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3 / 0340 ----------------------------------------------
백색아성의 경우
짹짹짹.
아침마다 지겹지도 않게 울어대는 생체 알람이 창밖에서 울리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상체를 세웠다.
평소라면 그도 아침의 새소리에 순수한 감정을 일렁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어제. 아니, 이틀전에 친구가 잡혀갔는데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하물며 보통친구도 아니다. 그가 존경했던, 단 한명의 남자다.
그런 남자가 쉽사리 잡혔다고? 개 같은 소리다.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그녀석의 한마디면 세상은 구원 받을 게다.
그는 요에 대한 믿음에 금을 가게 한 그 자를 이미지하며 벽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지진과 비견될만큼 벽이 흔들렸다.
"젠장... 이번만큼은.... 지금은, 내가 지켜주기로 맹세했는데... 이렇게...!"
우가 주먹을 때자 주먹자국이 크레이터처럼 벽에 남았다. 그것을 보면서 그는 무감각하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신체의 부피가 큰만큼 시중에서 파는 가장 큰 교복을 껴입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다. 그는 눈 앞의 적에게 눈 동그랗게 뜨고 잡혀갈 인간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연락을 전할 수단이 없는 것이리라. 어쩌면 이미 보냈는데 그가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의 머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상하다.
흑단목의 나무 문이 벌컥하는 거친 소릴내며 열어재껴졌다. 우가 시선을 돌려보자 그의 집안에서 일하는 가정부 아줌마(실제로는 아가씨다. 23살)가 흰색 앞치마를 한 체 들어왔다. 그녀는 고용주의 아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무례한 눈빛으로 우를 노려봤다.
"도련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 이래서 개념없는 부잣집 꼬맹이는 안된다니까. 벽에다가 이딴 것이나 만들어두고... 앞으로 이딴 짓....!"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는 그녀의 목을 틀어쥐었다. 순식간에 기도가 막혀버린 그녀는 입을 닫지도 못하고 켁켁거렸다.
평소의 그라면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유례가 없을정도로 분노한 상태다. 지금이라면 부모님이라도 갈겨버렸을 것이다. 애초에 부모님과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살기를 담아 그녀를 노려봤다. 그의 전신에 새겨진 흉터가 아르고스(전신에 눈이 박힌 괴물)의 눈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 이상 지껄이면 모가지를 틀어서 새의 모이로 줘버리겠다. 지금의 나는 기분 나쁘니까 평소처럼 불평을 늘어놓고 싶다면 이틀 후에나 그렇도록. 알았나?"
이틀 후. 그 날은 바로 적과의 결전이 끝나고 난 뒤의 날. 어차피 그가 어찌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 날이라면 평소같은 분위기로, 친구들과 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홍을 입다물게 만든 뒤로 조금 서먹해졌지만 요가 돌아온다면 대인관계의 회복 같은 그런 것쯤은 어렵지 않을 테니.
이것은 신봉에 가까운 신뢰. 누가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우가 손을 뿌리쳐 가정부를 벽에 던져버렸다. 가볍게 던진 것이라 그리 큰 소릴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악마라도 본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어쩔 수 없으리라, 근래에 마법을 익힌 뒤로 그의 감정은 쉽사리 외부로 표출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내가 뭘 할 수 있지?"
그는 그다지 머리가 좋지 않다. 학교의 시험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의 머리는 톱 클래스이지만 이런 이상사태에 관해서 그는 원시인과 다름 없는 머리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머리는 장식물에 불과하다.
"난,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건가...?"
가벼운 탄식을 천장쪽으로 내뱉으며 과거를 잠시 돌아봤다.
어렸을 적, 이 몸의 상처로 인해 그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을 때. 이런 모습임에도 다가온 사람은 그 밖에 없었다. 아니, 한명 더 있었지만 전학갔다.
그 당시의 우는 너무나도 착하고 사람에게 주먹 한번 뻗은 적이 없는 유약함의 견본이라 할 수 있는 상태. 지루함에 늘어진 나무늘보들에게 그만큼 좋은 먹잇감도 없었다. 그리고 왕따가 된지 나흘 째 되던 날. 그는 왕따가 된 것을 요에게 들켰고 자초지종을 모조리 다 설명(정확히는 불었다)했다.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요는 나흘간 학교와 집에서 사라졌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에 우와 요가 납치되었던 적이 있는지라 엄청나게 뉴스를 달궜지만 그는 나흘 뒤에 돌아오고 TV로 단 한마디를 날렸다.
"산책."
그리고 그 날이 있은 후. 모든 괴롭힘이 상처가 멎 듯이 멎었다. 심지어 다가가면 얼굴을 굳히고 도망갔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요가 전학가고 다시 시작된 왕따에서부터 알았다. 그 나흘간은 괴롭혔던 모두의 약점과 치세. 크게는 폭력이 곁들어진 가정불화.
괴상하게도 죽은 사람이 없고 그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았기는 했지만. 이런 일을 벌일 사람은 요밖에 없었다.
우는 방문을 나서며 가정부가 차려논 아침식사를 무시하고 바로 집밖으로 나왔다. 그의 심란한 마음과는 다르게 하늘은 햇님만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분명히 그는 잘 살아 있단 이야기겠지."
요는 분명히 일이 생기면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을 기점으로 움직이라 말했지만 지금은 최악보단 최선을 바랄 때다.
늘 다니던 등굣길에 꽂히는 이상한 기둥소리가 불쾌했다.
"쳇, 이게 무슨 아성이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한탄을 씹어뱉고는 핸드폰을 들어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한 사람의 이름을 보았다.
'그녀'라면 분명히 날 도와줄 것이다. 아니, '그녀'의 정보력을 감안하면 요가 어딨는지는 넘어간다치더라도 적의 거점을 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멀다.
"조금 더 일찍 부를 것을 그랬나.... 바다에서 부르는 것이 아니었어."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을 질책하고 그는 빠르게 발을 놀려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다다랐을 무렵, 한 곳에 학생들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모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가 보폭을 빠르게 하여 다가가자 우의 성격을 모르는(알더라도 지금은) 학생들이 조금 물러났다. 덕분에 우는 학생들의 중심에 있는 것을 잘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붉은 글씨로 '후인사냥'이라 쓰여있었다.
"빌어먹을 새끼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명백했다. 이쪽을 도발함과 동시에 우리마저 죽이겠다는 선전포고를 해온것이다. 리더나 다름없는 요가 잡혀있는 상태니 도망갈수도, 질수도 없다.
"괜찮니? 안색이 나쁜데.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어떤 여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려고 했으나 목을 잡혀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뒷말을 잇는 그녀의 말에 우는 안색을 굳힐 수 밖에 없었다.
"[입 다물어 주겠니? 너무 놀라는 티를 내면... 들킨다?]"
=============================================
우의 이야깁니다. 예.
초반에 비중이 적은 아이기는 해도 서서히 비중을 늘려갈 생각이니 주목해 주세요.
그건 그렇고 주인공, 어렸을 때 상당히 난폭했군요. 이미 존재감조차 희미한 누님이 박아논 전사의 영혼덕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