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6화 (16/340)

0016 / 0340 ----------------------------------------------

결렬

이른 아침의 학교 내부는 평소와는 다른 청아한 느낌을 냈다.

사람이 없지만 목재를 많이 써서 생기가 묻어나왔고, 벽에 새겨진 조그마한 장식들은 자연스러운 멋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방해하는 인간이 둘.

"히히, 힉."

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다리를 벌리며 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복도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면 그런것은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으리라.

그 위협이 나이기도 하고.

내가 바람과 같은 속력을 내며 전력을 다해 뛰었는데도 격차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아가씨치고는 빠른 달리기실력이다.

그에 비해 나는, 대한민국 표준 남자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를 쫓아가기에는 문제가 따랐다. 대련도, 생사투도 아닌데에 마력을 돌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되도록 쓰지말라는 소유의 말이 나의 몸을 가로막았다.

나는 있는 힘도 제대로 못 쓰는 내 자신에게 한탄하며 기역자 코너를 돌아가는 경홍을 쫓았다. 아니, 쫓으려 했지만 경홍이 무엇에 부딫혔는지, 뒤로 튕겨나갔다. 나도 갑작스런 상황에 발끝에 마력을 돌리면서 가까스로 멈춰섰다.

"우우우... 죄, 죄송합니다..에?"

경홍은 뭘보고 놀랐는지 고개를 숙였다.

코너를 돌아보자 소유가 어울리지 않게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양소유는 그리 못된 성격이 아니다. 부드럽고 포용력도 강한, 어른의 미를 가진 남자가 소유다.

몇천년을 살아왔으니 어지간한 일에는 그럴 수 밖에 없지만.

하지만 이상한점이라면 그런 소유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점일까.

자세히 보니 경홍의 얼굴이 붉다. 슈의 손을 잡았을 때랑 비슷할정도로 붉다.

맙소사, 설마 이건..

"머,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경홍이 날 지나쳐서 교실쪽으로 달려갔다. 내가 미쳐 그녀를 쫓아가기 전에 소유가 어깨를 잡았다.

"요, 그 마력은 아직도 멋대로 발동하거나 그러냐?"

소유가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전에 이사장실에서 대련할때, 마력이 멋대로 폭주해서 본의가 아니게 한계점을 넘겼었지. 그때 하여하고 선생님이 벽에 처박히고, 우랑 대치 한 상태에서 소유가 말렸었다.

"걱정 말아요. 아직은 번개를 응축시켜논 듯, 파직파직거리지만 요즘은 괜찮으니까. 함부로 한계 가까이 쓰지만 않으면 폭주할 일은 없을거야."

소유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생각없는 행동이 여학우들의 방심을 흔든다더니 사실인 모양이다.

하지만 소유도 눈이 참 낮지, 어떻게 선생님을...

나는 혹시나해서 물어봤다.

"소유. 첩같은 것들일 의향이 있어?"

소유는 입꼬리를 올리며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웠다.

"다다익선."

이녀석, 안되겠어.... 어떻게든 하지않으면.

내 기괴한 표정에 소유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하윤 성격상 불가능하지. 덕분에 귀여운 여제자들의 러브레터를 정중히 거절하고 있단다."

선생님을 잊고 있었다.

선생님은 소유가 바람 한번 피우면 적룡창으로 거시기를 향해 게이X그를 웃으면서 날릴 사람이지..

소유는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한 듯 내게 말했다.

"아, 그건 그렇고, 요즘 해외에서 결사 하나가 온 모양이다."

결사.

정확히는 마술결사. 같은 계파의 마법사들 끼리 마법을 연구하는 장이며 관리지역의 마법적인 사건을 처리하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결사의 모임인 협회의 하부조직이라는 느낌이 강한, 그런 조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결사는 커녕, 마법사하나 보기 힘든 나라인데다가 해외에서 마법사를 파견하는  것조차 꺼리는, 그런 국가기에 결사가 없었다.

그런데 결사 하나가 갑작스레 오다니?

"아마도 협회의 무슨 명을 받은 모양이야. 집법원의 마법사도 동원한 것같으니까, 쓸데없이 접촉하는 일이 없도록 해. 후인으로 키워지고 있다는 걸 알면, 협회에 스카우트 되거나 추살령이 내려질지도 모르니까."

소유가 웃으며 말했다.

추살령이란 말을 웃으며 할 소리냐!

그래도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해결해 줄 사람은 소유밖에 없기에 일단 화를 누르고, 질문했다.

"스카우트는 이해하겠는데, 추살령은 왜?"

"협회에 있어, 한국의 마법사와 영맥으로서의 한국은 일종의 인디언과 신대륙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그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지. 우와 하여에게도 말해둬."

소유는 그것으로 설명을 마치고 계단으로 내려가버렸다.

한마디로 잘 따르면 협회는 약탈자 쯤 되려나. 햐여와 우의 경우에는 노예흑인이고.

자신의 생각에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 나는 타잔이고 슈는 제인이 되는건가?

내가 교실로 돌아가자 자신의 자리에 얼굴을 파묻고 신음소리를 흘리는 경홍과 그것을 위로하려하는 슈가 보였다.

슈는 여전히 빨리오는 군.

일단이 음란물(?)에 대해서는 입다물고 있기로 했다.

MP3도 공짜로 얻었고.

일단은 그럴생각으로 아무말없이 자리에 앉자 경홍이 이형환위를 펼치 듯 내 자리앞에 섰다.

"이사장님이 뭐라 그러지 않았어? 버릇이 없다든가, 예의가 없다든가.. 예쁘다든가.."

버릇없는 거랑 예의없는 거랑 같지않나?  그건 넘어가더래도 마지막질문은 나에게 뭘 바라는 거야?

일단은 경홍을 위해 99%의 허위를 섞어 말해줬다.

"학교에서 뛰다니, 생활태도 감점이라고 담임 선생님께 연락-"

말을 끝내기 전에 경홍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놀리던 입을 다물었다.

하늘이 무너진 것을 얼굴로 표현하면 저런 얼굴일까.

내가 거짓말이라며 사실을 말해주자, 그녀의 표정은 노벨상을 탄 과학자같은 표정을 지었다.

안되겠어, 이거 중증인데?

슈는 우리대화의 요지를 파악했는 지, 지금 이 자리에서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었다.

"이사장님은 애인있는데?"

다시 한번 하늘(얼굴)이 무너졌다.

---------------------

잠시간의 경홍의 패닉을 말리느라 진땀뺐다.

5분이 지나자 경홍은 나름 진정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만을 크게 했다.심호흡이 끝나자 경홍은 미안한 기색도 없이 슈를 의자에 앉히고 취조에 들어갔다.

"이, 이, 이사장님이 애인이 있다니, 그런 소리 못들었어! 그런 헛소리에 근원지가 어디야! 요 입이냐? 요 입이냐?"

경홍이 슈의 볼을 잡아당겼다.

슈는 아무것도 모른체 신음소릴 냈다.

"우우으이응..."

더이상은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표기하는 것을 포기했다. 경홍이 잡고 있던 볼을 놓고, 자유로워진 팔을 허리에 걸쳤다.

"그래서? 거짓말이겠지만, 애인이 누군데?"

확실히 믿기 힘들지만 담임 선생님이다. 안 예쁜것은 아니지만 성격이 조금 문제가 있으니까.

내가 일을 피해갈 요량으로 말을 하려할 때, 우리의 정직한 슈는 사실을 가감없이 불어버렸다.

"담임 선생님. 열애 중 이라던데?"

경홍은 충격을 먹은 표정이라기보다 오히려 헛웃음을 날리는, 그런 말을 믿을 것 같냐는 표정이었다. 경홍은 그 말에 나름대로 납득했는지,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음악파일 때문에 날 속이려 했던거지? 깜짝 놀랐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담임 선생님을...."

그 이후로도 경홍의 선생님을 까대는 말이 계속이어졌다.

그렇게 우리가 설교같은 평가를 듣고 있기를 10분이 지나자 경홍은 말을 멈추고 자리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가 경홍을 안쓰러운 듯 한 눈으로 바라봤다.

현실을 알면 졸도 하겠네. 그러면 백합 커플설은 가짜인가?

상념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자, 반에는 아이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다가온 우와 하여에게 소유에게 들은 말을 재탕해 줄 때, 선생님이 들어왔다.

드디어 아침조례를 시작했다.

-------------------

4번의 밤이 지났다.

학교생활은 항상 똑같았지만 방과후의 훈련은 조금 달랐다.

늘 하던데로의 연습들... 이었어야 했지만 이번 닷새간은 조금 다른, 스파르타식의 훈련이 시작됬다.

스파르타라고는 해도 평소의 공부의 양이 조금 많은 것 뿐이지만.

슈는 그동안 사진관을 들락날락하며 나름 바쁜지 훈련에 동참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는 평소처럼 진(眞) 이사장실 구석에서 감자칩을 씹으며 구경했다.

간혹 우와 하여가 거슬린다며 걷어차기도 했지만.

난 지난 충실한 학교 생활을 회상하며 자동차에 올랐다.

"간만입니다. 무슨일인지는 모르지만 오늘 답을 받는 날이라 하더군요."

민초가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그것에 가볍게 목례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늘은 금요일. 소누와 약속했던 힘을 줄지, 안 줄지를 들려주기로 한 날.

결정은 했다. 정확히는 약속 잡기 전에 이미 잠정적인 결정은 내렸었다. 하지만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놀토인 내일이 있는 이번 금요일을 고른것이다. 게다가 친구들도 부르지 않았고.

나는 빠른속도로 뒤로 사라져가는 풍경을 보며 민초에게 질문했다.

"전에 전화했을 때, 꽤 바쁘신 것같던 데요. 무슨일있었습니까?"

"아~ 그것 말입니까. 별것 아닙니다. 평범한 돌 기둥입니다. 교주님께서 몇 개 특별 주문하셨죠. 이유는 모르지만요"

아마도 자신의 능력을 실험하던 도중 새로운 능력의 강화법을 알아낸 것이리라.

호지에게 말하자 소누는 굉장한 사람이라고 했다.

단순한 힘을 여러 형태로 에너지를 변화시켜 전혀 다른 기능의 힘을 만드는 것은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나도 마력을 변화시키려다가 폭주해서 한동안 고생해서 안다. 단순한 노력만으로 이룰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는 재능과 포기하지않고 자신이 믿고 나아갈수있는 신념이 필요한것이다.

나는 콧소리를 내며 창밖을 주시했다.

주변의 풍경이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도시에서 나무로 가득찬 산간으로 바뀌었다.

소누의 교회는 산중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 이것도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한 땅을 선택한것이리라.

교회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하늘을 봤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조금 늦게와서 인지, 하늘은 벌써 어둑어둑 해졌다.

시계를 보자 시침이 왼쪽을 가르켰고, 분침은 아래를 겨냥했다.

9시 30분이다.

이시각이면 광신도가 아닌 이상에야 교회에 사람은 없으리라.

이번에는 혼자서 교주실을 찾아 계단을 올라섰다(민초형은 시골로 간다며 차를 타고 먼저 내려갔다. 필히 여기서 자고 갈 수 밖에 없으리라). 교주실을 향하면서 본 사람들은 매우 적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도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기우 일지도 모르지만 소누가 날 잡으려고 할 가능성이 있으니 사람들이 나가면 나갈 수 록 좋다. 물론, 아무런 명령을 받지 않은 상태라면.

교주실에 당도했다. 저번과는 다른 긴장감이 손잡이를 잡은 손에 흘렀다. 그 긴장감을 애써 무시하며 문을 밀었다. 저번처럼 단상에 앉은 소누가 보였다.

흰 티셔츠에 유행하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옷차림만은 교주님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겠다. 덕분에 어깨에 준 힘이 빠졌다.

교주실 안에 들어서자 양쪽으로 늘어선 아저씨들이 아닌 듬성듬성 놓인 석주들이 보였다.

내가 들어가서 거리가 10M 쯤 되어서야 소누가 인사했다.

"간만이죠. 얼마나 이 때를 기다렸는지 모른답니다."

그녀로서는 그렇겠지.

저번과 같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소누를 보았다. 아니, 빨려들것만 같은 검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나를 재촉했다.

나의 생각을 말하라고. 힘을 주겠다고 말하라고.

나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저번의 대답, 말해주지."

그녀의 눈에 떠오른 것은 기대와 불안. 그녀의 뒤에 조용히 서있는 눈작은 아가씨도 표정을 굳혔다.

"저번의 못했던 대답. 그것은.."

말을 끌었다.

불안했다. 여기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럴 만한 능력이 된다. 신도 따위 없어도 '지금 상태'의 나는 처리하는데 몇초도 안걸릴 터.

하지만 말해야 한다.

짧은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입을 땠다.

"거절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