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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귀환
나는 집안의 거실에 앉아있었다.
눈 앞에 하군과 운천이 앉아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를 힐끗거리며.
난 이 부조리한 상황에 몸을 떨었다.
가뜩이나 습격을 당해 딸한테 위로나 받을까해서 부랴부랴왔더니 가장 먼저 본 것은 아저씨. 정말이지 기분 더러운 끝맺음이다.
그래도 기쁜 점도 있지만. 그것은...
"누나. 언제 돌아왔어?"
행방불명이던 누나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아. 오늘 막. 그런데 정말이지 많은 친구를 사귀었구나? 내 방도 어느샌가 딴 사람의 방이 된 것같고."
"하하핫, 글쎄... 착각이 아닐까?"
"그런가?"
하하하.
둘의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눈앞의 붉은 머리의 여성. 나와 여덟 살이나 차이가 나는 나의 누나다.
흔히들 붉은 머리를 말하면 보통은 주황색의 머리지만 우리 누나는 다르다. 진짜 핏빛의 적색. 게다가 파란 눈. 동양인의 이목구비를 가진 혈통서(족보)가 딸린 진정한 한국인이다.
부모님께서 탁탁탁(?)하실 때, 번개를 맞으셨다는 데 그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누님의 컵이 거실 탁자에 내려놓아졌다.
"그건 그렇고... 네 뒤의 저건 누구야?"
"캬아앙."
누나가 내 등뒤에 착 달라붙은 호지를 가리키자 호지가 고양이처럼 위협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하하. 그게 뭐라고 해야 할까.. 지나가는 행인X는 안될까요?"
"그럼 그렇게 할까?"
예전과는 다른, 마음이 넓어진 듯한 반응.
조금 이상하기도 했지만 살짝 안도하며 찻잔을 들어올렸다.
텅 비어버린 잔에 능파가 쪼르르 달려와 차를 채워주었다.
"아, 땡큐."
"별 말씀을."
뭔가 화살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아보니 아무런 이상도 없는 말을 이상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붉은 야수가 하나.
뭔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어!
그 때, 두개의 찻잔이 식탁에 떨어지며 하군과 운천이 일어섰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조금 틀린 것도 있었지만, 결국 '배정'이 잘못된것은 아니었으니까."
뭔가 알송달송한 말을 남기고는 문밖으로 부리나케 사라져버렸다.
나는 손을 들어 배웅하고는 문을 닫았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린 순간, 누님이 현관에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님... 뭔가 용무라도?"
누님의 검지손가락이 왕복운동을 하며 나를 불렀다.
발걸음을 옮겨 누나의 곁으로 가자, 갑자기 커다란 중압감이 밀려왔다.
누나가 갑자기 껴안은 것이다.
무언가 푹신한 감촉이 얼굴을 덮었다.
"꺄아아아아!! 뭐하는 거야! 빨리 떨어져!"
"시끄러! 도깨비. 내 동생을 내가 껴안겠다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아빠를 멋대로 부비적거리지 말란말야!"
누님의 얼굴이 옛날의 장난스런 표정으로 바뀌고는 내 얼굴을 가슴에 파묻고 부비적거렸다.
호지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 이 저질 여자가!"
호지가 몸을 날려 때어놓으려고 한 것같지만 나는 숨막힐 뿐이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살려줘...
눈을 떴다.
그 뒤로 몇분이나 지나서인가. 밝은 형광등 빛에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올렸다.
"아, 깨어났다."
흐릿한 시야의 밖에서 보이는 것은 검은 머리카락에 금빛의 비녀를 꽂아 틀어올린 여자.
호지다.
"호지구나... 그런데, 지금까지 있던 일은 꿈인가?"
"...아니요."
"하핫, 그렇겠지."
자조적인 웃음을 뱉어내며 일어섰다.
그런 자극적인 일이 꿈일리가 없지.
갑자기 배에서 복통이 느껴졌다.. 습격의 충격이 아닌 단순한 공복이다. 덕분에 내 코는 개보다 먼저 음식의 향기를 잡아냈다.
능파가 부엌에서 보글보글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매콤한 이 향기는 분명 김치찌게다.
능파가 소파에 누워있는 내 쪽으로 국그릇을 쟁반에 담아왔다.
숟가락으로 한 술 떠올렸다.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에 한가득 퍼져나갔다. 맛있다.
"맛있네. 그런데 누나는 어디로 갔어?"
"고모는 아빠의 방에서 뭔가를 뒤적거리고 있어요."
고모.
호지가 일단은 내 딸이니까 누나는 고모가 맞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더니 그렇게 부르는 것을 보니 나름 누나를 인정한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호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나가 내 방에서 튀어나왔다.
"요, 일어났구나?"
먹던 숟가락을 내려두고 바닥 쪽으로 잠시 치워두었다.
"누님."
"윽, 왜?"
내가 누나를 누님이라 부를때는 무언가를 추궁할때 뿐이다. 누나도 그것을 기억하는지, 신음성을 내뱉었다.
나도 모르게 낮아진 목소리로 누나를 추궁했다.
"뭐하다가 이제 온거야?"
"우음... 이제 상관없으려나. 나 마법사의 제자가 되서 세상을 주유하고 있었어."
나름 예상했던 대답.
아마도 갑작스런 누나의 귀환에 놀라서 모인것이리라. 겉보기에도 엄청나게 강해보이는 마력을 가지고 있고.
내 일그러진 표정에 누나가 당황하면서 말을 이었다.
"하,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는 말해놨었어...요."
누나의 이번 대답도 예상했다.
어째선지 부모님이 행방불명된 누나를 찾는 것에 무관심 했었으니까. 아마 행방불명 직전, 우리집에 묵었던 할머니가 마법사이리라.
갑자기 존대로 변한 누나에게 턱짓으로 계속해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게 끝. 스승님도 돌아가셨고. 집으로 돌아온거야. 아직 밖에서 할 일도 있지만 잠시 일이 생겨서."
우리나라에서 마법사가 해야 할 일.
설마...
"무슨 일인데?"
침을 삼키고 떨리는 몸을 부여잡았다. 누나가 입을 다무는 시간이 길수록 점점 부여잡은 손에 힘이 크게 들어갔다.
나를 죽이려는 암살자가 누님인가?
누나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위험하게 됬어."
내 예상과는 다른 대답. 하지만 의문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먼저나왔다.
나는 고개숙인 누나의 어깨를 들어올렸다.
"괜찮아. 가족의 잘못은 가족이 도와 줄 수 있는것 아니겠어?"
내 말에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뭐랄까, 낚인 기분이.
"응.. 고마워. 일은 개인적이라고 해야할까, 공적인 일이라고 해야할까. 설명하기가 애매하네."
누나의 애매한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말하고 볼까나. 요, 너를 죽이려는 암살자가 근래에 찾아갈지도 몰라. 아니, 이미 만난 모양이네. 잘 도망쳤구나. 다행이다."
누나는 내 변해가는 표정을 읽어내고는 내가 습격 당했던것을 추리해냈다.
그 암살자는 아마도 협회의 자객이 아닌 모양이다.
뭐 아무리 빨라도 비자같은게 있는데 몇 분만에 올수는 없겠지.
"그 아이의 이름은 심요연. 그녀와 나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동문이라 할 수 있지."
같은 스승을 두었다는 소리다.
"애초부터 사이가 나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날 완전히 원수라고 생각하게 됬어. 하지만 날 죽이려니 실력이 안되고 하니까, 조금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한거야."
누나가 말하는 우회적인 방법이란 아마 날 죽이려는 것이리라.
"내가 동문수학할 때 네 얘기를 조금 했거든. 덕분에 요연도 그걸 알고 너를 죽이려고 한거고."
"한마디로 나는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뻔 한건가?"
누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까부터 머리를 자극하던 의문점을 입밖으로 꺼내 놓았다.
"그런데, 요연이 누나를 원수로 삼는 이유는 뭐야?"
순간, 세계가 침묵했다.
누나가 미동도 안하는 덕에 정말로 세계가 침묵한 줄 알았다.
누나가 철근을 밀어내는 것처럼 겨우 입을 땠다.
"그 일을 설명하려면 집을 나왔을때 부터 이야기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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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이젠입니다.
추천이야 그렇가 쳐도.... 선작이 적군요.
퓨전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셈솟는 중 입니다.
그래도 LT쪽에서 버티고 싶기 때문에 고민.
추천과 선작을 날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