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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대비
거북하다는 것을 아는가? 물론, 내가 거북이라는 것은 아니다. 왠지 모르게 속이 덥수룩하고 내가 딛는 곳이 코인먹은 소닉조차 한방에 죽이는 가시가 튀어나온 듯한, 그런 감정말이다.
나는 지금 그것을 한껏 느끼며 백제관을 설치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설치한 말뚝수는 32개. 이제 반정도 설치했다.
약 30분. 그것들을 설치하는 동안 걸린 시간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동안 내 뒤를 따랐다. 나에게 말이라도 거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하고 그저 졸졸 내 뒤를 따라다니고 있을뿐이었다.
여기서 그녀가 어디로든 가버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차피 돌아가면 두번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까.
'뺨 맞은 건 묻어놔야겠지만.'
잘못 알려졌다간 호지와 요연이 주최하는 살육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아, 어찌 해야하는 것인가.
왼손은 담장에 마법진을 새기며 혼란스런 머리를 자유로운 반대편의 손으로 잡고는 고심했다. 왼손이 빛난다.
말뚝설치의 신호. 주머니에서 절대로 나올 수 없을 것같은 하얀 말뚝을 뽑아들며 땅에 쑤셔넣었다. 말뚝이 제자리를 찾은 듯, 빛이 망가진 형광등처럼 반짝반짝거리다가 꺼져버렸다.
"이제 서른 세개라... 조금만 더하면 되겠네."
내가 말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신경써야 할 것은 예수님의 말처럼 다른 뺨 내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해서 여러마법을 설치해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거북한 감정이 가라앉고 의무감이 솟아올랐다.
다시 왼손을 벽에 대서 백제관의 마법진을 설치하며 느릿느릿 신사의 담장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투귀..님."
가라앉은 거북함(잠수함이 아니다. 감정이다)이 마음의 심연속에서 로켓트처럼 솟아올랐다. 갑작스런 아야세의 부름에 왼손의 마법진이 흔들렸다.
끼기기긱.
쇠가 마찰하는 듣기 싫은 소음이 손을 타고 내 귀로 전해졌다. 역행하는 마력을 바로잡기위해 마력개방 일식을 전개했다. 폭주하는 마력이 역류하는 백제관의 마력을 짓누르면서 원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죽는 줄 알았네.
"...더이상 말걸지 않겠습니다."
아직 뭐라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는 그녀를 돌아봤다.
"저기 딱히 그런 것 신경안쓰는데."
그런 것은 당연이 따귀를 맞은 것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죄송합니다. 말거는 것도, 안 거는 것도 투귀님의 말을 따라야 했는데."
... 넌 무슨 중세시대의 농노냐?
난처한 분위기에 머리를 벅벅긁었다. 이 암울한 분위기 덕분에 의무감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아마 이 상태로 내버려두면 나중에라도 생각날 것같다.
내 볼을 톡톡치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 소리가 아니라, 이거말이야."
그녀의 표정이 살짝 펴진 것을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야세가 심호흡하면서 마음을 바로 잡았다.
"죄송합니다. 때렸던 것, 그게...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든 얼굴이 어둠속에서 강조되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고개 숙인 그녀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야세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토끼처럼 뛰었다.
갑작스런 자극이었는지 그녀가 가슴을 움켜쥐며 가쁜 숨을 토해냈다. 그녀에게 금빛의 무언가가 소용돌이 치는 녹색구슬을 던져주었다.
"그거나 가지고 있어. 소유주를 지켜주는 물건이니까. 그건 그렇고, 너도 이만 자. 내일은 신명나게 싸워야 할테니까."
그대로 등을 돌리고는 백제관 설치에 전념하기로 마음 먹으며 벽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렇게 정신을 집중할 때 사박사박하는 소리가 등뒤로 접근했다.
아마도 아야세이리라.
내가 앞으로 걸어나가며 벽에 설치할때마다 그녀는 나를 따라다니려는 듯이 부드러운 발소리를 내며 나를 따라왔다.
"...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강해질 수 있나요?"
침묵을 못이기고 물어본 사람은 다름이 아닌 바로 아야세였다.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솔직히 대답할지 아니면 약간 미화(?)시킬지 고민했다.
내가 침묵하자 그녀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사이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망가트리면 곤란했기에 결국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
"약먹어."
내 간결하고도 명쾌한 해답에 아야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반문하듯 울리는 그녀의 의문어린 목소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같으니 또 다른 예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추가하자면 '아이템을 모아라' 정도일까."
이번에는 탄성도 뭣도 없었다. 그저 침묵만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랄까, 지금 그녀의 표정은 '동경했던 연예인이 알고보니 성형수술했더라'라는 소릴들었을때의 표정같았다.
"그그, 그러니까 '영약'먹고 '신화시대의 마법무기'를 차면 된다는 소린가요?"
나는 스캔들을 들킨 연예인처럼 대답했다.
"뭐, 나는 그렇지. 나는 재능이 없거든. 대신 나는 뒷배경이 조금 강해서 말이지."
부들부들. 그녀가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하늘을 보았다. 무엇인가 매우 허탈한 표정에 나도 모르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 때, 그녀가 또 다른 질문을 건넸다.
"그럼, 다른 동료분들도 그런가요?"
기분이 많이 나아졌는지 말투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건 그렇고 그녀가 말하는 동료들이란 호지나 요연을 말하는 것일 터.
그런데 내가 그녀들이 수련하는 것을 본적이 없으니. 하지만 그녀들은 영약을 먹는다고해서 실력이 늘 정도의 하수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확률은 적었다.
"안먹지. 말했다시피 나는 재능이 없거든. 그래서 먹었을뿐이야. 나 외에는 전부 재능이 넘치니까 필요가 없지."
그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상당히 많은 것을 질문했다. 물론, 나도 머리가 있기 때문에 뭔가 약점이라도 찾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주의했지만 그녀가 묻는 것은 극히 사소한 것들이었다.
예를들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든가, 물건이라든가, 뮤지션이라든가. 그런것 들을 일일이 대답해주면서 말뚝박고 위에 푸른 구슬도 간간히 붙이다보니 어느틈엔가 산문으로 돌아와있었다.
설치가 끝난 것이다.
"이만 가볼께요."
"아아, 나도 실례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헤어졌다. 그녀가 있는 곳은 우리별체쪽과는 정확히 반대편이였기 때문에 산문에서 인사하고 헤어진것이다.
달을 보며 별체에 도착해 문을 열자, 눈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싶은 느낌이드는 광경이 보였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왠지는 모르겠지만 껴안고 있구나."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그녀들은 정말로 서로를 껴안은 체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껴안고 있으면서 서로를 인식하는지 볼을 맞댄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주된 볼 사이에 손을 비집어 넣었다.
둘의 표정이 확 풀렸다.
손을 뺐다. 일그러졌다.
넣었다. 펴졌다. 그리고 반복.
"아, 이거 재밌네."
오늘 밤은 재밌게 보낼 자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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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늘 성실한 아이젠입니다.
참고로 이번편은 화요일에 올리지 못하니 지금 올리는 겁니다. 양해를.
후후후후후. 바다편이 중반에 접어들었습니다. 뭐 애초에 짧으니까요. 그 다음인 사망편까지 합쳐서 한파트를 이루게 됩니다.
다다음편인 사막편은 대체적인 구상(예:용사가 마왕을 잡으러 떠났습니다. 잡았습니다)은 되었으나 세부적인 구상인 되지않았습니다. 아마 그때 슬럼프가 올지도...?
어찌되었든 저에게 힘을 주십쇼!
추천, 선작, 코멘을 기다리며 이만 물러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