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공격하라!”
“드워프들은 생포하고 인간들은 모두 죽여라.”
“제작이 끝난 타이탄은 추후 우리 사라한 왕국의 전략 병기가 될 것이니 건드리지 마라.”
“제작 중인 타이탄은 파괴하라!”
테릭이 칼라히브와 통신을 하고 있을 때, 후밀 후작과 그립슨 남작이 이끄는 사라한 왕국의 특공대가 들이닥쳤다.
테릭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다가 호통을 쳤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의 인간을 모두 죽일 생각이었던 사라한의 특공대는 겁도 없이 테릭에게 달려들었다.
“모두, 동작 그만~”
“저기 있는 젊은 놈부터 죽여라!”
“복장으로 봐서는 기사가 틀림없다.”
“어쩌면 타이탄 라이더일 가능성이 있으니 속히 제거하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다.
특공대 소속의 기사 네 명이 테릭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그들은 미처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두 토막이 나서 쓰러졌다.
특공대는 그때서야 테릭의 검에서 뿜어나는 오러-소드를 목격하고 비명을 토해냈다.
“난 테릭 군나르 공작이다. 감히 내 영지와 타이탄을 노리다니 용서치 않겠다!”
“헉!”
“테릭 공작이 왜 여기에?”
“썩을, 망했다.”
“겁먹지 마라! 그는 혼자이고 아직 타이탄을 소환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다.”
“공격하라!”
“후작님의 뒤를 따르자.”
“와아아아~”
오러-소드를 목격한 순간, 이미 심상치 않음을 인지한 후밀 후작이었다.
그는 기사들을 독려하며 테릭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작의 뒤에는 죽음을 각오한 여러 기사들이 뒤따랐지만 아무리 죽기를 각오한다고 해서 실력의 격차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겁한 놈들, 그런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왕국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나다.”
“죽어라, 테릭 공작!”
츠파파파팟~
파치치칙~
“커헉~”
“크아악~”
테릭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싶은 순간 강렬한 섬광이 번쩍였고, 이내 몇 줄기 뇌전이 일대를 뒤덮었다.
바로 테릭이 자랑하는 사이오닉 스톰이었다.
이 한수에 후밀 후작과 열 명이 넘는 기사들은 메케한 연기를 내뿜는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그 순간, 공장 곳곳에서 대기가 진동하더니 남녀가 섞인 이십여 명의 인물이 새로 나타났다.
“테릭.”
“칼라히브.”
“내가 늦은 것은 아니지?”
“그렇게 떠들 틈이 있으면 쥐새끼들이나 잡아.”
“하하~ 알았네. 뭐해? 다들 쥐를 잡아야지.”
“그런데 같이 온 이들은 누구야?”
“아까 말했던 내 패밀리들이야.”
칼라히브와 함께 온 이들은 테릭과 쌍신기를 보고 싶어서 따라 나선 드래곤들이었다.
그들은 쥐를 잡자는 칼라히브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특공대를 빠르게 제거하기 시작했다.
“어때, 쓸 만하지?”
“그래도 농땡이 부린 것은 용서 못해.”
“기다려봐! 내가 준비한 게 있으니까.”
“뭔데?”
“지금 말하면 재미없지.”
안 그래도 테릭이 있는 것만으로도 특공대의 실패는 불을 보듯 자명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20명이 넘는 드래곤까지 합류했으니, 특공대에게는 여기가 바로 지옥이었다.
“커헉~”
“후퇴하라!”
“작전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각자 탈출구를 찾아라!”
“누가 보내준데?”
“놀고들 있다.”
“누가 더 많은 쥐새끼를 잡는지 내기할까?”
“좋지.”
특공대는 마법사를 포함해서 330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테릭과 드래곤들에게 숫자의 차이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립슨 남작을 비롯한 침투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칼라히브를 따라나선 몇몇 드래곤들이 소리를 질렀다.
“어! 쥐새끼들이 숨어 있다.”
“저쪽에 숨어 있는 놈들은 내가 잡지.”
“그렇다면 이쪽에 있는 놈들은 내 몫이야.”
“나도 거들지.”
침투조는 은신과 잠입에 능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애당초 은신을 한 상태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그러나 이들이 상대하는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이었다.
결국 은신이 발각된 그들은 비수나 표창을 던지며 마지막 저항을 했다.
그들 중에는 그립슨 남작도 있었다.
“너 만큼은 반드시 같이 데리고 간다.”
“푸후~”
채챙~
“하악!”
어느 틈에 타이탄의 부품 속으로 기어들어 갔던 그립슨 남작이 테릭을 향해 세 개의 비수를 연속해서 던졌다.
테릭은 가벼운 손놀림으로 전광석화와 같은 그의 비수를 전부 쳐냈다.
“한낱 쥐새끼들에게 죽을 내가 아니다.”
“으드득~ 분하다.”
“네놈은 특별히 사로잡아서 사라한의 비겁함을 만천하에 알려주지.”
“흥, 좋아하지 마라. 네놈도 곧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글쎄, 그런 날이 올까?”
“어리석은 놈, 우리가 여기만 노렸을 것 같으냐?”
“무슨 소리냐?”
“네놈이 땅을 치고 후회한들 이미 늦었다.”
그립슨은 그 말을 끝으로 독을 깨물어 스스로 자결했다.
테릭은 그가 죽으면서 남긴 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이스빌에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렸다.
“혹시?”
“테릭, 왜 그래?”
“나, 갔다 올게.”
“어딜?”
왜 그렇게 마음이 급한지 몰랐다.
테릭은 칼라히브의 질문에 대답도 않고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 곧장 자이스빌로 향했다.
* * *
“오! 부인.”
“다가오지 마라. 다가오면 두 여자를 모두 죽이겠다.”
“이놈들, 지금 당장 부인의 상처부터 치료해라.”
“네놈들부터 물러가라.”
“두 분께서 그렇게 잘해주셨건만 어찌해서 이런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냐?”
“네놈들에게 이유를 설명한 필요는 없다.”
유랑극단의 공연에 크게 만족한 테릭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직접 무대로 올라가 그들을 치하했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놓칠 침투조가 아니었다.
그들은 무방비 상태인 할머니를 향해 비수를 들이댔다.
하지만 그들의 비수는 뜻하지 않게도 스스로 몸을 날린 어머니에 의해 막혔다.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를 부상 입힌 침투조는 당황하다가 할머니와 부상당한 어머니를 동시에 데리고 탈출에 나섰다.
그러나 원래부터 걸음이 느린 할머니와 부상을 입은 어머니를 데리고 빠져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병사들에게 막히고 말았다.
테릭이 자이스빌의 자기 방에 당도한 것은 그때였다.
“이놈, 부상당한 백작 부인은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다. 백작 부인을 놓고 갈 테니 병사들을 모두 철수해라.”
“기어이 연로하신 분을 데리고 갈 셈이냐?”
“여차하면 여기서 모두 죽이고 우리도 자결하겠다.”
“아!”
백작 부인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별수 없었다.
자이스빌의 기사와 병사들은 서서히 뒤로 물러났고, 침투조는 부상당한 어머니를 팽개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일을 어찌할꼬?”
“앞으로 백작님과 공작님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어머니와 할머니의 호위를 맡았던 두 기사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탄식했다.
하지만 지금 쫓아가서는 할머니의 목숨이 위태롭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푹~
“커헉~”
싹둑-
“크아악~”
“이놈들, 내 가족을 노리다니 용서치 않겠다.”
“아아악~”
할머니를 메고 가던 두 명의 침투조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테릭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건틀릿에 붙어 있던 인비저빌리티를 실행시켜서 침투조에 접근하고는 가장 먼저 할머니를 메고 있는 두 놈부터 처리했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에 있던 세 명의 침투조를 마저 베었다.
침투조는 갑자기 나타난 테릭으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 공작님이다.”
“공작님이 오셨다.”
“어서 대부인을 구하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기사와 병사들이 달려왔다. 그러나 침투조는 이미 시체로 변한 상태였다.
테릭은 할머니를 이들에게 맡기고는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테릭, 이게 꿈이냐, 생시냐?”
“진짜에요, 제가 왔어요.”
“아! 죽을 때가 되니 헛것이 보이나 보구나.”
피를 많이 흘린 어머니는 아주 위중한 상태였다.
테릭은 급히 포션 몇 병을 꺼내 상처 부위와 목에 들이부었다.
그리고는 권능의 힘을 이용해서 생명의 권능을 펼쳤다.
“아아~”
“어머니, 힘들게 말씀하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있으세요.”
“테릭, 정말 테릭이니?”
“네.”
권능의 힘은 대단해서 상처 부위가 말끔하게 나았고, 어머니의 혈색도 좋아졌다.
하지만 안심이 안 된 테릭은 칼라히브를 자이스빌로 불렀다.
“테릭, 무슨 일이냐?”
“사라한의 암살자들이 어머니와 할머니를 노렸어.”
“뭐! 놈들은 어디 있어?”
“놈들은 내가 다 정리했어.”
“아우우~~ 이놈들, 내 손에 걸렸으면 박살을 내는 건데.”
“그보다 어머니랑 할머니를 봐줘.”
“왜?”
“할머니는 많이 놀라셨고, 어머니는 부상을 당하셔서 내가 급히 권능의 힘을 이용해서 치료는 했어.”
“두 분에게 어서 가보자.”
어느새 침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편안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어머니를 살피던 칼라히브는 몇 가지 마법을 꼼꼼히 시전하고 나왔다.
칼라히브의 마법 때문인지 어머니는 젊은 아가씨들처럼 혈색도 좋아지고 피부도 고와졌다.
“치료가 끝난 거야?”
“어머니는 어떠셔?”
“권능의 힘이 워낙 대단해서, 막상 내가 한 것은 별것 없어. 아마 한숨 자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어날 거야.”
“휴~ 다행이다. 이제 할머니도 봐줘.”
“응.”
크게 놀란 할머니는 아직까지 몸을 떨고 있다가 며느리의 안부부터 물었다.
테릭은 치료가 끝나서 지금은 자고 있음을 알렸다.
그사이 칼라히브는 몇 가지 마법을 펼쳤고, 할머니는 마법의 영향으로 잠에 빠졌다.
“끝났어.”
“고마워, 칼라히브.”
“고맙기는. 그보다 앞으로는 이곳의 호위에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지. 아버지를 만나서 기사 일부와 병력은 이곳에 배치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네 패밀리들은 어디 있어?”
“아까 거기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
“일이라니?”
“타이탄 업그레이드 작업 중이야.”
사라한의 특공대를 격퇴한 드래곤들은 할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중노동에 지친 칼라히브는 그들을 그냥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또한 테릭을 볼 생각으로 따라왔던 드래곤들도 그냥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결국 서로의 이해와 요구가 맞아떨어지면서 칼라히브는 그들에게 조립이 끝난 타이탄의 업그레이드를 할 것을 부탁했다.
대신 업그레이드가 끝난 후에는 테릭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칼라히브는 로드에게 불려갔던 일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일이 그렇게 됐어.”
“모든 오해는 풀린 거야?”
“그럼.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해도 이번 기회에 다 해결했어.”
“잘되었네.”
“아참! 카일록에 있는 내 패밀리도 만나줘야 해?”
“많은 드래곤들이 도와준다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아! 그들에게 그란티아에서 가져온 타이탄도 업그레이드를 부탁해 볼까?”
“뭐, 상관없을 것 같은데.”
그날 테릭은 전선과 자이스빌, 그리고 카일록과 그란티아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날이 밝았다.
* * *
“공작, 서부의 귀족들에게 타이탄 100대를 넘긴다는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지금 당장은 제국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공작의 힘이 약화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지역의 귀족들도 타이탄을 얻기 위해 앞으로는 왕국의 위기에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그건 이미 그렇게 되고 있어서 짐은 매우 흡족하오. 그러나 왕국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작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아닌지 무척 우려되는 바이오.”
날을 꼬박 새우며 바쁘게 움직였던 테릭은 국왕이 찾는다는 모리타 백작의 통신을 받고 입궁을 했다.
국왕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묻고는 진심으로 테릭을 위로했다.
하지만 국왕이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타이탄과 관련된 얘기였다.
현재 왕국은 타이탄을 판매한다는 소식으로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다.
아울러 각 지역의 귀족들은 타이탄을 구입하기 위해 황급히 출전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전하,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발렌시아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서부 지역만큼은 최소 100대 이상의 타이탄이 배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정말 짐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소?”
“그렇사옵니다! 특히 새로 보급될 신형 타이탄은 기존의 타이탄보다 여러모로 우수하고 강력한 타이탄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럼, 귀족들에게 판매한다는 타이탄은 구형이오?”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 좌우파 귀족들에게 시달려온 국왕은 이제야 안정이 되어가는 왕권이 타이탄의 판매로 흔들릴까 싶어 걱정을 했다.
사실 왕권이 안정된 배경에는 뭐니 뭐니 해도 압도적인 무위와 타이탄으로 무장한 테릭이 버티고 있어서였다.
때문에 테릭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왕권이 약화되는 것을 의미했기에 국왕으로서는 이 일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휴우~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오. 국경의 방비도 중요하지만 그 때문에 공작의 힘이 약해져서도 안 될 것이오.”
“전하,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말을 해보시오.”
“제가 경영하는 카일록 영지의 세금은 타이탄으로 대체하면 어떻겠습니까?”
“왕국에 바치는 세금을 현금이 아닌 타이탄으로 내겠다는 것이오?”
“그렇사옵니다. 대신 저희 영지는 매년 세금을 선납할 것이며, 조만간 5년 치 세금을 한꺼번에 내겠습니다.”
“하하하~ 과연 공작은 우리 왕국 제일의 충신이오, 짐은 공작의 마음씀씀이에 감동했소. 앞으로 공작 뜻대로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귀족들은 돈이 있다고 해도 전쟁에서 공을 세워야만 타이탄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왕은 가만히 앉아서 타이탄을 받게 된 것이다.
즉, 테릭은 세금을 낸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왕권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국왕을 만나고 나온 테릭은 이번에는 그란티아로 가서 작업이 끝난 타이탄을 싣고는 카일록으로 갔다.
“테릭, 어서와.”
“업그레이드 작업은 어찌 되어가고 있어?”
“직접 보면서 설명하지.”
“왜? 뭐, 색다른 작업이라도 했어?”
“당연하지. 20명이 넘는 우리 패밀리들이 모여서 작업하는 경우는 그 유래가 없는 일이야.”
“영광으로 생각하지.”
“허험~ 당연히 그래야지.”
테릭이 작업장에 들어서자 업그레이드를 하던 드래곤들이 모두 눈인사를 했다.
그들은 오늘 새벽에 칼라히브의 성화에 떠밀려서 히바의 방패와 철퇴의 위력을 테스트 당했다.
굳이 테스트를 당했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히바의 방패만으로도 충분한 일을 칼라히브가 굳이 철퇴의 위력까지 펼치게 해서 여러 드래곤이 피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쌍신기의 위력을 몸으로 경험(?)한 드래곤들로 인해 이 일은 모든 드래곤들에게 빨리 퍼졌다.
그리고 그게 계기가 되어서 유희중인 모든 드래곤들이 부랴부랴 레어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예상이지만 며칠 내로 세상에 나온 드래곤은 칼라히브와 그의 패밀리가 유일할 것 같았다.
“어! 저건 빅윙 아냐?”
“비슷한데, 우리는 빅 버드라고 부르기로 했어.”
“설마 저걸 달면 여기 있는 타이탄 전부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거야?”
“여기 있는 것 말고 기존의 타이탄도 빅 버드를 달면 하늘을 날 수 있지.”
“와우~ 대단한데?”
테릭이 깜짝 놀란 것은 조립이 끝난 타이탄 전부에 날개가 달려 있어서였다.
하지만 마법과 공학이 적절하게 합쳐진 그란티아의 빅-윙과 달리, 이곳 드래곤들이 만든 빅 버드는 마법물품에 가까웠다.
“테릭, 몇 가지 단점이 있으니까 너무 좋아하지는 말아.”
“단점이라니?”
“진짜 빅윙처럼 장거리 비행 능력은 없어. 대략 100km가 한계야.”
“그것도 어디야.”
“그리고 확장형 상태에서 비행은 불가능해.”
“뭐,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또 비행 중에 전투는 사실상 어려워.”
“끙~ 짝퉁은 짝퉁이구나.”
“그래도 후터스 성을 공격할 때는 여러모로 편하지 않을까? 아울러 작전 반경이 넓어진 만큼 본대와 거리를 둘 수 있으니까 이전처럼 본대 엄호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지금도 일정 정도의 라이더들을 와이번을 이용해서 공중 이동을 시킬 수는 있었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요새망을 건설하고 대형 발리스타로 일종의 방공망을 형성한 후터스 성에 와이번을 보내는 것은 너무도 위험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와이번이 피격되어서 라이더라도 잃는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타이탄 자체가 비행을 할 수 있다면 애당초 그런 위험은 없었다.
“그래, 알아. 정말 고생했어.”
“하하하~ 이 정도야 기본이지.”
“일단 모든 타이탄에 저 날개를 달자.”
“암, 우리만 믿어.”
“또 다른 업그레이드는 없어?”
“왜 없겠어? 저번처럼 통나무 화살이 날아올 것에 대비해서 충격 완화 마법진을 추가로 그렸어.”
“오! 그것도 좋다. 다른 것은 없어?”
“또?”
“그래, 일시적이라도 타이탄의 모습을 감출 수는 없을까?”
“놈들 몰래 접근하자 이거지?”
“그래.”
“대략 40분 정도에 만족한다면 그 정도는 가능해.”
“비행 중에도 모습을 감출 수 있어?”
“어차피 마나 유지 시간이 문제이지 이동은 상관없어.”
“야~ 바로 시작해.”
* * *
테릭이 그렇게 두 개의 차원, 전선과 카일록을 바쁘게 오가는 사이 어느덧 2주가 지났다.
그사이 전선에는 180대의 타이탄이 새로 공급되면서 바라나시를 포함해서 총 431대의 타이탄이 배치되었다.
특히, 모든 타이탄에는 빅 버드와 충격 완화 마법진, 그리고 인비저빌리티 마법진이 추가로 장착된 상태였다.
“제나스 백작, 신입 라이더들은 어떤가?”
“타이탄 기동에는 문제가 없지만 신입 라이더만으로 단독 작전을 펼치기에는 아직 무리입니다.”
“빅 버드를 이용한 비행 훈련은 어찌 되어가고 있어?”
“다들 순조롭게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전을 강행하지.”
“너무 무리지 않겠습니까?”
“아냐. 비행술을 이용해서 외곽의 요새부터 시작해서 후터스 성까지 일직선으로 뚫어버리면 간단해.”
“하지만 이제야 타이탄을 이동시키고 겨우 무기만 휘두르는 수준인데, 성급하게 보내서 사고라도 당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백작,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
사라한 왕국의 특공대가 실패하면서 주변 4개 왕국과 발렌시아 제국은 서둘러 동맹을 발표했다.
아울러 주변국들은 선전포고를 하고 병력을 이동하고 있었다.
즉, 타이탄 기동대가 이곳에 마냥 붙잡혀 있다가는 왕국의 다른 지역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다른 지역의 영주들이 타이탄을 얻기 위해 알아서 병사를 징집하고 훈련시키면서 병사들의 무장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알겠습니다.”
“라이더를 걱정하는 백작의 마음은 나도 알아. 하지만 신입 라이더 옆에는 노련한 선배 라이더들이 있잖아? 또 비행도 가능하고 모습도 감출 수 있으니까 그리 위험한 상황은 없을 거야.”
“아닙니다. 왕국 전체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제 실수입니다.”
아직 미진한 점이 있지만 여건상 더 이상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날 바로 타라한 군의 출전이 시작되었다.
이미 후터스 성 60km 밖에는 칼라히브와 그의 패밀리들의 노력으로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이 몇 개나 그려진 상태였다.
8만의 병력은 단 한 번의 텔레포트로 이동을 끝냈다.
타라한 군의 병력이 8만으로 오히려 늘어난 것은 타이탄을 구입한 서부의 귀족들이 답례의 표시로 숨겨두었던 정예 병력을 동원해서 그렇게 되었다.
“모두 주목하라!”
“충~”
“오늘밤, 대륙의 역사가 바뀌게 될 것이다. 다들 계획대로 목표한 요새를 박살내기 바란다.”
“충~”
테릭이 제국과의 전쟁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모든 마왕들의 능력을 흡수하고 그들을 복속시킨 카이젤스키는 그란티아에서 고대의 유적을 뒤지고 다녔다.
그의 뒤에는 1마왕 하벨이 그림자처럼 뒤따랐다.
아리아를 비롯해서 다른 마왕과 드래곤들은 주신의 거처를 찾는 일에 전부 투입된 상태였다.
특이한 것은 마왕들의 능력을 전부 흡수한 카이젤스키는 온몸이 새까맣게 변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마에는 못 보던 뿔이 한 뼘 넘게 솟아난 상태였다.
또 눈도 부리부리해지고 코도 뭉툭하게 변해서 이제는 그의 원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벨, 여기가 고대의 유적이 확실하냐?”
“그렇습니다. 여기가 겉보기에는 겨우 S급의 던전이지만 고대의 유적과 연결된 통로가 있습니다.”
“가자꾸나!”
“제가 앞장서서 길을 트겠습니다.”
“뭔 떨거지들이 이렇게 많은지. 그렇게 하라!”
퍼퍽~
꽈꽝~
“누가 뒤치기를 한다.”
“크아악~”
“커헉~”
“헉~ 마왕이다.”
“와~ 마왕이 출현했다.”
“오! 이벤트 보스몹이 떴다.”
이미 알려진 S급 던전 안에는 430~450레벨 대의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이룬 채 사냥을 하고 있었다.
하벨은 길을 튼다는 핑계로 그들을 죽이면서 전진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하벨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몰려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하벨이 마왕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NPC였기에, 그를 일종의 이벤트 보스 몹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야! 우리가 마왕을 잡을까?”
“잡고는 싶은데, 우리 셋이서 가능할까?”
“카트리나를 부르는 게 어때?”
“카트리나가 어디 있는데?”
“이 근처라고 했어.”
“빨리 불러.”
로빈, 피터팬과 함께 파티를 구성해서 S급 던전에 들어선 레이나는 플레이어들과 싸우는 마왕을 발견했다.
하지만 셋만으로 마왕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때마침 근처에 있다는 카트리나를 불렀다.
카트리나는 마왕이 나타났다는 말에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바로 달려왔다.
“카트리나, 여기야.”
“마왕은?”
“저 앞으로 갔어.”
“마왕이 확실해?”
“그래, 분명 1마왕 하벨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어.”
‘이상하다!’
카트리나가 알기로 마왕은 아직 출현할 때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녀가 선두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레이나와 다른 일행들은 카트리나가 행여나 놓칠 것을 우려해서 달린다고 여기곤 부리나케 뒤좇았다.
“카트리나, 같이 가.”
“로빈, 달려.”
“알았어.”
얼마 후 카트리나는 플레이어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는 1마왕을 발견했다.
‘어! 뒤에 있는 자도 수상한데.’
카트리나가 느끼기에 마기를 풀풀 풍기는 존재는 하나가 아니었다.
오히려 1마왕 뒤에 가만히 서 있는 자가 더 강한 마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카트리나는 그자의 정체가 카이젤스키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 * *
“이봐, 멈춰.”
“넌 뭐야?”
“이건!”
드래곤 피어가 섞인 음성에 하벨과 카이젤스키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카트리나를 발견한 카이젤스키의 눈이 한순간 빛나기 시작했다.
‘오! 여기서 만나다니, 잘되었다.’
어차피 때가 되면 이곳 드래곤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의 능력까지 흡수할 생각을 하고 있던 카이젤스키였다.
그는 카트리나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기세를 감추며 급히 하벨에게 귓속말로 명령을 내렸다.
=>하벨, 지금 다가오는 계집은 드래곤이다.
=>알고 있습니다.
=>저 도마뱀이 내 정체를 알아서는 안 된다.
=>그리하겠습니다.
하벨과 카이젤스키가 귓속말을 나누는 사이, 카트리나는 거의 지척에 도달했다.
그녀는 다른 플레이어와 싸우는 하벨은 신경도 쓰지 않고 카이젤스키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정체가 뭐지?”
“나 말인가?”
“그래, 분명 마계의 존재로 보이는데 어떻게 정체를 감출 수 있는 거지?”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하지?”
“좋게 말할 때 실토하는 게 좋을걸.”
“내가 말하지 않으면 실력행사라도 하려는가 보지?”
“난 마계의 존재가 세상을 돌아다니는 꼴은 못 봐.”
“흥~ 네게 그만한 힘이 있을까?”
카이젤스키의 입술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감히 자신에게 대드는 카트리나의 모습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네놈이 정녕 따끔한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 셈이로구나.”
“하하하~ 따끔한 맛? 카트리나, 정녕 나를 몰라보겠느냐?”
“누… 누구냐?”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이놈~ 당장 정체를 밝혀라!”
어떻게 된 일인지 상대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카트리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카이젤스키의 오른손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카트리나는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푹-
“컥~”
찰나의 순간 카이젤스키의 손이 카트리나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카트리나는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렇게 몸부림을 칠 때마다 더욱 단단한 올가미에 조여드는 기분이 들었다.
“카트리나,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냐?”
“누… 누구?”
“하하하~ 죽기 직전에 알려주지.”
“어림없다. 이대로는 죽지 않는다.”
“흥~ 꿈도 야무지구나. 너는 특별히 몇 번이고 흡수를 해주마.”
“야! 뭐해?”
“빨리 카트리나를 도와주자.”
“뿔이 있는 것이 저놈도 마왕인가 봐.”
“빨리 공격해.”
“어리석은 것들.”
카트리나가 궁지에 빠지자 지켜보던 레이나 일행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 셋은 카이젤스키가 가볍게 휘두른 왼손에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카트리나는 레이나 일행의 죽음이 안타까워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이 나쁜 놈.”
“보채지 마라. 너도 곧 저들의 뒤를 따르게 해주마.”
“도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냐?”
“테릭이란 놈이 죽을 때도 그런 질문을 할까?”
“헉! 너는?”
“이제야 알았나 보구나.”
“네가 어… 어떻게?”
“알려줄까? 내가 바로 마신이다!”
“마신이라니?”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라.”
“크윽~”
카이젤스키는 그 말을 끝으로 카트리나의 모든 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카트리나는 드래곤하트의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럴 수는 없어!’
“흥! 마나하트가 내 손아귀에 잡혀 있는데 마법이 발휘될 것 같으냐?”
“아!”
“그렇게 앙탈을 부릴수록 너만 고통스러워진다.”
흡수에 저항할수록 고통이 커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카트리나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기에 이빨을 깨물며 빠져나가기 위해 버둥댔다.
그러나 마나를 모두 뺏긴 드래곤하트가 터져나가는 순간, 그녀의 의식도 끊어지고 말았다.
‘테… 테릭님.’
의식을 잃은 카트리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의 모습은 먼지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카이젤스키는 숨 가쁘게 들려오는 메시지를 들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삐리링~ 삐리링~”
-골드 드래곤 카트리나의 마나하트를 흡수했습니다.
-골드 드래곤 카트리나를 소멸시키고 그녀의 모든 능력을 얻으셨습니다.
-대량의 마나를 흡수했기에 마신의 뿔이 추가로 생겨납니다.
-마신에서 대마신으로 지위가 상승됩니다.
-캐릭터의 명칭이 마신에서 대마신으로 변경됩니다.
-마신의 권속이 아닌 드래곤의 능력을 흡수했기에 앱솔션 스킬의 숙련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띠링~ 띠링~”
-앱솔션 스킬을 마스터하셨습니다.
-흡수한 존재의 신분까지 승계가 가능합니다.
-골드 드래곤 카트리나의 신분을 승계합니다.
-골드 드래곤 카트리나로 변신이 가능합니다.
“어! 내 권속이 아니어서 부활시킬 권한이 없나?”
그동안 죽인 마왕들은 마신의 권한으로 전부 부활을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신이라고 해도 권속이 아닌 카트리나를 부활시킬 권한은 없었다.
그러나 이 사정을 정확하게 모르는 카이젤스키는 몇 번이고 흡수하겠다는 자신의 계산이 틀어지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내 권속이 아니어서 부활을 시키지 못하는 건가? 아무래도 다른 드래곤들에게 부활을 어떻게 하는지 물어봐야겠군.’
사망 후에 부활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플레이어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NPC도 부활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 카이젤스키였다.
그는 드래곤의 부활을 물어보기 위해 아르실리안에게 통신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