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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걸어나오는 나의 모습에 슈가 어지간히 당황한 듯 가면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하지만 이내 가면을 앞으로 꺼내들었다. 슈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이리라. 어차피, 거짓말은 통하지않는다는 것을.
말을 먼저 시작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곶에는 침묵이 자리했다. 묵직하고, 날카로운 침묵에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목적어를 빼놓았지만 그녀가 묻는 것이 뭔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탐정노릇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적'을 대하는 말투가 아닌, 평소와 같은 얼굴로 그녀의 물음에 입을 열었다.
"알았다라... 아쥴이 폭주했을 때부터인가? 솔직히 의심이가는 정도였을 뿐이지만. 시간의 아가씨."
나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결심한 자의 눈.
"하여는?"
하여를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냐는 것을 묻는 것이다.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아. 그녀석은 애초부터 아니란 걸 알고 있었어."
맞는 말이다. 나는 능파에게 하여의 신분을 맡기기 전부터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범인이라 가정하면 너무나도 모순이 많다.
검지손가락을 하나 펴서 들어보였다.
"첫번째로, 하여가 물었던 장소. 용궁으로 가는 길을 물은 것은 분명히 하여지만 아쥴이 폭주를 일으킨 장소는 다름아닌 여기였거든."
내 말에 그녀는 아 하는 탄성을 보였다.
그녀는 생각도 못해본 모양이다.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이 나니까. 모든 것은 계획대로다.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펴진 손가락은 두개.
"두번째로 그녀석은 마법을 할 줄 몰라. 던져서 씌우거나 직접 씌울지언정 하여는 마법을 쓰지는 못해."
하여는 천생무인이다. 자기소개를 할 때 무림고수라고 할정도로 무에 심취해 있는 녀석에게 마법이란 사도와 같다. 일전에 마법을 배워보겠냐고 물어보았을 때도 그녀석은 '사도'라는 단 한마디의 말로 일축했다.
슈가 입술을 떨며 반문했다.
"겨, 겨우 그정도로?"
"으응, 그건 아니지."
그녀의 반문에 나 또한 부정의 뜻을 내비쳤다.
하여가 범인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렇기에 능파에게 맡겼다. 만에 하나 나의 추리가 틀릴경우를 대비해서.
나는 나머지 추리극을 입에 올렸다.
"정확히는 모두 의심하고 있었어. 우, 이린, 너, 하여. 전부 이상한 반응을 보였었거든. 우는 전화를 하러가서 묘하게 안절부절이었고, 이린은 앉지않았지."
슈는 그러고보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모두 의심가는 부분이 있는모양이다. 슈의머리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밤은 짧다. 내가 그녀의 생각을 끊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는 일단 패스. 이건 사적인 거거든. 린이 문제기는 한데, 린은 도통 모르겠더라고. 아마 치질이라도 걸린게 아닐까 생각중이야."
"... 소거법으로 나, 인거야?"
머리를 긁적였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쓸데없이 너희를 의심하고 있다는 풍으로 정보를 뜯어내봤자 마음만 상할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수를 냈다.
"비슷해. 확신도 있었고 물증도 있지만 그래도 직접 대면하는 게 낳을거라 생각했어. 그렇기에 널 끌어내기로 결심했지."
"끌어..내? 나를?"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어차피 우리는 딱히 모르는 사이도 아니다. 슈의 정신반경을 생각해보면 어려울 것도 없다.
그저, 몰아가면 그만이다. 주변을.
"넌 착한아이니까. 친구가 자신 때문에 고문 받을거라 생각하면 바로 실행에 옮길거라 생각했지. 아, 걱정마. 하여는 지금쯤 피자라도 시켜먹고 있을테니까."
내 말대로 슈는 착한아이다. 내가 하여가 아닌 누구라도 감금해놓았다면 친구가 다치기전에 또 다시 실행에 옮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야 혐의가 빨리 풀릴테니까.
내가 알고있는 슈는 내 생각대로 잘 움직여줬다. 만일 움직이지 않았다면 슈를 대하는 데에 있어 많은 변화를 주어야 했을테니까.
그녀는 잘 보이지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 날, 막을 거야?"
"설마 막지않을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물음에 물음으로 답하자 그녀가 허공에서 여왕의 증표와 네크로노미콘을 소환해냈다.
순식간에 수많은 얼음기사와 해골병이 곶을 메우기 시작한다. 슈라고는 생각되지않는 살기가 곶을 메우기 시작한다.
소환물이 각자의 무기를 나에게 겨눈다.
지금 생각해보니 슈를 적으로 두니 상당히 무서운 능력이다. 마력한도에 따른 서번트의 무한소환. 물량이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평소에 훈련하는 것을 보면 소환물을 축으로 한 일종의 마법진도 만들어낸다. 나처럼 개인으로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최악, 최강의 적이다.
게다가 숨기고 있는 비기도 있고.
광진 일식을 발동했다. 마력이 온몸에 회전하는 것을 느끼며 전열이 정비되지않은 서번트들에게 뛰어들었다.
전열을 정비하고 싸우게되면 필시 마법진이 발동할 터. 그렇게되면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역시나 슈. 빠르게 서번트들이 자리를 잡아간다. 품안에서 화염탄 여덟개를 뽑아들어 마법진의 주요지점에 투하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간다..!"
폭음과 함께 땅을 박찼다. 폭음에 휩싸여 발을 딛는 소리가 묻힌 것에 슬며시 미소지으며 빠르게 서번트들 사이로 파고 들었다.
양손에 퇴의 형이 발동하면서 눈앞의 해골병 두마리를 양옆으로 후려쳤다. 혈문신이 평소랑 달리 푸르고 장갑같은 형태로 빛났지만 의문을 느낄 시간따위는 없었다. 벌써 다른 놈들이 눈앞을 가려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칫."
혀를 차며 눈앞의 적을 검의 형으로 눈앞의 적들을 두동강냈다. 빳빳하게 세운 손의 붉은 기운이 카타르(손등에 차는 인도식 단검)처럼 30cm정도 뻗어나가 있다.
퇴의 형과 마찬가지로 광진의 기능이 향상됐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화염탄으로 생긴 먼지구름이 걷혀나가자 선글라스를 끼고 바로 전뇌탄을 던져버렸다.
강력한 섬광과 함께 몇개의 기사들이 녹아버렸다. 하지만 그 뿐. 쉽사리 피해를 내주지 않는다.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은 나만이 아닌 것이다.
기뻐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기분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땅을 박찼다.
이제 그녀와의 거리는 약 20m정도. 단한번의 도약이면 그녀의 곁으로 가는 것은 어렵지않다. 피부를 지나치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의 눈앞에 도달했다.
상반신을 숙여 주먹을 슈의 간장에 겨냥하고 올려치려는 순간. 나의 얼굴 위로 빛같이 빠른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내려꽂혔다.
뻐억!
"커억...!?"
갑작스레 느껴지는 타격에 머리를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주변을 둘러보자 텅비어버린 공터가 보인다. 어느샌가 서번트들은 전부 물렸다. 이제야 이 상황을 이해했다.
슈가 근접전으로 나온 것이다. 무술쪽에서는 이쪽이 몇배는 앞선다고 생각했다. 설사 앞서지않더라도 광진이 있다면 근접전투에서 어지간해서는 밀리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그 속도. 방심하기는 했지만 그만한 속도는 예상했더라도 피하기 힘들다. 내가 알고있는 비장의 수를 응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막는다면, 요라도 봐주지않아."
스텝을 밟으며 물러나는 슈를 보았다. 지금 당장 스카우트해도 좋을만큼 안정적인 파이팅 포즈. 강력한 일격에 돌아간 고개를 바로했다.
"포기할 수는 없어?"
나의 물음에 슈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미안해. 이렇게 된 이상... 멈출 수 없어."
그렇게 말을 멈췄다. 슈의 감정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살기가 혼탁하게 변해간다. 이미 살기가 아니다.
그저, 방황하고 있을 뿐.
"요라도, 죽이겠어."
그것으로 혼탁했던 감정이 다시 살기로 변모한다. 뭔가 마음속에서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슈가 저런 말을 하게 되다니. 계획을 대폭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계획을 수정할 기회는 지금 뿐이다. 바꿀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양손을 들어올려 그녀의 파이팅 포즈 비슷하게 자세를 잡았다.
"계획에 차질없게 해볼까나. 성공하면 얻는 것은 더욱 클테니."
날카로운 눈초리의 슈를 나도 마주봤다. 그녀의 자세가 낮춰진다. 움직일 것이라는 신호.
팡!
지면을 박차면서 슈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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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이젠입니다.
재밌게 보시길. 그건 그렇고 제발 스네이크의 조회수를...(일반 조회가 21밖에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