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5화 (1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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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는 곳

영화관 근처 패스트 푸드점 안. 4시 40분

패스트 푸드점의 창가자리에 3남 3녀가 앉아있었다. 누가보면 미팅이라도 하고있는 줄 착각할지도 모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으리라.

중심에 팔짱낀 남자가 눈에서 귀광을 토하며 죽일듯이 2남2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이블위에 놓여진 카메라 두대가 부자연스럽게 몸체를 떨었다. 앞으로의 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카메라는 몰수다. 집에서 잘 쓰도록하지."

하여와 우가 고개를 들어올리고 어린애처럼 야유를 보냈지만 내 눈길 한번에 경쟁하듯 고개를 숙였다. 내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며 련택을 쏘아봤다. 련택은 손을 모으고 입으로 'sorry'를 외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련택이 너 마저..

슈는 내 옆에서 필름 카메라를 집고는 꼼지락거렸다.

"슈, 갖고 싶어? 어차피 내꺼니까, 갖고싶으면 가져."

우와 하여가 다시 고개를 들어올려 항의하려 했지만 내 눈빛을 보더니 번개같이 고개를 숙였다.

음. 데자뷰가 느껴지는군.

슈가 원시인이 기계를 보는 표정으로 물었다.

"필름이, 갖고 싶은데.."

우와 하여는 필름이란 말에 눈을 빛냈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능숙한 손동작으로 필름을 꺼내어 손에 쥐어주었다.

그 행동에 또 다시 슈의 얼굴이 붉어졌다.

질리지가 않는다니까.

우가 슈의 옆으로 살그머니 다가왔다. 그 행동을 봤지만 일단은, 무시하기로했다.

"저기저기, 슈. 카메라 돌려주지 않을래?"

우의 부탁. 하지만 이번에는 슈도 조금 화가 났는지 고개를 돌리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필름이 부족해서 몇개는 디카로 찍었는데, 그것중에 요의 스냅샷이..."

슈가 몸을 고양이처럼 부르르 떨었다.

어지간히 갖고싶은 모양이다.

아래를 자세히 보니 뻗으려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막고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힐끔 쳐다봤다.

눈이 살짝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누가보면 슈가 잘못한 줄 알겠다.

나는 슈에게 가볍게 속삭이는 것으로 일을 종결시키기로 했다.

"마음대로 해."

말이 끝나자 마자 번개같은 속도로 필름을 뺀 카메라를 넘기고 메모리카드를 받아들였다.

슈는 이제 감정을 숨길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필름두개와 메모리카드를 손에 꼭 쥐고 어린애처럼 기뻔했다.

적경홍이 팔에 기댄채 물어왔다.

"너희 진짜로 사귀는거 아냐? 지금봐서는 연인이라봐도 거의 무방한데. 손잡고 거리를 당당하게 활개치고."

아가씨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조금은 거친말이었지만 별로 거부감은 없었다. 장난스런 말투와 넉넉한 성격이 그녀를 천박하게 보이지 않게하는 것이다.

조금 부자연스러운 감도 적잖게 있었지만.

적경홍의 말에 대답한것은 나나 슈가 아니었다.

"그건 힘들 걸. 손잡은 건, 전에도 몇번있었던지라."

우가 손을 저으며 경홍의 말을 부정했다. 경홍은 그 말에 좋은 정보를 얻었다는 듯한 고양이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사심이 가득해보이는 얼굴이 음모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어차피 이제는 어떠한 수라도 통하지 않으리라.

청문회가 그렇게 끝나고 패스트 푸드점에 돈을 지불하고 나오자 벌써 하늘이 가라앉은 것같은 어둠이 작게 깔려있었다.

우리는 그 길로 헤어져 각자의 집에 돌아갔다.

적경홍의 입꼬리가 매우 아프리라 생각 될 만큼 귀에 가까워진 것 같았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슈를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여덟시에 가깝게 바늘이 움직여 있었다.

몸을 씻고 TV를 켜자 중국에서 엄청난 살인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단번에 100에 가까운 사람이 폭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세상 참, 흉흉하구만. 엉?"

채널을 내리자 다른 사건을 보도 하는 뉴스가 나왔다.

인도네시아의 섬 중 하나가 갑자기 폭발해서 지구상에서 지워졌고, 그 여파로 우리나라에 해일 피해가 생겼다는 소식이었다.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섬에는 핵관련 발전소도 없었을 뿐더러 위험한 부분은 전혀 없는, 관광지였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각국의 수좌들이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해명을 요청하고, 인도네시아는 부정한다는 이야기였다.

"헤에... 섬하나가 지워질정도면 어지간한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이세상은 양지보다 음지가 더 많고, 음지가 세계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어떤나라에서 어떤개발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TV를 껐다.

방에 들어오자 마자 나는 방구석에 있는 은색의 돗자리를 꺼내어 그곳에 앉았다.

돗자리에 새겨진 기이한 여러 문양들이 내 중심에 묵직하게 들어선 불안정한 에너지를 안정시키고 있었다.

호지에게 배운 기술자체가 불안정하고 그런 성향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불안정한 상태를 조절하면 더욱 좋다면서 호지는 돗자리위에서 매일 밤 10분씩 앉아있으라고 한 것이다.

뭐, 이것으로 그 패널티가 조금이나마 감소한다면 감지덕지지. 전에 한번 썼다가 죽을 뻔했고.

10분간의 지루한 시간이 끝나고 귀찮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한 발걸음으로 침대로 파고 들었다.

조금 차가운 이불의 온도가 몸에 닿아 조금씩 따듯해지기 시작했다.

"으응... 호지는 괜찮을까나.."

호지 본인이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어린 내 딸에 불과했다.

호지가 강할지언정 세계는 넓다. 호지가 맞고는 울면서 내 품에 안길 수 도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했다. 울면서 내 품에 뛰어드는 그 장면을 머리가 멋대로 편집해, 뇌의 구석 한곳에 적혀있는 호지의 공주 모음집에 추가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울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던 것이다(상상만으로도).

그렇게 망상을 이리 저리 떠올리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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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학교 등교길.

아무도 없는 학교 등굣길.

내가 수상고를 고른 이유는 이것에 있었다(당시 학교의 외관은 커다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학교가 가깝고 설사 늦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내 무지각 무결석의 기록이 깨지지 않는 것이다.

뭐, 평소에 일찍 일어나서 등교하니까 상관은 없지만서도.

교실 문을 따고(교무실에 열쇠가 있지만 귀찮아서 관뒀다) 들어가자, 아무도 없는 공허한 교실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처럼 가방을 내 자리에 던져놓고는 바로 급수대로 직행했다.

급수대 물을 먹고 돌아오자, 늘 일찍오던 슈가 아닌 적경홍이 먼저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모를 음흉한 미소와 함께.

"여~ 여전히 아침이 빠르구나, 너는."

"너야 말로 이 아침부터 무슨일이야? 이른 시간부터 나올녀석은 아니잖아? 너는."

내 말대로 경홍의 아침은 늦다(내 기준으로. 지각은 하지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왔다는 것은 우리반에서 일찍 등교하기로 소문난 날 만나기위해서라는 뜻.

그녀는 내 손에 이상한 뭔가를 쥐어주었다.

무슨 국수가닥같은 것도 집혔고 가운데에 손바닥의 반만 한 플라스틱의 감촉도 느껴졌다.

설마 나에게 고백을.... 할 턱이 없지. 소문으로는 옆반의 여자애랑 백합 커플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자, 선물. 그리고 그게 원본이고 복사본도 안남아 있으니까 신경쓸 거 없어. MP3는 가져도 돼"

개구장이같은 미소를 뿌리며 교실밖으로 도망쳤다.

손을 내려다보니 이어폰이 달린 MP3다. 그것도 최신형. 내자리를 보니 다른 기구가 담긴 상자도 올려놨다.

과연 부잣집. 마음 씀씀이가 좋군.

원본이니 뭐니 하는 것을 보니 뭔가안에 넣어둔 모양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틀었다. 조그마한 전자음과 함깨 뭔가 야릇한 음악이 들렸다.

["처음인데.."]

내 목소리다.

MP3의 내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평탄한 어조의 말을 내뱉고 있었다.

덕분에 음악을 잘 받아들여 내 목소리가 매우 야릇한 느낌이 났다.

이 목소리를 어디서 녹음했는지 금방 이해했다.

영화관에서다.

["나,나도.... 처음...]

슈의 목소리다.

'한국에서는 처음'인 대사가 놀라운 편집능력으로 괴이쩍게 변모했다.

누가 들으면 매우 오해받을 상황을 이어폰 스피커 안쪽에서 연출하며 그걸로 끝났다.

어젯밤 경홍의 음흉한 미소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년이..

경홍이 교실 문틈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를 은밀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듣고 있는 것을 봤는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경홍에게 외쳤다.

"거기서라, 네 이년!!! 내 반드시 네년의 주리를 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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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입니다.

제가 소설을 쓰던 도중 누님께서 말하시더군요.

"육아일기면서 육아가 하나도 안나오네?"

그 말을 듣고 좌절했습니다.

게다가, 주역이라 할 수 있는 호지가 눈물 만큼도 이번 파트가 끝날때까지 한번도 안나온다는 것이죠.

다시 한번 좌절.

일단 좌절은 뒤로 미루고. 경홍이 왜 나오냐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경홍은 다다음 파트의 주역입니다.

의도하지 않게 호지는 다음 파트 주역이구요.

현 파트의 주역은... 애매 하군요. 슈를 워낙 밀어줘서.

일단은  소누였는데 말이죠.

이번 파트 내용의 본방은 다음화부터 나오겠으니 많은 관심(많이! 많이!)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리 겠습니다.

잡소리가 길었군요. 이만 말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추신: 육아일기 대신에 쓸만한 제목을 코멘트로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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