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역시 보통 놈들이 아니야. (85/90)

5. 역시 보통 놈들이 아니야.

“우리의 협공을 견뎌내는 인간이라니, 참으로 대단하구나.”

“계집, 이번에도 막아봐라.”

“비겁한 놈들, 덤비기나 해라.”

처음 시작은 아리아와 아르실리안의 대결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르실리안이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에 이르러서는 베르키너스와 파돌프스키까지 끼어서 1 : 3의 대결로 확대되었다.

“내가 위쪽을 공격하지.”

“난 왼쪽이다.”

“그렇다면 오른쪽은 내가 맡지.”

퍼퍼퍼펑~

“흐흡~”

아리아의 특기는 멀티 캐스팅, 멀티 스타트였다. 하지만 몇 개의 마법을 동시에 토해내는 그녀라고 해도 세 드래곤의 협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게다가 이제는 드래곤들이 구체적으로 공격 방향까지 정해가며 마법을 날리자 방어하기에도 벅찰 정도였다.

“지금이다.”

“아르실리안, 저 여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

“난 용서 못해.”

“카이젤스키님의 명령을 잊은 것이냐?”

“우리가 지금 죽여 버리면 카이젤스키님이 어떻게 알겠어?”

“안 돼!”

“흥! 난 저 계집을 반드시 죽이겠어.”

세 드래곤의 협공을 힘겹게 막아냈던 아리아가 힘의 한계를 드러내며 헐떡거렸다.

그 순간, 1 : 1에서 밀리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아르실리안이 재차 공격마법을 준비했다.

그녀는 손속에 사정을 두는 다른 드래곤과 달리 악랄하고 집요하게 아리아를 노렸다.

“아르실리안, 그래서는 안 된다니까!”

“너희들은 빠져.”

“아르실리안!”

“제발 진정해.”

“필요 없어!”

츠파파팟~

다른 드래곤들의 제지에도 아르실리안은 강력한 공격마법을 다시 날렸다.

궁지에 몰린 아리아는 살기 위해서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거듭된 타격으로 숨이 턱턱 막히면서 마나의 회전이 둔탁해졌다.

그 순간 또다시 두 사내의 희미한 영상과 함께 아버지와 죽음, 그리고 복수와 기억 봉인이라는 4개의 단어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젠장!”

“빌어먹을.”

“이젠 늦었어.”

드래곤이라고 해도 이미 분출된 마법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베르키너스와 파돌프스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리아를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두 여자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리고 아르실리안이 날린 마법은 새롭게 끼어든 자에 의해 허무하게 소멸되었다.

팅팅~

“드디어 돌아왔구나, 리비에라.”

“오! 주인님.”

“아르실리안, 네가 감히 내 명을 거역하는 것이냐?”

“아!”

“카이젤스키님, 용서하옵소서.”

“카이젤스키님, 아르실리안이 흥분해서 그런 것이니 부디 자비를 베푸소서.”

갑자기 끼어든 이는 카이젤스키였다.

마신이 된 탓에, 온통 새까맣게 변한 그는 아리아를 죽이려고 했던 아르실리안을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살벌하든지 아르실리안은 차마 대답도 못하고 벌벌 떨었다.

다만 다른 두 드래곤이 아르실리안을 대신해서 용서를 빌었다.

“주인님, 고정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리비에라, 어디 다치지는 않았느냐?”

“이곳의 드래곤들이 사정을 봐줘서 막상 다친 곳은 없습니다.”

“다행이구나.”

차원이동기를 강탈당한 지금 상황에서 테릭과 협상하기 위해서는 아리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때문에 지금에 있어서 아리아의 중요도는 감히 아르실리안과 비교할 수 없었다.

“아르실리안.”

“예, 카이젤스키님.”

“아리아에게 사과해라.”

“주인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오해를 해서 벌어진 싸움입니다.”

“아니다. 네가 나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내가 더 미안하구나.”

“그게 전부 제가 부족해서입니다. 그런데 주인님의 안색이 왜 그리되신 것입니까?”

“내 안색이 어째서 그러는 것이냐?”

“얼굴을 비롯해서 전신이 온통 새까맣습니다.”

“그건 내가 이곳의 마신이 되면서 그리된 것이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마신이 된 카이젤스키는 명칭이 비공개 상태였다.

즉, 그는 NPC임에도 머리 위에 이름이 적힌 명찰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러기에 드래곤들도 그가 마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캬아~ 이곳의 지배자가 되신다고 하더니 어느덧 마신이 되셨군요.”

“이제 시작이다. 다음은 주신의 지위까지 획득할 것이다.”

“저는 주인님이 그리되실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세뇌를 당한 아리아는 카이젤스키가 잘된 것 같아 마냥 기뻐했다.

그러나 복잡 미묘한 관계인 이곳의 드래곤들은 아리아처럼 순수하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이계의 존재가 마신의 지위를 획득했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헉!’

‘아!’

‘세상에, 어떻게 마신이 되었지?’

사실 카이젤스키가 마신이 된 것은 정말 우연한 사고였다.

그는 테릭과는 달리 NPC상태였고, 마신의 권능으로 그의 권능과 힘을 흡수했기에 마신이 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플레이어 상태였거나, 단순히 마신을 죽였다면 절대로 마신이 될 수 없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기자.”

“주인님의 분부에 따를 뿐입니다.”

“잘 들어라! 특히 아르실리안, 넌 리비에라 덕분에 큰 화를 면한 셈이니 이 아이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카이젤스키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아니라 리비에라 덕분이다.”

“리비에라, 고… 맙다.”

“아니에요, 제가 경솔했어요. 이제 가요!”

“그래, 다들 가자.”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너희들에게 긴히 할 말이 있으니 테실리우스도 돌아오라고 해라.”

“그리 전하겠습니다.”

마신의 권능 중 가장 위력적인 것은 어둠의 비수였다.

하지만 카이젤스키에게 가장 유용한 권능은 바로 앱솔션이었다.

카이젤스키는 향후 남은 다섯 마왕의 힘은 물론이고 주신과 신계의 힘, 그리고 필요하다면 드래곤의 힘도 흡수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힘을 모두 얻은 후에는 아리아를 이용해서 차원이동기를 원위치하고는 아스리온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물론 아스리온의 지배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일단은 이곳 드래곤들의 힘을 빌려서 다섯 마왕과 주신의 궁전을 찾는 일이 먼저였다.

* * *

카이젤스키가 아리아를 찾은 지 사흘 후, 그리고 타라한 군이 팍수언 요새를 점령한 지 나흘 후, 타라한 왕국군은 에이원 요새와 사모아르 요새에 주둔 중인 제국군 공격에 나섰다.

제국군은 예상했던 대로 두 개의 요새를 중심으로 능동적인 방어선을 구축했다.

즉, 20만의 병력 중, 두 개의 요새에 각각 3만 명씩 6만 명을 배치했고, 요새와 요새 사이의 2km에는 6만 명의 병력을 배치해서 양쪽 요새를 동시에 지원하면서 반대로 요새의 도움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한 요새의 양끝에는 각각 4만 명씩의 병력을 배치해서 요새의 방어를 굳건히 함과 동시에 경우에 따라서는 역습도 가능토록 한 진형이었다.

“테릭, 어쩔래?”

“계획대로 두 개의 요새 사이에 있는 적의 중군을 먼저 쳐서 놈들의 진영을 흔들어야지.”

“좌우의 날개가 역습을 해올 수도 있어?”

“그래서 50대의 타이탄은 남겨둘 거야.”

“50대로 충분할까?”

“놈들이 움직이면 그때는 네가 연락해줘. 추가로 50대를 뒤로 더 뺄 테니까.”

“좋아, 그렇게 하자.”

타라한 왕국이 타이탄을 갖고 있다면 제국군은 병력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또 제국군의 일차적 목표는 타라한 군의 진격을 지연시켜서 후터스 성을 중심으로 한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때문에 제국군은 20만의 병력을 모두 잃는 한이 있어도 타라한 군에 피해를 입히려고 할 게 뻔했다.

“타이탄 기동단, 출발하라!”

“적의 중군을 궤멸시켜라.”

“와아~ 돌격하라!”

“제국군을 쳐부수자!”

뿌우웅~

힘찬 고동소리가 멀리 퍼져가는 가운데 확장형으로 변신한 201대의 타이탄이 돌격을 개시했다.

타이탄이 움직일 때마다 지축은 사정없이 흔들렸고 자욱한 흙먼지가 날렸다.

“기동단, 마법을 발사하라.”

퍼퍼퍼펑~

꽈꽈꽝~

쿠쿠쿵~

타이탄의 무서운 점은 그 거대한 덩치와 출력 외에도 제한 적이지만 공격마법의 시전이 가능했다.

이번에도 공격의 시작은 테릭을 중심으로 한 201대의 타이탄이 동시에 토해내는 우레와 같은 마법 공격이었다.

하지만 제국군의 반격도 재빨랐다.

그들은 201대의 타이탄이 움직이자마자 요새의 좌우에 있던 4만 씩의 병력을 진격시켰다.

=테릭, 제국군의 양 날개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벌써?

=놈들도 단단히 준비한 것 같은데.

=알았어, 계획대로 후미의 50대를 뒤로 뺄게.

통신을 종료한 테릭은 50대의 타이탄을 급히 뒤로 뺐다.

그때 달려들던 제국군의 양 날개에서 4만 명 규모의 기병이 분리되었다.

그들은 50대의 타이탄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자 이를 피할 생각인지 멀찍하게 우회했다.

“놈들의 기병이 우회를 한다.”

“쫓아라!”

“본대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마법을 날려라.”

예기치 못한 상황에 본대에 남겨진 50대의 타이탄과 뒤로 물러나던 50대의 타이탄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는 약 4만에 달하는 보병들의 돌격이 이어졌다.

‘아차! 저놈들이 타이탄을 추가로 분리해낼 생각이구나.’

후미에 있던 칼라히브는 제국군의 기병이 우회한 까닭을 바로 알아차렸다.

제국의 기병은 분명 본대의 후미를 노리고 달려들 게 확실했다.

=테릭, 4만 명 규모의 적 기병이 우회를 했어.

=뭐?

=우회한 기병들은 분명 본대의 후미를 노릴 것이 확실해. 놈들이 타이탄을 철저히 분산시킬 생각인가 봐.

=빌어먹을. 어떡하지?

=적의 규모가 4만이나 되는 기병이라 본대만으로 막기에는 어려워.

=50대의 타이탄을 추가로 빼면 될까?

=놈들이 시간차를 두고 공격하면 그것만으로는 어려워.

=하지만 그 이상의 타이탄을 빼면 정면이 뚫릴 수도 있어.

=알았어. 일단 50대를 추가로 빼줘.

=만약 타이탄이 100대만 더 있었다면 어떻게 해보는 건데.

또다시 50대의 타이탄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 전방의 중군을 공격하는 타이탄은 100대밖에 안 되었다.

아울러 남은 타이탄의 숫자가 100대로 줄면서 3열로 이루어진 타이탄의 대형이 2열로 줄었다.

그 말은 중군의 제국군이 일제히 돌격하면 아무리 거대한 타이탄이라고 해도 100대만으로는 넓이 2km에 달하는 공간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한다는 걸 의미했다.

아니다 다를까?

제국의 중군에서 일제히 돌격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우회한 기병들과 함께 먼저 파고 들어왔던 4만의 제국 보병과 아군 본대가 본격적인 전투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비행화살을 날려라.”

“조금만 버티면 타이탄이 우리를 엄호할 것이다.”

“동요하지 말고 화살을 날려라.”

“적의 경장보병이라 비행화살만으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공격하라.”

슈슝~

슝슝~

순식간에 전선 전체가 전투에 돌입했다.

지금의 이런 상황은 철저히 제국군이 원하는 의도였다.

“기동단, 당황하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적군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마나가 바닥나면 포션으로 보충하는 한이 있어도 무기와 마법을 난사하라.”

“본대를 엄호하라!”

원래 타이탄 라이더의 최대 탑승 가능 시간은 마나 사정상, 2시간 내외였고 전투 가능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하지만 라이더들에게는 지급받은 포션이 있어서 전투 가능시간과 탑승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그러나 아무리 마나가 보충된다고 해도 체력적 부담은 어쩔 수가 없어 대략 7~8시간이 한계였다.

특히, 확장형일 경우 라이더가 안고 가는 부담은 더 컸다. 만약 지금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타이탄을 한 대도 움직이지 못할 수 있었다.

그때 좌우로 크게 우회를 했던 제국의 기병이 본대의 후미 근처에 나타났다.

=테릭, 큰일 났어.

=왜?

=우려했던 대로 우회를 했던 제국의 기병이 후미에 나타났어.

=충돌 예정 시간은?

=길어야 10분 정도야.

=본대를 엄호하는 타이탄을 빼서 막을 수는 없겠어?

=타이탄을 모두 뒤로 빼면 어찌어찌 막을 수는 있겠지만 정면에서 달려드는 적군은 어쩔 거야?

=우선 20대만 뒤로 빼서 왼쪽의 기병을 상대하라고 해.

=20대만으로는 무리야. 특히 후미의 우리 병력은 비행화살과 마법스크롤도 지급되지 않았어.

비행화살을 날리기 위해서는 궁병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궁병이 태부족한 상태에서 그나마 있는 궁병은 본대의 선두에 배치했고, 후미는 그야말로 창 한 자루만 달랑 쥐고 있는 잡병들이었다.

=오른쪽 기병부터 빨리 처리하고 왼쪽의 기병에도 내가 붙을게.

=양쪽 기병을 동시에 처리하겠다고?

=철퇴의 위력에다가 궁극기 스킬을 모두 사용하면 가능할 거야.

=좋아. 앞쪽의 적은 내가 어떻게든 막아볼게.

* * *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타이탄이 다시 등장했다는 것만 신기할 뿐,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네. 저 정도의 능력이라면 해츨링도 상대하지 못할 게 분명해.”

“로드께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보고를 드릴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군.”

“이보게, 더 지켜볼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이제 돌아가는 게 어떤가?”

“이왕 온 김에 칼라히브가 어찌하는지 지켜보고 가세. 사실 전쟁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또 어디겠는가?”

“칼라히브가 눈치를 채지 않을까? 그때도 하마터면 들킬 뻔했지 않은가?”

“이렇게 떨어진 곳에서 패밀리어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데, 칼라히브가 어떻게 알겠어?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지켜보세.”

제국군과 타라한 군의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서 40여km 떨어진 곳에 두 사내가 있었다.

이들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며 타이탄에 대해 알아보고 오라는 드래곤 로드의 명을 받고 파견된 드래곤들로, 로드의 비서였다.

사실 로드는 인간 세상에 타이탄이 출현했다는 소식에 꽤나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서들이 보기에 타이탄의 전투력은 그리 높지 않아서 인간들의 전투에나 유용할 뿐, 드래곤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그들은 마음 편하게 전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테릭은 빅-윙을 펼치고는 비행에 들어가서 본대의 후미 오른쪽으로 향했다.

바라나시의 발밑으로는 어느덧 본대를 노리고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제국 기병대의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은 못 간다!”

“헐! 하늘에 타이탄이 있다.”

“타이탄이 비행을 한다.”

“오~ 허공의 타이탄이 공격을 가한다.”

“피해라!”

“안 된다. 멈추지 말고 돌격해라.”

“여기서 멈추면 다 죽는다.”

“아아악~”

바라나시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제국 기병들은 혼란에 빠졌다.

테릭은 허공에 뜬 상태에서 그동안 아껴왔던 궁극기 스킬, 사이오닉 스톰과 바람의 족적, 그리고 광휘의 불꽃을 아낌없이 토해냈다.

“더 이상의 접근은 내가 허용치 않는다.”

파파파팟~

츠파파파팟~

꾸꽈꽈꽝~

퍼퍼퍼펑~

스킬 자체의 위력에다가 철퇴의 위력까지 더해진 테릭의 공격은 무시무시했다. 덕분에 2만에 달하는 적 기병은 거의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스킬의 난사로 궁극기 스킬은 더 이상 펼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왼쪽 기병을 물리쳐야 해.’

오른쪽의 기병을 물리쳤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나 포션을 들이켜면서 마나를 보충한 테릭은 왼쪽에서 달려드는 기병을 향해 이동했다.

오른쪽 기병을 처리하며 시간을 허비해서인지 본대와 적 기병의 거리는 불과 수백 미터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사용할 궁극기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별수 없구나, 그걸 펼쳐야지.”

궁극기를 모두 소모한 지금, 그 이상의 효력을 내는 것은 괴력과 특이스킬 폭주, 그리고 권능의 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괴력이 펼쳐지며 모든 능력치가 3배로 오른 상태에서 공격력이 6배나 오르는 폭주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테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강력한 파괴의 힘을 가지고 있는 권능의 힘을 준비했다.

권능의 힘은 히바의 철퇴에 붙어 있는 절대소멸의 인 다음으로 강력한 위력을 지닌 스킬이었다.

게다가 마나 회복 속도에 지장을 주지 않기에 포션으로 마나 회복이 가능했다.

‘제국의 병사들아!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니, 나의 손속을 원망하지 마라.’

길게 숨을 들이마신 테릭이 마침내 권능의 힘을 펼쳤다.

츠파파파팟~

우르르르릉~~

번쩍-

“크아아악~”

“커허헉~”

“아악~”

번개가 작렬하는 듯 상공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달려들던 제국 기병의 몸을 그 빛이 휘감는 순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제국 기병들은 스치는 빛과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헉! 뭐냐?”

“헐~ 이건 인간의 능력이 아니다.”

“신의 농간이다.”

“하악~”

2만을 자랑하던 기병이 순식간에 수백 기로 줄어들면서 운 좋게 살아남은 기병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대기하고 있던 20기의 타이탄이 달려들었다.

테릭은 잔병 처리를 그들에게 맡기곤 다시 최전방으로 날아갔다.

“우와아아~”

“테릭 공작님이 오신다.”

“공작님이 계시는 한 적병의 규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도 힘을 내서 적을 격퇴하자.”

“타라한 왕국군의 용맹함을 간악한 제국 놈들에게 보여주자.”

“공격하라~”

“제국 놈들을 몰아내자.”

“와아아아~”

테릭이 조금 전에 보여준 무시무시한 힘은 제국군이나 타라한 왕국군 모두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타라한 왕국군이 이내 큰 힘을 얻어서 사기가 올라간 것과 달리 제국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테릭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더욱 맹렬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으아악~”

“피해라!”

“적의 사령관이 탄 강철 괴물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

찬란한 은빛을 번뜩이는 빅-윙 때문에 바라나시의 모습은 타이탄 중에서도 눈에 확 들어왔다.

제국의 병사들은 바라나시가 다가올 때마다 도망치기에 바빴다.

덕분에 제국군의 대형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면서 전열이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제국군보다 더 크게 당황하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자네, 봐… 봤는가?”

“세상에…….”

“이… 이럴 때가 아니네.”

“오! 인간이 어찌 그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방금 정도의 힘이라면 에이션트 드래곤의 브레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네.”

“내가 보기에도 마찬가지네.”

“혹시 로드께서 걱정하신 점이 이것이었던가?”

“더 지켜볼 필요 없네. 어서 가서 이 사실을 알리세.”

“그… 그러세.”

* * *

두 드래곤들이 떠나간 후에도 제국군과 타라한 군의 전투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현란한 전술로 타라한 군을 괴롭혔던 제국군은 시간이 흐를수록 밀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4만 명 남짓한 제국군이 전선 전체에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기동단, 돌격하라!”

“본대는 전열을 재정비하라.”

“기동단, 적의 요새를 함락시키자.”

“진격~”

아무리 테릭과 타이탄 기동단이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접전의 후유증은 타라한 군에도 상당한 피해를 안겼다.

때문에 테릭은 타이탄 기동단만을 이끌고 추격에 나섰다.

한편, 제국군은 두 요새 사이에 있는 폭 2km의 공간으로 후퇴했다.

“모두 발사하라!”

“지금이야말로 적의 강철 괴물을 무너트릴 기회이다.”

“반드시 일 점사를 해야만 한다.”

“아무리 강철 괴물이라고 해도 십여 발의 화살을 동시에 맞으면 타격을 입을 것이다.”

두 개의 요새에는 아직도 6만의 적군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요새 사이로 추격해온 타이탄을 향해 발리스타를 사정없이 날려댔다.

제국군의 태반이 두 요새 사이를 통해 후퇴한 것은 아마도 타이탄을 유인하기 위해서 그런 듯했다.

슈슝~

슈우욱~

퍼퍽-

슈융~

퍼퍼퍽~

과연 제국은 제국이었다.

그들은 지난번 팍수언 요새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분석을 했는지 10대의 발리스타를 한 조로 해서 철저하게 움직였다.

멋모르고 성벽 쪽으로 붙었던 타이탄은 수없이 날아오는 대형 화살 공세에 놀라 황급히 멀어졌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쓰러진 타이탄도 몇 대 있었다.

제국군은 그런 타이탄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팅팅~

퍽~

크윽~

투투퉁~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다. 아무리 타이탄이라고 해도 사람의 머리통보다 굵은 통나무 화살을 연속해서 수십 발씩 얻어맞자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특히, 타이탄에 탑승한 라이더들의 충격이 대단했다.

결국 여섯 대의 타이탄이 라이더들의 혼절로 작동이 멈추고 말았다.

“타이탄들은 전부 성벽에 올라서 발리스타를 파괴하라.”

“공작님을 따르라.”

“적의 발리스타를 파괴하라.”

쿠쿵~

처척~

테릭이 추격을 포기하고는 성벽으로 비행해서 설치된 발리스타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허공을 비행하는 바라나시를 향해 수백 발의 통나무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갔다.

투투퉁~

팅팅~

=>주인, 괜찮은가?

=>내 걱정은 마라.

=>방패는 사용하지 말고 부메랑과 철퇴를 동시에 사용하는 게 어떨까?

=>좋아. 한 대라도 더 빨리 깨려면 그렇게 하자.

=>대신 방패가 없어서 충격은 더 심하게 전달될 거야.

=>내게 이깟 충격은 문제될 게 없어.

테릭은 지금껏 착용하고 있던 왼손의 방패를 착용 해제하고는 차원아공간에 담았다.

신기한 것은 방패를 착용 해제한 순간, 바라나시의 왼손을 뒤덮고 있던 방패도 함께 사라졌다. 대신 V자 형태의 부메랑이 새롭게 솟아났다.

=>주인, 던져!

=>O.K!

쉬시시식~

파파파팟-

길이 5미터의 부메랑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바리스타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어느덧 대부분의 타이탄이 성벽 위에 올라서는 일반형으로 변신을 끝내고 발리스타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와아~ 이틈이다.”

“적의 본대를 궤멸시키자.”

“최소한 저승길 동무는 데리고 가자.”

“진격하라.”

타이탄이 요새 안으로 올라가자 후퇴했던 제국군이 다시 진격을 했다.

그들은 전멸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타라한 군의 본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게 목표인 듯했다.

“공작님, 적들의 중군이 다시 진격을 했습니다.”

“공작 각하, 제가 일부 기동단을 이끌고 진격을 막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막겠습니다.”

제국과 달리 타라한은 병력을 수급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게다가 주변 모든 나라가 타라한 왕국을 노리고 있기에 다른 4개 왕국과 인접한 지역은 모병을 해도 제국과의 전쟁에 투입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모든 밑천을 드러내야겠구나.’

겨우 20만의 적을 상대하면서 절대 소멸의 인까지 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4만이나 되는 적의 중군을 일거에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오직 그 방법밖에 없었다.

“제나스 백작.”

“예, 공작 각하.”

“적의 중군은 내가 막겠다.”

“아닙니다, 제가 막겠습니다.”

“내게 아직도 한수가 남아 있으니 내말을 들어라. 하지만 이후 요새를 공략하는 것은 한동안 그대들만의 힘으로 해야 할 것이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절대 소멸의 인은 마나 소모가 13만이나 되었다. 그리고 절대 소멸의 인을 펼쳐서 소모된 마나는 포션으로 보충이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바라나시를 움직인다는 것은 무리였다.

부메랑을 회수한 테릭은 제국군이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곤 마침내 절대 소멸의 인을 펼쳤다.

* * *

“어떻게 됐어?”

“찾았습니다.”

“확실해?”

“제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제작 중인 타이탄은 있던가?”

“완성된 60여 대의 타이탄과 제작 중인 타이탄으로 창고가 가득했습니다.”

“위치는 어디인가?”

“예상대로 이곳에서 몇km 떨어진 마을입니다.”

“오! 드디어.”

며칠 전, 카일록에 잠입한 사라한의 침투조는 타이탄 제작 공장이 있는 드워프의 마을을 찾는데 성공했다.

침투조의 수장인 그립슨 남작은 자세한 보고를 듣자마자 급히 후밀 후작과의 통신을 시도했다.

특공대를 이끌고 오는 후밀 후작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하이폰 왕국에 당도한 후 빠른 속도로 이곳 카일록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무슨 일인가?

“타이탄 제작 공장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수고했네. 공장의 경비 상태는 어떠한가?

“놈들이 방심을 해서 그런지 소수의 경계 병력만이 외곽을 지키고 있습니다.”

=타이탄 생산 현황은 어떠한가?

“현재 완성된 타이탄만 수십 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타이탄을 제작하는 인력은 드워프로 확인되었습니다.”

=역시 드워프들을 이용했군. 어쨌든 드워프들을 데리고 가면 우리도 타이탄을 생산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좋아. 내일 저녁이면 그곳에 당도할 수 있을 거야. 타이탄 공장을 급습하는 것은 모레 새벽이면 가능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사이 저희들은 타이탄 강탈 작전을 구체적으로 세우겠습니다.

=남작만 믿지. 그런데 자이스빌로 간 1개조는 어찌 되었는지 아는가?

자이스빌로 간 1개조는 테릭의 할머니를 죽이고 어머니를 납치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립슨 남작은 그들이 며칠 전에 무사히 카일록에 침투한 사실을 알렸다.

현재 그들은 소규모 유랑극단 행세를 하고 있었다.

=작전 개시일은 언제로 예정하고 있는가?

“만일을 대비해서 이곳과 똑같은 시간에 작전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모레 새벽에 같이한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아마 테릭 공작이 상황을 파악하더라도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생각인가 보군?

“정확하십니다.”

=좋아! 그 부분도 남작에게 맡기지.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이크! 전시라 이런 오밤중에도 검문이 있는 것 같군. 남작, 다음에 또 연락하지.

“조심하십시오.”

후밀 후작은 상단과 이를 호위하는 용병단으로 위장해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타라한 왕국과 하이폰 왕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면서 곳곳의 검문이 강화된 상태였다.

아마 후밀 후작은 지금도 검문 때문에 통신을 황급히 종료하는 것 같았다.

그 시각, 서부 전선에서는 승리를 거둔 타라한 군의 지휘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승을 거두고 기뻐하는 병사들과 달리 지휘부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오늘 전투에서 나타났던 문제점에 대해 칼라히브 공작께서 브리핑을 먼저 하겠습니다.”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타라한 군의 수뇌부가 침울해진 까닭은 오늘 전투를 통해 소수의 병력과 타이탄 기동단으로 움직이는 타라한 군의 약점이 드러나서였다.

특히, 오늘 드러난 약점은 제국군이 철저하게 의도한 바였기에 그 충격이 더했다.

칼라히브는 마법을 이용해서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군은 약 5천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20만의 대군을 물리친 전과 비하면 그야말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칼라히브 공작님, 전쟁에서 피해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후터스 성의 방비를 봤을 때, 다음번 전투는 더욱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전투 양상이 더욱 치열해지면 그때는 타이탄도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건 지나친 비약 같습니다.”

“맞습니다. 오늘 쓰러진 라이더들은 단순한 충격을 입어서 혼절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이 시각 현재, 후터스 성과 그 주위의 지형입니다.”

칼라히브는 겨우 두 개의 요새에 20만의 병력을 상대한 오늘의 전투와 후터스 성은 그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음을 입체 영상을 통해 설득했다.

아울러 타이탄 라이더들의 탑승 가능 시간까지 따져가며 예상 피해를 추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종된 제국의 마법병단까지 언급했다.

“칼라히브, 그건 마법병단을 살리기 위해 뒤로 뺀 것이라고 했잖아?”

“물론 그 점도 있어. 하지만 뒤로 빼돌린 마법병단을 놀리기만 할까?”

“그게 무슨 말이야?”

“제국군이 오늘 보여준 기가 막힌 병력 운용이 순전히 우연이었을까? 그리고 발리스타 10대를 한 조로 묶어서 운용하는 것도 우연이었을까?”

“네 생각을 말해봐?”

“만일 마법병단을 투입해서 발리스타의 성능을 개선하면 어떻게 될까?”

“알기 쉽게 구체적으로 말해봐?”

“아주 간단하게는 단순히 발리스타의 발사 강도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나아가 통나무의 관통력이나 충격을 마법으로 배가시킨다면 어쩔까?”

“하!”

“그래도 명색이 타이탄이니까 처음에는 어느 정도 견디겠지. 그러나 수많은 요새들을 격파하고 후터스 성으로 접근할 때쯤이면 라이더들이 이미 한계에 봉착하지 않을까?”

“그게 말처럼 가능해?”

“못할 것도 없지. 오늘 보여준 제국군의 모습이라면 그들은 메즈텍과 애시빌의 패전 원인을 정확히 분석한 게 틀림없어.”

“아!”

“오!”

“이런.”

“제국이라 그런지 역시 보통이 아니군.”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지휘관들이 탄식을 터트렸고, 테릭 역시 마찬가지였다.

칼라히브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타라한 왕국의 사정을 듣고는 일단 진격을 멈출 것을 제안했다.

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결정권을 갖고 있는 총사령관 테릭의 얼굴을 바라봤다.

테릭은 내일 다시 회의하는 것으로 답을 미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