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11화 (111/340)

0111 / 0340 ----------------------------------------------

그녀'들'과의 재회

탁.

수저가 간단한 앉은뱅이 테이블 위에 놓아진다. 방금 그 행동을 끝으로 자신의 식사를 끝마쳤단 신호를 보낸 나의 어머니는 밥에게 주던 시선을 내쪽으로 돌렸다.

"요약하자면 학교 지하에 사는 용과의 내기에서 이겼기 때문에 호지란 아이를 키웠고 저 하얀 꼬마는 호지가 데려왔으며, 저 아가씨는 소야의 사제다. 뭐, 그런 소리지?"

식사와 함께 설명했던 나의 장황한 설명을 겨우 몇마디로 압축시킨 것에 나는 한숨이 나왔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있었는데 저렇게 무성의 하다니. 물론, 죽을 뻔 했다던가 사람을 죽였다던가하는 이야기는 뺐지만 기분은 나쁘다.

탁.

테이블의 모서리에 앉은 요연이 마지막으로 식사를 끝내자, 어머니의 시선은 나에게서 요연 쪽으로 돌아갔다.

"소야의 사제라... 소야는 어때?"

"... 아마 어머님의 기억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모습일겁니다."

어머니는 진실을 말해서는 안되는 이 상황에 요연이 가장 대답하기 어려울 질문을 날렸지만 요연은 화내는 기색도 없이. 아니, 오히려 그 시간을 추억하는 느낌으로 무난하게 어머니의 말을 받아내고는 상을 들어 부엌쪽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등을 한참이나마 바라보던 어머니의 시선이 호지에게로 옮겨갔다. 어머니의 시선에 호지가 움찔 떨고는 내 등뒤에 숨어서 어머니를 빼꼼 쳐다봤다. 그러다가 어머니와 시선이 마주치자 어머니의 시선이 닿지 않도록 등뒤로 완전히 숨어버린다.

첫대면에 다짜고짜 그런 말을 날렸으니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리오지 않겠니?"

어머니가 다독이는 듯한 목소리로 호지를 불렀지만 호지는 요지부동. 아직도 내 등에 숨어서 빼꼼 머리만 내밀며 상황을 살필 뿐이었다. 난 한숨을 내쉬며 등에 매달린 호지를 앞으로 옮기며 어머니가 있는 쪽으로 밀어버렸다.

호지는갑작스런 나의 배신에(배신이라고 하기도 뭣 하지만) 원망스런 눈초리로 나를 흘겨봤지만 다가오는 어머니의 손에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어머니는 깐깐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의외로 아이들에게 관대하다. 호지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하물며 때 아닌 손녀인데 귀엽게 대했으면 대했지 혼내지는 않을 터. 그리고 내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았다.

어머니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호지를 콱 껴안은 것이다.

"히약!?"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단다~. 어려서 그런지 피부도 좋네. 그리고 부들부들하고, 작고, 귀여운 게 딱 아들 취향인데?"

호지는 자신을 껴안은 채 이리저리 부비적거리는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취향이라는 한 구절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빠 취향?"

"호호, 물론이지. 외모는 일정수준만 되면 딱히 가리지 않는 것도 취향이라면 취향이지."

쿠웅.

호지의 머리위로 돌덩이가 낙하하는 것 같은 모습이 그려지면서 호지가 고개를 크게 떨궜다. 그런 호지를 어머니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다리 사이에 앉힌 다음 코를 흥얼거렸다.

"정말이지, 우리 아들하고 딸은 키우는 맛이 없는 아이였지... 소야는 한 살 때 집구석에 던져두고 일을 다녀오니 어른수준의 어휘를 구사하지 않나, 나중에는 초능력을 쓰지를 않나, 마법사가 제자삼겠다고 찾아오지를 않나..."

어머니의 회한과도 같은 목소리가 천장을 향하다가,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흡사 먹이를 노리는 것만 같은 그 눈빛에 나는 몸을 떨었다.

"하나 있는 아들은 주제도 모르고 소야에게 덤볐다가...."

"으악으악으악!! 어머니 스토오오옵!!"

멋대로 남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려는 어머니의 행동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말을 막으려 했지만 능파가 뱀정도의 크기로 변신해 제갈처럼 입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더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숙덕숙덕숙덕숙덕숙덕.

멈추지 않고 남의 과거사를 주고 받는 호지, 슈, 어머니를 보며 나는 그 자리를 피해 30분이나 빨리 친구와 만나기로 했던 약속장소로 향했다.

얼결에 능파까지 용 상태로 허리에 벨트처럼 찬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어떻게 자리를 피했지만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가 있을 터. 아무리 짧게 머물러도 오늘은 같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빼더라도 지금 나의 과거사를 듣고 있을 슈나 호지가(요연은 말이 적으니까) 나중에 옛날 이야기를 꺼내면....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나는 능파에게,

"하아... 능파야, 너만큼은 내편을 들어주지 그러니."

길거리에서 허리에 있는 능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아직은 이른 아침. 누가봐도 들킬 일은 적다.

나의 푸념에 능파는 잠시 갭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 어머니가 재미있어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단 둘이 하고 싶은 말도 있었고요."

평소와 달리 진지한 어조로(평소에도 진지하기는 했지만) 입을 연 능파 덕에 나는 가벼운 오한을 느끼며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능파가 꺼낼 이야깃거리라고 해봤자 어제의 싸움을 말하는 것일 텐데, 그것은 어제 전부 다 이야기하고 끝 맺었던 것이 아니던가? 아니, 어쩌면 나도 눈치채지 못 한 다른 일을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귀를 기울여 능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요연에 관한 건데... 간단히 말해서 조심하라는 거죠."

"....옛날에 나랑 싸웠던 일을 다시 꺼내는 것은 아니겠지?"

능파는 답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것이 긍정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연이 무엇을 했다고 내가 조심을 해야하는 거지? 저번에 싸웠던 것은 오해(라고 하긴 힘들지만)가 그나마 풀린 상태고 나를 위험하게 할 꼬투리는 없다... 고 생각하던 나는 머릿 속에 떠오르는 몇가지 가정에 생각을 전환했다.

확실히 요연은 요즘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그것의 절정은 용들을 포섭하러 간다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손을 후려친 것. 같은 맥락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고민 같은 것도 가지고 있어보였다. 무작정 아니라고 생각 할 일은 아니다.

"아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요즘 요연은 이상해요. 게다가 이번에는 특히나."

이번에는. 내가 없어진 그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요연은 용들을 포섭하러 여행을 갔었다구? 이상 할 것이 뭐 있어?"

능파는 고개를 저었다. 불길한 감각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래서, 전화를 해봤어요. 처음에 요연이 어디 갔는지는 몰랐지만 마수들에게 용을 꼬시러 갔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래서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가 위험하다, 그러니 도우러 와라. 이렇게 말했는데... 거절당했어요."

머리가 어지럽다.

능파는 내가 위험에 빠졌는데 요연은 못 본 척했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지내 온 시간동안을 생각해보면 요연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다. 결국 도우러 왔기는 했지만, 능파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아마도,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을 공산이 크다.

"결국 돌아오기는 했죠. 그래도 조심해 두세요. 슈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능파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못 본 모양이지만 저는 그 때 상당히 화가 나서 수화기를 부숴버렸어요."

나는 요연에 대한 일은 모조리 머릿속에서 삭제하고 비명을 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