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0 / 0340 ----------------------------------------------
운명
이번 공동안의 상태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애초에 변하지 않는 것이야 그렇다쳐도,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도넛처럼 가운데가 빈 둥그런 원탁이 공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유는 용의 모습에서 인간으로 돌아와 공동의 중심에서 평소처럼 놓여있는 뼈의자에 왕처럼 앉았다. 그러자 미리 도착해 있던 다른 인원들과 우리들은 따라 각자가 앉을 자리를 찾아 앉아버렸다(의자는 교실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의자). 모두가 자리잡고 시선을 소유에게로 모으자 그는 느릿하게 입을 움직였다.
"자... 전부, 이야기하기로 했지. 어느 쪽 부터 하는 것이 좋을까?"
마치 우리에게 묻는 것처럼 그는 말했다. 그러자 유운이 자신이 앉은 의자 앞의 탁자를 손등으로 튕겼다. 딱딱하는 맑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예언에 나온 이야기들과 당신의 과거, 이례에 관해서는 이쪽이 대강 다 설명했습니다. 소유는 '카타스트로피'나 '치우회'에 관해서만 설명하면 되겠지요."
유운은 새로운 조직명을 입에 담으면서 소유가 앞으로 설명해야 할 말의 진로를 잡았다. 소유는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타스트로피. 그 조직의 설립은 두번째의 전쟁(세컨드 워)... 이라고 하면 알려나?"
"모르겠는데요."
"미 투. 무슨 소릴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가 않아요."
하여와 경홍이 즉답했다.
당연하리라. 경홍은 이번에 막 들어왔으며 하여는 한국에서 머물면서 잔업(이라고 해야하나?)등을 처리하면서 수련에만 매진 했으니 알리가 없다.
소유는 애꿎은 옆 머리카락을 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럼 나중에 우에게라도 듣도록. 그녀석에게는 내가 기반지식을 가르쳐 줬으니까. 지금 이야기는 기억만 해둬. 어찌되었든 두번째 전쟁에서..."
"잠깐."
나의 제지에 또 다시 말을 가로막힌 소유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나는 그 반응에도 아랑곳않고 말을 이었다.
"우는, 알고 있었다고? 어느새... 아니, 어리석은 질문인가."
여태까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가 기반지식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 했지만 언제쯤 알게 되었을지는 대략 예상되었다.
소누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난 뒤의 내 입원기간. 그 때라면 묘하다고 느낄정도로 빠르게 소누와 우가 친해진 것도, 소누가 갑자기 외국으로 세계일주 한 답시고 나간 것까지. 모든 아귀가 들어맞는다.
우가 사귀는 것이야 그렇다쳐도 소누는 교주. 그녀의 지지자들로서는 해외에 포교하러 간다고 보이는 행동일지 모르지만 기적 같은 허무맹랑 한 일을 믿지 않는 지식인이라면 해외로 도망치는 것이라는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듣고 외국에 퍼져 있다는 마수들을 귀환시키게 위한 것이라면 말이 된다. 게다가 예언에 나온 성녀라는 이름이 있으니 흩어진 마수들을 끌어모으는 데는 제격이었으리라.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질문을 바꿨다.
"'어째서' 우 였지? 슈야 너의 말마따나 외국인이라서 제외. 하여는... 딱히 걸리는 것이 없고.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없었던 이유는?"
나의 발언에 소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너의 '신분'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왕이 백색아성과 친한 사람이란 명제가 붙은 사람이기는 했지만 예언에 '시간'은 언급되지 않아. 10년 뒤에 친할지, 20년 뒤에 친할지는 아무도 모르지. 게다가 우는 백색아성. 이름에도 보이다시피 방어에 특화한 능력자. 설사 위험하더래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여는 능력적 여건이 우보다 나빴고."
"거짓말!"
사자후에 비견 할 만한 나의 외침에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옆에 앉은 호지가 내 손을 무서운 듯, 꼬옥 감아쥐었다. 그러자 옆에 앉은 슈가 반대편의 손을 대응하 듯, 말아쥐었다. 덕분에 일어서지 못 한 나는 살짝 인상을 쓰며 들어올린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여는 믿지 못 했던게 아닌가 소유?"
내 말이 끝나자 소유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그것과 동시에 탕하는 맑은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그렇게 된 것인가.
"그것에 관해서는 입 다물어주지 않겠나."
"어떻게 해서든 이 전쟁에 참가시키기 위해? 어린애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너무 얕본 것 아니야? 이쪽이 언제까지나 너의 체스말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인데."
갑자기 싸하게 내려 앉은 분위기에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인물들(슈, 하여, 경홍, 호지)이 서로의 얼굴을 의아한 듯이 훑어봤다.
그것을 기회로 나는 입속에서 우물거리고 있던 말을 뱉어냈다.
"인간에게 호의적인 환룡 히탄 그레타리아. 하지만 인간이 호의를 보내 줄 것이라 생각하면 곤란하지. 미안하게도 나는 그 때 유운에 대한 평가보단 당신의 평가를 깎았거든. 그 당시의 시대상을 보지 않아서 확답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그 때 그렇게 배반 때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카타스트로피의 대응책 따윌 생각 할 필요도 없었겠지."
"...대응책을 논의하자고 한 적은 없는데."
"안 할 거야? 어차피 모두 말하게 된다면 안 할 수가 없을텐데."
묵비. 그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여세를 몰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모든 것을 말한다고 호지에게 말했다고 했으니 감추지 말고 모두 이야기하자구? 하여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하지 않았다고."
"에엑~!? 자, 잠깐, 뭔소리야 그거?"
하여가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소유를 바라봤다. 소유는 깍지 낀 손을 풀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잠시, 호지의 목에 동물원의 사육사가 파충류랑 노는 것처럼 목에 감겨있던 능파가 책상위로 올라와 인간으로 변신하더니 나를 돌아봤다.
"할아버지! 설마, 그건... 결과조차...?"
아무도 이해 못 할 질문이었지만 당사자인 나는 이해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것과 동시에 능파가 소유에게로 뛰어들어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갑작스레 멱살을 잡혀올랐지만 소유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은 체 였다. 그것에 더욱 분노를 느낀 것일까, 능파의 주먹이 소유의 얼굴로 휘둘러졌다.
타앙!
손만이 용비늘로 휩싸인 능파의 손과 옆에서 날아든 붉은 창날이 부딫히면서 공격이 무효화 되었다. 그리고 창날은 재차 날카로운 몸체를 움직여 능파의 목에 겨눠졌다.
"치워."
"안돼."
능파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한 선생님은 능파의 목을 가볍게 창끝으로 긁었다. 끼기긱하는 듣기싫은 노이즈와 함께 능파의 목에 모습을 드러낸 용비늘에 긴 흠집이 그어졌다.
"용이라고 자만하지 않는 것이 좋아. 마음먹고 휘두르면 용비늘 따위는 가볍게 잘라버릴 수 있으니까."
"그전에 죽여버리면 되는건가?"
"... 그만둬라 능파.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나의 제지에 계속해서 투기를 피워올리는 능파가 불만스런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지만 이내 혀를 차며 호지의 품에 용의 모습으로 돌아와 안겼다.
툭툭. 가볍게 손등으로 앞의 책상을 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
본궤도로 오르는 군요!
잠시 동안은 조금 어둡게 진행될지도..?
참고로 중간에 나오는 주인공의 '거짓말'이란 대사는 쓰르라미의 레나양 틱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