

공용 창고로 향하던 테릭은 카트리나의 귓속말에 깜짝 놀랐다.

테릭은 카트리나와 아르실리안도 카이젤스키와 한통속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여기는 이유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카트리나에게 알려줬고, 그 자리에 카이젤스키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 시간이 없어. 빨리 처리해야겠다.’

=>테릭님, 제 말 안 들리세요? 제발 대답 좀 해주세요.

‘흥! 내가 어디인지 알면 다시 카이젤스키에게 고자질하겠지.’

테릭은 급한 마음에 공용 창고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창고를 이용하고 싶다는 테릭의 말에 창고지기는 이용료를 달라고 했다.

“이용료가 얼마인데요?”

“창고 한 칸 당, 한 달은 50실버, 1년은 1골드, 평생은 10골드야.”

“평생으로 주세요.”

“10골드야.”

“여기요.”

“안내 음성에 따라 이름과 암호를 말하게.”

“여기서 하면 되나요?”

테릭은 창고지기가 알려준 대로 여러 가지 숫자와 문자가 적혀 있는 기둥 앞으로 다가갔다.

테릭이 다가선 순간, 기둥에서 빛이 나면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용할 창고 이름을 지정해 주세요.

“아주 치사하고 더러운 카이젤스키.”

-창고의 이름을 아주 치사하고 더러운 카이젤스키로 하시겠습니까?

“그래.”

-다음은 창고의 암호를 지정해 주십시오. 암호는 꼭 숫자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음흉하고 흉악한 카이젤스키.”

-창고의 암호를 세상에서 제일 음흉하고 흉악한 카이젤스키로 하시겠습니까?

“그래.”

-이름과 암호 지정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사용자를 저장하는 과정입니다. 캐릭터의 정보를 저장하는 동안 제자리에서 5초간 서 주십시오.

“이렇게?”

츠파파팟~

또다시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며 테릭의 몸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테릭은 5초의 시간을 기다렸다가 음성이 시키는 대로 카이젤스키의 차원이동기를 창고에 담았다.

“휴~ 이제 끝났네.”

테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카트리나는 테릭을 찾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테릭이 오해를 해서 대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테릭님, 제 말 들리시죠? 대답하기 싫으면 듣기만 하세요.

‘아! 왜 이렇게 귀찮게 해.’

=>전 카이젤스키님이 그럴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리고 저는 약속 장소가 변경되었다는 아르실리안의 말에 던전 안에서 테릭님을 기다렸어요.

‘누가 그런 거짓말에 속을 것 같아.’

=>아르실리안은 다 알고 있었지만 전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원래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는 법이었다.

테릭은 끝끝내 카트리나의 귓속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카트리나는 테릭이 계속해서 대답하지 않자 거의 울먹이는 소리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 제가 어떻게 해야 믿으시겠어요? 전 정말로 테릭님을 좋아하고 있어요. 제 말을 못 믿으시겠다면 레이나에게 물어보세요.

‘와~ 하다하다 안 되니까 이제는 레이나까지 팔아먹네.’

테릭은 계속 있다가는 욕 나오겠다는 생각에 바로 접속을 종료했다.

거의 창고 근처까지 당도해서 주변을 헤매고 있던 카트리나는 테릭이 말도 없이 접속을 종료하자 밀려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왔냐?”

“응, 이제는 안심해도 돼.”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반 땅, O.K?”

“당연하지.”

카이젤스키의 차원이동기를 공용 창고에 맡긴 이상 겁날 것은 없었다.

마음이 가벼워진 테릭은 칼라히브를 따라서 카이젤스키의 창고로 향했다.

* * *

끼이익~

“오!”

“헐~ 도대체 이 많은 금은 어떻게 모은 거야?”

“우와~ 아무리 고룡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엄청나다니, 정말 대단하다.”

테릭과 칼라히브는 카이젤스키의 창고를 털기 시작했다.

카이젤스키는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욕심 많은 골드족답게 창고마다 금괴와 각종 보석이 넘쳐났다.

“야! 빨리 담아.”

“기다려.”

스윽-

순식간에 또 하나의 창고가 깨끗이 털렸는데, 벌써 일곱 번째였다.

테릭과 칼라히브는 망설이지 않고 다음 창고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너무 엄청나서 나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삐그덕~

마찰음과 함께 여덟 번째 창고 문이 열렸다.

이번 창고에는 각종 갑옷과 검을 비롯한 온갖 병장기가 가득했다.

테릭은 한쪽 벽을 빼곡하게 채운 검을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뛰어갔다.

“와~ 이것들 전부 마법무구 같은데.”

“맞아.”

“오! 이 중에서 내가 쓸 만한 것이 있을까?”

“찾아보면 나오겠지. 일단 담자.”

“응.”

아직도 확인하지 않은 창고가 다섯 개나 있는데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테릭은 칼라히브가 담을 수 있게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때 문득 눈에 익숙한 물건이 보였다.

“어! 이건.”

“야! 뭐해?”

“자… 잠깐만.”

창고의 병장기를 몽땅 아공간에 담으려고 했던 칼라히브는 테릭이 뒤로 나오지 않자 소리를 질렀다.

칼라히브의 제지에도 테릭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창고 안쪽의 선반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작은 상자모양의 사각형 물체가 있었다.

테릭은 그 사각형 물체를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들더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아리아~”

“테릭, 왜 그래?”

“이게… 왜 여기에?”

“그게 뭔데 그래?”

“아! 아리아.”

“테릭, 진정해. 도대체 그게 뭔데 그래?”

“이거 내가 아리아에게 준 워키토키야.”

“워키토키, 그게 뭔데?”

“아리아, 너는 어디 가고 이렇게 워키토키만 남은 거니?”

“테릭, 정신 차려.”

아리아의 유품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테릭은 주저앉은 채 더욱더 슬피 울었다.

이미 아리아의 일을 알고 있는 칼라히브는 상황을 짐작하곤 테릭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 이 자식, 절대 용서 못해.”

“아! 그렇구나.”

“카이젤스키, 이노옴!”

아리아의 워키토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아리아를 죽인 드래곤이 카이젤스키임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칼라히브 역시 테릭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테릭, 우선 진정해. 이런다고 죽은 네 여자 친구가 돌아오지는 않아.”

“나, 복수할 거야.”

“이미 하고 있잖아?”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놈을 내가 죽일 거야.”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알아?”

“1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할 거야.”

“그래, 알았어. 일단은 여기서 나가자.”

지금은 흥분한 테릭을 달래는 것이 급선무였다.

칼라히브는 테릭을 거실로 데려가서는 그가 편히 쉴 수 있게 수면마법을 걸어줬다.

테릭은 자면서도 아리아를 생각하는지 간간히 그녀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휴~ 그래도 창고의 물건은 다 챙겨야지.’

테릭을 재운 칼라히브는 혼자서 창고의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둘이서 나누는 문제는 나중에 자신이 절반을 넘기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마법을 사용해서 하는 일이었기에 테릭이 없다고 해서 불편한 점은 없었다.

‘이게 마지막 창고인가?’

차근차근 창고를 비워가던 칼라히브는 마지막 13번째 창고만 남겨두고 있었다.

‘여긴 뭐가 들어있으려나?’

끼이익~

칼라히브는 망설이지 않고 마지막 창고 문을 열었다.

넓은 창고 안에는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수십 개의 대형 책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법서인가?’

테릭은 마법무구에 관심이 많았지만 드래곤인 칼라히브는 마법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다른 창고와 달리 이곳의 책들은 바로 아공간에 담지 않고 책장 앞으로 다가가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어느 순간 책을 넘기는 칼라히브의 손길이 빨라졌다.

그러더니 읽던 책 말고 책장의 다른 책들도 뽑아서는 제목을 확인했다.

“이건 아버지의 마법서인데. 이것도 그렇고, 이것도. 아! 이건 차원이동과 관련 있는 책자야.”

마지막 방에 있는 많은 책들 중에는 빠하르간지가 아끼던 마법서가 전부 있었다.

특히 그 중에는 차원이동과 관련된 책자도 있었고 빠하르간지의 일기도 있었다.

“역시 카이젤스키는 아버지의 연구 성과를 도용했구나. 맞아, 그래서 나를 기다렸던 거야!”

차원이동기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빠하르간지의 모든 서적이 이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카이젤스키가 그란티아에서 테릭을 기다렸던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나쁜 놈!”

칼라히브는 분노한 마음을 억지로 달래며 아버지의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순전히 용언으로 작성된 일기는 예전 빠하르간지의 서재에서 테릭이 모르는 글자라며 집어던졌던 바로 그 책이었다.

* * *

“테릭, 일어나.”

“으윽~”

“테릭.”

“아리아!”

일기를 다 읽은 칼라히브는 마법서를 전부 담고는 거실로 나와 테릭을 깨웠다.

테릭은 일어나자마자 아리아를 불렀다.

자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테릭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테릭, 정신 차려.”

“아! 그놈을 당장 불러야 해.”

“제발 진정해.”

“칼라히브, 말리지 마. 아리아를 죽인 놈이 그놈인데 어떻게 진정해.”

“너까지 죽으면 아리아라는 여자가 기뻐할 것 같아?”

“하지만… 난 아리아의 복수를 해줄 거야.”

“복수도 힘이 있어야 하지. 울분을 참지 못해서 지금 달려들었다가는 복수는 영영 불가능해.”

“그럼, 애인이 죽었는데 힘이 없으니까 그냥 포기하라는 소리야? 난 그렇게 못해”

“테릭, 잘 들어. 내가 도와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칼라히브는 대답 대신 빠하르간지의 일기장과 두툼한 마법서를 한 권 꺼냈다.

테릭은 칼라히브가 꺼낸 두 권의 책이 어딘지 모르게 눈에 익숙하다고 여겼다.

“이건 내 아버지의 일기장과 차원이동과 관련된 마법서야.”

“아! 맞다.”

테릭은 빠하르간지의 서재에서 그걸 본 적이 있으며 자신이 몽겔니오스 후작에게 줬다고 얘기했다.

칼라히브는 그럴 수도 있을 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법서에는 위치 추적 마법이 걸려 있었어.”

“위치 추적 마법?”

“아마 카이젤스키가 걸었겠지. 그리고 넌 그걸 모르고 누군가에게 줬고, 그 때문에 그 두 사람은 카이젤스키에게 죽음을 당했을 거야.”

“아! 역시 나 때문에…….”

이제야 몽겔니오스 후작과 아리아가 사라진 이유와 죽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테릭은 스스로를 원망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잠시 테릭을 바라보던 칼라히브는 일기장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이 책에는 내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바쳐가며 차원이동기를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나와 있어.”

“그게 뭔데?”

“다 카이젤스키 때문이야?”

“카이젤스키 때문이라고?”

“그래, 그는 차원이동을 하고 왔다는 내 아버지의 주장을 거짓말이라고 일축했지. 나아가 다른 일족의 고룡들도 부추겼어.”

“아! 편지에도 그런 비슷한 내용이 나와 있잖아?”

“그건 그야말로 슬쩍 언급한 것에 불과하고, 이 일기장에는 카이젤스키가 저질렀던 추악한 행위들이 나와 있어.”

“그가 왜?”

“내 아버지와 가장 친한 이가 그였거든. 그래서 아버지는 그를 믿고 누구보다 그에게 가장 먼저 얘기했어.”

“그런데 카이젤스키가 빠하르간지를 시기했다는 거야?”

“그래, 게다가 그는 우리 아버지의 차원이동진을 일부러 훼손했어. 그 때문에 마법진을 살핀 로드와 다른 고룡들은 우리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지.”

아무도 모르는 비사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칼라히브는 그 뒤로도 카이젤스키가 저질렀던 많은 행위들을 얘기했다.

특히, 물증을 가져오기 위해 빠하르간지가 절치부심하며 새로 만들었던 차원이동진을 훼손한 이도 카이젤스키였다.

결국 빠하르간지는 믿었던 친구에게 연거푸 배신을 당하고 모든 드래곤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일회적인 마법진이 아닌 영구적인 차원이동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어.”

“그놈, 아주 나쁜 놈이네.”

“그란티아에서 그가 미리 기다렸다고 했지?”

“그래.”

“그건 나를 죽이기 위해서 그랬을 거야. 여기서 나를 죽이면 아무래도 껄끄럽지만 거기는 그 누구도 모르니까 최적의 장소였겠지. 그리고 너를 죽이고는 무척 좋아했겠지.”

“왜?”

칼라히브를 죽일 생각이었던 카이젤스키가 테릭을 죽이고 기뻐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테릭의 반문에 칼라히브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가 얘기를 했다면서.”

“뭘?”

“너 외에는 그 누구도 차원이동기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그게 어쨌다고?”

“너를 그란티아에서 죽이면 아스리온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차원이동기는 작동 불능이 되잖아.”

“하지만 거기서 죽는다고 진짜로 죽나?”

“그놈은 그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잖아.”

“아!”

칼라히브의 추리는 너무도 정확했다.

테릭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카이젤스키가 칼라히브를 왜 죽이려고 했는지는 이해가 안 갔다.

“아버지의 차원이동기가 진짜로 밝혀지면 가장 앞장서서 음해했던 카이젤스키의 입장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런 자가 실은 아버지의 연구 성과를 훔쳐가서는 차원이동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많이 난처해지겠지. 그런데 그는 왜 차원이동기를 따로 만들었지? 그냥 빠하르간지가 만든 차원이동기를 사용했으면 편했잖아?”

“아버지의 차원이동기에는 아버지의 드래곤 하트가 녹아 있어. 그래서 내가 너에게서 아버지의 기운을 느꼈던 거고.”

“아! 다른 드래곤들도 그게 빠하르간지의 차원이동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겠구나.”

“그렇지.”

그 어떤 생명체든 욕심과 탐욕 때문에 동족을 죽이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테릭이 씁쓸해 하는 사이 칼라히브는 일기장을 펼치고는 특정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하던 테릭은 어느 순간 깜짝 놀라며 집중해서 들었다.

“만일 그란티아의 SMAX급 타이탄에 이곳 아스리온의 초 고대시대에 존재했던 두 개의 신기 중 하나만 결합된다면 그 힘은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장담하건데 그 정도의 힘이라면 고룡급 드래곤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칼라히브, 두 개의 신기가 뭐지?”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다만 그 옛날 드래곤의 조상들이 신의 존엄을 부정했을 때, 드래곤의 조상들을 벌하기 위해 신들이 만든 것이라고 알고 있어. 일명 쌍신기라고 하지.”

“그런 것도 있었어?”

“사실 대부분의 드래곤들은 그걸 단순한 전설로 여기고 있어. 고대 시대 이전에 초고대 시대가 존재했는지도 의문이고 말이야.”

“그렇구나.”

“하지만 아버지가 초고대 시대가 존재했다고 믿는 것으로 봐서는 있을지도 모르지. 난 지금부터 그걸 알아볼 거야. 아버지는 근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하시는 분은 아니니까.”

“아! 맞다.”

“왜 그래?”

“그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네.”

“뭘.”

테릭은 문득 과거 하이폰 원정 시절에 발견했던 고대의 유적을 떠올렸다.

그동안은 워낙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잊고 있었지만 당시에 툼 레이더에 나타난 빛은 분명 고대의 유적을 뜻하는 붉은색이었다.

“이곳 아스리온에도 고대의 유적이 있어.”

“뭐! 그게 사실이야?”

“응.”

“거기가 어딘데?”

* * *

카이젤스키의 레어를 빠져나온 테릭과 칼라히브는 카일록과 볼턴 강 중간쯤에 있는 작은 마을의 우물을 찾았다.

이곳은 과거 하이폰 원정 시절에 아리아와 함께 발견한 곳으로, 당시에는 바빠서 좌표만 저장한 상태였다.

‘아리아, 그때 생각나니?’

당시 테릭은 아리아에게 툼 레이더를 놀이기구라고 소개했다.

아리아는 툼 레이더의 정확한 기능도 모르고 단순히 놀이기구라는 말에 붉은색 빛을 쫓아서 여기까지 왔었다.

‘그때 넌 무슨 소원을 빌었니?’

좌표를 저장하기 위한 핑계로 소원을 빌라고 했을 때 아리아는 한참이나 중얼거렸었다.

테릭이 나중에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을 때도 비밀이라고 말하지 않았었다.

“야! 뭐해?”

“으… 응.”

추억에 잠긴 테릭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자 칼라히브가 한마디 했다.

그는 아스리온에 고대의 유적이 존재한다는 테릭의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고대시대의 유적이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드래곤들이 먼저 알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테릭, 무너져가는 이 볼품없는 작은 신전이 고대의 유적이라는 말은 아니겠지?”

“당연하지. 이게 고대의 유적일 리 없지.”

“그럼, 뭐가 고대의 유적이야? 설마 저 우물?”

“비슷해.”

“우물이 고대의 유적이라고?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우물 자체가 고대의 유적이 아니라 유적으로 들어가는 입구야.”

“입구라니?”

“아마 고대의 유적은 우물 밑 지하에 있을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던전이나 드래곤의 레어 또는 고대의 유적을 알려주는 장치가 내게 있거든.”

“세상에 그런 장치가 있어? 그것도 그란티아에서 얻은 거야?”

“응.”

그 뒤로 테릭은 간략하게 툼 레이더에 대해 설명했다.

툼 레이더를 받아든 칼라히브는 아직도 그 효능을 믿지 못하겠는지 몇 번이나 반문했다.

“이게 정말 유적을 알려주는 장치야?”

“그래, 이걸 이용해서 많은 던전이랑 유적을 찾았어.”

“그런데 그 장치가 여기서도 작동해?”

“당연하지. 다른 아이템도 마찬가지잖아?”

“아! 하지만 난 지금도 아스리온에 고대의 유적이 있다는 말을 못 믿겠어.”

“이게 속고만 살았나. 따라와.”

마법에 능한 칼라히브와 자신의 직업스킬과 툼 레이더만 있다면 고대의 유적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툼 레이더를 살펴보던 테릭은 고대의 유적이 우물 밑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먼저 우물 밑을 스캔해줄 수 있어?”

“그 정도는 일도 아니지.”

큰소리를 뻥뻥 친 칼라히브의 눈에서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빛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테릭은 칼라히브의 스캔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칼라히브는 우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놔~”

“왜 그래?”

“이깟 우물이… 말도 안 돼.”

“야! 도대체 왜 그래?”

“아무리 스캔을 해도 끝이 없어.”

“그 말은 우물이 바다처럼 끝없이 깊다는 말이야?”

“처음에는 평평한 바닥이 보이기에 거기가 끝인 줄 알고 바닥을 샅샅이 훑었는데, 옆에 또 구멍이 있더라고.”

“설마 우물 안에 또 우물이 있어서 그게 하나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야?”

“응, 그것도 여러 개나. 그리고 그 밑으로 몇 개가 더 있는지도 몰라.”

“결국 우물 속으로 들어가야겠네.”

“아마도.”

“가자.”

“잠깐. 내가 마법을 걸어줄게.”

“그럴 필요 없어. 내 부츠가 바다영웅의 전설이 깃든 부츠라 아무 제약 없이 수중에서도 움직일 수 있어.”

“오! 좋은데.”

부츠에 달린 두 가지 옵션 중에 바람의 족적은 종종 사용했지만 수중에서의 자유로운 활동 기능은 처음 사용해보는 기능이었다.

기능을 활성화시킨 테릭은 칼라히브의 뒤를 이어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먼저 뛰어든 칼라히브는 벌써 물속에서 라이트 마법을 펼친 상태였다.

풍덩~

“오! 마법이라 물속에서도 안 꺼지고 환하구나.”

“가자.”

“잠깐만. 스킬 좀 펼치고.”

테릭이 이번에 펼친 스킬은 유적이나 유물 또는 신비한 물건이나 장치를 구별하고 골라내는 픽-아웃 스킬이었다.

현재 픽-아웃의 지속시간은 베테랑 파인더가 되고 숙련도가 100%에 근접하면서 100분이나 되었다.

“여기가 첫 번째 우물의 끝이야.”

“바닥에도 특별한 것은 없는데 다음 우물로 들어가자.”

“따라와. 이쪽이야.”

스킬 숙련도가 워낙 높아졌기에 슬쩍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둘은 그 뒤로도 수많은 단계를 거치면서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그 끝이 안 보이던 우물도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 왔어. 여기가 끝이야.”

“도대체 얼마나 들어온 거야?”

“아마도 수백 미터는 넘을걸.”

“아! 이 부분의 진흙을 걷어보자.”

“왜?”

“스킬에 뭔가가 걸렸어.”

“그냥 때려 부수면 안 돼?”

“안 돼. 그러다가 입구를 찾지 못하고 무너지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헛수고로 돌아간다고.”

“알았어.”

칼라히브는 투덜거리면서도 마법을 미세하게 조절해서 겹겹이 쌓인 진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운 진흙이 물에 녹아 흙탕물이 되는 것은 칼라히브도 어쩌지 못했다.

드득~

“어! 소리가 이상한데.”

“왜?”

“진흙층이 끝난 것 같아.”

“일단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자.”

얼마 후 흙탕물이 사라진 바닥에는 돌로 된 석판이 나타났다.

석판 위에는 굉장히 정교한 선이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칼라히브는 어느 순간부터 석판만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장탄식을 터트렸다.

“하아아~ 이건 분명 마법진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마법진을 파훼할 능력이 없다.”

“걱정 마. 그건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네가 어떻게?”

“지켜보기만 해.”

테릭은 칼라히브를 물러서게 한 뒤 언-락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자 스킬의 영향 때문인지 석판의 마법진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더니, 어느 순간 테릭과 칼라히브의 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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