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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
단 두명만을 위한 공간인 듯, 학교의 운동장에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그 둘의 것 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소유가 이를 갈며 키호디를 쏘아봤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눈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죽을, 마력을 담은 눈빛이었지만 그 또한 용이며 여러 전장을 거쳐온 존재. 눈빛만으로 어떻게 될 상대가 아니었다.
"융.... 네놈이 어째서 여기 있느냐. 카타스트로피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곳으로 쳐들어올만큼 배짱이 좋았을 줄이야. 이곳에 누가 있는지 잊었나?"
소유의 말에 키호디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그런 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투다.
"누가 있다고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소가의 인간과 유가의 인간은 지금 출타 중이고 신가의 인간은 은거. 게다가 아쥴 누님은 리바이어던과의 싸움으로 힘의 3할도 되찾지 못했으며 우리의 지주인 구소님은 사망하셨죠. 솔직히 이 한국에 남아 있는 강자가 몇이나 됩니까? 아니, 전력이 될만한 마수들이 있기는 합니까?"
소유는 입을 다물고 대답을 회피하는 가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 무고경주가 있다. 그리고, 내가 있다. 그외에도 전부 뿔뿔히 흩어지기는 했지만 이제 곧 모일 터. 네가 신경쓸 바가 아니다."
소유의 불안한 대답에 키호디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 또한 남아 있는 마수의 강함을 알기 때문이다.
소유만 해도 키호디 자신보다 강했으며 무고경주는 전 세계를 통틀어 최강의 영신마다. 대(代) 영신마의 주문도 무위로 돌려버리는 그들의 강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키호디는 흑룡 특유의 패널티를 가진 몸. 스스로를 강하기 위해 눈을 돌려 얻은 지략이 있다. 소유가 아무리 허장성세를 보이더라도 쉽사리 넘어갈 용이 아니었다.
키호디가 근엄한 얼굴과 반대되게 어린아이처럼 키득거렸다.
"제가 그런 것도 신경 안 썼겠습니까. 이쪽에는 두개의 가면과 그 능력을 조절 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답니다. 그리고 이곳은 완전히 폐쇄시킨 상태. 최소한 이곳에 무고경주가 끼어들 일은 없죠."
소유의 안색이 굳었다.
그 가면은 요연이 가진 검과 제작 방법이 같다. 즉, 마수 그 자체를 재료로 창조해낸 것. 그런 것을 한낱 인간의 힘으로 조종 할 수 있다?
불가능하다. 아니, 소유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했어야 했다. 심지어 그것은 각자가 구소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마수가 몸 바친 것. 그들의 노력과 각오를 봐서라도 있어서는 아니됬다.
하지만 소유의 생각과 바램을 무너뜨리듯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거인 둘의 후드가 벗겨지면서 가면이 얼굴에 박혀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력선이 조금 흐릿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의도적으로 힘의 흐름을 틀어놨다.
"세상이 변하면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것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죠. 이것으로 우리의 숙원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랑과도 같은 키호디의 발언에 소유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 사실이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깨달은 것이다.
애초에 가면이 적에게 선점 당하더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 쓸 일이 못되었다. 하지만 저 물건이 가진 힘의 반만이라도 가져다 쓸 수 있다면 정말로 위험하다. 자칫하다간 지금까지 쌓아온 나날이 모두 다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잡담은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인원의 리더는 제가 아니라서요."
키호디가 흑룡 특유의 단검 같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그 행동에 소유가 이상함을 느끼고 위험을 알리기도 전에 가면을 쓴 두 거인의 가면이 흰 빛으로, 오색 빛으로 빛나면서 기묘한 마법진을 허공에서 퍼트리기 시작했다.
"제....!"
허공에서 퍼져나간 원형의 진은 이내 호지와 소유의 머리 위로 모여들면서 갑작스레 하강해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는 소유의 모든 행동을 멎게 했다. 아니, 소유 뿐만이 아닌 호지의 움직임도 빛이 사그라듬과 동시에 멎어버렸다.
호지가 굳어버린 입술을 간신히 달싹거리며 입을 열어보였다.
"어, 어떻게......"
하지만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은 입 밖으로 완전히 전달하지 못한체 입을 다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키호디는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했다.
"호오. 어떻게 사신검주의 가면을 견뎌낸거지? 아무리 반도 안된다지만 은자궁정도로 버틸 수는 없을텐데?"
하지만 키호디의 물음에 답하는 것은 호지의 입이 아니라 그녀 옆에서 날아드는 백록색의 포격이었다. 하지만 키호디는 여러 전장을 넘어온 노장답게 능숙하게 몸을 틀어 피해내고 방금 그 포격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평소의 뱀과 같은 크기가 아닌, 거대한 몸체에 백색의 비늘을 뽐내는 백룡. 능파가 용족의 비기인 브레스를 날린 것이었다. 하지만 키호디는 그런 것 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낸 듯 눈알을 굴려 능파를 훑어봤다.
"과연, '그것의' 백룡인가? 어디선가 행하고 있다는 소리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능파는 또 다시 입에서 창백한 백록색의 브레스를 쏘아냈다. 피해내기 어려운 각도로 쏘아져 나간 그 일격은 그로서도 피할 수 없는 지 허공에 원형의 방패를 그려 막아내고는 이를 드러내 적의를 보였다.
"교육이 필요한 꼬맹이로군. 그 계획은 실패였나...!"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할 말을 내뱉으며 키호디의 입에서 마력을 태우는 흑염포가 언뜻 보이기 시작하던 것이 잠시. 능파가 어떠한 대응을 하기도 전에 흑색의 화염을 두른 포탄이 쏘아져 나갔다.
그 포탄이 능파의 몸통의 지척에 이르렀을 무렵, 백색의 코트로 무장한 방어의 화신인 우가 그것과 능파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카아악!!
불꽃이 마력의 방패를 잡아먹으려 날 뛰지만 우의 방패는 백색으로 찬란히 빛나며 불꽃의 크기를 점점 줄이더니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
"자자, 이런 걸로 시간 낭비 할 필요는 없어. 빨리 이놈들을 처리하고 요녀석을 구해내는 데 주력하자."
한낱 인간이 용의 일격을 막아낸 것에 모두가 놀랐지만 뒤이어 날아드는 우의 말에 전부 자세를 고쳐잡았다.
우가 뒤에 서 있는 능파를 돌아보지도 않고 낮게 말했다.
"능파, 흑룡을 부탁할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능파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키호디를 향해 길쭉한 몸을 화살처럼 쏘아나갔다. 이내 서로 머리를 들이 박은 두 용은 꽈배기처럼 꼬이면서 서로를 공격해 갔다. 하늘 위로 솟아오른 두 용들은 먹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이제 땅에 남은 건 봉인된 두 마수와 인간들 뿐. 지금까지 입을 다문체 침묵으로 일관했던 적. 루그로가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 차례인가? 아,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그는 무성의하게 왼손에 들린 검은 상자를 아무렇게나 그들의 앞으로 던져버렸다. 폭탄인가 싶어서 우는 방어막을 전개했지만 몇초가 지나도 묵묵부답인 그 물체에 의문을 느낄 때, 그것이 무엇인지 루그로는 선생님처럼 친절히 가르쳐줬다.
"이건 말이야. 너희가 가장 좋아하는 거야. 그저... 일부일 뿐이지만."
그렇게 말하며 아무런 대비 없이 상자에 걸어가 손등으로 툭 쳤다. 상자를 이루고 있던 검은 물질이 마력으로 분해되어 그의 손목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마력의 사이로 드러난 것은. 가장 바랬으며 가장 이러지 않길 바랬던 요의, 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