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13화 (11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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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과의 재회

후인계획은 가짜다. 빨간 크레파스보다도 더 빨간 가짜. 그러니 말해봤자 쓸모도 소용도 없겠지만 일단은 비밀이니 말하면 안된다.

아니, 되기는 된다. 마법에 관한 사람 한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 우리는 민간(인으로 판단 했을테니)인이 잖은가? 그런 말을 쉽사리 입에 담아서는 곤란하다.

"비밀을 그렇게 쉽사리 불어버릴 생각은 곤란해."

운은 알고 있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알고 있데이. 다 말할 생각도 아니었스니께. 그건 그렇고 니들은 왜 이곳에 있는 기가? 여기서 무언가 살게 있나?"

"아, 응. 이번에 학교 축제를 할 때 준비물을 사기로 했거든. 다른 친구들도 오기로 했어."

그녀는 손뼉을 치며 납득한 표정을 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부 다 후인계획 소속?"

"....글쎄? 전부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

나는 엄밀히 말하면 후인계획의 참가자가 아니다. 그것은 호지, 능파, 요연, 슈도 마찬가지. 우리는 일종의 들러리(육왕이라는 직책명을 봐서는 큰 갭이 있지만)에 불과하다.

나의 애매한 대답에 운이 고개를 갸웃할 때, 나에게서 낮은 미성이 울려퍼졌다.

"할아버지. 나는 언제쯤 소개 할 꺼죠?"

갑자기 나에게서 울려퍼지는 소녀의 목소리에 운의 표정이 기괴해져서 날 쳐다봤다.

나는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남자다. 여자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단 소리. 그렇기에 우에게는 의아한 눈초리를 사지는 않았지만 운은 저렇게 표정이 구린 것이다.

묵묵히 있던 우가 손바닥을 탁 쳤다.

"능파냐?"

나는 우에게도 능파가 허리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고개를 연달아 끄덕여 그의 말에 긍정을 표하자 운이 표정을 구겼다.

그녀의 설명을 원하는 아이스(ice)한 눈초리에 나는 상의의 밑단을 부여잡고 가볍게 들어올렸다. 아니, 들어올리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운이 올라가는 내 손을 막아버린 것이다.

운은 혼수상태가 아닌지 의심되는 상태로 사투리와 표준어의 경계를 오가기 시작했다.

"너 미친기가!? 대답은 않고 왜 옷을 벗으려고 해? 아니, 아부아봉우?!"

...사투리와 표준어의 경계가 허물어지다 못해 인간과 해면체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린 운이 급속도로 인간에서 멀어져가자 우가 운의 이마를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그 일격이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시간이 다 됀건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린 운은 머리에 손을 얹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후우... 노출증은 묻어두겠데이. 그래도 대답은 제대로 해야하지 않겄나."

그녀는 미묘하게 표준어의 억양이 남아있는 목소리로 무언가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뒤에서는 우가 얼굴을 가리는 것도 잊은 체 키득거렸다.

알고 있으면 좀 도우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별별 의심을 더 키울 것 같아 나는 스스로 처리하기로 했다.

상의 밑단을 잡고 있던 손이 바로 허리 위까지 올라왔다.

"노출은 자제.....? ........!?"

이번에는 무음(無音)과 유음(有音)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입술은 무언가를 말하는 듯 움직이지만 정작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소리는 없다.

그야말로 소리없는 아우성.

그녀의 반응에 허리에 벨트처럼 감겨있던 능파는 가볍게 평했다.

"재밌는 반응이네요."

"용밸트!?"

능파의 평으로 경계가 다시 세워지고 운이 외치자 능파는 허리에 감긴 상태로 무료한 듯 입을 벌렸다. 하품하는 것 같다.

그런데 불은 뿜지 말았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의 소꿉친구분. 전 백능파라고 합니다."

상황적 조건 때문에 내 허리에서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능파의 목소리에는 호지의 딸(양딸이지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정중함이 묻어있었다. 그에 운은 당황한 것도 잊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능파가 보이지 않는 궤도의 지나가던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 뿐. 저마다의 할 일을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운은 그런 것도 신경쓰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그, 근디 이건 뭐시다냐? 용인 것은 알겠는디... 왜 니가 차고 있는 기가?"

능파는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잠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호지와 만났던 일, 호지가 능파를 데려왔던 일을 차례로 설명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전투가 관련된 일은 전혀 입에 담지 않았다.

어차피 알아서 좋을 것도 없고 월요일에 소유를 만나면 해결될 일. 전학까지 왔다고 하니 내가 더이상 입을 놀릴 필요는 없다.

운은 호오하는 감탄을 질렀다.

"그러니께. 니는 양딸이 있고 양손녀..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단 말이제? 뭐, 그거야 이제 자주 볼테니께 넘어가고... 하고 싶은 말이 있데이."

중간의 양적인 음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음적인. 두려움이 서린 음성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옛날과 지금은 상당히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성품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 그녀의 반응은 이상하다.

운은 낙천적이다. 그것은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겁이 없다는 뜻도 된다. 친구가 적다는 이유로 말투조차 뜯어고친 과감성도 그녀는 가지고 있다.

겁이 없고, 과감하다. 이 두가지 무기면 소유가 본모습으로 눈앞에 있어도 겁먹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겁을 집어먹었다. 그것은 몇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용을 뛰어넘는 설명불능의 괴물을 보았거나, 정신을 압박하는 주문이라던가, 현실에서 해서는 안되는 일을 일으켰다던가.

운이 슬며시 운을 땠다.

"수상고에는, 엄청난 연쇄 살인마가 있는 것 같데이."

살인마. 인간을 무참히 도륙한 사람을 이르는 총칭 같은 단어다. 혹시... 나?

나라면 분명히 살인마 소릴 들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사람은 최소 삽십 이상 죽였고 수상고에 있으니까 다른 조건도 충족된다.

요연도 숫자로 치면 나보다 몇 배는 되겠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특별히 한국에 국한 된 것이 아닌데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반년정도. 물론 나도 그리 오랜 기간을 죽여온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많은 양의 인간을 죽여본 적이 없다.

운이 입을 열려는 순간 뚜벅뚜벅하는, 묘하게 사람의 이목을 끄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보았다.

"....여, 간만이네."

나의 인사에 검은 양복을 입고 눈을 감은 체 능숙하게 사람을 피해오는 성인 여성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 옆에 호위받는 것처럼 서 있는 백색 원피스에 넓은 챙모자를 쓴 고귀한 소녀 또한 정중히 검은 선글라스를 들어 눈인사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저번보다 더욱 성숙해진 것 같다.

"간만이에요, 고요. 그리고... 우 오빠."

신소누. 21세기 교주님이며 내가 로데오와 싸우면서 지켜낸 신가의 아가씨다. 세계를 보겠다는 말과 함께 해외로 나갔던 아가씨가 호위인 치지씨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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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삼연참! 설특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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