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생의 육아일기-114화 (11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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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과의 재회

가벼운 몸짓으로 우리에게 손윗사람(맞기는 하지만) 한테나 할 법한 정중한 인사를 한 소누는 나나 운에게는 눈짓 한번 주지 않고 우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꼬옥 붙잡았다. 갑작스런 그녀의 스킨쉽에 우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저것이 놀랍다. 내가 잠들었던 것이 약 사흘. 겨우 그 틈에 저렇게 친해지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텐데. 듣기론 바엘의 일격을 몸으로 받아낸 것이 계기가 되었던 모양이지만 역시 이해하기 힘든 일임에는 부정 할 수 없다.

뭐, '첫눈에 반한다'는 것도 있으니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교줍!?"

요즘 소리 칠 일이 많은 운의 입에 손을 집어넣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본의 아니게 손가락에 운의 이빨자국이 남았지만 이정도 통각은 광진의 패널티에는 발끝에도 못 미친다.

운은 내 손을 거칠게 입에서 뽑아내며 내 이마에 손가락을 튕기려고 중지를 다른 손으로 쭈욱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것 덕분에 기억해냈다.

운의 마빡튕기기는 나무에 손가락자국을 1cm이나 남긴적이 있다는 것을.

고개를 젖혀 피하자 볼 옆으로 섬뜩하게 바람이 찢기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공포를 느낀 나는 다시 한번 일격이 날아오기 전에 입을 열었다.

"잠깐만 운. 소누는 너도 알다시피 교주야. 이런데서 네가 비명지르면 귀찮아진다고? 그런 고육지책이니까. 응?"

애를 어르는 것처럼 말한 나의 뜻이 잘 전달되었는지 두번째 마빡튕기기를 날릴 분위기는 사라지고 턱을 아저씨처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신도로서도 아직 교주님이 있는 편이 좋으니께."

"신도였어!? 그것도 네가?"

운이 신도. 아무 걱정없이 살아온 것만 같은 그녀가 뭐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교주같은 우상이 필요한 거지?

"너무하지 않나. 내도 고민정도는 있데이. 뭐, 마법을 배우고 교주님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지만서도... 평소와 같은 느낌."

잠시 씁쓸한 표정을 보이는가 싶더니 그녀는 다시 평소의 장난스런 얼굴로 탈바꿈하곤 소누와 우에게서 고개를 돌려 기지개를 쭉 폈다.

기억났다. 그녀는 활기차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이야기고 가족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면 조금 다르다. 부모님은 매일 같이 이혼 후의 위자료와 양육문제 때문에 치고 박고 싸웠었다(어렸을 때 직접 봤다. 당시에는 누나가 '겁'줘서 쫓아보냈다). 그녀에게는 그녀 나름의 괴로움이 있다.

나는 멋쩍게 튀통수를 긁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이런 때에 쓸데없이 그 화제를 꺼내는 걸 싫어한다. 사과도, 뭣도 필요없다. 그저 평소처럼 대하면 그 뿐.

그리고 그 화젯꺼리는 쉽게 나타났다.

"요, 넌 또 바람이냐?"

능글맞게 옆에 있는 운을 가리키는 하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맹렬히 저어보였다. 운이 나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또 바람'? 니 여자 있었나? 그것도 한둘이 아닌 모양이제?"

"어머나, 처음뵈는 여성분. 저래뵈도 저 청년은 여자관계가 문란한 남자랍니다? 왜냐하면...."

숙덕숙덕숙덕숙덕. 그 둘은 서로 처음보는 주제에 의기투합해서 나의 험담을 이리저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서로가 알고 있는 내 이야기를 안주삼아 씹어대던 그들은 어느틈엔가 친해져서 동시에 나에게 손가락질 했다.

명백히 이쪽이 유리한 상황이건만 기세에 눌린 나는 말을 더듬으며,

"뭐, 뭐야 그 손가락은."

"그냥 가리킨 것 뿐이야. 친목도 다질 겸."

남을 짓밟아서 친목을 다지지 말아줬으면 한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의 소리가 그들에게 들릴리는 만무할 터. 그들의 사이는 급속도로 허물어져 갔다.

그러던 중 하여의 눈길이 소누에게 닿았다.

"어라, 교주님이잖아? 언제 돌아온거야?"

우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던 시선이 하여에게로 돌아갔다.

"오늘 막 도착했답니다. 본래는 그저께까지 도착해서 당신들을 도와야했겠지만요."

소누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에게 살짝 눈짓을 줬다. 나는 멋쩍은 듯 볼만 긁적였다. 하여가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아! 우가 바다에서 전화했다는 사람이 너였어? 이야아아. 하하하, 이거 굉장한데! 최고야! 신문에 내면 분명히 일면기사가 될거야."

당시 전화 대상을 친구들의 강압에 못 이겨 우의 연인이라는 것정도는 말해둔 적이 있었다. 그러니 저런 반응은 당연하리라. 나도 처음 알았을 때는 그 이상의 반응을 보였으니까.

과하다면 과한 그녀의 반응에 우가 모자를 내려 얼굴을 가렸다. 보이지는 않지만 필시 그의 얼굴은 분명히 봉숭아를 들인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어있으리라.

우가 흐느끼듯 말했다.

"그, 그만해. 부끄럽게. 그건 그렇고 나머지 인원은 언제 오는거야?"

나름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 우는 모자를 부채삼아 얼굴을 부쳤다. 이미 더운 시절은 지났는데도 열이 상당히 오른 것 같다.

"지금."

나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모두가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다른 인원들을 찾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듯, 머리위에 커다란 물음표를 하나 세웠다.

당연하다. 간만에 사용하는 풍백의 전개로 확장된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니까. 일반인의 시야 밖에 있는 호지와 슈, 그리고 소화를 찾아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윽고, 호지와 슈. 그리고 소화가 다가오자 하여가 손을 흔들며 맞았다.

"여기야 슈~~ 그리고 호지."

호지는 덤이냐? 하지만 호지는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내 품에 뛰어들어 배를 꼬옥 끌어 안았다. 허리에 있는 능파가 여전하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슈도 다가와 가볍게 목례해서 인사하고는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홱.

피했다. 그리고 기억났다. 호지와 슈는 어머니에게 나의 부끄러운 과거등을 들은 상태. 조금 반응이 특이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나는 배에 안긴 호지의 얼굴을 살짝 들어 물어보았다.

"호지야. 어머니가 무슨 소릴 했니?"

호지의 대답에는 내가 이제 껏 느낀 적 없는 공포가 묻어나올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는 호지의 입을 주시했다.

"응.... 고모에게 덤볐다가 깨진 일 같은 거? 대개 고모 관련 일 밖에 없었어."

호지는 은근히 실망스런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뭐, 내가 부끄러워하는 핀트가 호지나 슈와는 다른 것이겠지.

슈는 다가와서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 나도 도와줄께. 요의 누나에게 한방 먹이는 일."

이상한데 열의를 불태우는 슈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자 운이 다가와서 내 등을 툭툭쳤다.

"히야~~. 진짜 보통이 아니지 않노. 여자인데도 질투가 난데이. 어렸을 때는 그리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꼬신기가?"

호지는 자궁출신이라 그렇고 슈는 체스대회에서 날 보고 이미 팬이 된 상태였으니까 그렇지...라고 말하기는 뭐해서 그냥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 때, 배에 감긴 호지의 팔이 마치 포승줄처럼 조여들기 시작했다. 피부가 쓸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호지를 내려다 봤다.

"아빠... 저 여자, 누구야?"

앗차. 나는 호지의 말을 듣고서야 내 실책을 알아챘다. 어깨에 느껴지는 슈의 손아귀에서는 이미 마력적인 흐름에 의해 어깨가 으깨지고 있었다.

고통에 의해 입이 막혀 변명 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나를 대신해 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꿉친구지. 그리고 다른 후인계획의 참가자이고."

"키히힛. 따라와 보래이."

운은 내 배의 호지와 슈를 끌고 백화점 문 옆의 인출기 앞에 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왔을 때는 소꿉친구 못지 않게 사이가 좋아진 상태였다.

정말이지, 내 주변의 여자들은 귀가 얇은 건지 화술이 좋은 건지. 같이 살아온 나날이 몇 일 인데 이것은 나도 이해하기 힘들다.

다시 돌아온 호지가 내 팔 한 쪽을 점령한 체로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을 때, 주변의 기온이 조금이지만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여전히 사이가 좋으시군요."

그의 발걸음 한번에 세상이 일그러진다. 팔이 하나 없다는 특이한 외모 덕분에 시선이 모이는 것이 아니다. 그녀석 자체가 내놓는 기이한 분위기와 힘. 댐으로 막아놨지만 느껴지는 다량의 물 같은 느낌이다.

영왕 소유운. 해외로 나갔던 그가 돌아온 것이다. 나는 평소처럼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아니, 인사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운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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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그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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