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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우리가 10마리의 오징어를 몰살시키고 한 20분 쯤 지났을 때, 아쥴이 인간의 모습으로 둥실둥실 내려왔다. 인간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몸의 곳곳이 타들어간 것 같은 상처가 산재해 있었다.
크라켄은 생각외로 강한 상대였던 듯 하다. 하지만 그녀는 강적을 이겼다는 기쁨인지 표정은 개운해 보였다.
무리는 아니리라. 전술오징어 이야기가 나온 잡지가 반년전에 출판된 것이었으니 그동안 상당히 괴롭힘 받았을 터. 이제야 처리했으니 기쁜것도 이해가 가지않는바는 아니다.
주아가 손수건을 들고 아쥴의 상처를 닦으며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요? 오늘 끝을 낸다더니 이런 꼴을..."
아쥴은 주아의 걱정에는 아랑곳않고 어린애처럼 자랑했다.
"봤나? 봤나? 내가 그 크라켄을 이겼어. 후후후. 이제 동해의 주권가지고 주변녀석들이 뭐라 그럴일은 없을거야."
아마도 주변의 마수들 덕분에 상당히 괴로웠던 듯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 근엄함을 유지하던 아쥴이 완전히 어린애가 되서 들뜨지는 않을테니까.
그렇게 기뻐하다가 멍하니 서있는 우릴 발견하고 우리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가장 근처에있던 소유를 무시, 지나쳐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누가봐도 알수있는 악수의 표시. 엉겁결에 맞잡았다.
"정당한 거래에의한 일이었지만 감사하네."
아마도 나를 이사장실 패밀리의 리더로 인정한 듯 하다. 실제로는 소유가 이곳에 있어야 했지만 상당히 싫어하는 것은 이곳에서 주아를 빼면 다 아는 사실. 덕분에 주변에서는 아무런 반발도 터져나오지 않았다. 소유조차도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유를 보며 이 상황이 이상함 눈치챘다.
저 당연하다는 표정. 분명히 조금 일그러트려도 괜찮을 것이다. 아니, 평소 소유의 행실을 보자면 아마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릴 터.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수긍하는 표정을 보였다.
인정한 표정이 아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보았다는 것이 문제다.
아쥴에대한 나의 인식은 그저 손불구가 될뻔한 꼬맹이에 불과하다. 아니, 그래야한다. 일단 인식이 그렇다고 가정하면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절대로 아니다. 잠시나마 내가 보았던 아쥴의 인상은 상당히 유교적이다. 남녀차별은 없는 것 같지만 나이랄까, 충의랄까. 그런것을 많이 따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인간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무례한 행동으로 어퍼컷을 먹었다. 아쥴이라면 날 무시하고 다른 사람, 예를들면 우리 중 가장 강한 요연(호지도 있으나 어리니까)의 손을 잡을 터.
지금까지 모였던 정보로 추론하자면 내가 '왕'이다. 그리고 소유가 의식하고 말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쥴을 '왕사'라 칭했었다.
왕사. 직역하면 왕의 스승. 왕이 내가 맞다면 분명히 나와 어떠한 인연이 있으리라. 그렇다면 이 반응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가 되지않는 것 투성이. 정보가 부족하다.
나는 고심하면서도 소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안될지도 모르지만 정면으로 부딫혀볼까하는 생각. 아마 지금쯤이면 말해줄 생각도 들지않을까한다. 소유자체도 그리 나쁜놈은 아닌 것 같고.
"할아버지, 부딫혀볼꺼야?"
우리 중 나 다음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능파의 물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도저도 아닌, 하지만 약간의 부정을 담은 제스쳐를 보여주었다.. 살짝 뾰로퉁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능파도 나름 수긍하는 모양이다.
내가 공격적인 사고개념을 가졌다면 능파는 방어를 중시하는 사고를 하니까.
내가 능파의 사고개념을 잠시 훑어볼 때, 옆에서 미약하지만 살기가 뿜어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우우우.... 아빠, 요즘 능파랑만.."
살기의 근원은 다름아닌 호지. 능파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바로 호지에게 귀엣말했다.
호지의 표정이 급속도로 풀어졌다가 얼굴을 붉혔다가하며 다채로운 표정들을 보여줬다.
여자들은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새삼 깨달았다. 내가 없는 사이에 역사가 진행된다고나 할까. 예를들면 처음 누나와 호지가 대면했을 때와 요연이 그림자에 머문다는 것을 슈가 알게됬을 때라던가. 내가 잠시 한눈판 사이에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아져 있었다.
"너희 빨리 안오면 두고 간다."
계속되는 사념에 찔러넣듯 말하는 소유. 나는 잡생각을 머리에서 털어내며 모두가 모여있는 곳으로 딸들을 데리고 다가갔다.
아쥴이 심호흡을 크게하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유와의 대화를 유추해볼 때 아쥴을 타고 간다는 것 같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해?"
슈가 불안한 듯 물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게 하기위해 손을 저으며 적당히 둘러댔다.
"으응. 누나를 좀. 여행다니니까."
쓸데없이 슈에게 소유가 의심스럽다고 말해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다. 걱정만 배가 시킬뿐이리라. 만에 하나 적이라도 지금 당장 본색을 들어내지는 않을테고.
그런 마음을 감추며 적당히 둘러댄 거짓말에 모두가 그냥저냥 넘어갔지만 단 한사람만은 과민반응을 보였다.
역시나랄까, 요연이었다.
"그딴 여자의 신상은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그 사람은 황룡인 저를 가볍게 누르는 괴물입니다. 걱정은 오히려 짐만될겁니다."
평소와 같은 어조지만 언성이 조금 높아져 있었다. 아직 화를 삭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난처한 미소를 지어주고 아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몸을 다 풀었는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몸이 서서히 부풀어오르다가 갑자기 풍선이 터지는 것처럼 부피가 급속도로 팽창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 거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단단한 껍질의 곳곳이 패여있는 것만 뺀다면.
"전부 올라타라. 히탄. 네놈은 알아서 와."
도움이 됬든 아니든 소유는 여전히 싫은 듯 아쥴은 명백한 차별대우를 보여주었다. 소유는 예상했다는 듯이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은빛의 용을 바다속에서 보니까 왠지 신비로움이 더욱 늘어난 것 같다.
이사장실패밀리와 주아가 아쥴의 등에 오르고 대나무같은 가시(우리가 보기에는 장죽이지만)를 붙잡자 아쥴을 몸체가 크게 떨었다.
출발의 신호. 느긋한 몸짓으로 바닷물을 갈랐다. 5분정도 바닷물을 헤치고 도착한 곳은 우리가 용궁에 가기위해 뛰어들었던 나무가 우거진 곶이었다. 그곳에 정박하듯 아쥴이 커다란 몸을 절벽에 가져다댔다.
우리가 차례로 아쥴에게서 내리고 소유도 바다에서 용오름을 만들며 튀어나왔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쥴이 머리를 우리가 내린 곶쪽으로 돌리며 웃었다.
"후후. 주아, 우리 별장으로 안내해라. 그곳에서 파티다. 히탄, 네놈은 빼고."
여전히 차별적인 아쥴의 발언에 주아가 난처한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파티의 먹을거리를 생각하며 기뻐했다.
행복한 일만 있어야할 그 순간에, 이변은 일어났다.
파지직.
아쥴의 머리부근에서 갑자기 스파크가 떠오르더니 스파크의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완벽한 원형의 청동 사자탈. 그것을 보고, 일본의 청룡을 떠올렸다. 가면이, 아쥴의 머리에 내려앉고 아쥴이 울부짖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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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아이젠입니다.
드디어, 반전! 이번의 목표는 아쥴이네요. 자, 다음편을 기대해주시길.
그건 그렇고. 내일은 식스 스네이크를 올리는 날이군요. 많이들 봐주세요.
자, 추천선작코멘을 기다리며 이만 물러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