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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우리가 아쥴을 진정시킨 곶의 근처, 결계가 둘러진 통나무 별장.
그곳의 거실에 있는 거대한 탁자를 중심으로 몇사람을 제외(요연, 호지, 아쥴, 소유, 선생님)한 모두가 둘러앉아 있었다. 평소의 우리답지 않게 무거운 분위기를 가진 체.
우리가 처음으로 별장에 들어갔을 때 별장안에는 파티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주아나이또래의 다른 여자아이, 수아라는 쌍둥이 동생 혼자서. 우리는 씁쓸하게 그아이에게 지금까지 있던 일을 전했고, 그것을 들은 소녀는 우리에게 거실에 앉아있으라는 협박을 남기고 모든 파티 장식들을 치웠다.
그녀가 돌아와 거실에 있는 탁자앞에 앉았다. 원탁의 기사가 연상되는 분위기다.
"누구야?"
수아가 날카롭게 물었다. 날이 선 그녀의 말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누구를 묻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우리들은 누가 범인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잠깐, 너무하는 것 아냐? 우리는 너희 아쥴을 살린 장본인이라고. 게다가 우리쪽에서는 다친 사람도 있단 말야."
하여가 탁자를 내려치며 수아를 쏘아봤다. 우가 말렸지만 힘에서 상대가 되지않았다. 수아가 하여의 눈빛에 꿇리지 않고 그녀를 마주 노려봤다.
스파크가 타오르는 것 같다. 잘못하면 싸움날 기세라 손가락으로 탁자를 치는 것으로 그녀들의 주위를 내쪽으로 돌렸다.
"잠시만. 하여, 앉아."
일단 가볍게 하여에게 면박을 주고 수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수아라고 했던가? 이해가 되지않는바는 아니야. 언니 팔이 하나가 뜯겨나갔, 으니 누구든 의심되겠지."
뜯겨나갔다는 말을 할때 순간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갑작스레 기세가 솟아올랐기에 깜짝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나는 평정을 가장하며 다시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우, 그러니까 네 언니의 은인도 있다. 너무 그렇게 쏘아붙이는 것은 삼가해 주지않겠나?"
어른스럽게 어르는 나의 말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반응에 감탄이 나왔다. 겉보기에 괄괄해보이는 성격과 달리 이성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다. 게다가 넘겨짚기는 했지만 우리들 중 범인이 있을거라는 생각까지.
나의 생각과 똑같다. 그렇기에 더욱 감탄이 나왔다. 나야 직접보았고 물증도 있으나 그녀는 직접본 것도 아니고 우리말만 들은 것이다. 그럴경우 두가지.
우리한테 화풀이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머리가 굉장히 좋을 경우.
반응을 보아서는 후자일 경우가 가장높다.
"그래도 우리를 그렇게 몰아붙이는 것을 보니 짐작가는 거라도 있나? 이쪽은 정보가 필요하거든. 가르쳐주지않겠나?"
잠시 침묵하고 나를 지그시 노려봤다. 평소라면 양옆에서 호지와 요연이 그녀의 멱살을 틀어쥐었겠지만 지금은 소유, 선생님과 함께 주아의 치료에 나섰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날아오는 시선을 마주했다. 날 탐색하는 듯한 눈빛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녀가 한숨을 내뱉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왔을 때, 용궁이 진동했어. 현아가 화를 내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화내는 것은 처음봤다고. 히탄, 배반룡인 그자가 나타나고 이런일이 일어났어. 게다가 언니에게 상당히 많이 캐냈다지? 이런데 의심을 하지말라고?"
그녀가 찌릿소리가 날 정도로 째려봤다. 각자 의심받을만한 질문을 한사람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인'은 가장 크게 떨었다.
상당히 놀라운 직관력이다. 용궁일까지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설마 주아에게 들은 이야기로 그것까지 알아낼줄이야. 게다가 당시에는 아무일도 없었으니 주아도 딱히 의심스럽다는 느낌의 말은 안했을거다. 그런데도 그런 정보까지 뽑아내다니. 주아랑 이야기를 나눴을 때와 아쥴이 폭주했을때 같이 있었다면 범인을 바로 잡아냈을 정도로 머리가 잘돌아가는 소녀다.
팔이 닿을 만한 거리라 호지를 대할 때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헤에.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굉장한걸?"
수아가 갑작스런 칭찬과 행동에 얼굴을 빨갛게 달아올렸다. 그러다가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됬다는 것을 알았는지 내 손을 소리나게 뿌리쳤다.
무거웠던 공기가 조금이지만 풀어졌다. 딱히 의도한 상황이 아니기에 나는 손등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거기까지 알아낸 너에게 선물을 주지. '범인'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지금의 너로서는 정말 최고의 선물이지?"
공기가 무거워지고 수아의 떨리는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범인이, 누군지알아?"
"물론."
"누군데?"
모두가 침을 삼켰다. 나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탁자를 쳐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탐정이 된 기분을 만끽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주아랑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해볼까? 그때, 집요하게 아쥴의 거처를 물었던 사람은 누구지?"
내 말에 하여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 때의 대화에 참가했었던 이사장실패밀리들의 시선이 하여에게 꽂혔다. 수아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녀가 벌떡일어섰다.
"자, 잠깐! 겨우 그런 정황증거로 날...!"
"하나 더 있지. 이번전투, 아쥴과 싸울때는 물론이고 대왕오징어를 잡을때도 너는 묘하게 소극적이었어. 뭔가 부정할 수 있나? 게다가 수련스케쥴을 짜러나갔다고 했을 때, 너는 방안에 없었어. 밤에 잠시 산택 나갔다가 부탁할게 있어서 알게됬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능파가 시선을 보내왔다. 나는 잠시 눈을 찡긋해주고는 다시 하여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여가 붉으락푸르락 열기를 솟아올리며 나에게 삿대질했다.
"네, 네가 어떻게 나에게...! 말, 읍!?"
뭔가 더 말하려던 하여의 입을 능파가 틀어막았다. 그녀의 양손은 어느틈엔가 마력으로 포박된 상태다.
이미 결판난 상황. 하여가 분함을 못이기고 눈물을 흘렸다.
수아가 다가왔다. 왼손에 푸른 마력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너, 곱게는 못보내 줘."
주먹을 휘두르려는 수아의 몸이 튕겨나가 벽에 처박혔다. 능파가 마력으로 수아를 멀리처낸 것이다.
"무, 무슨 짓이야!?"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물을 것이 있거든. 가면의 유입로같은 것은 알아둬야해. 우리가 정보를 다 뽑아내면 넘겨주지."
그녀는 쓰라린 등을 매만지면서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능파가 방하나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그곳에 들어갔다. 일종의 취조실로 쓰겠다는 생각이리라. 수아는 맘대로하라는 듯한 손짓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 진짜야? 하여가, 정말로?"
"응. 맞아."
뒷말을 삼키며 그렇게 대답했다. 쓸데없이 우에게 뒷말을 말해서 좋을 것은 없다.
"이해가 되지않아... 복잡하군. 돌아가서 먼저자겠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콘도에 돌아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각자의 일 덕분에 아무도 없는 쓸쓸한 방을 내려봤다. 오만생각이 내 이성을 비집고 들어왔다. 이제 결심을 해야할때다. 계속, 고민할 수는 없었다.
가방을 꺼내들었다. 그곳에서 여러가지 무기들을 들어올려 온몸에 두르면서 심호흡을 한번했다. 차가운 무기의 감촉.
이것에 피를 묻혀온 나날이 몇일이나 될까. 나는, 벨 수 있나?
그렇게 자문해 보았다. 답은 나오지 않는다. 상관없다. 답이 나오길 바란것이 아니었으니까. 답은 이미, 나와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광진 일식을 해방 해보았다. 몸안을 내달리는 마력의 줄기들이 머릿속을 상쾌하게 돌려놓았다. 일시적으로나마 강해지는 것의 쾌락을 전신으로 느끼며 광진을 닫았다. 그리고 방안을 나왔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백사장을 지나, 결국 나는 아쥴이 폭주했던 그 곶에 도달했다. 만월이, 찬란한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이 곳은, 전장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상대가 상대다보니 은근히 감상적으로 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빛을 받으며 하나의 그림자가 허공에 가면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일부러 발을 강하게 굴러 인기척을 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역시나, 너구나."
분명히 내 가방에 있을 청동의 사자탈을 가지고 곶에 있는 사람은. 내 예상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
"슈."
금색의 단발을 바람에 나부끼는 그녀가 청동의 가면을 가슴팍에 끌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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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신 분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