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 / 0340 ----------------------------------------------
잠시 쉬어가는 곳
죽음.
생과 사. 지옥과 천국의 시작점.
그것을 지칭하는 여러가지 말이있지만 남자에게 있어서 가장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받는 부위가 어딜까? 백이면 백, 가랑이사이를 내려다 볼것이다.
솔직히, 인터넷을 찾아보면 남자의 상징을 가격당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영상과 사진등으로 보면서 많이 웃었지만, 지금 내가 그 상태라고 생각하니 울고 싶어졌다.
일단은 슈를 위해(소잃고 외양간고친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옷을 입고 다시 소파위에서 거시기를 붙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저, 저기.. 많이 아파?"
슈가 나름 간호한답시고 옆에 섰다.
하지만 거기를 차였는데 슈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슈도 그 사실을 아는 지, 옆에서 안절부절하는 중 이었다.
나는 최대한 슈가 걱정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그에 대답했다.
"걱정하지마. 우만큼은 아니어도 고통은 잘 참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슈는 어이없다는 물감을 미안하다는 물감을 동시에 섞어 논 얼굴로 대답해 주었다.
"땀을 잔뜩 흘리고 얼굴을 그렇게 일그러트렸는데?"
..소용없었나.
내가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친지 약 10분이 지나자, 고통이 많이 사그라 들었다. 두 다리 사이를 확인해 봤지만 부러지가나(?) 터진(?)곳은 없었다.
살았다(나와 내 미래의 자식이).....
슈는 내가 괜찮아진것을 확인하고 호지방(본디 누나의 방이었지만 행방불명이라 호지가 쓰기로 했다)에서 책을 바꿔가지고 왔다. 가죽으로 된 겉표지에는 알파벳인지 뭔지의 이상한 문자가 쓰여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저것이 영어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알수있었다.
내 탐구욕이 입을 놀렸다.
"뭐라고 쓰인거야?"
"라틴어. 꽤 어려워. 마법서자체의 이해보다 번역이 더 힘들어서 고생하고 있어. 그리고, 그런것보다.."
말 끝을 흐렸다. 무언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얼굴을 붉힌것이 매우 귀엽다.
음.. 이래서는 무슨 부탁이든 안들어줄수가 없는데 말이지.
슈가 직사각형의 종이를 내밀었다.
"나, 나랑 영화 보러 안갈래?"
"영화?"
"으, 응. 적경홍한테 남는거라면서 받았어."
적경홍.
우리반의 부잣집 도련님&아가씨 멤버(이상하게도 우리반에는 열명에 가까운 인원이 부잣집아이였다) 중 하나인 아가씨를 말하는 것이리라.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은 아가씨이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슈랑 경홍이랑 요즘 굉장히 친해졌었지.
슈는 수면위를 바라보는 물고기처럼 고개를 들어올려 생각하던 나를 옷소매를 붙잡음으로서 현실로 끌어왔다.
왠지 비유때문에 슈라는 어부에게 낚인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싫어?"
잘못하면 울것같은 표정이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슈는 여느때보다 환한미소로 웃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고 하면 울겠지.
---------------------------
영화관 내부 매표소. 오후 2시 20분.
"어이 어이 정말로 오는 거 맞아?"
팝콘을 씹던 련택이 의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단발 머리를 뒤로 묶어올린소녀. 적경홍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슈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그렇겠지. 시간도 정해져 있는 특별한 표니까. 우, 하여. 준비는 됐어?"
"물론!"
우와 하여가 카메라를 깃발처럼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적경홍. 그녀는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 돈을 쓸 줄 아는 여자였다. 진정한 취미는 이 작전이 끝나고 '만드는' 거지만.
지금 어두운 영화관 내부 매표소 안에서는 음모의 손길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때, 슈와 고요가 도착했다.
적경홍이 손을 뻗으며 조용히 외쳤다.
"자, 전부 작전위치로!"
"yes sir!"
----------------------------
"영화관이라.. 난생 처음인데."
슈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슈의 표정은 '도시에 살면서 영화관 한번 못 가봤냐'는 너무나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얼굴이라 머리에 꿀밤을 먹여줄까 했지만 관뒀다.
슈는 내 표정이 찌푸려졌는지, 손을 바람개비처럼 저으며 변명했다.
"나, 나도 한국에서는 처음와봤어."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바탕 웃어제낀 대가로 팔을 투닥거렸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조금 더 그렇게있고 싶었지만 곹, 영화 상영 시간이라 슈의 손을 잡았다.
왜냐하면 조용해지니까.
내 예상대로 슈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슈의 손을 이끌고 좌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잠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낼 의향으로 잠시 멈춰섰을 때, 이변은 일어났다. 무슨 마법에 의한 이변이 아닌, 그저 발 소리의 어색함. 수많은 발소리 속에서도 내 귀는 그 이상한 발소리를 소리의 바다에서 낚아올렸다.
슈는 내가 멈춰서자 내 얼굴을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슈가 알면 울지도 모르니까, 조용히 처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은 알아 챈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위해 다시 좌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좌석이 있는 내부는 극장과 다를 것 없는, 아니 극장에 스크린만 올려둔 모습이었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광고가 떴다(광고인 줄 모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슈한테 비웃음 당했다).
미행인들은 대각선, 뒤의 자리를 점했다. 미행인들의 윤곽이 대충이나마 잡혔다.
한명은 확정지어 졌지만, 나머지 셋은 모르겠다.
"누구지?"
"범인을 먼저알면 재미없잖아?"
내 혼잣말에 슈는 입을 가리고 슬그머니 웃었다.
그러고보니 영화제목이 '그 남자의 책'이었나. 추리 스릴러였지.
영화가 시작됬다.
영화내용을 간략히 하면 이랬다.
마법사의 아들 X가 마법사인 아버지의 유품인 흑서라는 마법서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마법서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능력을 가졌는데, 새로운 주인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세계가 10월 26일 아침부터 10월30일 자정까지의 시간이 반복되는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3번째 반복되던 날까지 아무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4번째 반복되던날 다섯명의 사람이 깨닫는다.
그리고 사건을 이리저리해서 해결.
뭔가, 패러디 끼가 보이지만 나름 재밌는 내용이었다.
사람들도 몰입했는지 앞사람이 기지개를 켰다.
앞의 사람들이 일어서자 우리도 따라 일어나 출구를 향해 나갔다. 슈는 재밌었는지 내가 손을 붙잡은 것도 잊은채 속으로 계속 내용을 되내이고 있었다. 매표소앞으로 나와서야 내가 손을 잡은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익숙해지면 재미없으니까 손을 놓고는 말했다.
"슈, 잠시 화장실 다녀올테니까 울지말고 여기서 기다리고있어."
"아, 안울어!"
"큭큭, 그래."
나는 슈의 머리를 쓰다듬고 화장실로 향했다.
슈가 화낸것도 같지만 갑작스레 머리를 쓰다듬어서 그런것이니 무시.
중요한것은 따로 있으니까.
나는 화장실 앞을 향해 걷기만 했다.
대기가 정지했다. 아니, 정지한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대기라는 보자기에 뽈록 튀어나온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멈추자 네명의 사람이 정지햤다. 조금 더 정신을 집중하자 대충의 윤곽이 잡혔다.
두명은 카메라로 슈와 나를, 한명은 내 뒤를, 다른 한명은 슈를 감시하고 있었다.
집중하던 정신을 놓자, 대기의 흐름이 사라진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이거'는 사용하기가 까다롭다니까.
멈춘 몸을 날 미행하던 사람쪽으로 돌리자 뜨끔하며 고개를 돌렸다.
척보니까 알겠다. 련택이다.
"이 빌어먹을 자식."
나는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게 뛰었다. 련택은 기겁하고 달리다가 콜라를 빨고있는 적경홍과 부딫혔다.
"꺄...뭐하는 거야! 흘릴 뻔..."
내가 적경홍의 뒤에서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는 내 발밑을 살짝보고는 머리에 쓴 모자를 내렸다.
"I don't speak korean"
나는 그말에 상큼하게 웃으며 한마디 해주었다.
" welcome to the h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